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숲과 문명 - 숲이 물러난 자리에 새겨진 5,000년의 기록
존 펄린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7월
평점 :
🔻이 게시물은 더퀘스트 출판사로부터 #오퀘스트라 4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 "인간은 숲의 주인일까. 숲에 기대어 살아온 손님에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
역사를 배울 때 대개 인간을 중심에 놓는다. 누가 나라를 세웠고, 어떤 왕이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어떤 기술과 산업이 등장하면서 문명이 발전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존 펄린의 《숲과 문명》은 그동안 배워왔던 역사의 무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전혀 다른 질문을 한다.
그 문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발밑에서 무엇이 타오르고 있었는가.
그 질문의 답은 ‘나무’다.
집을 짓고, 배를 만들고, 불을 피우고, 금속을 제련하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나무는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되어 왔다.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역사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존재이기도 하다.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그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숲의 소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숲과 문명》은 바로 그 보이지 않던 나무의 흔적을 따라간다.
중국과 인도,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해 크레타와 그리스, 로마, 아프리카, 지중해 세계, 베네치아와 잉글랜드를 지나 신세계의 아메리카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등장한 문명들이 어떻게 숲을 이용했고, 그 숲의 변화가 다시 사회와 경제, 정치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결해 보여준다.
읽다 보면 역사의 배경에 불과했던 숲이 어느 순간 역사의 중심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문명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한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사실이다. 흔히 환경 파괴를 현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공장과 자동차, 대규모 산업과 자본주의가 자연을 무분별하게 이용하면서 지구의 균형이 깨졌다고 말이다.
하지만 책이 보여주는 역사는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의 초반부, 점토판에 새겨진 〈길가메시 서사시〉 대목을 읽으며 서늘한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무자비하게 수탈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현대 자본주의나 산업혁명 이후의 병폐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문명의 시작점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평소 우리는 기후위기나 환경 파괴를 근대 자본주의나 산업혁명 이후의 부작용으로만 국한해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통념을 단숨에 깨뜨린다.
영웅이라 불린 길가메시가 도끼를 들어 숲을 지키던 훔바바를 넘어뜨리고 거대한 나무를 쓰러뜨린 그 순간, 인류와 숲의 긴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저 거대한 숲을 베어버릴 것이다”라는 구호는 지중해와 대륙 전체를 잿빛으로 물들인 탐욕의 선언문이었다. 메소포타미아부터 크레타, 키프로스, 로마, 그리고 잉글랜드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부흥은 예외 없이 숲의 소멸과 궤를 같이했다.
이후 전개되는 청동기 및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역사는 인간의 번영이 어떻게 숲을 먹어 치우는 '괴물'로 변해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키프로스섬의 구리 제련 광풍이나 로마가 은을 얻기 위해 이베리아반도에서 벌인 대규모 벌목 이야기를 읽을 때면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은 제련소를 돌리기 위해 400년 동안 무려 5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베어 넘겼다는 대목은, 인간의 부(富)라는 것이 결국 숲의 목숨을 담보로 한 거대한 물물교환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책의 절반 지점까지 읽어 내려가며 깨달은 것은 🤔"사회가 쇠퇴하면 숲은 되살아나고, 숲이 되살아나면 인간은 어김없이 다시 도끼를 들고 돌아왔다"는 잔인한 순환이다.
키프로스가 구리 생산 감소와 인구 줄어듦으로 쇠퇴했을 때 숲은 비로소 숨을 쉬며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 소나무 숲을 눈여겨본 로마는 다시 그곳을 제국의 자원 기지로 삼아 숲을 쥐어짜 냈다. 인류는 단 한 번도 숲과의 상생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적이 없었다. 숲이 고갈되어 문명이 무너지거나, 외세의 침략으로 생산이 멈췄을 때야 비로소 자연에게 '휴식'이라는 부작용적인 은혜가 내려졌을 뿐이다.
흔히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이겨냈다고 오만하게 말하지만, 역사 속 진실은 참담하다. 인간은 단 한 번도 자연을 전복한 적이 없다. 단지 "숲이 허락한 한계선까지 전진했다가, 숲을 말려 죽인 후 스스로 무너졌을 뿐"이다. 문명의 주인이 인간인 줄 알았으나, 실상 문명을 움직인 진짜 동력원은 그들의 발밑에서 타고 있던 나무였다.
중반부까지 읽어 내려가며 가장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묵직한 여운을 준 장면은 바로 미케네 문명의 쇠퇴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화 속 제우스가 대지를 쇠약하게 만든 인간들의 폭력에 분노하여 🔖"수많은 죽음으로 세상을 비우고" 지구를 회복시키기 위해 트로이전쟁을 일으켰다는 대목은 섬뜩한 경고로 다가온다. 비단 고대 그리스 전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숲이라는 울타리를 무너뜨린 현대 인류가 기후 이상과 바이러스의 역습을 받으며 스러져가는 현재의 모습과 너무나 똑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말에는 숲을 끊임없이 소비했다는 사실도 함께 들어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문명의 발전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발전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었을까.
인간에게는 발전이었지만,
그 발전의 밑바닥에서 사라진 숲에게도 과연 같은 의미였을까.
가장 무서운 것은 ‘숲이 사라지는 순간’보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이다.
크레타, 키프로스, 로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패턴이 있다.
처음에는 숲이 풍부하다.
풍부한 숲은 배와 집과 도구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연료를 제공하며, 산업을 발전시킨다. 풍부한 자원은 경제적 번영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번영이 계속될수록 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숲을 이용하는 속도가 숲이 회복되는 속도를 넘어선다.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숲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숲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줄어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명이 의존하고 있던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숲의 감소는 산업의 쇠퇴와 자원의 부족, 경제의 변화, 정치적 영향력의 이동과도 연결됐다. 특히 키프로스의 사례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숲이 산업을 키우는 원천이 되기도 하고, 그 산업이 다시 숲을 소모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좁히기도 한다. 그리고 산업과 인구가 줄어들면 숲이 다시 회복되기도 한다. 이 흐름을 보고 있으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명도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는 것.
책 속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나무가 한 사회의 기술 수준과 경제력, 심지어 국가의 힘을 결정하는 자원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배를 만들려면 나무가 필요했다.
더 좋은 배를 만들면 더 멀리 항해할 수 있었다.
더 멀리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교역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교역이 활발해지면 도시와 국가가 성장했다.
즉, 나무 한 그루가 배가 되고, 배가 무역이 되고, 무역이 다시 한 국가의 힘이 되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숲은 문명의 인프라였다.
잉글랜드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왕과 국가의 권력, 목재 가격, 산업과 연료 문제가 서로 얽혀 있고, 숲을 둘러싼 정책이 정치적 갈등과도 연결된다. 나무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경제적·정치적 자원이었던 것이다.
책 속에 소개된 다음 문장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달랐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묘한 불편함을 남긴다.
🔖“참나무가 말끔히 없어진 것은 (…) 왕국의 발전이고, 목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 나라가 발전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숲이 사라지는 것을 발전의 증거라고 생각했다니. 상당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에도 완전히 사라진 사고방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발된 땅, 새로 생긴 도로, 늘어난 건물, 확장된 도시를 우리는 여전히 ‘발전’이라고 부른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녹지나 훼손된 생태계는 발전의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뒤로 밀려나기도 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이 무엇을 '발전'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무를 아낌없이 써버리고 (…) 나무를 심는 데는 무관심한 것”이 “뭔가를 허물어버리려는 보편적인 충동”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없애는 일에 더 빠르게 익숙해질 때가 있다. 오래 걸려 자란 것을 베어내는 일은 순간이지만, 그것이 다시 자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숲도 그렇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몇 분, 몇 시간 만에 베어낼 수 있다.
그래서 숲을 보존한다는 것은 시간을 존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당장의 편리함과 이익을 계산하지만,
나무는 인간의 계산 속도에 맞춰 자라주지 않는다.
그 차이가 숲과 인간 사이의 가장 큰 비대칭이 아닐까.
과거의 이야기를 읽는데 이상하게 ‘지금’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 책의 가장 묵직한 부분은 고대 문명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왔다.
과거의 문명이 숲을 소모했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역사책을 읽는 기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로 바뀐다.
기후위기, 산림 훼손, 생물다양성 감소, 물 부족과 같은 문제들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오늘날의 환경 문제를 고대 문명의 산림 파괴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는 에너지 구조와 산업 규모, 인구 규모 자체가 과거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문명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과연 그 지식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과거의 사람들은 숲이 사라진 뒤에야 그 결과를 체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무가 탄소순환과 물순환, 토양과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산림 훼손이 다양한 환경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알고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숲과 문명》을 읽으며 달라진 것은 ‘숲’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숲은 언제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자원으로 여겨졌다.
목재를 주고, 연료를 주고, 배를 만들 수 있게 해주고, 농경과 정착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편을 보여준다.
- '숲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무엇을 잃게 되는가.'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숲의 가치는 목재의 가격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 얼마를 벌 수 있는가를 계산하는 것과 그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 만들어내는 환경적 가치를 계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어쩌면 오랫동안 숲을 ‘자원’으로만 바라보면서 숲의 진짜 가치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계산해왔는지도 모른다.
숲은 인간에게 무언가를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숲과 문명》은
문명의 탄생과 성장, 산업의 발전, 교역과 전쟁, 국가의 흥망성쇠를 모두 숲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바라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역사책에서 보이지 않던 빈칸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도시, 배, 산업, 금속 등은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결국,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 무엇이 사라졌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꽤 달라진다.
역사의 주인공이 인간이었다면,
그 인간을 움직이게 한 보이지 않는 기반에는 숲이 있었다.
책을 읽고 남은 생각은 ‘숲의 경고’였다.
그리고 처음의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문명의 역사를 인간의 성취로만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그 성취가 가능하도록 오랫동안 자신의 자원을 내어준 숲의 역사까지 함께 바라볼 것인가.
나는 후자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문명이 숲을 정복하면서 발전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문명은 숲이 허락한 만큼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숲을 무한한 자원처럼 생각하는 순간 인간의 문명도 지속 가능성을 잃기 시작한다.
그래서 책을 읽고 오래 남는 감정은 거대한 경고 앞에 서 있는 듯한 묘한 불안감이었다.
과거의 문명들이 숲을 소모하고 그 결과를 겪었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가능성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반드시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도 과거의 결말을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만들었는지보다,
무엇을 희생하며 그것을 만들었는지를 묻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문명의 진정한 발전이란
자연을 얼마나 많이 소비했느냐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얼마나 오래 살아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책을 덮은 뒤 숲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숲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그저 나무 한 그루로 보았다면,
이제는 그 나무가 지나온 긴 시간과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생명,
그리고 인간 문명의 역사까지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지켜야 하는 것은
숲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의 오래된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역사의 반복되는 굴레를 끊어내고,
숲이 허락하는 한계 안에서 동존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
발밑의 나무를 모두 태워버린 뒤 뒤늦게 후회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인류 전체가 숲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_
#숲과문명 #존펄린 #더퀘스트
#숲 #생태학 #파타고니아 #고전 #생태환경 #기후위기
#서평단 #도서리뷰 #신간 #신간소개 #책추천 #도서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