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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할게요 (1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17년 12월
평점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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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두드리면 마음을 전할 수 있고, 보내기 버튼 하나면 순식간에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 가득한데 막상 문장으로 옮기려 하면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고, 몇 번이고 적었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보내지 못한 채 남겨 두기도 한다.
편지는 그런 순간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에게 보여 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기 위한 기록.
사랑했던 순간도,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이별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 감정도 편지라는 형식 안에서는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등을 통해 섬세한 감성과 다정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려 온 정영욱 작가.
이번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이자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다듬어진 전면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에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감성적인 에세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목차나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니 책에서 이야기하는 감정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부터 관계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되는 소중함, 외로움과 후회, 미련, 기다림,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까지. 한 사람을 사랑했던 시간은 그 시절의 나를 이루었던 시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두 그를 잊기 벅찬 것이 아니다. 그를 애정했던 나를 잊기 벅찬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사랑이 끝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의 정체를 생각해 보게 된다. 헤어진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놓아주기 어려운 것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나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바라보던 눈빛,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설레던 마음, 별것 아닌 일에도 하루가 행복했던 순간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서툴렀을지 몰라도 누군가를 온전히 좋아할 줄 알았고,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알았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때의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대방보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시절의 나를 더 오래 그리워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오래 머물렀던 문장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외롭다는 건 생각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야. 혼자가 되어 누군가가 그리울 때가 아니라, 더는 그리워할 그리움조차 없을 때.”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마음 둘 곳이 없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누구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때로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외로움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외로움과 더 이상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가장 쓸쓸한 순간은 마음이 아픈 것조차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을 때인지도 모른다.
책 속 문장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아주 작은 순간을 붙잡아 그 안에 숨어 있던 마음을 들려준다.
🔖“기억하는 건 기억하려 애써 붙잡아 두는 거고, 잊지 못하는 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새겨지는 거고.”
기억과 잊지 못함의 차이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기억은 의식적으로 붙잡으려는 노력에 가깝지만, 잊지 못하는 것은 애써 외면해도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오는 감정에 가깝다. 오래된 노래 한 곡에 특정한 계절이 떠오르고, 익숙한 거리에서 오래전 함께 걷던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일은 희미해진다고 하지만 모든 기억이 같은 속도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지만, 어떤 순간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래서 책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나간 사람을 떠올리는 동시에 지나간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사랑에 관한 문장 중에서는 다음 구절도 눈길을 끌었다.
🔖“좋아한다는 건 모든 것을 품어 주는 게 아니라 하필 품은 것이 그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좋은 모습만 바라보는 일이 아닐 것이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까지 알게 되고, 나와 다른 부분을 마주하면서도 그 사람이라는 이유로 마음이 향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상처를 주고,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각자의 행복을 위해 멀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한쪽 눈을 크게 뜨기 위해 한쪽 눈을 감아야 하는 것처럼 네가 행복하기 위해 내가 줄어들어야 했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작아져야만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온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관계를 이어 가는 일이 서로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관계가 지속될 수는 없고,
때로는 놓아주는 일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배려가 되기도 한다.
이별은 관계의 끝이지만, 그 관계 안에서 경험했던 감정까지 부정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이 소중했다는 사실과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성숙한 이별이란 아팠던 마음까지 자신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인 《편지할게요》도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
편지를 쓰겠다는 말에는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도, 언젠가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기다림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편지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도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답장을 받지 못해도 괜찮고, 끝내 부치지 못해도 괜찮다. 마음을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 놓인 [추신│답장은 괜찮습니다]라는 부분도 오래 생각하게 한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비로소 꺼내 놓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이미 멀어진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도 있고, 오래전의 나에게 건네는 안부일 수도 있으며,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인사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1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문장과 그 이후 작가가 쌓아 온 시간의 감정이 한 권에 함께 담겼다는 것은, 오래된 책을 다시 펴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문장도 읽는 사람의 나이와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읽었던 문장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나간 관계를 이해하는 문장이 될 수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읽었던 글이 어느 날에는 자신을 위로하는 글로 남을 수도 있다.
책은 그대로인데 읽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편지할게요》는 마음이 복잡한 어느 날 다시 펼쳐 보고 싶은 책에 가깝다.
목차에 담긴 수많은 제목만 보아도 사랑, 이별, 그리움, 외로움, 기다림이라는 감정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삶에 머무는지 느낄 수 있다.
어떤 문장에서는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이 떠오르고,
어떤 문장에서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이별이 생각날 것이다.
또 어떤 문장에서는 누군가가 아닌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몇 개의 문장이 일상 속에서 편지처럼 남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 그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고백,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까지.
인생에는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편지 안에는 미안하다는 말도, 고마웠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문장의 끝에는 살아온 나의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책.
지나간 사랑을 잊으라고 재촉하지 않고, 아픈 마음을 서둘러 정리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그저 그때의 마음도 당신의 일부였다고 건네는 책.
《편지할게요》를 읽고 나면 문득 오래된 편지 한 통을 다시 꺼내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혹은 오랫동안 안부를 묻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잘 지내고 있나요.
그때의 우리는 서툴렀지만 진심이었고, 지나온 시간은 아팠지만 분명 소중했다고.'
답장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전하지 못한 마음도 마음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 보고 싶다.
'편지할게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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