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없음 - 격동의 세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프레임
헬렌 톰슨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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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윌북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너무도 유명한 가왕 나훈아의 『테스형!』 속 가사다. 벌써 5년 전에 발매된 곡인데 여전히 이 한 문장을 시도 때도 없이 던지고 싶다. 진짜 세상은 왜 이러는지. 어릴 때에는 내가 크면 모든 것이 마법같이 깔끔하게 해소되어 있으리라고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온누리에 평화는커녕 여전히 국제적 갈등과 전쟁은 일어나고, 모두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극우 포퓰리즘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


근현대 격동의 시기의 한 시점에 태어나 도대체 뭐 때문에 세상이 이런지 알지도 못한 채 대충 살면서도, 이렇게 계속 모르는 상태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은 가끔 하기는 한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니 그저 또 허공에 외칠 뿐.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라고 물으신다면 테스 형 말고 헬렌 교수님이 알려드립니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계정세를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까? 답은 '노'다. 하지만 에너지, 글로벌 통화 정책, 민주주의 정치 이 세 가지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치경제학과 교수이자 《뉴 스테이츠먼》 선정 '영향력 있는 정치 인사 50인'에 꼽힌 헬렌 톰슨 교수의 역작이 윌북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왜 21세기는 더 깊은 혼돈으로 빠져드는가?"라는 질문으로 오래 천착해온 연구의 집약체인 『질서 없음』이 바로 그 책이다.


영국은 왜 유럽 연합을 탈퇴했을까?

중동은 왜 분쟁이 끊이질 않는 걸까?

미국의 권력은 왜 이렇게 커지게 된 걸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한마디로 하면… 【요약 불가】.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헬렌 톰슨의 『질서 없음』이 바로 그 요약본이라고. 82억 명이나 사는 지구인만큼 그나마 압축해서 430쪽이다. 그 요약본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고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어렵다, 이 세계가 복잡하게 얽힌 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어렵다는 점이 책에 있어 꼭 단점이라고 볼 순 없지 않은가. 글이 난해한 것이 아닌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탓에 어려운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저자 헬렌 톰슨이 이 세계의 파편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패턴으로 풀어내는 혜안에는 결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 분야에 대해 베이스가 하나도 없었던 나조차도 세계정세부터 근현대사, 금융 등 다방면으로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책이 많이 어렵다면 ChatGPT에 조금씩 물어보면서 읽어 나가는 것도 추천한다.)


읽고 나면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세계정세 뉴스를 보며 한 번이라도 답답해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만큼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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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 - 미국인의 회고록
키에스 레이먼 지음, 장주연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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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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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 작가는 다음 사건 이전까지는 스스로를 그저 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의 한순간 불현듯 다른 누군가로부터 경멸이나 두려움이 담긴 시선을 받게 된다. 이 순간 나는 스스로를 더는 '정상적'이지 않으며 무엇인가 다른 존재, 즉 흑인으로 보게 된다. 이 순간부터 미국 흑인 자서전 작가는 이중적 시각과 싸워 나간다. 백인 자서전 작가처럼, 흑인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책 속에서 창조해 내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타인들의 적대적인 시선을 통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흑인성은 그들의 정체성인 동시에 비극적인 운명이며 "삶을 처방하고 운명 짓는 조건"이다.


─ 『독서의 즐거움』, 수잔 와이즈 바우어


최근 한류의 인기가 부상함에 따라 많은 인종과 외국인을 쉽게 마주칠 수 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 내 주위에, 내가 아는 외국인은 사실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지자체에서 다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한국인은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보다 깊게 교류하며 지내겠지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는 방법 중에는 그들만의 삶, 그들만이 겪는 고통을 미리 공부해 보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어느 한 존재로 편히 있을 수 없는 공포


미국 남부 출신 흑인 작가, 키에스 레이먼은 어머니를 청자로 하는 회고록의 형식으로 자신의 삶 그리고 미국인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을까요? 키에스 레이먼의 『헤비』는 흥미로움보다는 의무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표지와 띠지, 약간의 정보로 가볍고 낭만적인 회고록은 아님을 짐작했지만, 책 속에는 한 미국인 흑인 남성의 삶보다 더 거대하고 묵직한 현실이 담겨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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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걸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 고통이 아프다고 말하면 싫어하는

폭력적인 인간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이혼 가정, 그리고 어머니에 의한 폭력, 조숙할 수밖에 없고 건강할 수 없는 환경, 인종 간의 보이지 않는 계급, 저자는 담담한 문체로 겪은 일들을 그려냅니다. 정확하고 솔직하게 쓰는 동안 과거의 트라우마를 수없이 마주했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몸과 폭력에 대한 기록이지요. 미성년 아이가 겪기에는 열악한 환경에 읽는 내내 당황스러웠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어머니의 모습에 역시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많은 독자들도 똑같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양육 방식이 너무하다고 꼬집고 싶을 테지요.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미국 사회에 감도는 더 거대한 인종차별의 분위기를 서서히 알아채는 순간 그의 가정 내에서 벌어졌던 폭력, 그리고 어머니가 왜 그토록 완벽한 글쓰기를 하도록 집착했는지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의 어머니를 향한 이 혼란스러운 감정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거짓말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자신이 겪은 차별과 폭력의 흔적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좋겠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싶어 하지 고통스러워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한치의 거짓 없이 솔직하게 써야 했던 건, 타의에 의한 불행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겪지 않도록 함이었겠지요.


​─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님은 『교양 고전 독서』의 서문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몇 가지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 답들 중 하나로 '세계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지닌 사람'을 꼽죠. 그러면서 매해 낯선 문화를 다룬 책을 꼭 한 권씩 소개하고 계시는데, 키에스 레이먼의 『헤비』는 비록 그 리스트에는 없지만 이 역시 낯선 문화와 세계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결코 겪을 수 없는, 누구도 바꿀 수 없는 피부색 또는 성별 때문에 받는 필연적인 고통을 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책은 그저 어느 한 흑인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선을 그어버리기에는 모든 인간이 인종을 막론하고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을 이야기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계에서는 잘 살기 위해 많은 부가 제일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누군가를 존중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이러한 고민의 한 가운데에 서계시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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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니체 필사책
아르투어 쇼펜하우어.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강용수 편역 / 유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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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유노북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철학도 필사도 붐이 왔잖아요


가수 신해철을 좋아하면서 처음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철학은 다소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었고, 당시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나도 철학에 흥미나 관심을 두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 까닭에 평생 철학의 치읓도 접하지 못하고 그저 잊어버리리라 생각했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출판업계에 철학 붐이 왔다. 유행 덕분에 철학이야말로 내가 환장하는 분야라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깨닫게 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무수히 많은 철학자들의 말에 공감하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철학 책이라면 교양서적이든, 철학 에세이든, 원전이든 가리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이 흐름에 더해 필사도 또 하나의 붐이 되었다. 필사야 쓸 만한 문장, 쓰고 싶은 문장을 따라 쓰는 행위다 보니 꼭 특정 분야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지만, 내가 '철학'을 좋아하니 '철학'과 '필사'는 두 배로 좋지 아니한가. 철학도 필사도 붐이 온 지금 이 책이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두 철학자의 글을 한 권으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베스트셀러로 이미 쇼펜하우어와 철학 열풍을 주도한 강용수 교수님이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인생론을 손으로 따라 쓰며 사유할 수 있는 필사 책, 『쇼펜하우어 X 니체 필사책』을 편역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소품과 부록》 그리고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따로 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독자를 위해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함께 다루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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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와 니체 두 사람의 사유를 함께 읽고 쓰는 것은 의미가 크다.

니체는 젊은 시절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읽고 철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쇼펜하우어가 니체에게 큰 영향을 줬고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서 철학을 이어받았지만

이후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넘어서고자 했다.

사상의 측면에서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의지'에서 찾았고,

예술을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봤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행복을 찾으려 했고,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넘어 고통을 껴안으며 삶 전체를 긍정하는 길을 열었다.

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긍정을 위해 삶의 어두운 면을 응시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찬란한 긍정을 외쳤다.

이처럼 닮음과 차이를 동시에 보여 주는 두 철학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삶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시작하며, 내 삶의 나침반 쇼펜하우어와 니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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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움직여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은 내 삶의 나침반이 된다.

흔들릴 때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글인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시작하며, 내 삶의 나침반 쇼펜하우어와 니체」 中


책을 받고 필사하기에 앞서 글을 읽고 필사하고 싶은 문장에 플래그를 붙였다. 저자가 연구 과정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판단해 엄선한 문장들에 자꾸만 플래그를 붙이게 된다. 최근 성취를 이루지 못해 심히 낙심했었는데, 쇼펜하우어의 철학, 「소망과 성취는 가까우면 공허하고 멀면 고통스럽다」라는 글에서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저마다 삶의 기로에서 흔들릴 때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다르겠지만, 거의 모든 상황에서 필요한 문장을 이 책 한 권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은 편역자 강용수 교수님의 짧은 에세이도 함께 담겨있다. 요즘 또 철학 에세이가 유행인데, 필사 책에서 감질나게 즐기는 게 아닌 아예 따로 한 권의 책으로 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좋은 글들이었다.

아직 마흔이 못돼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읽지 못했다. 이번 필사 책으로 강용수 교수님을 처음 접했는데, 또 한 분의 좋은 철학 작가를 알게 돼서 영광이다. 철학 에세이까지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 X 니체 필사책』은 단순히 따라 쓰는 것을 넘어 철학 그 자체에 대한 공부도 되는 책, 아직 '철학 필사'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 책으로 그 처음을 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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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챌린지 100 - 나를 바꿔줄 100번의 기회
이재진(해피러너 올레) 지음 / 푸른숲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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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푸른숲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사자성어다. 우리를 작심삼일하게 만드는 것으로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활동이 '운동'이 아닐까. 기질이 워낙 집순이에 최적화된 탓에 운동 작심을 삼일 단위로 갱신하는 내가 바로 이 사자성어의 든든한 예시가 되겠다. 운동에 대한 재미보다 가속 노화하는 내 몸에 의한 의무감에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날마다의 운동을 어떻게 기록해야 좋을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기에 쉽게 흥미를 붙이지 못했던 걸까.


운동 앞에서 억새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라닉 페이스』의 저자, <마라닉 TV>의 운영자 이재진 작가가 운동 작심삼일러의 마음을 단단히 잡아줄 신간을 들고 달려왔다. 100번 달리고 기록하는 책, 『러닝 챌린지 100』으로. 필사 책처럼 노출 제본으로 제작되어 기록을 더 편하게 한 디테일부터 눈에 들어오니 바로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책을 펼치면 왼쪽 면에는 러닝에 대해 전문가나 다름없는 이재진 작가의 '러닝 허니버터 팁'이 있고, 오른쪽에는 독자가 스스로 러닝을 실천하고 기록할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


독자에게 던지는 러닝에 대한 질문들, 간단한 워밍업 루틴과 같은 러닝 팁들, 마음이 꺾일 때 즈음에 시도한 만큼 당신은 도전하는 것이라는 등의 글은 독자가 조금씩 새로운 기록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러한 글을 바탕으로 써 내려가는 기록으로 러닝에 대해 보다 깊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저 '오늘은 열심히 달렸고, 참 힘들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난번보다 더 나아졌음을 확인하고 지난 러닝에서 느꼈던 바람의 느낌이나 하늘과 풍경의 빛깔, 흙길의 냄새 등을 다시 회상하게 만든다.


『러닝 챌린지 100』을 받고 헬스장을 벗어나 밖에서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기록을 위해 '나이키 런 클럽' 애플리케이션까지 다운로드하고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하며 러닝이 재미있어졌다. 러닝을 루틴으로 삼아야겠다 다짐하며 워치를 알아보고, 러닝 장비를 검색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러닝을 잘 모르는 내가 잘 수행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처음에는 컸기에 그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혼자라면 몰랐을 러닝에 대한 팁들을 혼자라도 익힐 수 있다는 점이었다.


러닝이 하고 싶은 내향인들, 주목


운동이 쉽지 않은 엉덩이 무거운 독자에게도 당연히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은 내향인에게 최적화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집단적 달리기인 '러닝 크루'가 대세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타인과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러닝이 하고 싶은 내향인들은 이 책에 주목. 크루에 가입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차게 달릴 수 있는 책 한 권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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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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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리드비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 이야기합니다


이름 | 다쓰야 쇼세이

국적 | 일본인

성별 | 남성

생년월일 | 1989년 10월 1일

키 | 174cm

직업 | 모 가전 회사 총무부 총무과


특기사항 | 동성애자


이 책은 쇼세이의 생식기가 이야기합니다.


『정욕』이란 소설로 '바른 욕망'과 '다양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아사이 료가 이번에도 난감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또다시 '문제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 소설 『생식기』는 '문제 있는 이 사회'의 기존 가치관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우리 절대다수가 될 수 있으면 외면해 온 진실들에 대해서.


1인칭 기생적 시점


이 책의 화자는 여러 생물의 생식기[生殖器]로 지내온 어떤 생명체다. 특별한 애정은 없이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개체를 통해 이 세계를 서술한다. '……아, 그리고 이건 쇼세이의 몸 안에서 느닷없이 떠들어 대는, 누구도 듣지 않을 '저'의 이야기입니다.'라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들어 마땅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도 잘 보일 생각이 없으니, 쓴소리마저 거침없는 그런 것처럼.


이 정확하게 뭐라 할 수 없는 생명체는 쇼세이라는 이름의 일본인 독신 남성이자 성 소수자의 몸에 산다. 이전에도 인간의 생식기로 산 적은 있지만 남성 개체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소수자의 삶이 늘 그러하듯, 쇼세이 역시 기구한 삶을 살아온, 그런 탓에 이제는 다수자의 삶에 거슬리려 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딱히 돕지도 않는 그런 적당한 의태를 취하는 하나의 개체이다. 이 개체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화자의 서술은 위트 있고, 가벼운 농담 같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다양한 개체의 생식기로 살아온 혜안으로 독자에게 이 사회에 대해 묵직한 펀치를 날린다.


균형과 유지, 확대와 발전과 성장에 걸리적 거리는 소수자의 삶을 0부터 지켜봐오며 【다양성】을 죽이는 인류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쇼세이 그 자신도 일을 제대로 못하는 인간 개체, 그러니까 발달장애, ADHD, 경계선 지능인에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음을 지적하기도 하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지구나 다른 종은 죽어도 상관없어하는 듯한 태도와,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양 이미 제품은 넘쳐나는데 【지금보다 더 좋아지고 싶어】를 멈추지 못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책은 소수자로부터 출발해 인류가 오랜 시간 지켜온 묵은 관습과 자본주의 사상을 뒤집는 더 거대한 담론까지 훑어버린다.


프란츠 카프카가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아사이 료의 책은 꽤 성능 좋은 도끼라는 생각이 든다. 『정욕』을 읽었을 때에도 기분 좋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생식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나 역시 소수자이기는 하나 왼손잡이이므로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많다고 늘 생각한다. 그런 나조차도 좋았으니, 손에 쥐고 있는 【선택지】가 적으면 적을 수록 이 책, 아니 아사이 료의 작품들은 통쾌한 느낌을 선사해 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만약 다수자의 삶에 속해있다면? 『생식기』는 다수자인 당신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각오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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