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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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자음과모음 (@jamobook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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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던 밤, 한 소년이 부모를 잃는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후 기묘한 출판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담 모임으로 이어진다. 매년 한 번,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묻지 않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는다.

그런데 이 모임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다.

'이야기는 반드시 자신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그저 괴담을 나누는 독특한 모임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질수록 묘한 불안이 생긴다.

‘이 사람들이 정말 겪은 일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일까?’

그리고 괴담이라고 부르는 것과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 사이에 정말 명확한 경계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서 실화와 소설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틀렸어. 더 비현실적인 쪽은 실화야.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이 세상이지. 그래서 소설은 결코 실화를 따라잡을 수 없어.”

소설은 허구이고 현실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때때로 상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만들어내는 잔혹함은 귀신이나 괴물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문장이 이 책 전체 메시지를 대변하는 하나의 열쇠처럼 느껴졌다.


《밤의 이야기꾼들》에서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괴담이 ‘무서운 사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부들]에서는 폭력과 불륜,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 감춰진 욕망이 기괴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도플갱어]에서는 ‘나와 똑같은 존재’라는 오래된 공포를 성형과 자아의 문제에 연결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자신의 얼굴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정말 온전한 것인가 하는 질문까지 따라온다.

[홈, 스위트 홈]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내 집’이라는 공간이 공포의 장소로 뒤집힌다. 공간에 부여하는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웃는 여자]는 섬뜩하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소문과 따돌림, 폭력 속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밀려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괴이한 존재보다도 한 사람을 오랫동안 외면하고 상처 입히는 주변의 시선이 더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그리고 [눈의 여왕]에서는 저주와 폐쇄적인 공동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얽히면서 공포가 슬픔으로 변한다.

이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괴담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의 욕망, 상처, 외로움, 집착, 두려움이 괴이한 형태를 빌려 나타난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의 괴물들은 누군가에게는 복수이고, 누군가에게는 외로움이며, 누군가에게는 상실이고,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놓지 못한 욕망이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진 부분은 괴담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어두운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한 사람씩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설정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의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는 듯한 위치에 놓이는 듯 했다.

그래서 다음 문장이 이 모임의 성격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하되 자신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문장 역시 책 전체를 읽고 나면 처음보다 훨씬 다르게 다가온다.
이야기는 사실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기억이고 경험이며 때로는 상처를 보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이 모임에서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얼굴도 이름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는 사람들.

아이러니하게도 얼굴을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더 강력한 자기 고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플갱어]를 비롯해 작품 곳곳에서 ‘얼굴’과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 반복되는 것도 흥미롭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 모습과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때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도플갱어라는 초자연적인 소재에서 시작하지만 현실적인 불안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바꾸려고 하는 것.

그래서 〈도플갱어〉의 공포는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밤의 이야기꾼들》을 읽으며 계속해서 느꼈던 감정은 의외로 ‘무서움’ 하나만은 아니었다. 공포소설인데 이상하게 슬프게 다가왔다.

기괴하고 잔혹한 장면을 지나고 나면 그 뒤에 남는 것은 이상하게도 쓸쓸함이었다. 누군가는 사랑받지 못했고, 누군가는 이해받지 못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상처를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

그래서 괴담 속 인물들을 무서운 존재로만 바라보기 어려웠다.
특히 [웃는 여자]처럼 한 사람이 사회에서 밀려나는 과정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괴물이 생겨나는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사람이 아니라, 상처와 고립과 폭력이 쌓인 끝에 괴이한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때 독자는 그 인물을 무서워해야 할까, 아니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까.

이 작품이 공포와 슬픔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런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의 이야기는 살아 있다. 우리가 곧 이야기다.”

이 문장은 책 속 괴담 모임의 선서이지만, 책을 덮고 나면 조금 다른 의미로 읽힌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와 잊고 싶은 이야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형태가 바뀐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곧 이야기’라는 말이 오히려 공포보다 더 오래 남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부를 들여다보는 일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읽고 나면 현실을 바라볼 때 조금 이상한 기분을 남긴다.

지금 내가 지나치는 골목에도 누군가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
평범하게 보이는 집에도 그곳에 살았던 사람만 알고 있는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쯤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평범했던 장소가 이야기를 품은 장소가 되고, 평범했던 사람이 이야기를 숨긴 사람이 된다.

‘괴담은 책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대말한 것처럼 이야기는 현실을 완전히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귀신보다 사람이, 괴물보다 기억이, 저주보다 상처가 더 오래 생각났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지금까지 내가 들어온 이야기 중에서 정말로 허구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밤의 이야기꾼들》은 독자가 자신의 기억과 주변의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각각의 괴담이 만들어내는 서늘함을 즐길 수 있고, 미스터리나 인간 심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야기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욕망과 상처를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자 자신에게도 하나의 이야기가 남는다.

‘이것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덮었는데도,
이상하게도 불을 끄고 나면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어둠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것.

아마 《밤의 이야기꾼들》이 남기는 공포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야기는 끝났는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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