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전달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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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블루홀식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꿈 전달 】

한 출판사의 편집자가

자신이 담당하는 소설가의 메일을 받고

그를 직접 만나러 간다.

메일에는 '더는 글을 못 쓰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편집자는 두터운 팬층을 지닌 소설가를 달래려 하지만

소설가의 입에서 뜻밖의 고백을 듣게 되는데….


사루하시는 몰라보게 야위고 초췌해져 있었다.

정돈과는 거리가 멀었던 집 안도 더 엉망이었다.

"조금 더 일찍 말해야 했는데……."


【 에어 플랜트 】

에어 플랜트[air plant].

흙에 심을 필요 없이 그냥 두기만 해도 잘 자라서

손이 덜 간다는 식물.

입사 동기인 치하루가 에어 플랜트를 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바보 아니야?'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한 달 뒤,

존재 가치 없이 무해하던 치하루가 뭔가 달라진 것 같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데….


"치하루 씨, 요새 눈빛이 왠지 이상하지 않아?"


【 침하교를 건너자 】

유지는 결혼 1주년 기념일에 퇴근 후

아내 나쓰에와 레스토랑에서 작은 사치를 하기로 했다.

백화점 앞에서 기다리던 나쓰에가 유지를 보고 미소 짓고,

다가오는 아내를 기다리던 그 순간.

나쓰에의 등 뒤에서 비명이 터지고,

그다음 순간 나쓰에에게 누군가가 세게 부딪히며 아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쓰에의 뒤에 서있었던 한 남자의 손에는 칼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서바이벌 나이프가 들려있었고,

그렇게 유지는 나쓰에를 잃었다.


그리고 21년 뒤 유지는 그때 나쓰에를 찔렀던 남자에게 복수를 하는데….


당신 아내를 택한 이유?

아, 맞아.

그때 당신 아내의 등에 말이지. 이상한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어.

별 모양 가운데가 동그랗게 뚫린, 꼭 과녁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 호족[湖族] 】

호족[湖族]은 아주 오래전부터 겟킨 호수의 바닥에 살고 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생김새는 인간과 거의 똑같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물속을 헤엄친다.

등은 비늘로 빽빽이 덮여 있고, 몸 양옆에는 작은 갈고리 같은 발톱이 몇 개씩 돋아 있다.

햇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물밑에 살기 때문에 피부는 반투명해서 뼈가 보일 정도다.

눈은 심해어처럼 퇴화해 그저 검은 구멍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게 아니야, 에이지.

아케미는 호족 따위가 아니야."

"아케미를 겟킨 호수로 돌려보냈지.

그 여자는 호족이니까."


이야미스[イヤミス]라는 장르 개념이 있다. 읽고 나면 기분이 불쾌해져서 '싫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이야다[嫌(いや)だ]'와 '미스터리'가 합쳐진 단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이야미스는 불쾌는커녕 곤란한 일조차 생기지 않는 필굿 소설의 대척점에 있는 장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도대체 그런 걸 왜 읽냐고 하겠지만, 이렇게 하나의 장르로 명명되며 여러 작품들이 나오는 걸 보면 그래도 독자의 수요가 꾸준히 있는 듯 보인다. 이야미스로 유명한 작품이라면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 있고, 마리 유키코의 『갱년기 소녀』가 있다. 이야미스를 전부 섭렵한 건 아니지만, 『갱년기 소녀』를 읽고 3일 정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그런 걸 왜 읽어,

하지만 불쾌하다니까 더 궁금해지는 사람도 분명(!!) 있다.

왜? 글이 어떻게 해야 사람 마음이 그렇게 불편해지는데?

내가 그랬다.


​만약 당신도 나와 같다면 우사미 마코토의 『꿈 전달』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

『꿈 전달』은 표제작 '꿈 전달'을 포함해 총 11편의 단편이 있는 단편 소설집이다. 추리보다는 미스터리에 가까운 짧은 이야기들. 이 단편들은 묘하게 싫은 지점들을 살살 자극한다.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들(질투와 시기, 욕망, 불안, 비틀린 사랑 등)과 모르는 편이 좋았을 불쾌한 진실들을 펼쳐놓고, 이 이야기들 사이에 현실인지 망상인지 착각하게 만드는 기이한 환상(꿈, 설화, 이야기)을 한 조각 넣는다. 표지가 주는 인상처럼 『꿈 전달』의 텍스트에는 바다, 호수, 수족관, 침하교, 바다생물 등의 습한 이미지가 적극 활용되는데 이 역시 독자에게 특유의 눅진하고 찝찝한 감정을 형성하는 데에도 한몫한다.


11편 ​저마다의 결말들이 이전의 이야미스 독서 경험처럼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하진 않았다. 옮긴이의 말처럼 '서정적인 여운'으로 끝났기 때문일까. 수수께끼의 진상을 마주하며 마무리되는 순간, 온갖 미묘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오가지만 그럼에도 개운하게 끝나는 부분이 좋았던 단편들. 전작을 탐하고 싶어진다.


앞에서 이야미스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듯, 단편들을 읽으며 이야미스의 요소가 어렴풋하게 느껴졌는데, 그 불쾌함의 정도가 강한 편은 아니라 이야미스라는 장르를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그 처음을 이 책으로 하면 어떨까 싶다. 꼭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벗어난 기이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우사미 마코토의 한결같은 색채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역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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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마음 훈련법 - 크리스틴 네프가 전하는 적극적 자기연민의 힘
크리스틴 네프 지음, 서광.덕산.서승희 옮김 / 학지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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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학지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인간의 삶을 고통과 분리할 수는 없다. 누구나 살면서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이런 순간이 올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나의 경우에는 늘 스스로를 비판했었다. 남들도 나처럼 힘들 거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입을 꾹 닫고, 더 이상 나의 괴로움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때 나에게 벌어진 일은 스스로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지루해지는 순간마다 재생되며 발작하기도 한다. 속이 쓰려 끊어버린 정신과 약을 다시 찾아야 할까? 하지만 약을 먹는다고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데.


​─

최근 몇년간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사람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약이 결코 오답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훈련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심리학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출판사 학지사에서 『러브 유어셀프』와 『나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로 자기연민을 알린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의 신간을 소개한다. 여성을 위한, 적극적인 자기연민의 방법을 담은 『나를 돌보는 마음 훈련법』이 바로 그 책이다. 이전 저서로 이미 자기연민에 대해 다시 배운 독자라면 모를까, 많은 한국인들에게 자기연민은 어쩌면 다소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무한 경쟁 사회에서 스스로의 고통을 돌아보거나 제대로 보듬어 볼 배움의 기회조차 없었을 뿐만 아니라, 힘듦을 이야기했을 때 많이 들어본 대답 중 하나는 '너만 힘든 거 아니다'라는 냉정한 말이었으니.


​자기연민이라는 단어의 재정의부터 하자면, 크리스틴 네프가 말하는 '자기연민'은 결코 자신이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과 불완전함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친구가 나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좋은 적절한 반응을 나에게도 예외 없이 해주는 것이다. 저자는 들어가기에 앞서 자기연민은 누구에게나 유용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미투 운동을 지나며 성중립적이었던 지난 저서와 달리 여성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믿고 지지했던 남성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여성을 성희롱하고 학대했던 사실을 알게된 것을 계기로, 가부장적 사회에서 불공정한 여성의 위치에 주목하며 이제야 집필하게 된 여성을 위한 자기연민책. 여성은 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부드러운 측면을 억누르고 남성처럼 행동해야 하는지, 성공하고 반감을 사느냐, 호감을 얻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느냐 하는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지, 직장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강한 압박을 더 많이 받으면서도,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남성보다 낮은 보수를 받아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자기연민의 힘으로 여성이 스스로를 지키고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텍스트와 실습 등의 활동을 소개하며 돕는다.


나는 그렇기에 이 책이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이 책에서 그저 흔한 에세이처럼 따뜻한 말만 했더라면, 읽는 순간에는 잠시 위로가 되었을지 몰라도 덮은 뒤에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을지도 모르니까. 허공을 훑는 피상적인 위로가 아닌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사회의 문제를 조목조목 하게 지적하는 글들을 보며 하루는 학지사에서 소개했던 『문화 심리학』 속 문장이 연결 지어 떠올랐다.


/

문화와 마음은 분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보편적인 것이 아닌

문화적 맥락 내에서 구성된 상대적인 것이다.


─ 『문화 심리학』 中


​가부장제라는 문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니, 여성들의 마음마저 분리하지 못하고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크리스틴 네프의 강렬한 가부장제 비판의 메시지가 책의 첫인상에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지점이지만, '모든 여성'에게 따뜻하지 못한 세상에서는 그저 부드러운 메시지보다 사회를 돌아보고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 더 좋다. 이는 비판의 화살을 오로지 자신에게로 향하지 못하도록 돕는다.


​자신의 힘듦을 인정해 주고, 극복하게 돕는 책. 나는 이 책의 무수히 많은 곳에 플래그를 붙였고, 또 여러 번 읽었다. 읽으며 고통을 느낀 순간도 비록 있었지만, 많은 여성에게 읽혔으면 한다. 이 책을 기반으로 하는 서로에 대한 연대가 언젠가 실현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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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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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1.

검열[檢閱]

매체 | 언론, 출판, 보도, 연극, 영화, 우편물 따위의 내용을 사전에 심사하여 그 발표를 통제하는 일. 사상을 통제하거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단계적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하고,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방송사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도 있었고, 그 덕분에 어떤 이미지로 선명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 작품 속의 '퀴어 코드'가 방송사에 의해 수정되었음을 알게 된 건 꽤 최근의 일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바라보며 즐거워했던 세상이 실은 지워지고, 고쳐진, 검열을 거친 이후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검열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30년대의 어떤 연구 결과물도 그러했다. 한 여성 퀴어 사회학자는 3백 명이 넘는 동성애자의 삶과 욕망에 관한 증언들을 수집했다. 여성이라는 성별이 검열당하던 시절, 한 권위 있는 남성 의사의 이름으로 자신의 연구를 세상에 공개하려 했지만, 그들의 욕망이 아닌 오로지 우생학적 욕망만을 가진 남성 의사에 의해 증언들마저 검열당하고, 『성적 변종들』(1946)이라는 두 권짜리 책으로 출간된다.


이 실존 저작물을 기반으로 한 작가는 허구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2.

도착[倒錯]

심리 | 본능이나 감정 또는 덕성의 이상(異常)으로 사회나 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나타냄.


3.

대담[對談]

명사 | 마주 대하고 말함. 또는 그런 말.


이야기를 하는 건 노인 후안 게이와 후안이 네네라고 부르는 청년이다. 둘은 10년 전, '동성애자'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계기로 알게 된 사이였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후안이 노쇠해지고 죽기 전, 네네를 자신이 살던 팰리스로 부르며 둘의 서사는 시작된다. 후안이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잰 게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완성해달라는 부탁으로 『성적 변종들』이 등장하고, 그 기묘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둘은 이야기한다.


어두웠던 삶에 대해

지워진 기억에 대해

두 권의 책에 대해

미국 의학의 어두운 정신사에 대해

서서히 드러나는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은 지구 반대편에서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 당장 앞에 있는 사람이나 자신의 손가락이 아픈 게 더 크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한때는 억압받았던 소수자였지만, 퀴어의 욕망이나 그들이 핍박받던 역사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여기에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음도, 정말 이 책에서 삭제된 텍스트들처럼 지워지고 지워지며 알기 힘듦도 있다.


쓰였다가 다시 지워진 무수히 많은 수수께끼와 타자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고통들을 『암전들』이라는 형식으로 읽으며, 읽어보려 애쓰며, 그러다 다시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감히 쓸 수 없음에 좌절하고 만다.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었음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모른다.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그저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뿐.


4.

경청[傾聽]

명사 | 귀 기울여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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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1 - 평범하고 정확한 우리말 새번역
임마누엘 칸트 지음, 코디정 옮김 / 이소노미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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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제본이기도 하고, 괘씸한 철학번역이 있었던 만큼 쉬운 번역일거란 생각에 기대가 너무 됩니다..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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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가지 다쓰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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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일본 미스터리 마니아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밀도 높은 전개와 신들린 복선 회수,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반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숨죽이며 끝까지 달려갈 수밖에 없는 치밀한 구성,

모든 단서가 마지막에 완벽하게 맞물리는 쾌감.

그러나 1979년 출간 이후 오랫동안 절판된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중고본이 희귀해졌고,

소수의 독자들 사이에서만 비밀스럽게 전해지며, …


─ 옮긴이의 말, 「복선의 신, 깨어나다」 中


일본 본토에서 프리미엄 주고 사서 보던 전설의 작품이 도쿠마쇼텐에서 복간되고, 블루홀식스 출판사를 통해 한국에도 출간되었다. 40여 년 만에 부활한 그 작품은 바로 가지 다쓰오(梶 龍雄)의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책은 첫 시작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머니의 유언으로 건축 학과 교수 나카조 도모이치는 동생 슈지가 학동 소개(*2차 대전 말기인 1944년 7월부터 전화[戰禍]를 피해 대도시 아동들을 집단 또는 연고로 시골 등에 피난시켰던 일.)로 갔던 지바현의 깊은 산골마을로 향한다.


/

어머니는 죽음이 임박한 걸 아는 상태에서 마지막 이성을 다해 그 말을 내뱉었을까.

아니면 단지 죽음을 앞둔 자들이 흔히 빠지는 혼탁한 환상 때문이었을까.

그때, 도모이치의 어머니는 말했다.

"도모이치, 네 동생은 살해됐단다. 슈지는 살해당한 거야……."


조사를 위해 대학의 동료들은 콘크리트 결함 실험의 협조를 해주거나 강의 시간을 조정해 주는 등 도와주지만, 도착한 마을에서 정보를 얻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 당시 함께 지내던 친구는 어려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사건에 관여했던 당시의 어른들은 이미 죽었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협조적이지 않는데….


/

슈지가 사고로 죽었는지 누군가에게 살해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어머니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화장이 진행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머니는 아들이 '살해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 P.90


당시 젊은 선생이었던 구도의 진술, 그리고 자신을 미행하는듯한 낌새로 폐쇄적인 마을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도모이치 (그리고 추리소설 마니아인 대학 총무과 직원 사가와 미오)는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내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숨도 못 쉬고 페이지를 넘긴 적이 있었나?


사건이 점점 심화되고,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되며 용신 연못 익사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숨도 못 쉬고 페이지를 넘긴 건 처음이었다. 발단과 전개 부분에서 보여준 텍스트가 그런 식으로 전체를 관통하게 될 줄은…. 추미스 마니아라면 이미 읽을 이유야 충분하겠지만, 책을 읽으며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의 정취가 살짝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메시지도 느껴지니 두 작품을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n회독에 독서모임까지 하고 싶게 만드는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고전이나 인문교양서적은 얼씬도 하지 않고 호러, 미스터리, 추리 소설만 읽었었다. 지금처럼 감상을 남기지는 않아서 그땐 그런 게 재미있었다는 얄팍한 감상만 남아있지만. 이 책, 그리고 더 나아가 블루홀의 책을 읽으며 그때의 순수했던 즐거움이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우혁의 『퇴마록』 전권을 단숨에 해치우고, 다른 작품까지 읽고 싶었던 그때의 욕망이 가지 다쓰오에게서도 느껴졌다. 더 읽고 싶다! 전작을 탐하고 싶다! 그러려면 이 작품이 잘돼야 하지 않은가.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나를 위해 다들 꼭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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