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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평점 :
창비교육 테마시리즈에서 세번째로 만나게 된 책 [연결하는 소설]의 주제 키워드는 "미디어"입니다.
미디어? 라는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TV, 라디오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새로운 소식들을 알려주는 제 1 매개체였기 때문입니다.
한편, 마지막으로 TV를 앉아서 본게 언제지? 라는 생각을 해보니.. 최소 2~3일전입니다. 요새는 핸드폰으로 언제든 드라마, 뉴스, 예능을 다 보고 있으니까요..
창비에서는 미디어를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 또는 객관적 정보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수단"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라는 점을 볼때 지금의 각종 미디어 수단들이 생각났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는 'SNS'가 가장 대표적인 미디어 수단이겠지요..
책은 이 미디어를 통해 연결되는 인간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 8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비교육소설 시리즈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정말 이렇게 큐레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을 잘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키워드는 미디어 혹은 말..
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단편 소설들.. 여기에는 SF소설도 있고, 잔잔한 사회문제제기 소설도 있기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느낌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게 이러한 모음집, 큐레이션 북의 장점이 아닐까요?)
는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미지의 존재 '나'가 화자입니다. 오래된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너무 길어, 다 부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평생이 필요합니다. 나는... 과연 누구일까요?
"소수 언어 박물관"에 모인 천 여명의 화자.. 자발적인 것도 아니고, 강제적으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 마치 '동물원'에 갇힌 아프리카 동물들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과연 이들을 통해 '국가'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니 처음부터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요? 아님 그저 분리하고자 한 것일까요?
(33) 그에게 모어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을 안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이야기의 소재는 '말'일수 있으나 이야기의 내면에서는 '인종 차별' '분리' '정상과 비정상' 등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
의 화자는 '귀신 공선'입니다 .그녀가 캠퍼스를 맴도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책을 읽고 싶어서"입니다. 살아 있을 때 공선은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죽고 나니 너무 따분해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독서 메이트를 찾는 것입니다.
(48) 공선은 독서 메이트를 까다롭게 찾아다녔다. 그녀는 본인의 취향에 맞는 글을 대신 선택해 꾸준히 읽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항상 재밌는 책을 잘 골라 읽는 눈 밝은 독자라 하여도 듬성듬성 읽거나, 읽다 마는 사람은 적격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빈 부분 없이 다 읽는 사람을 원했다.
저는 사실 귀신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정말 이런 귀신이 있으면 어떻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개인적인 공간'까지는 따라오지 않고, 공공 도서관에서 읽는 사람을 주로 독서 메이트로 삼는다고 합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효주는 이런 공선의 두번째 독서 메이트입니다. 오늘 태오와 지민은 효주가 쓴 단편소설을 읽고 합평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모입니다. 이들이 합평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공선..
그리고 드디어 떠오른 인공호수의 시체..
과연 이 시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미 시작부터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주변에서 한가로인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시체의 부패과정이 대조되면서 어딘가 으스스한 느낌을 가져옵니다. 합평 모임에 안 온 효주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는 한 아동 후원단체에서 벌어지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언젠가 신문속에서 읽었던 것 같은 기시감을 던져줍니다. '가난'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의 행동을 강요하는 사회... 그들에게는 '가난'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암묵적 굴레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한 이에게 가해지는 가차없는 비난들..
언젠가 "아동복지카드"로 돈까스(?)를 먹는 것에 대해서 비난한 사람들을 다시금 비난한 기사가 생각납니다. 소설 속 화제는 '나이키 빨간 운동화'입니다. 일반인도 쉽게 못하는 그 운동화를 사달라고 했다는 것에서 촉발된 논쟁들..
이 논쟁들을 바라보며 '미디어'에서 '가난뱅이'의 삶을 그대로 노출하고, 연출해온 '윤미'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짐을 느낍니다.
(72) 그중 가장 중요한 율법은 절대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게 없음을,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공공연하게 떠벌리는 일이었다. 결핍은 벗기고 벗겨도 계속해서 껍질이 나타나는 양파와 같았다. 한 겹 벗기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또다시 얇은 껍질이 나타났다. 두 눈이 새빨갛게 되도록 나의 결핍을 벗기고 나면, 그 자리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양파의 씨앗, 열매 따위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윤미에게 말했다. "어떤 욕망도 드러내선 안돼." 어린 윤미에게 그 말은 신앙이 되었다. 윤미는 어떤 것도 사 달라고, 필요하다고 떼쓰지 않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어른들은 그런 윤미가 없는 집 아이 같지 않다며 칭찬했다.
(78) '없는 사람'임을 윤미의 입을 통해 드러내선 안 되었지만, 미디어라는 방식을 통해 드러내면 결과가 확연히 달라졌다. 윤미를 단속하던 엄마도 이런 일에는 손을 놓았다. 그것은 윤미를 힘들게 하는 일이었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엄마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걸 윤미는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미디어가 어느정도 짜여진 '각본'에 의해서 방송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가난'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이러한 '각본'으로 인해 점점 '가난한 자'들의 이미지는 확고해지는 것은 아닌지..
(81) 윤미는 제가 쥐고 태어난 숟가락이 무슨 색인지 잘 알았다. 숟가락 색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제껏 갖은 애를 쓰면서 살아왔다.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만들면서 숟가락의 색을 그때그때 바꾸려 했다. 그러니 현실을 직시하고 제가 할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했다. 어떤 선택을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다르게 펼쳐질 것 같았다.
과연 윤미는 "빨간 운동화"덕분에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될까요? 아님 이대로 순응하고 살아가게 될까요? (★★★★★)
속 장바구니는 대단합니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103종의 책이 담겨 있습니다... 그 정도 담으면 내가 무슨 책을 담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05) 담고 또 담아도 장바구니는 무거워지지 않았다. 무거워지지 않아서 담고 또 담았다. 담고 또 담아도 되었다. 담고 또 담으면, 온라인 스토어는 내 취향을 파악해 내게 맞는 상품을 추천해주었다.
나는 함께 공장에서 일한 친구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에 반해 어딘가 잉여로운 자신의 삶을 싫어하는 것일까요? 문호라는 친구가 보여주는 삶은 어찌보면 내가 살고 싶은 그런 삶이었던 것일까요? 장바구니 자체가 어떤 이의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입니다. (★★★)
는 그냥 읽으면 '보람 튜브'가 생각이 납니다. 유튜브계의 강자였다가 아동노동 착취 및 작위적인 내용이라고 엄청 몰매를 맞았던 유튜브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본적은 한번도 없다는...) 내용은 그 내용인데.. 막상 여기서 진짜 잘못은 누구에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아'를 위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터뜨린 '막내 작가'라는 언니.. 그런데 막상 그 언니가 과연 '지아'를 얼마나 이해하고, 그 아이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말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하고 함부로 구원해주느니, 도와준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저는 어찌되었든 그 '막내 작가'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
의 소재는 '당근마켓'입니다. 저는 아직 낯선 누군가와 거래를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 서비스입니다. 그런데 이 '중고 거래'를 통해 단순히 물건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이해해간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러한 이해와 소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작품에서는 '원목 식탁'이 매개체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데요.. 이러한 소통은 작품이니까 가능한 것일까요? 아님 실제 중고거래에서 이러한 소통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는 "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의 처음 등장한 김애란 작가의 [침묵의 미래]전에 아마 김보영 작가의 [고요한 시대]가 오나봅니다. 이 작품에서는 '인지 언어학자' 신영희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선거'활동을 위해 여러 단어들, 문장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작업을 합니다.(마치 괴벨스 같다는..) 그런데 미래 사회에서는 '마인드 넷'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굳이 거짓말을 지어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의심스런 상황, 의혹이 제기되더라고 자신의 마음을 그냥 '마인드 넷'에 보여줌으로써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고, '말'없이 정직한 후보가 결국 대통령까지 당선된다는 이야기입니다.
(183) 언어는 생각을 담고 마음을 지배한다. 나아가서 세상을 지배한다. 신영희가 일생 닦아 온 학문이다. 그 생각 자체가 이처럼 초라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마인드 넷'이라는 것에 접속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No... 하루에도 수백번, 수천번 바뀌는 나의 생각들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소통해야 할 생각과 소통하지 말아야 할 생각.. 나만 간직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걸 구분없이 모두가 이야기한다면.. 이는 혼란만 가중되지 않을까요? (★★★)
는 가난한 달동네에서 태어나 전문사서가 된 '윤현'의 이야기입니다. 퍼시픽이라는 도서 관련 서비스업체에서 일하는 윤현이 "황재윤"이라는 고객은 월 120권의 책을 빌리는데.. 이 빌리는 일이 200년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계정을 돌려 쓰는 것인지,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황재윤'의 집에 찾아간 윤현이 보게 되는 것은..
(235) 더 많이 알고 싶고 읽고 싶고 느끼고 싶은 그 마음과, 책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대해서, 이제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그 집념이라는 것에 대해서, 오직 그 집념을 이루기 위하여 숨만 붙은 채 2백년을 살아온 한 몸뚱이에 대해서.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황재윤'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가 저의 소감입니다.(★★★)
특별히 청소년 소설로 쓴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 '편집자들'의 레이더망에 딱 걸려서 실리게 된 8편의 소설들..
왜 이 소설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메인 주제인 '미디어'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이미 여러편의 테마 소설시리즈가 나와 있어서 기회가 된다면 이것을 주제별로 한번씩 읽어봐도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