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할게요 (1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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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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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두드리면 마음을 전할 수 있고, 보내기 버튼 하나면 순식간에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 가득한데 막상 문장으로 옮기려 하면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고, 몇 번이고 적었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보내지 못한 채 남겨 두기도 한다.

편지는 그런 순간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에게 보여 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기 위한 기록.

사랑했던 순간도,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이별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 감정도 편지라는 형식 안에서는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등을 통해 섬세한 감성과 다정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려 온 정영욱 작가.

이번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이자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다듬어진 전면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에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감성적인 에세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목차나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니 책에서 이야기하는 감정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부터 관계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되는 소중함, 외로움과 후회, 미련, 기다림,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까지. 한 사람을 사랑했던 시간은 그 시절의 나를 이루었던 시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두 그를 잊기 벅찬 것이 아니다. 그를 애정했던 나를 잊기 벅찬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랑이 끝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의 정체를 생각해 보게 된다. 헤어진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놓아주기 어려운 것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나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바라보던 눈빛,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설레던 마음, 별것 아닌 일에도 하루가 행복했던 순간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서툴렀을지 몰라도 누군가를 온전히 좋아할 줄 알았고,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알았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때의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대방보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시절의 나를 더 오래 그리워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오래 머물렀던 문장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외롭다는 건 생각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야. 혼자가 되어 누군가가 그리울 때가 아니라, 더는 그리워할 그리움조차 없을 때.”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마음 둘 곳이 없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누구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때로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외로움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외로움과 더 이상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가장 쓸쓸한 순간은 마음이 아픈 것조차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을 때인지도 모른다.

책 속 문장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아주 작은 순간을 붙잡아 그 안에 숨어 있던 마음을 들려준다.

🔖“기억하는 건 기억하려 애써 붙잡아 두는 거고, 잊지 못하는 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새겨지는 거고.”

기억과 잊지 못함의 차이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기억은 의식적으로 붙잡으려는 노력에 가깝지만, 잊지 못하는 것은 애써 외면해도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오는 감정에 가깝다. 오래된 노래 한 곡에 특정한 계절이 떠오르고, 익숙한 거리에서 오래전 함께 걷던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일은 희미해진다고 하지만 모든 기억이 같은 속도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지만, 어떤 순간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래서 책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나간 사람을 떠올리는 동시에 지나간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사랑에 관한 문장 중에서는 다음 구절도 눈길을 끌었다.

🔖“좋아한다는 건 모든 것을 품어 주는 게 아니라 하필 품은 것이 그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좋은 모습만 바라보는 일이 아닐 것이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까지 알게 되고, 나와 다른 부분을 마주하면서도 그 사람이라는 이유로 마음이 향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상처를 주고,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각자의 행복을 위해 멀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한쪽 눈을 크게 뜨기 위해 한쪽 눈을 감아야 하는 것처럼 네가 행복하기 위해 내가 줄어들어야 했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작아져야만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온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관계를 이어 가는 일이 서로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관계가 지속될 수는 없고,
때로는 놓아주는 일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배려가 되기도 한다.

이별은 관계의 끝이지만, 그 관계 안에서 경험했던 감정까지 부정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이 소중했다는 사실과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성숙한 이별이란 아팠던 마음까지 자신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인 《편지할게요》도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

편지를 쓰겠다는 말에는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도, 언젠가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기다림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편지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도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답장을 받지 못해도 괜찮고, 끝내 부치지 못해도 괜찮다. 마음을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 놓인 [추신│답장은 괜찮습니다]라는 부분도 오래 생각하게 한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비로소 꺼내 놓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이미 멀어진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도 있고, 오래전의 나에게 건네는 안부일 수도 있으며,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인사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1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문장과 그 이후 작가가 쌓아 온 시간의 감정이 한 권에 함께 담겼다는 것은, 오래된 책을 다시 펴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문장도 읽는 사람의 나이와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읽었던 문장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나간 관계를 이해하는 문장이 될 수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읽었던 글이 어느 날에는 자신을 위로하는 글로 남을 수도 있다.

책은 그대로인데 읽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편지할게요》는 마음이 복잡한 어느 날 다시 펼쳐 보고 싶은 책에 가깝다.
목차에 담긴 수많은 제목만 보아도 사랑, 이별, 그리움, 외로움, 기다림이라는 감정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삶에 머무는지 느낄 수 있다.

어떤 문장에서는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이 떠오르고,
어떤 문장에서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이별이 생각날 것이다.
또 어떤 문장에서는 누군가가 아닌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몇 개의 문장이 일상 속에서 편지처럼 남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 그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고백,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까지.

인생에는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편지 안에는 미안하다는 말도, 고마웠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문장의 끝에는 살아온 나의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책.

지나간 사랑을 잊으라고 재촉하지 않고, 아픈 마음을 서둘러 정리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그저 그때의 마음도 당신의 일부였다고 건네는 책.

《편지할게요》를 읽고 나면 문득 오래된 편지 한 통을 다시 꺼내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혹은 오랫동안 안부를 묻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잘 지내고 있나요.
그때의 우리는 서툴렀지만 진심이었고, 지나온 시간은 아팠지만 분명 소중했다고.'

답장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전하지 못한 마음도 마음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 보고 싶다.

'편지할게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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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도 ㅣ 허밍북스 슬릿 1
조강우 지음 / 허밍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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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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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지도에서도 사라질 섬이 있다면,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까. 자신이 살아온 집과 익숙한 풍경이 조금씩 바다에 잠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상실감으로 다가올까. 그리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끝까지 섬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조강우 작가의 《동백도》는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인 섬을 배경으로 한 실종 사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실종의 진실이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만이 아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불안이 만들어내는 집단의 광기, 그리고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입사 3년 차 기자 김연우는 아직 자신의 이름을 내건 대표 기사를 쓰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동백도에서 실종된 여성을 찾아달라는 제보가 들어온다.
행정상으로는 이미 이주가 완료된 섬, 그러나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서류상으로는 섬을 떠났지만 실제로는 사라져버린 이수아.

기자에게 이번 취재는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였을 것이다. 실종 사건과 곧 사라질 섬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기사였을 테니까. 하지만 그가 동백도에 도착한 뒤 마주한 것은 예상했던 취재 현장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태풍이 지나간 밤 11시 47분. 섬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
전기와 통신은 물론이고 자동차와 배, 심지어 시계까지 작동하지 않는다.
외부와 연결되는 모든 통로가 끊어진 공간.
그곳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의 규칙에 의지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이유는 재난의 규모보다 재난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휴대전화로 확인하는 뉴스,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연락망, 그리고 언제든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보가 사라진 자리를 소문이 대신하는 과정이다.

🔖“봤다가 아니었다. 봤다더라. 소문은 그렇게, 전기가 없는 섬의 유일한 연료가 되었다.”

이 문장은 작품의 분위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기가 끊긴 섬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기계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말이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반복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도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가 올린 짧은 영상과 몇 줄의 게시물,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사실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맞춰 정보를 해석하고, 때로는 그 이야기에 분노하거나 누군가를 비난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정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까지 그만큼 성숙해졌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잘못된 이야기가 진실보다 먼저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동백도는 단절된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해 현재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기자와 인플루언서의 대비다.

두 사람 모두 무언가를 기록하고 세상에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기록하는 방식과 그 기록을 바라보는 태도는 다르다. 기자에게는 기사로 만들어야 할 사건이 있고, 인플루언서에게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콘텐츠가 있다. 한 사람은 취재 수첩을 들고, 다른 한 사람은 카메라를 든다.

그런데 섬의 모든 장치가 멈추면서 두 사람이 의지하던 기록의 방식도 흔들린다.

🔖“나는 아직 적을 수 있었지만, 이수민은 찍을 수 없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와 기록에 대한 서로 다른 욕망이 응축되어 있다. 무엇을 기록하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왜 기록하려 하는가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남기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김연우 역시 자신이 이수민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 또한 특종을 기대하며 섬에 들어온 인물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실종을 자신의 성과로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대목을 읽으며 기록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을 수집하는 능력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야기로 옮길 때 그 사람의 삶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기자와 인플루언서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날 기록하고 전달하는 모든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동백도라는 공간이 가진 상징성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섬이라는 설정은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기후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평생 살아온 터전을 잃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이웃, 삶의 방식과 기억을 한꺼번에 잃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동백도가 사라지는 섬이라는 사실보다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 세상은 이미 그들을 떠난 사람으로 분류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누가 죽어도 장사 잘돼요. 다만 물이 보이냐 안 보이느냐의 차이지."

죽음조차 누군가에게는 소비되고 거래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뉴스가 되는 죽음과 그렇지 못한 죽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동백도라는 섬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은 자연환경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발과 정책, 행정적인 절차 속에서 어떤 사람들의 삶은 숫자로 정리되고, 어떤 사람들의 사연은 제대로 들리지 않은 채 뒤로 밀려난다.

이주 완료라는 문서 한 장이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존재까지 지워줄 수는 없다. 행정적으로는 떠난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 간극이야말로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중 하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작품을 읽으며 인상적으로 다가온 또 하나의 요소는 바다다.
동백도에서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며,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다.

동백도는 여전히 집이고, 떠나지 못한 이유가 있으며,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오랫동안 바다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이 바라보는 바다는 분명 다를 것이다.

🔖"지금은 파도가 높아. 방향도 안 맞고. 들물 끝자락 지나고. 바람이 서쪽으로 더 틀면 그때 북쪽으로 탈 수 있어."

이 말에는 오랜 시간 물가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과 경험이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막막한 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바람과 파도, 물때를 읽어 길을 찾아야 하는 공간이다.

동백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믿어왔던 기준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문서와 공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고, 기술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에도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은 누군가에게 살아남을 방법이 된다.

위기 속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 속에서 쌓아온 감각과 타인의 경험을 인정하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재난은 사람들을 한자리에 가두는 동시에 그동안 감춰져 있던 관계와 감정을 밖으로 끌어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붉은 불빛을 두고 누군가는 핵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심판이라고 말한다.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실을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설명해 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누군가를 향한 의심과 혐오로 번져간다.

불안한 사람들은 질서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이 믿는 질서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한다.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명분은 어느새 타인을 배제하는 이유가 되고, 정의와 구원을 이야기하던 목소리는 누군가를 심판하는 언어로 변한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낯설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어 한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일보다 명확한 적을 만들어내는 일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백도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섬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심리는 현 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사라진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섬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지고, 통신이 끊기고, 기록이 멈춘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기억하는 일마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닐까.

바위틈에 끼어 있는 방호복 소매에서 발견한 이름, '이수아'.

이 장면은 한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존재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많은 소문과 추측 속에서 사건은 거대한 이야기로 변해가지만,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을 찾고 싶어 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이 부분에서 사건의 규모와 사람의 존재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재난과 사회적 혼란에 주목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라진 가족 한 사람을 찾는 일이 그 어떤 사건보다 절실할 수 있다.

뉴스가 될 만한 사건과 한 사람에게 절실한 사건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 기록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일 것이다.


《동백도》는 재난이라는 장르적 긴장감을 바탕으로 인간의 공포와 욕망, 미디어의 책임, 공동체의 민낯을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실종된 여성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누가 사라졌는가만큼이나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동백도라는 섬의 이미지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섬은 조금씩 사라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점점 더 서로를 믿지 못한다.
모든 것이 멈춘 공간에서 오히려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은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거창한 정의나 그럴듯한 문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기록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 속에서 정작 한 사람의 진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섬이 사라지는 일은 자연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잊고,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며,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로 누군가를 심판하는 일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것은 경계하고 돌아봐야 할 인간의 몫이다.

사라지는 섬에서 벌어진 재난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재난 앞에서 드러난 사람들의 민낯이었다.

범인을 찾고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는 스릴러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록하며 타인의 삶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동백도》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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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갱이들 -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황보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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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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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한 사람의 부재로 끝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충분히 슬퍼해야 할까, 눈물을 흘려야 할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할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종종 남겨진 사람들에게 애도의 모습을 요구한다. 얼마나 슬퍼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하는지, 그 사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그런데 정말 슬픔에도 정해진 모양이 있을까.

《알갱이들》은 친구 정미의 죽음 이후 남겨진 현비의 일상을 따라가며,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정작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서 상실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정작 죽은 정미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는 정미의 목소리도, 표정도, 죽기 전의 마음도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오직 현비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 정미라는 존재를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미는 부재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한 번도 직접 만날 수 없는 인물인데도 소설 곳곳에 정미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흔적은 현비의 하루와 생각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현비는 정미와 가장 친했던 친구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현비라면 정미가 왜 죽었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미의 친언니 유미 역시 동생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현비를 찾아온다. 하지만 현비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언제나 비슷하다.

모르겠다.

이 짧은 말에는 친구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혼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친구의 마음에 대한 당혹감, 혹시 자신이 무언가 놓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많은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정미와 가장 친했던 현비조차 정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현비의 잘못일까.

책 속에서 현비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정미를 몰랐다."

이 문장은 친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자책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삶과 마음을 타인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가까웠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어도 타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남겨진 사람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그날 내가 다른 말을 했더라면,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무언가 알아차렸더라면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현비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상당히 불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정미가 죽었는데 머리를 하고 미용실에 다녀왔다고 수군거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비난한다. 친구를 잃은 사람이 어떻게 평소처럼 머리를 하고, 밥을 먹고, 다른 사람과 웃고 지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잃었다고 해서 남겨진 사람의 일상이 완전히 멈추는 것은 아니다. 슬픔 속에서도 배가 고프고, 머리가 자라고, 계절은 바뀌며,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비가 미용실에 다녀온 이유도 정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정미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슬픔이라는 감정이 반드시 눈물이나 침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엉뚱한 일에 몰두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애도의 방식과 다르면 쉽게 비난한다. 슬퍼해야 할 때 웃었다고, 충분히 울지 않았다고, 벌써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고 말이다.

이 부분에서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해석하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상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슬퍼해야 하는지까지 정해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슬픔은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현비가 보여주는 태도는 인상적이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믿어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참회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친다는 의미의 참회.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믿어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문장은 작품 전체에서 현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처럼 느껴졌다.

현비는 정미의 죽음을 잊으려는 것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죽음에 명확한 원인과 책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태도일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현비의 주변에 등장하는 죽음의 이미지들이다.

죽은 정미뿐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고모부가 현비 앞에 나타나고,
아이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놀이를 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일상적인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히 죽은 고모부가 부탁하는 장면은 기묘하면서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혹시 현비 네가 나한테 죽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죽은 사람이 잘 죽기 위해 죽고 싶은 마음을 달라고 한다는 설정은 역설적이다. 이 장면은 죽음이라는 사건이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특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그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도 저마다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품고 있다.

여기서 고모부의 부탁은 현비에게 또 다른 감정의 무게를 건넨다.
현비는 정미의 죽음으로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마음까지 떠안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대신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결해 주기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결국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고,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슬픔이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은 제목인 '알갱이들'이었다.

알갱이는 작고 개별적인 존재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이고 쌓이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쉽게 흩어지고, 때로는 단단히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소설 속 현비의 마음도 그런 알갱이와 닮아 있다.

정미의 죽음에 대한 기억, 주변 사람들의 시선,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 할머니의 반복적인 참회 요구, 새롭게 맺은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까지. 어느 하나만으로 현비의 마음을 설명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감정들이 작은 조각처럼 쌓이고 흩어지며 현비라는 사람을 이루어간다.

책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나도 알맹이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알갱이."

알맹이라는 말이 어떤 것의 중심이나 핵심을 떠올리게 한다면,
알갱이는 그보다 작고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때로는 나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완성된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기억, 감정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은 제목이 가진 의미를 더욱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정미가 죽어서가 아니라 정미는 내 안에 있으니까. 알갱이처럼 내 안에 있으므로, 내가 진짜 내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정미를 볼 수 없다. 알갱이인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제목이 작은 입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남겨진 존재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없지만, 함께했던 시간과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미는 더 이상 현비의 곁에 없지만 현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정미가 있다. 그것은 잊지 못해서 괴로운 기억이기도 하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다.

애도란 떠난 그 사람이 내 안에 남긴 자리를 인정하고 그 자리를 품은 채 살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반복은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유미는 매일 현비를 찾아오고, 두 사람은 정미의 죽음에 관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는 소윤이와 김라희 사이의 폭력이 반복되고, 할머니는 현비에게 끊임없이 참회하라고 말한다.

비슷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조금씩 쌓여간다.

특히 소윤이가 현비에게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현비가 그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장면은 눈길이 갔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말이 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한마디를 필요로 할 때가 많다.
반복되는 말과 행동은 무의미해 보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누군가의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현비의 일상도 그렇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정미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비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간다.

이러한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거나 완벽하게 회복했다는 식의 결론도 아니다.

그저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도 살아가는 것.

오히려 그런 모습이 현실의 애도와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갱이들》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쉽게 설명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이유를 묻고, 슬퍼하면 언제쯤 괜찮아질지 궁금해하며,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는 이제 그만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말들이 걱정과 위로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상대방의 마음이 충분히 준비되기도 전에 건네는 위로가 또 다른 부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품이 쉽게 원인을 규정하거나 누군가를 구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감정을 단순하게 바라보거나, 주변 어른들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해석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삶에는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복잡한 사정과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나 그럴듯한 해답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부분을 함부로 채워 넣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현비가 아이에게 건네는 질문도 오래 남는다.

🔖"죽는 거 아프니?"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설정 속에서 등장하는 조금 낯선 질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작품의 끝을 생각하고 나면 이 질문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정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고,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비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 이후에도 남겨지는 감정은 무엇인지 묻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기에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알갱이들》은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쉽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올바른 애도의 기준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그대로 남겨둔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어딘가 까끌까끌한 감정이 남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 질문들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하는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슬픔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알지 못하는 마음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섣불리 괜찮아지라고 말하지 않는 것.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알갱이를 품고 살아간다.
어떤 것은 오래전 기억이고, 어떤 것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이며,
어떤 것은 누군가가 남기고 간 작은 흔적일 것이다.

그 알갱이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누군가를 잃었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 그 사람은 여전히 내 안의 작은 알갱이로 남아 있다.

황보나 작가의 《알갱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지긍 필요한 것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께 품어낼 수 있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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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장 완전 회복 - 위와 장이 살아야 내 몸이 산다!
이승후 지음 / 좋은날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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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심히 넘기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참 많은 것을 한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고,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하고, 아프면 병원을 찾아 약을 먹는다. 그런데 정작 매일 반복하는 식사와 소화, 배변처럼 너무나 익숙한 일상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먹은 음식이 편안하게 소화되고, 필요한 영양소가 몸에 흡수되며, 불필요한 것들이 원활하게 배출되는 과정까지 이루어져야 비로소 한 끼의 역할이 완성된다.

건강의 기본은 매일 반복하는 이 평범한 과정부터 살펴보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위와 장 완전 회복》은 위와 장의 건강을 중심으로 식습관과 생활 방식, 스트레스와 운동까지 살펴보며 몸을 돌보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소화불량이나 변비 같은 증상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먹고 생활해 왔는지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음식은 매일 먹지만, 그 음식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 바쁘다는 이유로 식사를 서두르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먹고, 속이 불편해도 당장 증상만 가라앉히면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몸은 하루의 식사 한 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선택이 쌓이고, 그 선택이 습관이 되며, 습관은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건강을 돌아본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생활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보며 내가 오늘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했는지부터 돌아보게 된다.
몸을 바꾸는 일은 작은 습관 하나를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위와 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영양소를 흡수하며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식사의 즐거움은 물론 일상생활의 편안함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속쓰림과 더부룩함, 잦은 소화불량, 변비처럼 흔히 경험하는 증상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한두 번 불편한 정도라면 일시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같은 증상이 반복된다면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편함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 먹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책은 속쓰림과 위염, 역류성 식도염, 변비와 과민대장 증후군 등 다양한 위장 문제를 다루며 식습관과 생활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위장 건강을 한 가지 음식이나 영양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기보다, 여러 생활 요소가 맞물리는 과정으로 살펴보게 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책의 목차에서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과식과 식사 습관, 음식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건강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새로운 식품을 추가하고, 영양제를 챙기고,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더하는 것만큼 불필요한 부담을 줄이는 일도 중요하다.

식사를 지나치게 빨리 끝내지는 않는지, 배가 부른데도 남은 음식을 억지로 먹지는 않는지, 늦은 시간의 식사가 반복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식사량과 시간, 개인의 소화 상태에 따라 느끼는 불편함은 달라질 수 있다.

음식에 대한 태도 역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불편함을 일으킬 수 있고, 반대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식사라도 균형 있게 먹는다면 좋은 식습관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책 속에는 위장병이 있는 사람에게 매운 음식과 일부 향신료를 줄이는 방법을 제안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건강관리는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뿐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불편함을 일으키는지 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얻고 싶은 실천의 방향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무작정 건강에 좋다는 것을 추가하기보다, 내 몸이 보내는 불편한 신호를 기록하고 식사량과 식사 속도, 음식 종류를 하나씩 점검해 보는 것.

건강관리는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구분하는 능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책의 2장에는 장과 뇌의 연결에 관한 내용이 있고, 4장에서는 스트레스와 건강의 관계를 다룬다. 이 두 주제를 함께 살펴보면 건강이 신체 한 부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스트레스가 심한 시기에는 식사 시간이 불규칙해지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평소와 달리 소화가 불편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몸이 계속 불편하면 활동이 줄고 잠을 설치게 되며, 일상의 작은 일에도 예민해질 수 있다.

장과 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도 연구되는 분야다.
다만 장 건강이 좋아지면 모든 정신적 어려움이 해결된다거나, 특정 장내 환경이 곧바로 마음의 건강을 결정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몸의 불편함과 마음의 상태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는 의미가 있다.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을 먹는지만큼 충분히 쉬고, 움직이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서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하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계속 무시한다고 해서 그 신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잠시 멈춰 자신의 생활을 살펴보는 편이 필요할 수 있다.

건강은 몸을 혹사한 뒤 회복하는 일만이 아니라,
애초에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생활을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위와 장 완전 회복》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건강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몸이 아프면 당장 불편함을 없애고 싶다. 속이 쓰리면 속쓰림이 멈추기를 바라고, 배가 더부룩하면 편안해지기를 바라며, 변비가 생기면 빠르게 해결할 방법부터 찾는다. 당장의 불편함을 줄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증상이 반복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생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식사는 지나치게 빠르지 않았는지, 내게 맞지 않는 음식이 있는지, 충분히 쉬고 움직였는지, 스트레스를 감당할 여유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건강을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좋은 생활 습관을 유지해도 질병은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프다는 이유로 자신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관리와 필요한 치료를 차근차근 찾아가는 태도다.


건강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오늘의 식사, 충분한 휴식, 규칙적인 움직임, 몸의 신호를 살피는 작은 관심이 쌓여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조건 참거나 두려워하기보다,
그 신호를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 그리고 몸에 좋다는 것을 무작정 더하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살펴보는 것.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몸과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먹은 한 끼를 돌아보고,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작은 변화 하나가 더 현실적인 건강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니까.

몸이 편안해야 일상이 편안하고, 일상이 편안해야 삶을 누릴 여유도 생긴다.

《위와 장 완전 회복》은 위와 장의 건강을 출발점으로 삼아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건강관리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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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ㅣ 탐 그래픽노블 17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박재연 옮김, 장 지오노 원작, 플로랑스 르봉발레 각색 / 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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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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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고, 망가진 자연을 되살리고 싶으며, 지금보다 조금은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뀌는 것이 있을까. 내가 애써 무언가를 해도 세상은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고, 눈앞에 드러나는 결과가 없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황량한 땅에서 묵묵히 도토리를 심는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신념을 외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그리고 그 사소해 보이는 행동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한 지역의 풍경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바꾸어 놓는다.


숲을 만든 것은 단 한 번의 위대한 결심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된 작은 실천이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관한 소식은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산불과 가뭄, 폭염으로 자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거대한 문제 앞에서 한 사람의 노력은 너무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피에의 이야기는 그 작음에 대한 판단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부피에는 매일 건강한 도토리를 골라 땅에 심는다. 싹이 틀지, 나무가 제대로 자랄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숲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행동에 대단한 비장함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영웅적인 서사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선언도, 자신의 선행을 증명하려는 욕심도 없다. 그에게 나무를 심는 일은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대개 결과부터 계산하곤 한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수고를 알아줄지 따져 본다. 하지만 모든 가치가 당장의 성과로만 증명되어야 한다면, 긴 시간이 필요한 일들은 시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책 속 부피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미래를 확신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도 행동한다. 자신의 노력이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 알지 못하면서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이어 간다.

이 태도는 꾸준함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했다. 꾸준함이란 어쩌면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된다.

책을 읽다 보면 도토리 한 알은 오늘의 내가 미래를 위해 남겨 놓는 작은 가능성이자, 당장 보이지 않는 변화를 믿는 행동이다.

부피에의 행동이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데도
자신의 일을 이어 가는 한 인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희망은 이처럼 잘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여겨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다.

도토리를 심는 일은 짧은 순간에 끝나지만, 숲이 되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어린나무가 자라며, 수많은 생명이 깃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인간의 조급함으로 앞당길 수 없는 시간이 흐른다.

나무는 오늘 심었다고 내일 숲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심은 나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너무 쉽게 현재의 결과만으로 노력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어떤 변화는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가 되어서야 과거의 작은 행동들이 서로 연결되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1953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한 인간의 조용한 실천이 자연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오랜 시간 여러 언어로 번역되며 읽혀 온 이 작품이 그래픽노블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은 실로 반가웠다.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은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같은 땅이 계절을 거치고 세월을 지나며 달라지는 모습은 글로 읽을 때와는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황량했던 풍경에 나무가 자라고 숲이 형성되는 과정은 변화가 단번에 이루어진 기적이 아니라 오랜 축적의 결과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

그림을 토대로 더 선명하게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변화의 무게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이 어린 독자에게만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에게 더 필요한 경험일 수 있다.


숲을 바라보며 기다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부피에가 나무를 심어 만든 변화는 나무의 수가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메마른 땅에 숲이 들어서고 물이 흐르며 새들이 찾아온다. 자연의 변화는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황량하고 적막했던 공간은 다시 생명이 머물 수 있는 장소로 바뀐다.

부피에가 심은 나무는 그가 살아온 삶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의 삶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설명하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 준다.


지금 우리가 심어야 할 도토리는 각자의 삶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 미뤄 둔 공부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함부로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 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씨앗이 처음부터 크고 대단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작은 행동이라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며,
변화가 더디다고 해서 모든 노력이 헛된 것도 아니다.

내가 심고 싶은 도토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내가 심은 나무가 얼마나 자랄지 알 수 없더라도, 오늘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확신할 수 없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 그것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오늘 내가 심은 도토리 하나가 내일 당장 숲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숲은 처음부터 숲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시간을 만나고, 수많은 날을 지나며 조금씩 다른 풍경을 만들어 간다.

미래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흔적은 지금 이 순간에는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오늘의 작은 실천들이 모여 내 삶 어딘가에도 푸른 숲 하나를 이루고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해본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에서,
오늘도 묵묵히 심어야 할 도토리 한 알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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