내 심장을 줄게 - 심장을 이식받은 기상캐스터의 햇살 찬란 투병기
오수진 지음 / 소소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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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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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심장이 뛰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웃고, 걷고,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하루를 흘려보낸다. 심장은 그 모든 순간에 묵묵히 뛰고 있지만, 그것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당연해서 기적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것.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살아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KBS 기상캐스터로 많은 사람에게 날씨를 전하던 저자는 서른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암을 마주하고, 이후 심장병까지 겪게 된다. 그리고 심부전이 급격히 악화된 끝에 중환자실에서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상황에 놓인다.

그 순간부터 ‘내일’이라는 단어는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너무 쉽게 말하던 내일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되고, 평범하게 누리던 한 끼의 식사와 가족의 목소리, 따뜻한 햇빛과 걸음을 옮기는 일조차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소중한 순간이 된다.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저자가 중환자실에서 희망을 놓았을 때 자신의 몸까지 함께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는 대목이다.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걸.”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사람에게 희망은 낙관적인 생각이나 예쁜 말이 아니라, 오늘을 버티게 하는 실제적인 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먼저 포기하면 몸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반대로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라도 붙잡고 있다면 그것이 다시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희망은 생존과 연결된 어떤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에게 심장이 온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장기이식이라는 것이 ‘병든 장기를 새로운 장기로 교체하는 의료행위’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사람에게는 삶의 끝이었던 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삶의 시작이 된다.
누군가의 심장이 멈추었고, 그 심장이 저자의 가슴 안에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 사실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는 살아났다’는 기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 사람의 삶이 끝난 뒤 남겨진 생명의 일부가 자신의 삶을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심장이식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동시에 삶과 죽음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주는 사건처럼 느껴진다.

특히 수술 후 아버지가 찾아와 손을 잡아주는 장면은 책의 여러 장면 가운데서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아버지는 내 손이 따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
따뜻한 손을 확인하는 것.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는 것.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을 일이지만,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그것이 다시 살아났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된다.

그래서 이 장면을 읽으며 ‘삶의 기적은 거대한 사건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 따뜻하다는 것.
그 손을 잡아줄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다시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던 기적이었다.


장기기증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바라보면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깊은 의미가 생긴다.

기증받는 사람은 기증자를 알지 못한다.
기증자 역시 자신의 심장이 누구에게 가게 될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생명이 다른 한 사람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 연결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랑이 존재한다.

저자가 ‘내 심장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나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마음 한구석에 남는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질문에는 답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더 큰 감사가 남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은 생명이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하루를 대하는 태도 역시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알 수 없기에 더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적적으로 심장을 이식받았다고 해서 이후의 삶이 완벽하게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절망이 찾아온다.

삶은 계속해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진다.
‘왜 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질문 앞에서 저자는 다시 삶을 선택해 나간다.
그래서 이 책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끈질긴 과정인지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게 느껴진다.

한 번 살아났다고 해서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웃고, 하루를 살아간다.

삶이란 이처럼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두려워하면서도 한 걸음 내딛고, 오늘을 견디면서 또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책 속에서 특히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것이다.
🔖“아주 작은 행동이 삼삼오오 모여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예쁜 옷 한 벌, 뜨거운 호떡 하나, 웃으며 만나는 사람 한 명. 그 정도면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는 것은 훨씬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따뜻한 음식 한 끼.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일.
좋아하는 사람과 웃으며 대화하는 시간. 산책하며 바라본 하늘.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삶을 붙잡아주는 작은 손잡이일지도 모른다.

특히 심장이식을 경험한 사람이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호떡 하나’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먹을 수 있는 것, 만날 수 있는 사람, 오늘만 느낄 수 있는 온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평범한 하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오늘 아침 눈을 뜬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것.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은 것.
걸어서 어딘가에 도착한 것.

이 모든 일이 사실은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더 선명해진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가능성을 생각하는 순간, 그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오히려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설이
이 책 안에 존재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고 난 뒤 마음에 남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능하게 만드는 수많은 사람과 순간들이었다.

저자를 살린 것은 기증자의 심장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치료한 의료진, 곁을 지킨 가족, 다시 걸음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사람들, 그리고 힘든 순간마다 삶을 선택했던 저자 자신까지.

삶은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많은 사람의 마음과 손길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결의 가장 극적인 형태가 장기기증일 것이다.

한 사람의 마지막이 다른 사람의 내일이 되는 일.
그 사실을 생각하면 ‘나의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인가’라는 사유까지 이어진다.

저자가 두 번째 삶을 받아 살아가면서 느꼈을 감사와 책임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오늘을 살아내는 것.
그리고 오늘의 작은 행복을 알아보는 것.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평범했던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죽도록 바라던 내일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하루가 사실은 수많은 기적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

책을 읽고 나면 내 심장도 괜히 의식하게 된다.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두근, 두근.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던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지금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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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쿠 - 망자의 터
기타자와 도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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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오팬하우스 (@ofanhouse.official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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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눈앞에 나타나는 괴물일까.
피로 물든 시체일까.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일까.

《온고쿠 : 망자의 터》를 읽고 나면 조금 다른 답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인지도 모른다고.

《온고쿠》는 1923년 간토 대지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그리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후루세 소이치로에게 아내 시즈코의 죽음은 이미 지나간 사건이 아니다. 그녀를 잃은 순간부터 그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죽은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 무녀에게 강령 의식을 부탁한다.

여기까지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절절한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온고쿠》는 그리움을 위로의 감정으로만 다루지 않으며 죽은 이를 붙잡으려는 마음이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끈질기게 파고든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집 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익숙했던 향기가 불길한 징조가 되고, 사랑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공포의 신호가 된다. 가장 그리운 사람이 가장 두려운 존재로 변해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포가 ‘무서운 존재가 나타난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해칠 수도 있다.’
이 한 가지 설정만으로도 감정에 상당히 잔인한 균열이 생긴다.

보통 귀신이 나타나면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귀신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서워하면서도 쉽게 외면할 수 없고, 도망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붙잡고 싶어진다.

바로 그 모순이 이 작품의 공포를 더욱 서늘하게 만든다.


🔖“뒤뒤뒤, 뒤에, 뒤, 뒤, 뒤, 뒤에-”

묘하게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공포는 때때로 무언가를 직접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훨씬 강해진다.
‘뒤에 있다’는 말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의식하게 만든다.
지금 누군가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방금 지나친 공간에 무언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읽는 순간조차 주변을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온고쿠》의 공포가 흥미로운 이유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은 어떤 괴물보다 훨씬 잔인하다.

무녀가 말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부러워서 그러지.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도 말할래, 나도 말하고 싶어, 하고 술렁술렁 성가시게 떠들어 대면서 샘내고 조르는 게야.”

이 문장을 읽으며 처음에는 기이하고 섬뜩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말에는 작품의 핵심적인 정서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리지 못한 망자들. 떠나지 못한 존재들. 기억되고 싶어 하는 죽은 자들.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한다면,
죽음과 삶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모호해질 것이다.

그래서 《온고쿠》의 귀신은 살아 있을 때의 욕망과 미련을 품은 채 경계에 남겨진 존재들이다. 이 작품에서 귀신을 만들어내는 것은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후루세에게 시즈코는 잊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정반대다.
잊을 수 없어서 문제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죄책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은 이를 다시 불러내는 선택까지 한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이 과연 행복일까.

이 작품은 그 질문에 아주 잔혹한 방식으로 답한다.

🔖“열면… 열면 안 돼요.”

여기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다음 문장일지도 모른다.
🔖“저건 아씨가 아니에요.”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존재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완전히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목소리도 같고 향기도 같고 모습도 익숙한데, 어딘가에서 분명히 다른 존재라면?

그것은 귀신보다 훨씬 끔찍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익숙한 것에서 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 순간 기억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존재가 바로 에리마키다.
망령을 먹는 얼굴 없는 괴이.

처음에는 그저 기괴하고 잔혹한 괴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악한 존재’라고 규정하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나는 네 아내를 먹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고 싶은 사람 앞에서 그 아내를 먹겠다고 말하는 존재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 망령을 먹는 행위가 살육이나 포식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승을 떠돌던 존재를 마침내 다른 곳으로 보내는 행위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에리마키는 괴물인 동시에 일종의 인도자처럼 보인다.
무섭고 잔혹하지만, 누구보다 죽은 자의 고통을 끝내주는 존재일 수도 있다.

괴물은 정말 괴물인가?
죽은 자를 붙잡고 있는 인간이 오히려 더 잔인한 것은 아닐까?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채와 ‘사북’이라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작품 속에서 사북을 떼지 않은 부채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경계를 뒤틀어버리는 매개가 된다. 이것을 생각하면 부채라는 소재 자체가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죽음과 삶, 기억과 망각, 사랑과 집착.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그리고 그 축이 어긋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저주’는 오랜 세월 이어져온 욕망과 집착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결과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죽어도 욕망은 쉽게 죽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욕망은 세대를 넘어 살아남는다.


책장을 넘길수록 내게 더 오래 남은 것은 공포보다 미련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계속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 사람이 한 번만이라도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렇기에 후루세의 선택을 어리석다고 말하기 어렵다.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쉬울 수 있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붙잡는 것일까. 아니면 놓아주는 것일까.
가장 어려운 종류의 구원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는 것.
그것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가장 잔인한 선택일 수도 있다.


책 속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은 부분은 망자를 먹는 존재가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 설명하는 장면이다.

🔖“내가 먹는 건 죽었는데도 여전히 자기가 살아 있다고 믿는 놈들이다.”

죽었는데도 자신이 살아 있다고 믿는 존재.
그것은 과연 망령만을 뜻하는 것일까.
살아 있는 사람 역시 과거에 붙잡힌 채 현재를 살아가지 못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온고쿠》의 진짜 공포는
죽은 자를 보내지 못한 산 자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갇힐 수 있다는 것.


《온고쿠》는 고딕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재미가 분명한 작품이다.
강령 의식, 망령, 괴이, 가문의 비밀, 오래된 인습, 연이어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이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독자를 불안한 세계로 끌고 간다.
하지만 그 안쪽에는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인간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온고쿠(遠國)’가 직역하면 ‘먼 나라’라는 뜻이라는 점도 이 작품을 읽고 난 뒤에는 묘하게 다가온다.

먼 나라.
살아 있는 우리가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언젠가는 누구나 향하게 될 곳.

그곳으로 먼저 떠난 사람을 억지로 되돌려 세우는 대신,
그 사람이 편히 갈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온고쿠》는 공포로 시작해 미련을 지나, ‘떠나보냄’이라는 감정에 도착하는 작품이었다.

무서움과 슬픔이 공존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슬픔마저 편안하게 느껴진다.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가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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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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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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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주워 올리는가."
― 상처 입은 마음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살아가면서 참 많은 것을 버린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 오래된 물건,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관계, 지나간 기억, 실패했던 경험, 그리고 때로는 다시 꺼내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까지.

무언가를 버리는 일은 삶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처럼 보인다.
필요 없는 것을 정리하고, 쓸모없는 것을 덜어내고, 과거와 거리를 두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워내려는 사람과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는 사람이 만난다. 한 사람에게는 버림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간직하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는 것.

이 소설에서 ‘쓰레기’는 버려진 물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쓸모없다고 판단된 것, 사회의 기준에서 밀려난 것,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진 것,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 존재까지 아우르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쓰레기’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정말 쓰레기인 것은 무엇일까.
물건의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또 누구일까.


아사히와 도모에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사히는 깨끗하게 비우고 정리한다.
도모에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쌓아 간다.

한쪽은 비움이고 한쪽은 축적이다.
하지만 두 행동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둘 다 결핍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사히에게 ‘버리는 것’은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자신의 공간을 통제함으로써 불안과 상처를 차단하려는 행동에 가깝다.

반대로 도모에가 물건을 모으는 행동 역시 욕심이나 게으름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자신에게서 떠나간 것들을 붙잡고, 사라지는 것들을 곁에 남겨두려는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면 두 사람 모두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이상함은 사면으로 바뀐다.

이 지점이 이 소설의 따뜻한 부분이라고 느꼈다.

누군가의 행동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될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물건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붙잡아주는 마지막 끈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버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버림받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책 속에서 특히 오래 머물렀던 문장이 있다.
🔖“우리 모녀는 쓰레기처럼 버려졌어. 남자랑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였던 거지.”

이 문장은 ‘쓰레기’라는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정말 쓸모가 있어서 살아가는 것일까.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며, 사회가 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존재할 가치가 생기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이가 들고,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병이 들고, 관계가 끊어지고, 사회의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특히 인상적인 것은 버려진 사람을 밝은 말로 애써 위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힘내면 돼.”
“다시 시작하면 돼.”
“포기하지 마.”

이런 말들은 분명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문장이 있다.
🔖“몇 번이고 재활용되는 자원처럼 사람도 실패하고 버려졌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은 조금씩 닳고 깎여 나간다.”

사람에게도 회복력이 있다는 말은 맞지만, 사람은 무한히 재활용되는 존재가 아니다. 상처를 입고 다시 일어날 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실패할 때마다 조금씩 닳고, 이별할 때마다 마음 한쪽이 비고, 버림받을 때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응원이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텨왔는지를 알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쓰레기는 재미있는 역설을 품고 있다.
쓰레기는 이미 가치가 없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도모에가 모아둔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물건 속에 자신의 시간을 저장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컵 하나.
고장 난 전기포트 하나.
언젠가 쓰려고 사두었던 물건.
누군가에게 받은 물건.

이처럼 이미 기능을 잃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지만, 그 안에는 특정한 순간과 사람이 들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는 일은 때때로 그 물건과 연결된 기억을 떠나보내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도모에는 물건을 모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모아온 것은 아닐까.
그녀가 쌓아 올린 것은 쓰레기 더미인 동시에 자신이 살아왔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것이다.
🔖“난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이 문장은 존재의 가치를 성과에서 떼어낸다.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현실에서 이 말 하나만으로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이 문장이 좋았다.

쉽게 희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조용히 곁에 서주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모에의 어머니가 만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인상적이다.
🔖“우리랑 마찬가지로 버려진 쓸모없는 쓰레기를 모아 그걸 성벽 삼아 우리만의 왕국을 만들었어.”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쓰레기 저택’은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곳은 한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것보다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더 안전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믿었다가 상처받았다면 혼자 있는 것이 편해진다.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은 새로운 것을 얻는 것보다 가진 것을 놓치지 않는 데 집착할 수 있다.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주변을 무언가로 가득 채울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왕국’이라는 표현이 묘하게 슬프다.
성벽은 자신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둔다.
안전한 공간이면서 외로운 공간이다.

이 소설은 그 모순을 아주 섬세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정말 주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주워진'이라는 표현이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제목의 의미가 점점 깊어진다.

사람은 모두 혼자 힘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가 내미는 손에 의해 다시 일어선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포기하지 않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준 경험 하나 때문에 다시 사람을 믿기도 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가 가진 이상함의 이유를 조금 궁금해해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스스로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한 사람을 ‘주워 올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서 자신이 갇혀 있던 세계의 크기를 깨닫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동행은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단어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에 잠시 들어가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모두 태워져 유골만 남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꼭 주워줄 거예요. 언젠가 나도 그렇게 누군가 주워줄 거고.”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남고, 내가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가 남긴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이어받는다. 그래서 ‘주워준다’는 말이 이 소설에서는 돌봄과 기억, 애도의 의미까지 품게 된다.

버려진 것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다는 것은 ‘당신은 버려진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가치 없다고 판단한 것에 다시 손을 내미는 일.
사람들이 외면한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가치 없다고 생각해버린 자기 자신을 다시 주워 올리는 일.

그래서 제목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반드시 모두에게 사랑받았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흔적을 소중하게 다루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나면
그 행동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외면했던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닫혀 있던 세계에 다른 사람을 들여놓는 것.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사히와 도모에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상처를 없애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처가 있는 채로 함께 걸어갈 수는 있을테니.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서툰 동행은 무엇을 끝까지 소중하게 주워 올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무엇을 버리며 살아가고 있고,
무엇을 끝까지 주워 담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 다시 발견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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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복과 물떼새 머리뼈의 대화
모습 지음 / 엣눈북스(atnoonbooks)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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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작은서점973 (@littlebookshop973 )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는 천국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영혼을 이야기한다.
또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어느 쪽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끝내 완전히 알아낼 수 없는 가장 오래된 미지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제주 숲속 집이라는 조용한 공간에 한 여자가 찾아오고, 그녀가 바닷가에서 주워 온 거북복과 물떼새의 머리뼈에게 말을 건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가 뼈와 대화하는 걸 보여 드릴까요?”

처음에는 황당하고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따라가고 싶어진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존재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준다는 설정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묘하게 흐려놓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죽음을 지나치게 무겁게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죽음을 생각할 때 흔히 슬픔과 상실을 먼저 떠올린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으면 그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책 속 뼈들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존재에게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부여하는 순간, 죽음은 완전히 닫힌 세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세계와 이어진 어떤 장소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말은 더욱 의외다.
🔖“슬퍼지는 걸 조심해야 해! 신나게 놀아야 여기 남을 수 있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죽은 존재를 추모하는 방식이 슬픔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떠난 존재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슬픔만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 속의 웃음과 장난과 온기까지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사랑했던 존재에게 정말 바라는 것도 그것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확인할 수 없는 세계이기에 오히려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상이 때로는 남겨진 사람에게 살아갈 힘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사람에 관한 이야기처럼 읽혔다.

떠난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존재가 남긴 기억은 분명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죽음으로 한 존재의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특히 오래 생각하게 된 문장은 이것이었다.

🔖“모른다는 것에 이렇게 안도하기는 처음이다. 조금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이 세계가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다.”

평소라면 ‘모른다’는 것은 불안한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람은 알고 싶어 하고, 설명하고 싶어 하고, 확실한 답을 얻고 싶어 한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죽은 존재는 어디에 있는지,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모르는 상태에서 오히려 위로를 발견한다.

모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희망할 수도 있다.

죽은 고양이가 어딘가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먼저 떠난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상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사람에게는 그런 상상 자체가 애도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책 속 ‘뼈’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뼈는 한때 살아 있던 존재가 남긴 흔적이다. 생명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물질이며, 한때 존재했던 시간을 증명하는 작은 증거이기도 하다.
바닷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뼈 하나가 낯선 물체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품은 존재가 되는 순간, 평범한 풍경 역시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실제로 뼈와 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의 매력은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굳이 하나로 결정하지 않는 데 있다고 느꼈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질문보다
‘만약 그렇다면 어떨까?’라고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상상은 결국 읽는 이의 마음을 향한다.

죽은 존재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존재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특히 반려동물이나 가족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존재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떠난 뒤에도 습관처럼 이름을 부르고, 익숙한 자리를 바라보고, 함께 걷던 길을 지나며 잠시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그 존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억은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생명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후기에서 “먼저 말을 건넨 건 그녀지만 어느 순간 깨닫고 보니 우리는 술에 취하듯 재잘거리고 있었다.”라는 대목도 이 책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흥미롭게 다가왔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행동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누군가 먼저 말을 거는 데서 시작된다.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 말이 오가는 동안, 고립되어 있던 존재들이 연결된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외로움’과도 이어지는 것 같다.

🔖“살았든 죽었든 외로움이 문제예요.”

이 문장은 죽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외로울 수 있다.
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건넬 수 없다면 외롭다. 반대로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건넨 말을 받아준다면 아주 짧은 만남이라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대화’는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는 방법처럼 느껴진다.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뼈에게 말을 걸고,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를 상상하고,
끝났다고 생각했던 관계를 기억 속에서 다시 이어보는 것.

그 과정에서 죽음을 조금 덜 무서운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었는데, 지금 살아 있는 시간을 더 생각하게 된다.

아홉 달의 외출, 밤의 도로, 춤이라는 목차 역시 평범한 이야기와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의 ‘춤’이라는 단어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춤으로 끝난다는 것은 묘하면서도 아름답다.
죽음을 정지와 끝으로만 바라본다면 춤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이어진 것이라면, 춤은 그 사이를 오가는 움직임처럼 느껴진다.

멈춰 있는 뼈에서 움직임을 상상하게 하고,
사라진 존재를 통해 생생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거북복과 물떼새 머리뼈의 대화》가 가진 독특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살아 있는 존재들과 얼마나 잘 대화하고 있는가.'

모습의 글과 그림이 만나는 지점도 그래서 궁금해진다.
글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면, 그림은 그 빈 공간에 또 다른 장면을 만들어낼 것이다.

작가 후기에서 말하듯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이상한 아이들’을 찾아보는 재미 역시 글로만 읽었을 때보다 실제 책을 펼쳤을 때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그리움에 대한 조금 이상하고도 따뜻한 감각이다. 사랑했던 존재는 떠났지만, 그 존재와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닷가에서 발견한 작은 뼈 하나가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사람이 지나온 수많은 기억들 역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떠나간 존재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책'으로 기억하고 싶다.

사람은 끝내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때로는 무섭지만,
다행이고, 다정한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한동안 바닷가에 남겨진 작은 뼈 하나 머릿속에 되새겨보게 될 것 같다.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는 여기 살아 있는 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닐까.

《거북복과 물떼새 머리뼈의 대화》는 그렇게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 슬픔과 유머 사이를 조용히 걸어간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풍경 속에서도 문득 무언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모른다고 해서 반드시 불안할 필요는 없다는 것.
알 수 없는 세계가 있기에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했던 존재는 사라져도 그 존재를 향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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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먹도록 내 몸을 몰랐다니! - 평생 쓰는 몸을 위한 호흡·걸음·균형
오지영 지음 / 다른상상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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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어느 순간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만 무리해도 쉽게 피곤하고,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뻐근하고, 어깨는 이유 없이 굳어 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움직임이 어느 날부터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너무 쉽게 ‘나이’라는 결과부터 꺼내 든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예전 같지 않은 게 당연하지.”
“나이 들면 다 그래.”

그렇게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노화라는 한 단어로 정리해버리면 편하다.
더 이상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되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몸을 관리한다’는 말의 의미였다. 건강을 이야기할 때 운동, 식단, 체중, 근력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더 강한 몸, 더 유연한 몸, 더 날씬한 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했다.

몸을 더 강하게 만들기 전에 몸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다.

책에서 🔖“다리가 아플 때 ‘왜 이렇게 약해졌지?’가 아니라 ‘아, 다리에 무게가 몰려 있구나’라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같은 통증을 두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내 몸이 약해졌다’고 판단하면 몸은 부족한 것이 된다.
하지만 ‘무게가 한쪽으로 몰리고 있구나’라고 바라보면 몸은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존재가 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통증을 없애야 할 적으로만 바라보는 것과, 통증을 통해 내 몸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은 다른 접근이기 때문이다.

몸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몸을 물리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세 하나에도 살아온 시간이 담길 수 있고, 걸음걸이에도 삶의 습관이 나타날 수 있으며, 호흡과 움직임에도 감정과 관계의 흔적이 스며들 수 있다는 관점이다.

생각해보면 마음과 몸을 지나치게 따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마음이 힘들면 ‘스트레스’라고 하고, 몸이 아프면 ‘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렇게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걱정이 많을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하면 호흡이 얕아지고, 불안할 때 몸을 웅크리게 된다. 오랫동안 반복된 자세와 움직임은 어느새 습관이 되고, 습관은 다시 몸의 형태와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책에서 몸을 읽는다는 것은 어깨가 올라갔는지, 골반이 틀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일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몸을 통해 다시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특히 🔖“몸은 감정을 말한다”는 장에서 말하는 몸과 감정의 관계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긴다. 책은 억눌린 감정이 근육의 경직이나 얕은 호흡, 피로감과 무기력, 통증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고, 내가 경험하는 신체적 감각에도 관심을 가져보자는 제안이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나를 탓하지 않고,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실패한 몸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지금의 몸을 한번 들여다보자!


🔖“진짜 건강은 힘을 빼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다. 힘을 주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상태다.”

건강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강한가’를 떠올리지만, 이 문장은 건강을 회복하는 능력으로 바라본다. 이 관점이 참 좋았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라, 흔들린 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단단한 사람일 수 있다.

몸도 마찬가지다. 항상 긴장하고 힘을 주고 버티는 것이 건강이라면 평생 몸에 힘을 주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몸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

쉬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고, 때로는 흔들려야 하고, 다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굳세다’는 의미가 단단하게 굳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상태라는 설명이 마음에 남았다.


책을 읽으며 재미있었던 또 하나의 지점은 ‘힘’에 대한 생각이었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더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하고, 일도 악착같이 해야 하고, 삶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몸의 움직임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순간이 있다.
책은 공을 멀리 보내는 움직임을 설명하면서 무게를 아래로 내려놓고 축을 유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힘의 역설."

무조건 힘을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내려놓아야 하고, 기대야 하고, 흐름을 허락해야 한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통제하려는 순간 오히려 움직임이 작아질 수도 있다.

특히 🔖“힘은 풀어낼수록 강해진다”는 문장으로 이어지는 설명은 몸을 통해 삶을 생각하게 한다.

살면서 힘을 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몸까지 함께 굳어진다.

그러니 몸의 긴장을 바라보는 일은 삶에서 무엇을 지나치게 붙들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겠다.


책의 여러 장 가운데 마음에 들어온 부분은 외향과 내향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외향적인 사람, 내향적인 사람.
적극적인 사람, 소극적인 사람.

하지만 책은 외향과 내향을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존재가 향하는 방향과 움직임으로 바라본다.

🔖“존재는 성격이 아닌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틀 안에 나를 가두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변한다.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도 있고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날도 있고 나에게 돌아오고 싶은 날도 있다.

그것이 모순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리듬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다운 몸’ 역시 완성된 어떤 이상형이 아닐 것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자세,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몸, 남들이 건강하다고 말하는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내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그 감각에 맞게 살아가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작은 팔의 근육을 쥐어짜는 일이 아니라 그 팔을 품어 줄 몸통의 큰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작은 몸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큰 감각이 필요하다.

팔이 불편하면 팔만 보고, 허리가 아프면 허리만 보고, 마음이 힘들면 그 감정 하나만 떼어내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몸은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보다 더 넓은 맥락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작은 부분을 지탱해주는 큰 구조를 살피는 것. 책에서 말하는 ‘큰 감각’은 그런 의미로도 다가왔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읽고 끝나는 책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꼭지마다 ‘오늘의 몸 연습’을 제시하고 하루 15분 정도 직접 몸을 관찰하고 움직여보도록 구성했다. 이 부분 역시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몸은 책으로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 몸이 이렇구나’라고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움직여보면서 ‘아, 여기에는 이런 힘이 들어가 있었구나’라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저자가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몸은 설명만 듣는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한 꼭지를 읽고 잠시 멈추는 방식으로 읽으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내 발은 바닥을 어떻게 딛고 있는지,
숨은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그렇게 하루에 잠깐이라도 몸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

어쩌면 ‘나를 돌본다’는 말은 이런 작은 감각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이 책의 제목의 ‘내 몸을 몰랐다’는 말이 몸의 구조나 자세를 몰랐다는 뜻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은 훨씬 넓은 의미가 된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내 몸에 어떤 습관을 남겼는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 진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의 회복은 시간의 속도가 아니라 몸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이 문장을 읽으며 회복을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회복은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몸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함께 살아가면서도 가장 낯선 존재가 내 몸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몸의 변화를 체념하기 전에,
혹은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작정 애쓰기 전에,

먼저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 겠다.

“내 몸은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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