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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
에릭 사댕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이 게시물은
#헤세드의서재 (@hyejin_bookangel ) 님의 서평단 모집을 통해
헤이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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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일상이 된 지금, 무엇이든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답이 돌아오고, 글을 쓰면 문장이 만들어지고, 이미지를 설명하면 그림이 나타난다. 번역도, 요약도, 자료 정리도 몇 초면 가능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일들이 이제는 ‘명령’ 하나로 해결된다.
처음에는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놀라운 기회라고 생각했다.
반복적인 일을 AI에게 맡기고 더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간을 절약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 질문이 달라진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AI에게 맡기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에릭 사댕의 《멸종 위기의 사고》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 부분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근본적인 곳을 바라본다.
우리가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포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다.
생각하는 능력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AI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인간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하는 것일 수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이 궁금한지 스스로 질문하고, 자료를 찾고, 서로 다른 의견을 비교하고, 틀릴 수도 있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면서 하나의 판단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
때로는 답답하고, 어렵고,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 수 없는 순간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에서 사고력이 만들어지고, 경험이 쌓이고, 자신만의 관점이 생긴다. 그런데 AI는 그 과정을 너무나 능숙하게 건너뛰게 해준다.
특히 무서운 것은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모든 과정을 대신하면서 '링크를 클릭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생각하지 않는 개인은 필연적으로 타인, 혹은 기계의 시스템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점점 ‘답을 받아보는 사람’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사고력의 퇴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계산기를 쓴다고 수학적 사고가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비게이션을 사용한다고 길을 찾는 능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판단까지 위임하는 것 사이의 경계다.
AI에게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까지 AI에게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쓴 글의 맞춤법을 확인하는 것과
내 생각을 AI가 대신 만들어 주도록 하는 것도 다르다.
아이디어를 얻는 것과 만들어내는 과정 전체를 포기하는 것 역시 다르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사고의 멸종’이라는 표현은 훨씬 섬뜩하게 다가온다.
책에서는 인간이 오랜 시간 배우고 연마해 온 능력이 즐거움과 자존감, 사회적 인정, 삶의 의미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능력은 재능을 발휘하도록 이끌고, 일하는 즐거움을 동반하며, 사회적 인정과 자존감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잘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 들인 시간은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한 시간만이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수없이 문장을 고쳐본 시간, 그림을 그리며 수없이 실패한 시간,
번역가가 언어의 뉘앙스를 고민한 시간, 교사가 한 학생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시간, 연구자가 수많은 자료를 읽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보낸 시간.
그 시간들이 한 사람의 능력과 정체성을 만든다.
그런데 결과물만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그 과정을 모두 건너뛴다면
인간은 무엇을 얻게 되고, 무엇을 잃게 될까.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나의 판단’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도덕적 의무를 다해 판단의 자율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일인칭 주체로서 의견을 표명하며, 우리의 자유로운 주관성을 전달하는 데 힘쓰지 않는다면, 자크 라캉이 이미 지적한 바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제삼자에게 지배당하게 될 것이다.”
AI가 제공하는 답변은 그럴듯하다.
문장이 매끄럽고, 논리적으로 보이며, 때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까지 제시한다. 그래서 더욱 주의해야 한다.
그럴듯함과 진실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AI가 만들어낸 답변을 읽고 ‘그럴듯하네’라고 생각하는 순간과
‘정말 그런가?’라고 다시 확인하는 순간 사이에는 인간의 판단이 존재한다.
책에서 교육과 학교의 변화를 다루는 부분도 상당히 무겁게 다가온다.
생성형 AI가 가장 빠르게 파고든 영역 중 하나가 글쓰기와 과제였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보고서를 쓰라고 했는데 AI가 대신 써주고, 책을 읽고 감상을 쓰라고 했는데 AI가 감상을 만들어주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스스로 고민하기 전에 AI에게 답을 요청한다면 교육의 의미는 어디에 남게 될까.
교육의 목적이 ‘완성된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이라면 AI는 너무나 훌륭한 도구다.
하지만 교육이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5년 파리 그랑팔레에서 글로벌 AI 기업과 정치가들이 모여 기술의 경제적 효과를 논할 때, 불과 300미터 떨어진 콩코드 극장에서는 현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사, 번역가, 성우, 기자들이 모여 공유한 이야기는 기술의 화려한 전망이 뒤에 숨긴 진짜 현실이었다.
그동안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을 AI에 맡기면 인간은 더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읽고, 쓰고, 고민하고, 판단하는 가장 인간적인 영역부터 기계에 넘어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저자는 이를 인간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는 '사막화' 과정으로 진단한다.
실제로 책 속에 등장하는 현장의 목소리는 가슴을 찌른다.
🔖“학생과 교사 사이의 특별한 관계가 이미 쇠퇴하고 있었지만 이젠 그야말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 교류가 무너지고 기술적 효율성만 남는 모습은, 우리가 효율을 얻는 대신 무언가 치명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영상, 글과 음성은 이제 ‘가짜처럼 보이는 가짜’의 수준을 넘어섰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문화 자체의 문제로 바라본다.
🔖“미리 저장된 모양을 재조합해서 만들어지는 만큼 결과적으로 논리적 도식에 부합되는 형상일 뿐 출발점이었던 현실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따라서 현실과 단절된다.”
여기서 ‘현실과의 단절’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계속 소비하게 되면 어느 순간 무엇이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조차 중요하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
더 나아가 모든 창작물을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창작과 문화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더욱 서늘하도. 책에서 제시된 아르튀르 랭보의 비유는 매우 절묘했다. 훌륭한 문학 작품이나 예술작품이 나왔을 때 감탄하기에 앞서 "이거 챗GPT로 쓴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부터 품게 되는 시대. 이는 인간 고유의 재능과 노력을 향한 근본적인 불신을 낳는다.
🔖“25세의 작가가 쓴 첫 장편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작가가 정말 쓴 게 맞는지’, ‘혹시 챗GPT와 공모해서 쓴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창작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누가 어떤 삶을 살아 그 작품에 도달했는가라는 점일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기억과 실패와 감정을 통과해 만들어낸 작품과,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된 결과물을 우리가 똑같은 의미에서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AI가 내놓은 결과를 의심하고 검증하고 판단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
어떤 답을 받아들일 것인가.
무엇을 거부할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결정권만큼은 인간에게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AI를 거부해야 할까?
AI는 이미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 들어와 있고, 앞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그 흐름을 단순히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AI에게 맡길 것인가를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번역의 초벌 작업, 자료를 정리,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등....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 그리고 내가 무엇을 믿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까지 넘겨버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즉, AI와 인간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전면적인 거부’와 ‘무조건적인 수용’ 사이에 있는 명확한 원칙일 것이다.
그리고 《멸종 위기의 사고》를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은 결국 이것이었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이 무시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이런 강경함이 지난 15년 동안,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우리에게 심각하게 부족했다. 챗GPT가 출시되던 바로 그날부터 그렇게 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나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정신적 활력과 사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은 고립된 프리랜서, 노동자, 창작자들이 단체를 결성하고 독립적인 헌장을 만들며, 필요하다면 거부권과 파업을 통해서라도 원칙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선의의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낼 때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기술 권력도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손쉽게 AI 검색 창을 켜고 답을 구하려던 손가락을 잠시 멈추게 된다.
인간이 지켜야 할 것은 질문하고, 고뇌하고, 오류를 범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사고의 자율성' 그 자체다.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스스로 빈껍데기가 되기를 거부할 때, 비로소 인간은 기계의 주인이 아닌 고유한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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