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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재담 / 2026년 7월
평점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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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민의 《귀신나방》은 “히틀러가 살아 있다”는 음모론적 설정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그 설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죽음을 넘어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축복인가,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가능해진다면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밀어붙이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특히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아주 교묘하게 흐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1969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소년을 오토 바우만이 총 다섯 발로 살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사형을 앞둔 바우만이 기자 크리스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독자는 사건의 진짜 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한 사람의 충격적인 범죄처럼 보였던 사건이 히틀러의 생존설, 나치의 잔당,
비밀 조직인 아디헌터, 그리고 뇌 이식이라는 과학적 상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무엇보다 마음에 잔류했던 것은 “히틀러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과 완전히 다른 몸으로 옮겨 살아가는 것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다른 문제다.
육체가 바뀌었을 때 그 사람을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을 가진 뇌가 다른 육체로 옮겨간다면 그 육체의 주인은 누구인가?
반대로 뇌의 일부가 교체되거나 손상된다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원래의 나’가 아니게 되는 걸까.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테세우스의 배가 떠올랐다.
부품 하나하나를 계속 교체해 결국에 모든 부품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다면, 그것은 여전히 처음의 배인가 하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다.
《귀신나방》에서는 이 질문이 훨씬 섬뜩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적용된다.
육체를 바꾸어도 기억과 의식이 이어진다면 같은 인간일까.
그렇다면 반대로 육체가 같더라도 기억과 의식이 완전히 달라진다면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는 ‘영생’이라는 단어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사람은 죽지 않는 것을 축복처럼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래 살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무한히 할 수 있으며, 시간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영생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몸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삶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자연스러운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특히 이 부분에서 묘한 공포를 느꼈다.
귀신나방이라는 존재가 소설 속에서 작품 전체의 인간상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처럼 기능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설명되는 귀신나방은 평소에는 흉측하지만 산란기가 되면 아름다운 보랏빛으로 변하고, 산란을 마친 뒤 죽음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 죽은 나무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다. 즉 죽음과 탄생이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순환을 이룬다.
그런데 인간은 이 순환을 거부한다.
늙으면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인데, 누군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다른 몸으로 옮긴다. 더 젊은 몸으로, 또 다른 몸으로. 그러면서 자신의 생명을 계속 연장한다.
그 순간 귀신나방과 인간의 모습은 묘하게 대비된다.
귀신나방은 죽음을 향해 날아가고,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도망친다.
귀신나방은 자신의 죽음 이후 새로운 생명을 남기고,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 다른 인간의 몸을 빼앗는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히틀러라는 인물 자체보다, 죽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욕망이 과학과 결합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라는 상상이 더 무서웠다.
특히 🔖“우리는 아디헌터 (Ady Hunter)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부르지. / 우리는 공식적으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팀이야.”라는 부분은 바우만이라는 인물이 어떤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는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조직, 작전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사람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후 이야기가 훨씬 더 큰 비밀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적군이든 아군이든 무조건 믿어야 할 때가 있어. 지금은 날 믿어야 돼.”라는 문장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평소라면 절대로 믿지 않을 사람을 믿어야 할 순간이 생긴다. 그런데 이 문장은 작품 전체에도 묘하게 적용된다.
독자인 나 역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계속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우만의 말이 진실인지, 그가 쫓는 존재가 정말 존재하는지,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특히 🔖“그리고 중심엔 히틀러가 있다.”라는 문장은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미 역사 속에서 죽은 인물이라고 알고 있는 히틀러를 다시 현재의 사건 한가운데 끌어오는 순간, 과거의 역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섬뜩한 감각이 생긴다.
🔖“늑대를 잡으려고 숲속을 뒤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가장 어린 양을 무리에서 떼어 놓아야 한다.”라는 문장에서는 또 다른 긴장감을 느꼈다.
상대의 심리와 행동 패턴을 이용해 사냥한다는 사고방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추적극이 액션보다 심리전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은 귀신나방에 대한 묘사였다.
🔖“귀신나방이라는 나방이 있습니다.”
이 부분부터 이어지는 귀신나방의 생태에 관한 설명은 작품의 핵심적인 은유처럼 느껴졌다. 특히 산란을 마친 뒤 죽음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의 모습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명과 죽음을 거부하는 인간을 대비시키는 장면처럼 읽혔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까?
죽음이 사라진 삶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을지도 모른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이 소중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선택에는 의미가 생긴다. 모든 것을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면 사랑도, 성취도, 후회도, 용서도 지금과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있을까.
게다가 영생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몸을 필요로 한다면 이야기는 더욱 끔찍해진다.
그것은 더 이상 ‘죽음을 이겨낸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틀러라는 역사적 악인을 소재로 선택한 것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인물이 죽음을 초월해 계속 살아간다는 설정은 훨씬 근본적인 불안을 건드린다.
악이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육체만 바꾸면 악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존재가 완전히 다른 얼굴과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나타난다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장용민 작가의 이야기는 ‘말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현실에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허구적인 비밀 조직과 뇌 이식이라는 설정을 겹쳐놓으니 처음에는 황당하게 들리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굉장히 그럴듯한 세계로 변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작품 속 음모의 한가운데에 들어가게 된다.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게 만드는 반전과 추적극도 재미있었지만,
책을 덮은 뒤 더 남은 여운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는 영원을 잘 상상하지 못한다.
끝이 있기 때문에 시작이 있고,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금이라는 순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귀신나방》 속 영생은 축복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웠다.
죽음을 알고 살아가는 인간과 죽음을 거부하기 위해 끝없이 몸을 바꾸는 인간.
죽음으로 돌아가는 귀신나방과 죽음에서 도망치는 인간.
‘계속 살아 있다는 것’과 ‘계속 같은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삶은 과연 지금과 같은 삶일까.
이 작품이 진짜로 무서운 이유는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 자체가 가장 무서운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
한동안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죽음을 피해 계속 살아가는 인간보다,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죽음을 향해 날아가는 귀신나방이 더 평온하게 느껴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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