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티네 - 일본 문학의 뿌리를 찾아서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소노미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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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만 보면 기대 안할수가 없음...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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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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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은행나무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자리를 잡고 있는 승객들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다른 식으로 아는 체를 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모여 사는 종임을 고려할 때,

열차 안의 정적은 왠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 P.265, 「회계」


일, 혹은 노동.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반드시 해야 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의 일에 대해서 상상할 때 대체로 위와 같은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우리는 사람이 직접 일을 하는 모습,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들려주는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순간을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은 일을 하러 떠나는 그 시작의 순간 그뿐이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자라서 노동시장에 뛰어든다. 일이 주는 기쁨과 슬픔은 잘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런던 항구에서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 못할 노동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주목받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일하고 있는 그곳에서 시작해 저자는 흥미를 끄는 일들, 때론 제안을 받아 누군가의 일터로 향한다. 화물선을 관찰하다가 물류를, 갑자기 비스킷에 흥미를 느껴 런던 서부 '유나이티드 비스킷'의 본부로, 노동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일과 충족감이 동의어가 되도록 보장하는 방법을 찾는 직업 카운슬러를 찾아간다. 이렇게 해서 규모도 다양하고 가치도 다양한 열 가지의 직업에 대한 글이 모였고,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한 권의 책이 되었다.


​─

이미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보증된 작가인 만큼 이 책에서도 그의 빛나는 필력이 느껴진다. 저자는 자신에게 생소한 일터에 가서 어쩌면 범인[凡人]들은 놓치거나 지루해할 것들을 포착하고 그런 장면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도록 글로 옮긴다. 그리고 거기에 저자가 느낀 '일의 기쁨과 슬픔'을 녹여내는데 이러한 글들은 그 어떤 일을 하는 독자더라도 생각해 볼만한 지점들을 불러일으킨다.

거대한 물류의 흐름을 보고 오래전 선조들은 물건들의 작은 역사와 유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겠지만, 지금 우리 현대인들은 많은 물건을 손에 넣을지언정 아무것도 모를 거라며 씁쓸해하다가도, 위성 발사에 성공하는 순간에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흥분한다. 그리고 다시 죽어가는 자연을 생각하며 동정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제목처럼 일의 기쁨과 슬픔이 가득하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정점인 로켓 과학 현장을 취재하며 발사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인디언 족장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 깊었던 지점이었다. 발전된 과학 기술의 문명만을 누리던 탓에 조금 덜 진보되었지만 신화적이었던 인류의 과거를 상상하는 힘을 잃어버린 듯싶어서.



노동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이라던 마르크스의 문장이 있지만, 그 빛은 점점 바래져가고 있다. 책은 사실 12년에 이미 한 번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책이 읽혀야 할 이유는 부동산 투기와 코인과 주식 투자로 커다란 한방의 성공이 꿈인 우리 세대에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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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와인드 : 하비스트 캠프의 도망자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1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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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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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법은 인간이 잉태된 순간부터 13세에 이를 때까지 그 생명에 대한 침해를 금지한다.

그러나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아동은 부모가 소급적으로 <중절>할 수 있다.




코너 래시터


코너는 어느 날, 부모가 자신을 언와인드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너의 언와인드 날짜는 가족들의 바하마 여행 전날. 자신의 비행기표만 없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긴 코너가 자신의 언와인드 의뢰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리사 메건 워드



리사는 태어났을 때부터 주 정부의 피보호자였다. 피아노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립보호시설의 예산 문제로 언와인드 당할 운명에 처한다.



레비 제더다이어 콜더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난 레비는 십일조로 언와인드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언와인드란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아동이 부모의 동의하에 모든 부위를 필요한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걸 말한다. 그리고 사회는 이 또한 살려 둔다고 표현한다.

부모와 사회가 멋대로 부여한 운명에 순응할 수 없었던 코너와 리사는 살기 위해 도망을 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꺼이 십일조로 언와이드될 준비를 하던 레비가 인질로 잡힌다. 잡히면 이대로 언와인드 된다. 자유의지 없이, 타인의 부속품으로 살아가야 한다.

유토피아를 표방하는 이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분해 당할 운명의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에선 이미 『수확자』로 유명한 닐 셔스터먼의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시리즈가 열린책들 출판사를 통해 드디어 공개되었다.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는 임신 중절 수술은 불법이 되었지만, 태어나고 13세부터 18세까지 성장한 아이는 <중절>할 수 있는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아주 쓸모 있는 방향으로.



'성장한 후에 중절'이라는 발상, 닐 셔스터먼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런 극단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 걸까?



소설을 읽다 보면 저자가 요즘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를 조각조각 수집해 하나로 기워낸 듯 보인다. 장기 이식, 의료 기술의 진보, 잉여 인간의 증가, 인간의 가치 하락, 낙태, 청소년의 비행 등등의 문제들. 첫 페이지부터 상당히 자극적이고 말도 안되는 설정을 열고 들어가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요즘의 문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그만의 필력과 촘촘한 설정으로 독자를 작품 속으로 깊게 끌고 들어간다.



낙태할 수 없는 세계, 무책임한 부모들은 늘어나고 언와인드 될 아이들과 이미 언와인드 된 아이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 쓰이는 캐릭터는 타일러라는, 이미 언와인드 된 아이의 이야기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타일러의 서사, 내가 여기서 말하면 재미없을 테니, 다들 궁금했으면 좋겠다.




『소설 쓰는 로봇』이라는 책에서 SF가 더욱 발전된 미래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은 신인류가 살아갈 세상은 어떨지를 그린 작품이라던 문장이 꽤 인상 깊었는데, 이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언와인드 당할 운명에 처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만약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세계에 <생명법>이 있다면? 하고 괜히 상상해 본다. 조각내서 남 보태도 쌀 인간이 어디 있으랴. 유년기~청소년기의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부모님 승인 하에 언와인드 된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나는 말 잘 듣는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타인에게 '풀어질' 운명이었던 세 아이는 하비스트 캠프에서 도망치고, 자신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할까?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4부작. 아직 1권에서 미처 해소되지 못한 떡밥들 때문이라도 나는 이 작품의 끝장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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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노대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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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문학과지성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제목만 듣고 상상했던 것과는 비록 달랐지만, 그래도 내게 있어서 꽤 유익했던 책이었다. 천선란, 정세랑, 박서련 등 … 젊은 SF 작가들의 유행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데, 나는 SF 장르에 도통 재미를 붙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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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원 작가의 『소설 쓰는 로봇』은 정말이지 막연하게 AI 창작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다룬 책인 줄로만 알았다. 책은 AI,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테크놀로지의 등장과 문학 전반에 끼치는 영향들, SF 문학으로 바라본 세계, 그리고 SF 문학에 대한 비평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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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평집의 1부 'Art-ificial Intelligence'에서는 ChatGPT 출현 이후 생성형 AI와 문학의 관계, 그리고 AI를 둘러싼 문학의 비판적 사유를 다룬다. 2부 '포스트휴먼 스토리월드'는 인간을 넘어선 인간, 혹은 새로운 신인류인 포스트휴먼과 이들이 살아갈 포스트휴먼 세계를 다룬 글들을 모았다. 3부 '과학/소설, 혹은 상상공학'은 SF에 관한 글들, 과학과 문학의 소통을 다룬 글들을 엮었다. 4부 '바벨의 디지털-도서관'은 짧은 서평과 북칼럼들이다. SF와 포스트휴먼 관련 소설에 대한 리뷰를 모은 '포스트휴먼 시대의 소설'과 포스트휴먼 및 인류세 관련 문학서와 인문사회과학서를 다룬 '인류세 시대의 포스트-인문학'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 P.18, 「프롤로그, 고무 오리, 지게차, 그리고 러다이트 ─ AI 이후 글쓰기와 예술」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기계와 공동 창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 것인가?


나는 AI의 등장이 창작자들의 창작의욕을 꺾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27쪽의 질문처럼,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할 것인가? 같은 생각이나, 44쪽의 인용문처럼 아주 독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면 더 이상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에 가까웠다. 제주대학교에서 AI 교육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분야에 가장 맞닿아 있는 연구자이기도 한 저자는 '답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AI가 만들어낸 문학이 우리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문학계를 재편해나갈 것'이라고 답한다.


창작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규모가 큰 곳에서는 AI 기업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는 뉴스가 보이지만, AI 창작 분야에 대한 연구가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1부에서 문학 분야에서 AI 활용에 대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AI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특징을 시로 표현해 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작가의 문체를 학습시켜 그 문체로 글을 써보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는 AI 기술과 AI 문화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인데, AI 기술에 무지하거나 AI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AI와 AI 문학을 담론 차원에서만 논평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한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은 『여자만의 책장』의 해제를 쓰며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같은 책을 두고 조금씩 다른 시선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짧은 서평과 북칼럼을 모은 4부, '바벨의 디지털-도서관'의 끝없는듯한 목차를 보며 흥분하지 않을 SF 문학 팬이 있을까? 비록 이 책의 서평에는 없지만, 천선란의 『모우어』를 읽으며 깨나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작가가 못썼다고 우기기엔 나도 사실 잘 안다 내가 SF 읽기 근육이 없다는 것을. 앞의 1~3부에서도 SF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했고, SF적 기술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단순 놀라운 기술을 넘어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에 대한 단서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모우어』의 경험 탓에 4부가 내겐 반가웠다. SF 문학에 대한 나의 '믿을 구석'. SF 문학을 마주할 때 읽어봤자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이 책이 있으니 과감하게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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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라고 묻는 가정의 문학 SF, 그 장르를 지독하게 파온 작가가 SF의 메가 텍스트들 사이에서 질문과 답을 길어오는 책. 노대원 작가의 『소설 쓰는 로봇』은 기존 SF 장르가 어렵거나 오로지 흥미만을 느끼던 독자에게는 SF라는 장르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의미를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기존 SF 팬들에게는 또 다른 관점에 대한 즐거운 항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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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한 철학 번역 -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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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이소노미아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룬다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작년에 유튜브에 잠깐 화제를 불러온, 코미디언 이제규의 동요, 「미룬이」의 가사다. 그렇다면 '독서'에서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루게 되는 책은 무엇이 있을까? 일단 나는 철학 책을 잔뜩 미루고 있다.


​제목도, 철학자의 이름도 듣기만 해도 뇌가 딱딱해지는 탓에 철학을 쉽게 풀어쓴 책이 출간되는 것도 요즘 출판 트렌드 중 하나가 되었다. 러셀 로버츠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썼고, 『하루 한 장 니체 아포리즘』같은 책에는 원문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는 편역자의 글이 실려있다.

쉽게 떠먹여주는 책은 많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기질의 독자는 분명히 있다. 내가 그렇다. 실은 몇 권 사두긴 했다. 하지만, 펼치고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탓에 좀 더 내공을 쌓은 뒤로 미루게 되고…. 완독 실패의 경험은 내 가방끈과 가름끈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내 탓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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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철학 책을 읽을 때마다 독자는 지혜를 구하기는커녕

자신의 문해력을 한탄해야 하는가?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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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언어활동가, 변리사로 활동 중이기도 한 코디정 교수님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읽기 어려움'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새로운 번역을 제안한다. 『괘씸한 철학 번역』이 바로 그 책이다.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일본에서 넘어왔다. 서양 철학도 그런 분야 중 하나다. 저자는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 말로 책을 시작하며, 한국인이 보통의 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질료'나 '실재'따위의 단어를 예로 들며, '여전히 한국어가 되지 못한 일본어'를 아직도 끌어안고 학문 분야에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고여버린 학회나 잘못 작동되는 학자의 권위, 불필요한 고집들을 말하며, 다음 세대에게는 이런 족쇄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새로운 철학 번역을 하자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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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단어에 보관되고, 생각은 언어를 통해 행해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단어의 의미를 넘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언어보다 더 좋은 표현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단어에 속박되며 언어에 의해 생각이 제한되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낡은 단어들을 반성 없이 무비판으로 사용하는 관습은 존중할 만한 전통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앞선 세대들이 겪었고, 지금 우리 세대가 여전히 겪고 있는, 이토록 심한 언어적 고통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 ​│ 철학의 비판 정신으로 악습과 싸우자.

─ PP.71-72


아카넷 출판사 기준으로 두꺼운 양장본으로 두 권짜리 책,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저자는 이 방대한 양의 책을 영어 단어를 출발 언어로 삼고, 우리말을 도착 언어로 삼아 용어를 분석하고 검증한다. 하지만 단순히 '△△보다 ○○가 낫다'고만하려는 게 아닌, 왜 처음에는 이런 번역이 되었는지까지 집요하게 추적한 흔적마저 텍스트에 녹아있다. 철학이란 단어를 만든 메이지 시대(1868-1912)의 번역가 니시 아마네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한자어가 만들어졌는지, 서양 철학의 역사를 따라가며 왜 이 단어가 더 나은 번역이 되는지에 대한 설득과 주장은 독자의 이해를 넘어, 수용과 비판까지 할 수 있게 돕는다. 『순수이성비판』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지만, 철학과 언어학 면에서도 배울 점이 넘쳐나는 책이다.

​─

가방끈이 짧아도, 가름끈이 짧아도, 함께 읽으며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참 멋진 기획이 아닐 수가 없다. 저자의 『괘씸한 철학 번역』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기에 대해 '믿을 구석'이 되어주기도 하면서도 번역서에 대해, 또는 고여버린 기성의 무언가에 대해서 어떻게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지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저자의 강력한 주장을 받아들인, 『순수이성비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책이 있으니, 『순수이성비판』을 이제는 미루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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