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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일을 하지만
박은정.서지현 지음 / 등(도서출판) / 2026년 7월
평점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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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논리, 법률, 판결, 승소, 그리고 냉철함.
누군가의 권리를 대신 주장하고, 복잡하게 얽힌 사실관계를 풀어내며,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 앞에서 법이라는 기준을 들이대야 하는 사람. 그래서 변호사는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야 하고, 개인적인 마음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우선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익숙한 이미지에서 한 걸음 벗어나게 한다.
책에서 법은 목적이라기보다 사람을 들여다보기 위한 하나의 창에 가깝다.
박은정 변호사와 서지현 변호사는 같은 법을 공부했고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의뢰인을 대하는 방식도,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삶을 해석하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한 사람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선택을 돕고, 또 한 사람은 먼저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 차이가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같은 사실을 보면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 같은 사건도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다. 피해자에게는 억울한 사건이 가해자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방어해야 하는 사건일 수 있고, 부모에게는 자녀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법정에서는 사실과 증거를 따져야 하지만, 그 사건을 법정까지 끌고 온 것은 대부분 사람의 감정과 관계, 그리고 삶의 사정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자꾸만 법률보다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서 마음에 오래 머물렀던 이야기는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였다.
자녀의 학교폭력이나 범죄와 관련해 부모를 찾아오는 사건을 접하면서 저자는 쉽게 부모를 비난하지 못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부모를 ‘자녀를 잘못 키운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 역시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이 대목이 마음에 남은 이유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타인의 삶을 아주 작은 장면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자녀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만으로 그 부모의 삶 전체를 평가할 수 있을까.
회사의 일이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혼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관계의 실패를 한 사람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했다고 해서 사랑했던 시간까지 모두 잘못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타인의 인생을 너무 쉽게 요약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삶은 거의 없다.
특히 변호사라는 직업은 사람들의 인생에서 가장 복잡하고 힘든 순간을 마주하는 일이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법률 지식만이 아닐 것이다. 사건의 이면을 살피고, 한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려는 태도 역시 중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변호사의 업무를 소개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책의 목차에서 유난히 눈길을 끌었던 단어가 있다.
‘경청’.
변호사에게 경청은 의뢰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사건의 핵심을 놓칠 수도 있고, 당사자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법률적인 해결책만 제시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결책보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의뢰인의 마음속에는 이런 바람이 먼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변호사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선택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의 역할이 ‘승소율’이라는 숫자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하다.”
그리고 승소율 자체보다 의뢰인의 사건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시간, 소통하는 횟수, 서면을 충실하게 작성하는 정도에 더 신경 쓰겠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결과를 숫자로 평가하는 데에는 익숙하다.
합격률, 매출, 연봉, 조회 수, 팔로워 수, 승소율….
숫자는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을 평가하기 편리하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오래 고민했는지, 몇 번이나 이야기를 들었는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숫자 하나로 표현하기 어렵다.
좋은 결과란 결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성실하게 사람을 대했는가에도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놓쳐버린 타이밍의 대가’에 등장하는 장씨의 이야기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일. 소송을 선택했지만 받아야 할 금액보다 적은 금액으로 조정하며 사건을 마무리한다.
그녀는 그 돈을 일종의 인생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승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법률 사건에서는 승소와 패소라는 비교적 명확한 결과가 존재하지만,
인생에는 그렇게 깔끔한 판결문이 내려지지 않는다.
어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관계가 처음부터 잘못이었던 것은 아니다.
돈을 잃었다고 해서 그동안의 믿음까지 모두 무의미했던 것도 아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일에는 완벽한 승리도, 완벽한 패배도 없다.
조금 잃고, 조금 배우고, 다시 선택하는 것.
그 과정을 견디며 다음의 나로 넘어가는 것.
그것이 삶에 더 가까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꿈꿨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고 또 다음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른다.”
살다 보면 과거의 내가 상상했던 현재와 지금의 내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릴 때 꿈꾸던 삶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이 다르고, 한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관계나 하루의 작은 순간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꾸 미래의 나를 미리 결정하려 한다.
몇 살에는 무엇을 이루고, 언제까지 무엇을 가져야 하고, 어떤 모습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삶은 그렇게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 역시 사법시험 합격, 취업, 이직, 개업,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자신이 생각했던 삶과 실제 삶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완성된 나’ 역시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조금 편안해진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를 완벽하게 설계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면 된다.
가족, 이별, 계약, 동업, 회사, 부모와 자녀, 돈, 죽음, 민원, 사고….
목차를 하나씩 보고 있으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변호사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깨지는 순간, 뒤늦게 법을 찾는다.
그래서 ‘계약서는 왜 모든 증거를 이길까’, ‘친구였기에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동업은 신뢰로 시작하지만 법으로 끝난다’ 같은 제목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좋은 관계는 계약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관계가 좋을 때 약속을 명확하게 해두는 것이 서로를 보호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AI와의 동행’, ‘AI가 변호사를 대체할까, 아니면 함께 갈까’라는 목차 역시 지금의 시대와 맞닿아 있다.
AI가 법률 문서를 작성하고 판례를 검색하고 정보를 빠르게 정리하는 시대가 되어가면서 전문직의 역할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분명해지는 부분도 있다.
사건을 법률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 사건을 겪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혼은 단순한 가족법 사건이 아니며,
누군가에게 돈을 돌려받는 문제는 단순한 채권 사건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 또한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쌓여온 관계와 기억과 감정이 있다.
AI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역할까지 동일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기술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사람에게만 남겨진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감하고, 듣고, 관계를 맺고, 함께 책임지는 일일 것이다.
두 변호사가 보여주는 ‘같지만 다른’ 삶.
같은 법을 공부하고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두 사람은 똑같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도 같은 세상을 살아도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
같은 말을 듣고도 다르게 받아들이고, 같은 사건을 보고도 다른 감정을 느낀다.
그렇다면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같은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실패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
그 차이가 모여 한 직업의 더 넓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변호사라는 같은 직업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아둔다.
책을 덮고 난 뒤 남은 것은 ‘다정함’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며 🔖“여전히 나는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라고 쓴 대목도 인상 깊었다.
이 문장은 단순하게 친절한 사람이 되자는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삶을 오래 살아갈수록 쉽게 지친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믿음이 깨지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나면서 마음에 방어막을 하나씩 세운다.
특히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꽤 어려운 선택이다.
상처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날카로움을 돌려주지 않는 것.
타인의 잘못을 보면서도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내가 힘들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사정까지 무시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도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건네는 다정함은 위로보다 조금 더 깊다.
세상은 복잡하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으니, 조금 천천히 바라보자는 것.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들어보자는 것.
결과만 바라보기보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는지를 생각해보자는 것.
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긴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법이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도 분명히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사람일 것이다.
경청하고, 이해하려 하고, 때로는 기다리고, 누군가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람.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조금 덜 판단하고, 조금 더 듣고,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법을 다루는 두 변호사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단단함 속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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