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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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1.

검열[檢閱]

매체 | 언론, 출판, 보도, 연극, 영화, 우편물 따위의 내용을 사전에 심사하여 그 발표를 통제하는 일. 사상을 통제하거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단계적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하고,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방송사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도 있었고, 그 덕분에 어떤 이미지로 선명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 작품 속의 '퀴어 코드'가 방송사에 의해 수정되었음을 알게 된 건 꽤 최근의 일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바라보며 즐거워했던 세상이 실은 지워지고, 고쳐진, 검열을 거친 이후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검열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30년대의 어떤 연구 결과물도 그러했다. 한 여성 퀴어 사회학자는 3백 명이 넘는 동성애자의 삶과 욕망에 관한 증언들을 수집했다. 여성이라는 성별이 검열당하던 시절, 한 권위 있는 남성 의사의 이름으로 자신의 연구를 세상에 공개하려 했지만, 그들의 욕망이 아닌 오로지 우생학적 욕망만을 가진 남성 의사에 의해 증언들마저 검열당하고, 『성적 변종들』(1946)이라는 두 권짜리 책으로 출간된다.


이 실존 저작물을 기반으로 한 작가는 허구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2.

도착[倒錯]

심리 | 본능이나 감정 또는 덕성의 이상(異常)으로 사회나 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나타냄.


3.

대담[對談]

명사 | 마주 대하고 말함. 또는 그런 말.


이야기를 하는 건 노인 후안 게이와 후안이 네네라고 부르는 청년이다. 둘은 10년 전, '동성애자'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계기로 알게 된 사이였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후안이 노쇠해지고 죽기 전, 네네를 자신이 살던 팰리스로 부르며 둘의 서사는 시작된다. 후안이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잰 게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완성해달라는 부탁으로 『성적 변종들』이 등장하고, 그 기묘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둘은 이야기한다.


어두웠던 삶에 대해

지워진 기억에 대해

두 권의 책에 대해

미국 의학의 어두운 정신사에 대해

서서히 드러나는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은 지구 반대편에서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 당장 앞에 있는 사람이나 자신의 손가락이 아픈 게 더 크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한때는 억압받았던 소수자였지만, 퀴어의 욕망이나 그들이 핍박받던 역사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여기에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음도, 정말 이 책에서 삭제된 텍스트들처럼 지워지고 지워지며 알기 힘듦도 있다.


쓰였다가 다시 지워진 무수히 많은 수수께끼와 타자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고통들을 『암전들』이라는 형식으로 읽으며, 읽어보려 애쓰며, 그러다 다시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감히 쓸 수 없음에 좌절하고 만다.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었음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모른다.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그저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뿐.


4.

경청[傾聽]

명사 | 귀 기울여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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