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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회의론자 - 신경과학과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희망의 과학
자밀 자키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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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푸른숲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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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인간은 다 죽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며 무한으로 확산되는 텍스트와,
온갖 쓰레기와 공장으로 지구가 끝장날 거라는 뉴스들,
또 내게 벌어진 개인적인 일들은
나를 포함한 모든 타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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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공감은 지능이다』로 처음 국내에 소개된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자밀 자키의 최신작, 『희망찬 회의론자』가 출간되었다. 그는 에밀 브루노라는 동료 교수가 있었기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에밀은 희망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자밀은 처음에 그가 세상 물정 모르고 낙관적인 사람인 줄 알았지만, 에밀에게도 어두운 유년 시절이 있었고,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아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에밀의 모습을 바라본 저자는 스스로의 냉소주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냉소주의는 영리할까? 냉소주의는 안전할까? 냉소주의는 도덕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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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하는 것은 뭔가를 긍정적으로 보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당장 그 사람의 삶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언젠가 실현될 수도 있다.
─ 리처드 라자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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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주의가 해롭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에밀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의 희망적 태도가 주는 교훈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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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는 추정에 대한 신뢰의 결핍이고,
'냉소주의'는 사람에 대한 신뢰의 결핍이다.
나는 회의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꽤나 냉소주의자였다. 일부러 냉소주의자가 되고자 했던 건 아니다. 다른 책의 문장을 일부 빌려서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는 계기는 순전히 운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건 매스미디어의 영향도 있었지만, 하루는 처음 보는 사람이 친하게 지내자고 했을 때 그 말을 순전히 믿었는데 사이비 종교가 목적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내게 있었던 일들을 전부를 털어놓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내 안에는 무수한 사회적 상어가 여러 가지 이유로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냉소주의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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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료는 우리 개인 생활에서 오판을 줄여주고 희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이끌어준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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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오늘날 어떻게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좋은 답을 주는 책이었다. 우리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기사의 이면에는 그렇게까지 유해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카사스와 FARC에 대한 일화는 작은 오해와 이어지는 불신이 어떻게 평화를 깨고 더욱 많은 비용을 소모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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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10호의 기고문, 홍성욱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밈의 힘」이라는 글에 의하면, 과학 분야 스테디셀러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자본주의적 인간에게 타당성을 주었기에 그들이 즐거워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이 주장이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부추기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도 한다.
반세기 동안 『이기적 유전자』가 끊임없이 읽히면서 사람들의 이기주의적 행동에 힘이 실렸지만, 이제는 신뢰나 공감, 다정, 이타주의와 같은 키워드가 떠오르는 시대다. 자밀 자키의 이전 저서 역시 '공감'을 긍정하는 책이었고, 매일경제신문사의 『공감하는 유전자』 역시 이듬해에 출간되었다. 최근 디플롯 출판사에서는 『이타주의자 선언』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집단선택설의 지지자들은 한 집단 내에서는 이기주의자가 이타주의자를 앞서지만, 집단 대 집단으로 봤을 때 이타주의자의 집단은 이기주의자의 집단에 비해 더 우월한 경쟁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우리가 서로를 좀 더 믿어본다면 더욱 괜찮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무수한 근거와 함께 쓰인 이 책이 오늘날 우리 안의 냉소주의를 깨는 도끼가 되어주길 희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