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실패 - 글쓰기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힘
클라로 지음, 이세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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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을유문화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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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실패하도록 부름을 받은 인간이더라도

아무렇게나 실패하지는 말라.

─ 『기사도』, 헨리 미쇼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느낀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가끔은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책 ─ 잘 만들어진 작품, 또는 상품 ─ 과 내가 쓰는 글 ─ 이걸 돈 받고 판다고? ─ 에서 느껴지는 차이에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리거나, 나만이 아는 어느 은밀한 폴더에 처박아 놓는다.


글과 관련된 우리의 실패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작가는 어쩌면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만 하는 일은 아닌지.


관련 업계에서 일하지 않고서야 우리가 글쓴이의 실패를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작가이자 번역가, 서점원, 출판 교정자로 일해온 클라로의 책, 『각별한 실패』는 글쓰기, 번역 그리고 읽기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그는 '독자'에만 머물렀던 사람이라면 발견하기 어려울 '책에 대한 거의 모든 실패'를 다룬다.


실패에 대한 은유들

실패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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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하나의 문장, 그다음 한 문장,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한 문장이다.

그 문장의 마침표가 점점 더 두려워진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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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실패의 명문 학교다.

프루스트 말마따나 질투가 사랑의 진실인 것처럼, 번역이 문학의 진실일 수도 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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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잠들기가 두려운 때마다 꾸는 꿈이다.

─ P.38


나에게 '실패'는 그냥 '실패'였다, 클라로를 알기 전까지.


클라로가 '실패'를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실패'는 온갖 것으로 변신한다. 실패는 문장이 되고, 발명이 되고, 짐승이 되고, 사다리가 되고, 오늘이 되고, 꿈이 된다. 다른 이미지로 변모하는 순간 우리는 실패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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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에서 작업하던 원고를 파기하거나 중단해 보지 않은 자가 과연 있는가?


클라로가 던진 이 질문은 비단 독자에게만 적용되는 질문은 아니다. 카프카는 실패의 귀재요, 그르치기의 흑태자이고, 페소아는 킹이다. 콕토는 모든 것에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책은 작가들의 실패 역시 소개한다. 클라로는 이들의 실패 사례를 이야기하며 그 실패가 불러오는 더 커다란 힘을 보여준다.


실패를 했기에 성공했다고?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하지만 실패는 그러하다.


당신이 만약 글을 쓰지 않는다 해도, 책은 읽는 독자라면 이 책의 9장, 「대천사의 회초리, 고르차코프의 촛불」만큼은 꼭 읽었으면 한다. '읽기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줄어든 건 아닌지. 책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책의 가격만큼 가져야 하며, 한 번에 깨닫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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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읽고 있는가?

아니, 나는 무엇을 읽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도입부를 마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재앙의 이면을 보고 있는가?

나는 읽을 줄 모른다.

이 사실은 끊임없이 나를 겁주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할 의무가 있다.

읽을 줄 모른다는 실패의 한복판에서, 나는 읽는다.

─ 「9. 대천사의 회초리, 고르차코프의 촛불」 中


클라로는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허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읽을 줄  알아." 그렇다면 누가 감히 자크 뒤팽의 시구절, "얼어붙은 심장 너머, 약간씩 간격을 두고 엇갈려 쓴 글."을 해독할 수 있을까? 우리를 비틀거리게 만드는 읽기, 시를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텍스트에 부딪히는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고 클라로는 말한다. 클라로가 읽기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오독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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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면서 실패하기 때문에,

혹은 글을 쓰면서 실패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삭제하고 다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비단 글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P.71


읽고 나면 글과 관련된 모든 실패에서 한층 자유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가 나를 그저 좌절시키는 것이 아닌 나를 텍스트에 부딪히게 만드는 각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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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에디토리얼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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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에디토리얼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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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종종 심히 괴롭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의무라는 어감을 가지고 있다.

─ P.13, 「들어가는 글」


그래서일까? 모두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는 시대가 왔다. 또 책임을 오로지 남의 것으로 지우려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당사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손해배상'만을 정답처럼 외치는 누군가의 모습도 쉽게 그려진다.


'같은 환경에서도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나라면 안 그랬을 것이다.'

이런 말들은 어쩌면 평균 범위에서 살고 있는 운 좋은 사람의 속 편한 소리는 아닌지...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와 도쿄 대학교에서 당사자 연구를 수행하는 구마가야 신이치로의 강의 대담록,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가 에디토리얼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두 학자는 아사히 문화센터에서 진행한 강의를 통해 이 시대의 '책임'을 다시 묻는다.


책임을 발생시키는 마법의 주문,

'이 행위는 당신의 것이네요.'


책임지는 상황이라 하면 대개 일방적 가해의 상황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런 상황 말고도 우리 사회에서 안타깝게 책임지는 상황은 보인다. 아이가 굶고 있어 슈퍼마켓에서 분유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고, 다수가 환경 오염의 심각성에 응답하지 않아 미술관에서 과격한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은 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켜 죄를 짊어지게 한다는 인식의 틀을 서서히 깨준다. 당사자는 어떤 곤란함을 안고 있는지, 함께 연구하고 해명해 나가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서 초래되는 다양한 결과를 개인의 것이 아닌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운명이고, 이는 나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보다 더 나은 연대가 가능하리라.


얼마 전,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으로 진행하는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가했었다. 두 청소년 가해자가 나오는 이야미스. 가해자 중 한 명의 서사가 드러나는데, 많은 사람이 가해자의 서사가 공개되는 부분에 난색을 표했던 기억이 난다.


고쿠분과 구마가야, 두 사람의 주장은 정답인 것 같고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에서 과연 얼마나 적용될지 누군가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떤 사실 또는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을 뜻하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모든 것을 쳐내고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오늘날, 긍정적인 대격변이 일어나기를 바라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에서 다뤄지는 가해자의 서사처럼 문학이나 창작물에서부터 적용하고, 점차 확대 적용하게 되는 희망 정도는 품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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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과거가 있어서 거기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외부 세계로부터도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항상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한 원천인 무에서 창조된 의지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의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 P.91


사회과학 책 중에서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은 많다. 이 책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

저자 중 한 명인 고쿠분 고이치로의 책, 『중동태의 세계』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진행한 '21세기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책은 고쿠분 고이치로의 유명한 두 저서, 『중동태의 세계』와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만약 고쿠분의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자신을 향한 행위나 자신이 마주한 사건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할 때 사람은 괴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응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채로 있다는 건 인간의 복수성이라는 조건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복수성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응답하는 ‘상대‘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 상대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응답해야 할 상대방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 자기들과 비슷한 동등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P13

그런데 세상에는 정신장애,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같은 발달장애 등 겉으로 보기에 대다수 사람과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장애가 그 외에도 많이 있지요. 그러한 분들은 말없이 사회에 뛰어들기만 하면 길이 개척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적 모델이라고 해도 사회 환경의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살기 편해지는지 모른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위에서 알아채기 힘든 비가시적 장애의 경우는 본인이 봐도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P31

우리에게는 과거가 있어서 거기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외부 세계로부터도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항상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한 원천인 무에서 창조된 의지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의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 P91

상처를 입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그 상처로 초래되는 다양한 결과와 효과는 보편적인 것이 됩니다. 즉 인간이 상처를 입는 존재인 것에 예외가 없는 셈입니다. 그러면 상처가 초래하는 결과나 효과가 마치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을 혼동해버리면 인간에게 나중에 부여되는 성질이 원래 거기에 내재하고 있던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자연인과 같은 허구를 내세워 인간의 본성을 생각함과 동시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인간의 운명‘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상처 없이 매끈한 휴먼 네이처를 상정하고 나서 거친 상처투성이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 곧 휴먼 페이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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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2 - 전쟁과 혁명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2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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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셔터를 눌렀다


1권은 185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그때에도 어디선가 싸움은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경이로운 순간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경이와 혼돈의 시대'에서 다뤘다면, 2권, '전쟁과 혁명의 시대'에서는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영광스러운 순간은 지나가고 전쟁과 혁명, 대기근과 인플레이션 주가 폭락, 대공황에 이어 또다시 전쟁이 생기는 그야말로 격변하는 세상을 담았다. 


1권에서도 전투나 항쟁에 따른 충격적인 사진이 인상 깊었는데, 죽음과 관련된 부정적인 사진이 누군가에겐 힘들 수도 있고, 또 검열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차마 올리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양차 세계대전을 다룬 2권이다 보니 선명한 전쟁의 참상이 더욱 노골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저 사람만 죽은 것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해 건물은 박살 나고, 지역이 초토화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도시의 잔해를 허망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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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영혼 속에 분노의 포도가 가득 차 있고

점점 더 무겁게 자라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글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사진과 영상 기술이 진보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글은 점점 선호 받지 못하는 게 요즘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진만큼 중요한 게 바로 글이다. 마리나 아마랄의 복원 기술이 있기에 이 책이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한 장으로는 알기 어려운 순간의 상황에 댄 존스의 이야기는 더욱 밀도 있는 이해를 돕는다.


1920년대는 여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솔리니를 유럽 최고의 허풍선이라고 비판했다. 무솔리니가 발전시킨 파시즘 나치당 집권과 폭력적인 비주류 운동과 나쁜 농담 사이 어디쯤 놓여있던 나치당의 히틀러가 어떻게 집권할 수 있었을까?

프레임 안에 담기지 못한 장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빈틈없는 고증과 기술로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은 사진, 하지만 그 사진만으로는 미처 떠오르지 못하는 이야기까지 읽다 보면, 어느새 100년의 세계사가 풍성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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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1 - 경이와 혼돈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1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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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자연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내 선사할 것이다.

카메라는 자연의 세밀함과 웅대함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판단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조의 힘을 발휘하는 일은

예술가들의 몫으로 남겨둘 것이다.

─ 로저 펜턴, 18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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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시대는 경이와 약탈의 시대였다.

제국주의 열강이 지배력을 전 세계로 확대하면서 모국에서는

신기한 물건, 신기술, 공산품, 본래 맥락에서 떼어낸 특별한 물품들을 전시하려는 취향이 생겨났다.

─ P.30, 「세계박람회」


어두운 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로 시작하는 카메라는 185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기능을 가진 물건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855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박람회 최초로 사진이 공식 전시되었고, 서로 떨어져 있는 나라의 모습이나 어떤 사건의 순간, 또는 누군가의 모습을 확인하며 제국주의 열강이 서서히 저마다의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역사 채색 전문가이자 디지털 컬러리스트인 마리나 아마랄의 고증을 지킨 컬러링으로 역사적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역사서 『선명한 세계사 1 ─ 경이와 혼돈의 시대』는 185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서사를 담았다. 인물의 모습이나, 과거의 거리들, 놀라운 발명과 창조의 순간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다가온다. 마리나 아마랄의 복원된 사진과 함께 덧붙여진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역사 크리에이터 댄 존스가 맡았다.


1850년부터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 책은 독자에게 마치 그 시대를 살아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얼핏 단편적인 역사들의 묶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댄 존스의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역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미세한 연결이 느껴지지 않을까.


역사는 반복된다. 기술의 발전, 새로운 것의 등장은 오래된 과거만이 가지는 특징이 아니다. 하마를 보기 위해 수천 명이 매일 같이 방문하고, 새로운 문명을 접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과 다소 양상은 다르지만 여전히 인류는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AI 같은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고, 등장하고, 모두가 관심을 보인다. 이는 전쟁과 유혈사태, 항쟁 등도 반복된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나. 책에서는 파리코뮌에서 코뮌 참가자들의 주검 사진이나 남북전쟁 후 들판에 시신이 널브러진 사진마저 아마랄의 기술 덕분에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전쟁이나 유혈사태에 무뎌진 독자라면 사진으로 목격하면서 다시금 평화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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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곧잘 정교하게 묘사해야 할 주제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극악함'이다!

─ 알렉산더 가드너, 1866년


선명한 역사의 이야기는 아직 1권이 더 남아있다. 1910년대부터 시작하는 2권에서는 양차 세계대전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을까. 아직 펴보지 않았지만, 진짜 전쟁을 다룰 거라 생각하니 긴장되는 한편 설렘과 기대로 가득하다. 역사에 이 정도로 호기심이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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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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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우리는 괴로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우리의 위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설정할 수 있다.


미국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이러한 혼란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버틀러는 "그런 혼란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호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따라서 우리와 타인의 거리를 좁힐 수 있게 해준다"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자만심에 사로잡혀 독단적 태도를 고수하면서 털끝하나 상처입지 않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에 의해 붕괴되는 것이 더 낫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나 마찬가지"

라고도 말한다.


버틀러는 인간의 상호작용이란 합리와 모순, 붕괴와 구축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이라고 말했다.


─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마리나 반 주일렌


지독했던 운명을 딛고 일어나 프랑스 페미니즘 문단의 주목을 받는 비르지니 데팡트의 소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이 시대의 증오와 반목, 그리고 연대를 묻는다.


소설의 처음은 40대 남성 작가 오스카가 50대 여성 배우 레베카를 '긁는' 글로 시작한다.

그리고 20대 여성 페미니스트 블로거 조에가 '미투'의 신호탄을 터트리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기꺼이 붕괴하라


구설에 오르며 공격을 받은 오스카는 레베카와의 메일에서 자신의 슬픔에만 도취된 모습, 자신의 불쌍한 처지만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레베카는 그런 오스카를 동정해 주지 않고 강하게 비난한다.


/

최상위 계층을 미워하지 않는 이러한 편집증적 열기가 이상하다고요.

그저 당신의 이웃, 언제든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만 골라가며 증오합니다.

진짜 안전지대에서 보호받는 사람들이 아니라요.

─ P.178

주디스 버틀러가 주장했듯이, 이러한 혼란은 오스카가 스스로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걸까. 그 붕괴에 이르기까지 꽤 긴 과정이 필요했지만, 결국 그는 출판사 홍보담당 직원이었던 조에를 향한 집착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고, 361쪽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딸에게도 이런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음을 느낀다. 조에의 고발 '덕분에' 평소보다 인세를 더 받게 되는 잭팟이 터졌다고 기뻐하는 모습엔 어떤 권력의 견고한 혜택을 마주한듯해 씁쓸함이 감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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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을 공중분해 시킨 후,

그녀 역시 난생처음으로 엄청난 공격을 받았음을 깨닫는 중입니다.

그땐 제 슬픔에 몰두한 나머지 그녀 입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글에서 언급한 여자의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딸이 떠올랐습니다.


그 일이 우리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으며,

온라인의 어떤 여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달은거죠.

그리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 P.361

분노한 여성의 외침에 깨달음을 얻고 기꺼이 무너지는 기득권의 모습에서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느낀 것이 나뿐만이 아니기를.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한 '개자식'들과의 완전한 격리는 불가능하다. 오스카와 레베카는 술과 마약이라는 유해한 쾌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NA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타인의 취약한 모습을 마주한다. 그 과정이 오스카가 무너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으리라. 이러한 장치의 등장은 술과 마약만이 유해한 쾌락은 아님을, 권력 또한 마찬가지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남성 작가와 여성 배우가 주고받는 이메일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따로 블로그를 통해 외치는 페미니스트의 글들. 각각의 절규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는 타인에 의해 연대로 이어진다. 서간 형식을 많이 띠는 이 소설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많은 독자들이 오스카의 변화를 느끼고, 영원한 분리만이 해답이 아님을 읽어내기를, 또 어떤 특권의 도취에서 벗어나 서로가 붕괴하고 재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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