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평점 :
#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_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은
✔️ 시간을 과학으로 설명하고,
✔️ 윤리를 철학으로 질문하며,
✔️ 감정을 문학으로 구현한
SF·스릴러·철학 소설의 경계를 무너뜨린 걸작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소설이 불멸을 ‘위대한 능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고통으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해리는 결국 “지켜야 할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그의 모든 생애 중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 됩니다.
결국 이 작품은 말한다.
🌿“세계는 끝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의미를 선택할 수 있다.”
현대 SF 문학의 경계를 확장한 천재적인 이야기꾼!
클레어 노스(Claire North)는
영국의 장르문학 작가 캐서린 웹(Catherine Webb)의 필명 중 하나로,
그녀는 14세에 첫 장편을 출간하며 문단에 데뷔한,
영국 문학계에서도 손꼽히는 ‘초천재형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개인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세 개의 필명을 사용합니다.
✔️Catherine Webb – 청소년 성장물 및 판타지
✔️Kate Griffin – 도심 판타지 & 현대 마법 세계
✔️Claire North – 성인 대상의 철학적 SF·판타지, 실험적 서사
특히 클레어 노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들은
시간, 기억, 정체성, 윤리 같은 깊은 철학적 질문을 다루면서도
강렬한 서사와 몰입감을 동시에 갖추어 세계적 찬사를 받아 왔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은
세계 3대 SF 문학상 중 하나인 존 W. 캠벨 기념상 수상작이며,
아서 C. 클라크상, 영국SF문학상(BSFA) 최종 후보에 오르며
출간 즉시 ‘과학적 사유와 스릴러 서사의 완벽한 결합’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철학적 질문을 중심에 둡니다.
✔️인간이 반복된 시간을 살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기억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기술의 진보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은
결국 “무한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를
집요하게 묻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해리가 열한 번째 삶의 끝에서 듣는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지만 섬뜩합니다.
📌“세계가 끝나고 있고 우리는 종말을 막을 수 없어요.”
📌“유일한 변수는 우리입니다. 세계가 변화한다면 세계를 변화시키는 건 우리들입니다.”
이 두 문장이 이 소설의 축을 거의 다 말해 줍니다.
칼라차크라들은 죽으면 다시 같은 해, 같은 장소로 돌아가지만 역사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는 “상수”로 존재합니다. 전쟁, 혁명, 냉전, 핵, 비극의 이름들은 생애를 거듭해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그래서 “세계의 종말이 빨라지고 있다”는 말은,
처음으로 그 상수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 무책임하게 구경만 해도 되었던 존재들에게,
“이번에는 너희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떨어진 셈이죠.
해리에게 이 메시지는 상징적입니다.
그동안의 삶이 주로 허무와 실험, 회피였다면,
이때부터 비로소 책임과 선택의 무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해리는 수십 번 인생을 반복하면서 종교, 과학, 철학, 사랑, 전쟁을 두루 겪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이런 질문으로 돌아오죠.
📌“낙관적인 기분일 때는 내가 살았던 모든 생애에, 내가 한 모든 선택에 결과가 따른다고 믿는다…
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보통 “다시 태어난다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우리는 가볍게 품곤 하는데, 이 소설은 그 환상을 무덤덤하게 부숴버립니다.
두 번째 생에선 정신병원에서 스스로 투신하고,
몇 번째 생에선 전쟁터에서 소모품처럼 소모되고,
또 다른 생에선 학문으로, 신앙으로, 연애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그가 얻는 건 “결국 세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깨달음과,
⁉️“그렇다면 나의 수많은 선택과 고통은 도대체 무엇이었나”라는 자조에
가까운 질문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해리가 자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떠올리며 더 크게 우울해진다는 부분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우리도 종종 그렇게 후회하는데,
그걸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겪는 존재라면 그 피로감과 허무는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듭니다.
소설의 긴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건 역시 빈센트입니다.
해리의 제자이자 친구,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숙적이 되는 인물.
그는 미래의 지식을 과거로 끌어와 기술 발전을 비정상적으로 가속하고,
마침내 ‘퀀텀 미러’, 즉 과거‧현재‧미래의 비밀을 하나의 이론으로 꿰뚫어 보는 도구를 만들려 합니다. 그 명분도 그럴싸합니다.
📌“세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상황을 바꿀 수 있어요, 더 낫게 만들 수 있단 말입니다.”
전쟁, 홀로코스트, 인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한 의도를 가진 소수가 역사를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는
지금 우리의 현실(기술 엘리트, 빅테크, AI, 빅데이터)을 떠올리면 섬뜩할 정도로 익숙합니다.
하지만 클레어 노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께서는 미래를 관장할 자격이 있다고 자신하십니까?”
빈센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렇다, 나는 선하고, 누군가는 해야 하고, 그게 나다.”
그에 비해 해리의 입장은 훨씬 더 불편하고 느리며 모호합니다.
📌“우리 행위는… 의미가 있어. 우리는 큰 것뿐 아니라 작은 것도 고려할 책임이 있단 말이야. …
우리는 신이 아니야, 빈센트. 우리의 지식이 신 노릇을 할 권위를 부여하지도 않고. 그건 우리의 존재 의미가 아니야.”
둘의 대립은 단순히 “변화를 원하는 자 vs 지키려는 자”가 아니라,
“나는 신이 될 수 있다”는 자와, “우리는 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자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과학기술의 진보’와 ‘윤리’가 부딪히는 모든 시대에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선한 의도라면, 어디까지 해도 되는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조정해도 되는가
✔️미래를 알 수 있게 된 존재가, 과연 그 미래를 설계할 자격까지 얻는 것은 아닌데도 그렇게 착각하지는 않는가
이 책이 정말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큰 스케일의 철학과 과학 이야기를 하면서도 “작은 선함”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인물이 해리에게 이렇게 말하죠.
📌“점잖은 사람들이 점잖은 인생을 살아가는 게 마치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말씀하시잖아요. 하지만 이 ‘점잖다’는 것, 그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노화를 치료하거나 기근을 없애거나 핵전쟁을 끝낸다 해도, 여기(이마)하고 여기(가슴)를 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기계를 만드는 천재가 되기 전에,
먼저 “노인이 길을 건널 때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
이게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의 핵심처럼 느껴졌습니다.
퀀텀 미러라는 기술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을 하나의 변수, 하나의 수식, 하나의 실험 재료로만 보는 순간,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 파괴가 되죠.
병사 피델의 대사는,
시간을 무한히 반복해서 사는 해리와 기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우리는 그저 빌어먹을 군인들일 뿐이죠… 한 발의 총탄, 한 방울의 피, 아무것도 아무 의미도 없어.”
해리는 무한히 다시 태어나지만,
피델은 한 번뿐인 인생에서도 자기 행위를 “의미 없다”고 말합니다.
이 대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해리에게 공포는 죽음이 아니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고,
피델에게 공포는 “살아 있음 자체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감각”입니다.
그 둘이 사실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 같았습니다.
살아 있는 시간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떤 책임과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결국 핵심이라는 느낌.
소설은, 엄청난 스케일의 시간과 수많은 생애를 보여주다가도
불쑥 아주 사적인 문장으로 내려앉습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노년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법을 모른다.”
세계의 종말, 기술, 윤리, 신의 자리… 이런 거대한 담론을 다 지나온 뒤에,
해리가 결국 고백하는 건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법조차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문장이 이 소설의 정직함을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때로 “세계의 문제”를 논하면서,
정작 내 곁의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서툽니다.
해리는 열다섯 번의 삶을 살았지만,
그 부분만큼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행위는… 의미가 있어.”
세계가 리셋되고, 역사가 반복되고, 심지어 종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해도,
“이 생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사라지지 않는 책임이라는 것.
그래서 이 소설은, 전형적인 ‘세계 구하기’ 영웅담이라기보다
“의미를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에, 그래도 작은 의미를 붙들고 살아가려는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클레어 노스는 SF의 장치를 빌려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기술은 너무 빠르게 달려가고,
우리 각자는 전체에서 보면 “한 발의 총탄, 한 방울의 피”처럼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당신의 선택은 의미가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느냐고요.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은
“다시 태어나면 더 잘 살 거야”라는 가벼운 환상 대신,
“지금 이 한 번뿐인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훨씬 무거운 질문을 남기는 소설이었습니다.
_
#해리오거스트의열다섯번째삶
#클레어노스
#반타 #오팬하우스
#sf소설 #영미소설 #소설 #소설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소개 #도서소개
#독서 #독서습관 #도서추천 #추천도서 #책추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도서서평 #서평 #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