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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일기 - 시간 죽이기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2
송승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평점 :
진짜 이렇게 게임들이 많다고..
그리고 정말 이걸 다 해본 사람이 있다고..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습니다. 제가 하는 게임이라고는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하는 "농장게임"이나 "퍼즐 맞추기"가 전부인데.. 이렇게 다양하고 방대한 게임의 세계라니...
우선 그 게임의 세계에서 압도당했습니다. 특히, 8시간 투손과 라스베이거스를 잇는 일직선의 사막도로를 주행해야 하는 게임 [사막버스]라는 게임은.. 왜 이런 게임이 있는 것이며,, 그걸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인지..이는 시간 죽이기의 끝판왕이 아닌가 싶습니다.
(30) 앉은자리에서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것, 죽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 그 모두가 좋은 일이고 시간을 죽여볼 수 있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그것들은 일종의 신적 권능이다. 그러한 권능을 통해 무수한 삶을 살아본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에서는 전생과도 같은 게 아닐까. 그 때문에라도 저 '과도한 리얼'을 향한 여정은 계속될 것 같다.
과도한 리얼을 구사하는 것.. 아마도 게임 덕후들은 그 끝판왕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묘사에 있어서의 리얼,.. 그리고 현실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스토리의 구성까지.. 이렇게 다양한 게임의 세계가 있는 줄 몰랐던 저로서는 모든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이미 게임덕후들 사이에서는 그들만의 세계관이 구축되어 있다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최근 판타지 소설을 보면서 조금씩 세계관을 이해해가고 있었는데.. 게임에서도 그러한 세계들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37) 우리가 어떠한 시뮬레이터를 즐기면서 현실을 체험하듯이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스토리가 없거나, 주연에게 부여하는 개성이 적어 주연 캐릭터가 곧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또 흥미롭게 본 것이 낚시게임입니다. 현실에서도 낚시는 시간 죽이는 레저 활동의 하나인데.. 이를 게임으로 하는 것입니다.
(54) 낚시는 바로 시간과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시간이라니, 그야말로 무자비한 상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흔히들 낚시를 두고 "시간을 낚는 일"이라고 한다. 이 말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낚시는 우리 인생에서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강바닥에 버리고 오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낚시 게임의 최대 장점이 발현된다. 무거운 짐을 챙긴 뒤 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고생 없이, 방 안에 편히 앉아 - 혹은 누워 = 강바닥에 시간을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낚시 게임을 통해 이동에 낭비되는 시간 없이 훨씬 효율적으로 시간을 버릴 수 있다.
저자의 두번째 시간 죽이기는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저는 만화 자체는 좋아하는데 '애니메이션'은 잘 보지 않았습니다. 영상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성향때문이기도 한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거 한번 봐야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자가 소개한 여러 애니메이션 중 '기동전사 건담'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왜냐하면 건담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캐릭터인데. .실제 본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처럼 그 내용을 줄줄이 깨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상태까지 이해할 정도가 될려면 얼마나 봐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118) 전쟁 속에서 선과 악은 분명하게 나뉠 수 없었고, 어린 주인공들은 악을 뿌리 뽑는 정의의 사도이기보다는 원치 않는 전투에 떠밀리는 전쟁의 피해자였다. 로봇들은천하무적이 아니었고, 인가과 똑같이 쉽게 부서지고 터져 나갔다.
(122)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전쟁을 다룬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 전쟁이 그려내는 반전의 메시지는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모순이 생긴다는 점이다. 건담 시리지는 전쟁의 끔찍함을 주제로 내세우지만, 이 참혹한 전쟁은 작품을 통해 멋지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진지하고 참혹하게 그릴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몸이 찢어지지 않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전쟁이란 그저 아름다운 불꽃놀이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좋은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망원경을 들고 전쟁을 구경하러 나왔던 사람들의 일화처럼 말이다.
저에게 송승언님의 덕후 일기는 생소한 삶의 한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게임 덕후나 애니메이션 덕후에 대해서 어떠한 반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아예 모르고 살았던 영역인데.. 이번 일기를 통해 그 세계의 방대함을 느꼈으며, 어떠한 일이든 정말 덕후가 된다는 것은 쉬이 될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가져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