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소녀
브렌다 데이비스 지음, 유영일 옮김 / 올리브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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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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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한 소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열일곱 살 노라.
가족에게 숨기고 있던 임신,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

하지만 《갇힌 소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이야기가 한 여성의 불행만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라가 갇힌 것은 정신병원이라는 건물 안이었지만, 그보다 더 오래 그녀를 가둔 것은 당시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과 낙인,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했던 제도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무서웠던 것은 사람을 한 사람의 이름으로 바라보지 않고, 특정한 분류와 진단명, 사회적 낙인으로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노라는 어느 순간부터 '노라'가 아니라 '도덕적 결함자'가 된다.
그 순간 한 인간의 감정과 선택과 목소리는 사라지고, 사회가 붙인 이름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노라의 임신은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그것을 한 소녀의 삶에서 벌어진 위기로 바라보지 않았다.
혼전 임신이라는 사실 하나가 그녀의 도덕성과 인격 전체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어버린다.

책에서 노라가 병원으로 보내지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특정한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분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가능했다. 특히 영국의 1913년 정신결함법(Mental Deficiency Act)은 당시의 우생학적 사고와 사회적 통제의 영향을 받은 법률이었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은 과거의 정신의학을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일까?'

과학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전제와 편견이 과학의 이름을 얻는 순간 사람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생학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런 위험이다.
특정한 사람들을 '더 우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하고, 유전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인간의 가치를 판단했던 사고는 여러 사회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낳았다.

《갇힌 소녀》가 무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라를 가둔 사람들은 자신들이 괴물이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더 무섭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표현 중 하나는 노라가 자신의 생존 방식을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다들 제가 길들여진 토끼처럼 굴기를 원했어요."

이 문장이 아프게 다가온 것은 '토끼'라는 표현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자신의 의지를 포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노라는 말을 잘 듣는 환자가 되면 '착한 사람'이 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 '문제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자신을 숨기는 것. 말하지 않는 것. 저항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것.

이 부분에서 '순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조용하다고 괜찮은 것도 아니고, 반항하지 않는다고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 침묵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방어 수단일 수도 있다.


가장 잔인한 것은 '치료'라는 이름이었다.
특히 마음 아프게 읽히는 부분은 노라의 신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장면들이다. 강제적인 검사와 의료적 처치, 통제된 생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결정들. 그런 장면들을 읽고 있으면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이 사람의 의지를 빼앗는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과거의 정신의학과 오늘날의 정신의학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는 없다.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와 치료 방법, 환자의 권리, 의료윤리 모두 크게 변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미래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은 무엇일까?

오늘의 상식도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오늘의 치료도 언젠가 새로운 지식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의학과 과학에서 지식의 발전만큼 중요한 것이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순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으려면 바보 흉내를 내야 한다는 게?"

책에서 가장 가슴을 치는 문장은 아마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한 문장 안에 노라가 오랜 세월 겪어온 모순이 압축되어 있다.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순간 '문제 있는 환자'로 취급된다.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신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역설에 빠진다.

이 대목에서 '정상'이라는 단어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가 정상과 비정상을 결정하는가.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얼마나 쉽게 이름을 붙이고 판단하는가.

노라에게 필요했던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갇힌 소녀》가 절망으로만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오래 기억하게 된 부분은 노라가 얼마나 심하게 망가졌는지가 아니라, 그럼에도 사람이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이었다.

수십 년 동안 갇혀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이제 자유롭게 살아도 됩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자유가 곧바로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선택할 기회를 빼앗겼던 사람에게 선택은 두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노라의 회복은 병원 문을 나서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누군가를 믿고, 선택하고,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는 치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치유는 상처가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있는 채로도 다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였을 수도 있었어..."

짧은 문장이지만 이 말이 이 소설 전체를 표현한다고 느꼈다.

노라는 특별히 다른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한 시대의 규칙과 편견 속에서 불행한 상황을 맞닥뜨린 한 소녀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린 제도가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노라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내가 다른 가족, 다른 환경, 다른 조건에서 살았다면?
내가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났다면?

이 질문을 떠올려 본다면 타인의 불행을 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과거의 치료 방식과 시설 환경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상당한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환자의 자율성과 동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충분히 존중되지 않았던 사례들은 지금도 의료윤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그렇다고 과거를 현재의 기준으로만 재단하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시대의 과학적 지식은 무엇이었는지, 사회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법은 무엇을 허용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같은 일이 다른 이름으로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구원'보다 '연대'였다.
사람은 혼자서만 살아남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과거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는 사람.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할 때, 완전히 닫혀 있던 삶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길 수 있다.

🤔 노라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틈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자신을 환자나 문제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대신,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봐 주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믿게 해주는 것.

💕 때로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갇힌 소녀》는 읽는 동안 수많은 감정을 같이 느끼며 마음이 무거웠다.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의외로 절망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아냈구나.'

오랜 시간을 빼앗긴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하면 그 말조차 너무 작은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노라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바로 다시 살아보려는 마음이다.

상처는 사람을 바꾼다.
때로는 너무 깊은 상처가 사람을 침묵하게 만들고, 세상과 자신을 단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손길과 신뢰,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연대가 닿는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갈 가능성은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갇힌 소녀》는 한 사람의 존엄을 빼앗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랑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가슴 아픈 장면이 많았다.
눈물이 나는 순간도 있었다.

이 서평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드는 생각은 슬픔보다 노라의 '살아 있음'이었다.

빼앗겼던 시간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도, 사라져버린 관계도 모두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삶을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이 건네는 강한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한 사람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리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손을 내미는 것.

이 세 가지를 이 책에서 오래 기억하고 싶다.

올해 읽은 소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강한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읽는 동안에는 아팠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이상하게 다시 살아갈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갇힌 소녀》는 그렇게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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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인가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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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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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규 작가님의 《이것은 소설인가》의 제목에서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질문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묻는 말처럼 보이지만, 책에 담긴 일곱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질문은 훨씬 더 불편하고 현실적인 곳을 향한다.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야기 속에 혹시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빚을 내서 집을 사고, 누군가는 타인의 집에서 잠을 대신 지키며 돈을 벌고, 누군가는 불법으로 증축된 공간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버림받기 전에 먼저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들의 삶을 읽다 보면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보다 어느 순간 ‘나도 저런 순간을 지나온 적이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책의 인물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타인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동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지금 내 옆집에, 같은 지하철 안에, 같은 회사에, 혹은 내가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일상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쉽게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왜 저렇게 됐을까. 누가 잘못했을까. 저 사람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하지만 누군가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보다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의 동희가 관계를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고, [긁지 마, 제인]의 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갉아먹는 상황에 놓이는 과정도 그렇다.

사람의 상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받은 작은 거절이 쌓이고,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남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반복되고, 사회 안에서 계속해서 밀려나고,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는 경험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 관계를 대하는 방식까지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만 떼어놓고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뒤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생각해보아야 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전부 되돌릴 수는 없다. 상처받지 않았던 사람이 될 수도 없고, 과거의 선택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모든 것까지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과 아직 되돌릴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일.

회복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소설인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집’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보통 집이라고 하면 안전과 휴식, 가족과 안정을 먼저 떠올린다.
하루를 버티고 돌아와 몸을 눕힐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집이 오히려 인물들의 불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너의 집이 좋아]에서 주인공은 어렵게 집을 마련하지만 그 주변은 입주하지 않은 빌라들로 가득하다.

🔖“검은 마을이라 불리면 딱 좋은 곳.”

집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삶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을 갚아야 하고, 주변에 사람이 없고, 밤이 되면 오히려 두려움이 커진다.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안정과 성공의 상징처럼 사용되어왔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바라보면 집은 동시에 빚과 불안, 고립을 함께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어느 로프공]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증축된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열악한 곳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을 통해 사회 안에서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집이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 되는 순간, 주거 문제는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가 된다.

이 대목에서 책은 지금 사회의 현실과 맞닿는다.
같은 도시에서 살아도 누구에게는 집이 휴식처이고, 누구에게는 투자 자산이며, 또 누구에게는 평생 벗어나기 힘든 부채가 된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안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얻고 싶은 권리가 된다.

그 차이를 소설은 사회적 비판의 언어가 아닌 인물들의 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묻는 남자]에서 특히 섬뜩했던 것은 아주 평범한 질문 하나였다.

🔖“미림여고 나오지 않으셨나요?”

질문만 놓고 보면 이상할 것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공포를 다시 끌어올리는 방아쇠가 된다.
여기서 나는 ‘말에는 의도가 없어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대개 상대방의 의도를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한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받아들일 줄 몰랐는데.
그냥 물어본 건데.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자신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로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더구나 트라우마는 현재의 사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순간에 겹쳐지면서 지금 여기에서 다시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묻는 남자]를 읽으며 ‘사람의 기억은 끝난 사건을 끝난 상태로만 보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책 전체를 의미하는 가장 큰 정서는 ‘생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하는 것. 불안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
다시 사람을 믿어보는 것. 끊어버리고 싶었던 관계를 돌아보는 것.
과거에 묶여 있으면서도 앞으로 한 발 내딛는 것.

그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누가 잠을 자고 누가 깨어 있는가]에서 생계를 위해 자신의 수면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장면은 특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엘렌 최 부부에게 수면을 팔았기 때문에 나는 아이 옆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게 맞았다.”

‘수면을 판다’는 표현.
잠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가장 원초적인 휴식인데,
누군가는 자신의 휴식마저 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돈이 물건을 사고파는 수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살 수 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체력, 심지어 잠까지 내어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 차이가 아주 조용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면서도 인물들을 절망 속에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느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사람이 영원히 상처 입은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뒤 다시 일어날 수도 있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지 이해하면서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이별을 그딴 식으로 하는 사람]에서 동희가 자신의 관계 방식을 돌아보는 부분은 그래서 중요하게 다가왔다.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떠나자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할 때 사람은 때때로 이상한 선택을 한다. 상대가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서 내가 먼저 떠난다.
상처받을까 봐 먼저 마음을 닫는다. 거절당할까 봐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겉으로 보면 냉정하거나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쪽에는 오랫동안 쌓인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사람이 관계에서 반복하는 행동에는 그 사람만의 과거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표제작 [이것은 소설인가]에서는 특히 ‘책임’이라는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빌려갔으면 제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했으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주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의외로 이 당연한 것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변명하고, 사과하는 대신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작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를 준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순간에는 누군가의 무심한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윤리는 아주 작은 생활의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사소한 책임들이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것은 특정 사건의 반전이나 자극적인 장면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각자의 삶 안에는 남들에게 쉽게 보여주지 못하는 균열이 하나쯤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평범하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문제와 결핍을 안고 있으면서도
다음 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책이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이상한 행동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무표정 뒤에는 오랫동안 견뎌온 삶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물론 모든 행동이 이해된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이해와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소설인가》가 내게 남긴 질문은 ‘이 이야기가 실제냐 허구냐’에 머물지 않는다.

🤔 나는 지금 주변의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오늘도 어디선가 조용히 살아남고 있는 사람들.
아무에게도 자신의 하루를 설명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그래도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소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읽고 나서 내게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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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초보 탈출 - 이론부터 실전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경매 입문서
안진희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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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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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매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부동산을 낙찰받아 시세 차익을 얻는 투자. 하지만 막상 경매를 공부하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소기준권리부터 대항력, 우선변제권, 배당, 명도까지 생소한 용어가 쏟아지고, 낙찰 이후에는 수리비와 세금, 대출이자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경매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잘못하면 돈을 잃을 수 있는 방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경매 초보 탈출》을 읽으면서 경매의 핵심은 싸게 낙찰받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내고 계산하느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제목처럼 초보자가 가장 먼저 탈출해야 할 것은 경매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싸게 사면 수익이 생긴다’는 기대인지도 모르겠다.


경매를 처음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권리분석이다.

등기사항증명서를 펼쳐놓으면 여러 권리가 복잡하게 적혀 있고, 임차인의 보증금이 얼마인지, 대항력이 있는지, 낙찰자가 인수해야 하는 권리가 있는지 등을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 유치권이나 법정지상권처럼 초보자에게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권리까지 등장하면 ‘이걸 내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권리분석 단계에서 조금이라도 위험 요소나 불분명한 점이 발견된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처럼 권리분석을 단순하게 지식을 많이 외워야 하는 영역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별했다. 투자를 하다 보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좋은 물건을 발견하면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고, 다른 사람이 먼저 낙찰받기 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하지만 경매에서는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멈추는 것. 확신이 없다면 입찰하지 않는 것.

이것 역시 투자자의 중요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초보자에게 가장 큰 수익은 잃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라는 문장은 경매를 바라보는 관점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했다. 투자에서 수익률만 생각하다 보면 ‘얼마를 벌 수 있는가’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투자에서는 ‘얼마까지 잃을 수 있는가’를 먼저 계산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경매는 바로 그 사실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투자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매물건을 보는 눈은 권리 → 가격 → 현장 → 입찰이라는 ‘순서’에서 시작된다.

경매를 처음 접하면 감정가와 최저매각가격부터 보게 된다. ‘얼마나 떨어졌지?’ ‘시세보다 얼마나 저렴하지?’ 같은 숫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만 보고 접근하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먼저 권리를 확인하고, 그다음 실제 가치와 시세를 조사하고, 현장에서 점유관계와 물건의 상태를 확인한 뒤, 모든 비용을 반영해 입찰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경매는 하나의 숫자로만 판단하는 투자가 아니라 여러 정보를 연결해서 판단하는 투자인 것이다. 등기사항증명서만 보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매각물건명세서만 믿어서도 안 된다. 현황조사서와 실제 현장을 함께 확인하고, 각각의 자료에서 얻은 정보를 서로 비교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번거로움이 투자자를 보호해주는 장치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 중 하나는 입찰 당일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최대 입찰가격을 미리 정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루틴은 최대 입찰가격을 미리 확정하는 것입니다.”

경매 법정이라는 공간에서는 경쟁심이나 아쉬움 때문에 판단이 흔들릴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쓰면 낙찰받을 수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아깝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처음에 세웠던 투자 기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 사전에 계산한 최대 입찰가격을 일종의 투자자의 안전선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 매도가격에서 취득과 관련된 비용, 수리비, 명도비, 세금, 대출이자 등을 고려하고 내가 원하는 최소 수익까지 반영한 뒤 ‘여기까지가 내가 쓸 수 있는 금액’이라고 정해두는 것이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물건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포기한다.

경매에서 가장 어려운 행동은 좋은 물건을 눈앞에 두고도 기준을 넘으면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패찰은 정말 실패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매에서는 낙찰받아야 성공이고, 떨어지면 실패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정한 안전가격을 넘어섰다면 패찰은 실패가 아니라 투자 원칙을 지킨 결과일 수 있다.

주식 투자에서도 매수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선택인 것처럼,
경매에서도 입찰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는 기회를 잡는 능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놓아주는 능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경매처럼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큰 금액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경매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낙찰받는 순간 모든 일이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때부터 해야 할 일이 시작된다.
잔금을 마련하고, 소유권 이전을 진행하고, 점유자를 정리하고, 공과금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청소와 수리를 해야 한다. 이후 임대를 할지 매도할지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이 특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명도·수리비와 별도로 예비비를 확보해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잔금 이후 변수까지 감당할 여유’라는 관점 역시 중요하게 다가왔다.

투자를 계산할 때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숫자를 넣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다. 예상 매도가격은 높게, 수리비는 낮게, 명도 기간은 짧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안전한 투자를 하려면 반대로 계산해야 한다.

예상보다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 예상보다 매도가 늦어질 가능성, 대출 조건이 달라질 가능성까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수익을 계산하는 것만큼 버틸 수 있는 여력을 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매에서 자금계획은 특히 현실적인 문제다.
낙찰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해서 필요한 자금까지 자동으로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 가능 금액은 개인의 상황과 금융환경, 규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이런 위험을 강조한다.
🔖“보수적 계산은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잔금을 납부할 수 있게 만드는 ‘최후의 안전장치’입니다.”

이 문장은 투자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처럼 느껴졌다.
투자계획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은 ‘아마 될 것이다’일지도 모른다.

‘대출이 이 정도는 나오겠지.’
‘수리는 이 정도면 되겠지.’
‘시세대로 팔 수 있겠지.’

등등 이런 추정이 하나둘 쌓이면 수익계산서는 그럴듯해지지만 현실과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경매에서는 예상보다 나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경매 공부의 방향이었다.
🔖“경매 실력은 ‘공부한 시간’이 아니라 ‘끝까지 분석한 횟수’만큼 늘어납니다.”

경매뿐만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상당히 공감되는 말이었다.
용어를 외우고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실제 상황에서 판단하는 힘이 생기기 어렵다.

실제 물건 하나를 선택해 모든 예상 비용을 계산한 다음 ‘이 물건에 얼마까지 입찰할 것인가’를 직접 정해봐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물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해보는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지식이 연결된다.
그래서 책에서 제시한 30일 학습 로드맵도 하나의 물건을 직접 분석하는 습관을 만들라는 제안으로 읽혔다.


《경매 초보 탈출》을 읽으며 경매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경매를 ‘시세보다 저렴하게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저렴한 가격 자체는 투자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싸게 낙찰받았더라도 인수해야 하는 권리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명도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고, 수리비가 예상보다 커질 수도 있으며, 대출이 생각보다 적게 나올 수도 있다.

세금과 각종 부대비용까지 더하면 처음 보았던 ‘할인율’은 실제 수익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경매에서 정말 중요한 숫자는 모든 비용과 위험을 반영하고도 수익이 남는가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초보자가 실제 투자 과정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순서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으로 다가왔다. 경매를 공부한다는 것은 권리를 확인하고, 가격을 분석하고, 현장을 살피고, 비용을 계산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입찰하는 것. 그리고 기준을 넘어선다면 과감하게 돌아서는 것.

낙찰은 결과일 뿐이고, 진짜 목표는 그 이후에 있다.
얼마나 싸게 샀느냐보다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했는지,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보다 얼마나 위험을 통제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경매물건을 마주하게 된다면 감정가와 최저가부터 바라보기보다 먼저 서류를 펼쳐보고 싶다.

무엇보다 경매에서 가장 값진 낙찰은 내 돈을 지킬 수 있는 판단력을 얻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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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7일 실무 엑셀 - AI 시대에도 여전히 엑셀이 어려운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올바른 입문서, 전면 개정판 ㅣ 된다! 업무 능력 향상 200%
한정희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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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엑셀은 참 이상한 프로그램이다.
분명 한 번쯤은 사용해 봤고, 표를 만들고 숫자를 입력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막상 업무에서 조금 복잡한 상황을 만나면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진다.

어떤 함수를 써야 하는지, 왜 계산 결과가 이상한지, 데이터가 많아졌을 때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몰라 검색창을 열고 하나씩 찾아보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AI에게 “엑셀 수식 만들어 줘”라고 물어볼 수 있는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굳이 엑셀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할까?

하지만 AI가 만들어 준 수식이나 VBA 코드가 정말 내 업무에 맞는 것인지 판단하려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엑셀을 대신해 줄 수 있지만, 엑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판단까지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AI에게 “이 자료에서 부서별 매출 합계를 구하는 엑셀 수식을 만들어 줘”라고 요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데이터의 구조가 잘못되어 있다면? 숫자가 텍스트로 저장되어 있다면? 날짜 형식이 뒤섞여 있다면? 필터가 적용된 데이터만 계산해야 한다면? 만들어진 수식의 결과가 이상할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낼 수 없다면?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결국에는 엑셀의 기본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방향은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엑셀을 알아야 하는 시대’로 관점을 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엑셀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의외로 함수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를 클릭해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지, 왜 이 메뉴를 눌러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더 큰 장벽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처음부터 독자가 엑셀 화면 앞에서 헤매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다.

셀 주소를 읽는 방법부터 시작해 숫자와 날짜 입력, 자동 채우기, 셀 서식, 테두리와 배경, 행과 열 관리, 선택하여 붙여넣기까지 차근차근 올라간다. 그리고 기능을 설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견적서 양식 만들기 같은 실제 상황으로 연결한다.

☆이런 구성은 꽤 중요하다.
엑셀은 기능을 하나씩 외우는 것보다 “이 상황에서 이 기능을 왜 사용하는가”를 이해해야 오래 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VLOOKUP", "XLOOKUP", "SUMIFS", "COUNTIF", "FILTER", "SUBTOTAL" 같은 함수 이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실제 업무에서 언제 어떤 함수를 써야 하는지 모르면 소용이 없다.

반대로 거래처 데이터를 정리하다가 “조건에 맞는 값만 찾아오려면 어떤 기능이 필요하지?”라는 질문이 생겼을 때 적절한 함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 책의 실습 중심 구성은 초보자를 위한 친절함을 넘어서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 위한 학습법에 가깝게 느껴진다.


목차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특히 눈에 들어온 부분은 2장과 3장이었다.
많은 엑셀 입문서라면 함수부터 빠르게 들어갈 것 같지만, 이 책은 그전에 데이터를 제대로 입력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룬다.

병합된 셀을 해제하고 빈 셀을 정리하거나, 수식을 값으로 붙여넣고 불필요한 행을 삭제하는 방법, 정렬과 필터, 표 만들기, 데이터 형식 오류를 해결하는 방법 등이 이어진다. 이 부분을 보면서 엑셀에서 정말 중요한 능력은 ‘수식을 많이 아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데이터가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숫자가 숫자로 저장되어 있지 않고, 날짜가 날짜로 인식되지 않고, 셀 안에 불필요한 공백이나 유령 문자가 숨어 있다면 아무리 정확한 수식을 입력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책에서 다루는 ‘계산 오류를 만드는 데이터 유형과 해결 방법’이라는 내용은 그래서 초보자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엑셀을 사용하면서 “분명 숫자인데 왜 계산이 안 되지?”, “같은 날짜처럼 보이는데 왜 정렬이 이상하지?”라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의 중요성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엑셀 실력은 함수를 외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읽어내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책 제목은 《된다! 7일 실무 엑셀》이다.
처음에는 ‘7일 만에 엑셀을 정복한다’는 의미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목차를 살펴보면 책에서 말하는 7일은 모든 엑셀 기능을 완벽하게 마스터한다는 의미보다는 짧은 기간 동안 핵심 기능을 집중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학습의 방향을 잡아주는 장치에 가깝다.

특히 책에서 ‘7일/16일 맞춤형 계획표’를 제공한다는 점은 공부를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엑셀 책을 사놓고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덮어버린 경험이 있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라서 포기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두꺼운 설명서가 아니라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 된다”라고 알려주는 구체적인 기준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7일’이라는 숫자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시작을 쉽게 만들어 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확실히 실무 쪽으로 깊어진다.
수식과 함수에서는 상대 참조, 절대 참조, 혼합 참조부터 시작해 IF, AND, OR, IFS, IFERROR, SUMIF, SUMIFS, COUNTIF, VLOOKUP, XLOOKUP, SUBTOTAL, 텍스트 함수, 날짜 함수, FILTER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6장에서는 피벗 테이블과 조건부 서식, 피벗 차트, 슬라이서와 시간 표시 막대를 활용해 보고서를 만드는 방법을 다룬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7장에서는 파워 쿼리와 VBA, 그리고 AI를 활용한 VBA 코드 생성까지 연결한다.

이 흐름이 흥미롭다.

기초 → 데이터 관리 → 함수 → 분석 → 시각화 → 자동화 → AI 활용

실제 업무가 발전해 가는 순서와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데이터를 입력하고 표를 만들지만, 데이터가 쌓이면 정리가 필요하고, 정리된 데이터에서 원하는 값을 계산해야 하며, 이후에는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업무량이 많아지면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고 싶어지고, 여기에서 파워 쿼리나 VBA 같은 기능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동화 과정에 AI까지 들어온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입문서처럼 보이지만, 실제 목차를 보면 기초부터 실무 자동화까지 단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된 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AI와 VBA의 만남이 흥미롭다.
VBA는 엑셀을 조금 사용해 본 사람에게도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이다. 코드가 등장하는 순간 갑자기 엑셀이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AI에게 VBA 코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고, 그 코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면서 접근한다면 예전보다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

책에는 “AI로 VBA 코드 만들기”라는 장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고, 열 너비 자동 맞춤이나 확인란을 활용한 체크리스트 등을 예제로 제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에게 원하는 결과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능력을 익히게 한다는 점이다.

AI 시대에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정확히 정의하고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엑셀과 AI를 연결한 이 책의 방향은 지금의 업무 환경과 잘 맞는다.

읽고 난 뒤 마음에 남는 것은 ‘엑셀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었다.
“내가 도구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이었다.

엑셀을 조금 깊게 들여다보면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반복 작업을 줄이고, 조건에 따라 정보를 추출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요약하고, 보고서로 시각화하고, 나아가 작업 자체를 자동화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AI가 등장하면서 이런 도구의 가치는 더 선명해진 것 같다.
AI가 수식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수식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AI가 VBA 코드를 작성해 준다면 그 코드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된다! 7일 실무 엑셀》은 “엑셀을 몰라서 업무 앞에서 당황했던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책”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엑셀 화면만 켜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왕초보에게는 클릭 순서와 실습 중심의 설명이 도움이 될 것이고, 자격증은 있지만 실제 업무에서 활용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데이터 관리와 실무 함수, 피벗 테이블, 파워 쿼리 등의 내용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AI에게 수식을 물어보면서도 그 답이 맞는지 몰라 불안했던 사람에게는 AI에게 의존하는 법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면서도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이 의미 있다.

엑셀은 어쩌면 같은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업무 언어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매번 같은 자료를 복사하고 붙여넣느라 시간을 보내고, 숫자 하나를 수정하기 위해 여러 셀을 다시 확인하고, 보고서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을 소비했다면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을 배워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셀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엑셀의 ‘ㅇ’도 모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수식을 직접 만들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피벗 테이블로 보고서를 만들고, AI에게 VBA 코드까지 요청할 수 있게 되는 과정.

그 변화가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실무 엑셀’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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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필사책 - 흔들리는 삶의 지침이 되어 줄 다산의 문장들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 유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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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유노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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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유난히 오래 눈길이 머무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문장이 이상하게도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건드릴 때가 있다. 《다산의 필사책》은 그런 문장을 읽고 지나가는 대신, 직접 손으로 옮겨 적으며 마음에 새겨 보도록 만든 책이다.

다산 정약용 하면 흔히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수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 오랜 유배 생활을 견뎌 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만나는 다산은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18년에 이르는 유배 생활은 평범한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좌절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다산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고,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래서 다산의 문장을 읽으면 ‘좋은 말’ 이상의 무게가 느껴진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 건네는 말이기 때문이다.


책의 첫 번째 주제는 ‘마음’이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환경을 탓하고, 누군가 때문에 힘들면 상대방의 잘못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다산의 문장은 자꾸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놓는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뜻 속에서 자라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만둔다.
비록 꼭 필요하더라도
남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 역시 그만둔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욕망을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욕심도 생기고, 화도 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일 것이다.

다산에게 자기 수양은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감정과 욕망을 스스로 살피고 절제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부끄러움에 관한 문장이었다.

🔖“사대부의 마음가짐이란
마땅히 맑은 바람과 환한 달 같아서
털끝만큼도 가린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안정되어
호연지기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삶의 평온함은 스스로에게 떳떳한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분노에 관한 문장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겉으로 드러내기는 쉬워도 제어하기는 어려운 것이 분노다.
답답하고 우울한 사람은 마음이 화평하지 못하고,
분노와 원한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풀리지 않는 법이다.”

화를 내는 것은 순간적으로 쉽다.
하지만 화가 난 상태에서 한 말을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던진 한마디가 오래 남기도 하고, 순간의 분노가 관계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은 내 마음이 왜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풀리지 않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라는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분노는 상대에게 향하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가장 오래 품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다산의 사상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반성’을 후회에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에는 다산이 반성을 일회성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지는 실천으로 바라보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회갑 때의 다짐이 이후 15년 동안 실제로 글을 고치고 삶을 바로잡는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 있게 느껴졌다.

반성이라는 말을 입으로 하는 것과 실제로 자신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잘못을 깨닫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다산에게 반성은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고쳐 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다산의 문장은 자기계발서에서 보편적으로 만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의 말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잘못했다면 인정하고, 부족했다면 고치고,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라는 것.

이것이 가장 오래된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자기 수양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태도’라는 장에서 만나는 다산의 생각 역시 오늘날의 삶과 맞닿아 있다.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니,
말이 길다면 곧바로 그쳐야 한다.

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하니,
움직임이 가볍다면 천천히 가다듬어야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말과 행동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너무 빨리 말하고, 빨리 판단하고, 반응한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생각할 틈도 없이 감정을 표현하기 쉽다.
하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지혜가 되고,
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자신과 타인을 지키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어지는 습관에 관한 문장은 더욱 직접적이었다.
🔖“사람의 겉모습은 매일의 습관으로 변하고,
그 사람이 이루는 삶의 결은
그 모습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땅의 기운이 어떠니,
올해 운수가 어떠니 하며
삶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거짓이다.”

오늘의 작은 행동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독서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하루 한 번의 행동은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필사’라는 형식 자체가 다산의 생각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좋은 문장을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직접 손으로 쓰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그 문장을 삶 속에 남기는 것. 읽기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배움’에 관한 장에서는 다산이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기록했는지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많이 아는 것이 곧 많이 배운 것은 아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하루에도 수많은 글과 영상과 지식을 접하지만, 정작 그것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다산에게 공부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법칙이 있는데,
사람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따라야 할 마땅한 법칙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문장을 읽으며 배움에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게 되었다면 행동해야 하고, 이해했다면 삶에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다산의 공부는 책상 위에서 끝나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와야 완성되는 공부였을 것이다.


🔖“가문이 몰락한 상황에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책을 읽는 것밖에 없다.
독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면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기록을 멈추지 않는 것,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은 때때로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힘든 시기에 책 한 권을 펼치는 일이 당장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아 주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다산의 삶을 보면 그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된다.


다산은 자신을 수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배운 것을 세상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겼다..

다산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의 글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묻는다는 것이다.

공부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식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위치와 역할이 있다면 그만큼 책임도 따라야 한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삶에서 괴로움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좋은 일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힘든 일 역시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기쁨과 슬픔, 얻음과 잃음, 만남과 헤어짐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문장은 꽤 단단하다.

괜찮다고 쉽게 위로하지 않으며,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의 상황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배우는 것,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다산의 필사책》에서 유용하게 느껴진 부분은 바로 ‘필사’라는 형식이다.
손으로 쓰는 순간, 문장은 조금 다른 의미가 된다.
요즘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저장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으로 찍어 두거나 메모장에 저장해 놓고 나중에 다시 읽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다시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한 문장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으면 한 글자씩 따라가야 하고, 문장의 호흡을 느껴야 한다. 자연스럽게 한 번 더 읽게 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다산이 중요하게 여겼던 초서의 공부법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필요한 문장을 골라 적고, 그 의미를 자신의 공부와 삶 속에서 다시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공부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음’을 쓰고, 내일은 ‘태도’를 쓰고, 어느 날에는 ‘관계’에 관한 문장을 써보는 식으로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다산의 삶을 생각하면 이 문장들이 그저 교훈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유배라는 극심한 삶의 굴곡 속에서도 책을 읽고, 제자와 자식들에게 글을 보내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던 사람이 남긴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나는 이렇게 살아내려고 했다’는 한 사람의 오랜 실천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삶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흔들릴 때 다시 돌아갈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산이 남긴 수많은 글 가운데 엄선된 74개의 문장.
그 74개의 문장을 모두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단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남아 삶의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른다면,
그 문장은 이미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이니까.


다산의 문장을 따라 천천히 붓을 움직이는 시간은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수행일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읽고 지나가는 시대에, 천천히 읽고 직접 써보는 것.

그 느린 시간이 오히려 지금의 현대인에게 필요한 공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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