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묘촌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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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묘촌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역 / 2006

 

긴다이치 코스케.

그토록 명탐정이었다는 김전일의 할아버지이다.

하지만 애석하게 이 작품은 탐정의 입장에서 씌여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명철한 추리과정을 따라갈 수는 없다.

다만 운명이 급전환된 주인공 타츠야의 입장을 따라서

이 팔묘촌의 피바다 속으로 뛰어들 밖에.

 

축을 이루는 것은 '동기'이다.

사건의 전모와 그에 쓰인 방법을 추리해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 작품은 퍼즐처럼 맞아들어가는 엘러리 퀸 식의 추리소설은 아니기에

그 안에 담긴 인간들의 감정에 집중하는 쪽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폐가나 폐촌에서 벌어지는 호러를 그린 일본게임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 둘이 주는 느낌의 유사성일 것이다.

혼자라는 느낌, 주변은 적이라는 느낌.

거기에 추리를 더하는 점까지 그러하다.

 

'이것이 일본의 고전 추리소설이로구나'라는 느낌을 얻고 싶다면 한번 쯤 읽어보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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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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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2006

 

철학도가 아닌 나도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본 노철학자.

그 노철학자가 '철학과 현실'이라는 계간지에 5년간 연재한 18편의 글을 묶어만든 책이다.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 연재한 코너는 사색의 단서들을 던져주는 역할이었을 것이다.

18편의 글을 통하여 노철학자는 생을 살아가며 던지게 되는 철학적 물음들을 제기하여 주고 있다.

청소년기나 대학 초년생이 읽는다면 생각지 못했던 문제에 대하여 지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시기를 지난이에게는 이미 던져본 문제의 모음집으로서 주의전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만 후자의 경우 기왕 모음집으로 가지게 되는 책이라면

좀 더 관련내용이 충실히 들어가 있는 쪽이 나을 듯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철학의 고뇌에 무릎꿇는 범인으로서 답없는 문제가 그토록 연속되는 점에서는

정신적 피로와 가독성 하락을 막을 바 없기도 하다.

순수하게 개인적인 별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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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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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로렌 슬레이터 / 2004작 / 에코의 서재 / 조증열 역 / 2005 역

 

이미 인터넷이나 TV프로그램을 통해 익히 알려진 심리실험 하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온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실험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물론 전기충격은 가짜이고 단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시에 충실히 응할지 알아보고자 함이었다.

결과는 65%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치명적인 충격을 가한다는 것.

그리고 인터넷이나 TV프로그램은 자못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이것이 권위에 굴복하거나 상황이 조성되면

얼마든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는 증거라며 겁을 준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애당초 가장된 상황에서 일어난 실험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까?

그리고 상황이 조성되어도 실험을 거부했던 35%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복종한 사람들과 거부한 사람들, 그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항상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인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이는 통계수치라고 하더라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 책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심리실험들을 소개해주는 한편

우리가 한 방향으로만 해석하던 심리실험들을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실험에 대한 충실한 설명과 실험자와 반론자들의 의견 소개, 그리고 저자의 해석이 곁들여져

이 책은 10가지 심리실험을 수 없이 많은 생각할거리로 만들어 우리 머릿속에 던져준다.

즐겁게 그것을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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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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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 앤서니 버지스 / 1962 / 민음사

 

-마지막 장은 사회적 타협인가?-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던 것은 어렸을 적 주말의 비디오 기행 프로그램에서였다.

영화내용을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보고 싶어하지 않던 프로그램이었지만,

가족들과의 주말 늦은 아침식사엔 항상 그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었다.

가족들의 삶을 지탱하느라 극장도 거의 안가시던 부모님이 상당히 즐거워하며 보시는데

어떻게 다른 프로그램을 보자고 하겠나.

하지만 그 날 시계태엽오렌지를 소개하는 그 순간에만은 나도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적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그 스토리는 정말 흥미로웠다.

 

오랜 시간이 흘러 책을 잡게 되었다.

책은 내가 비디오 기행 프로그램을 통해 보았던 스토리를 구체적인 문장으로 선사했고

그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듯이 비디오 소개 프로그램은 영화의 거의 모든 내용을 알려주는 한편,

라스트씬만은 알려주지 않는다.

난 그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3부 7장, 책의 마지막 장은 나를 아연하게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알렉스의 일상.

그런 알렉스를 선행 이외의 다른 행동은 할 수 없도록 개조해버린 정부의 프로그램.

인간에게서 선택의 기회를 빼앗아 선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면

그것은 아예 인간성을 앗는 일 아닐까?

더구나 만들어낸 인간이 선하지도 않으면?

전체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에 던지는 경고.

 

헌데 3부 7장은 다시 악인으로 돌아온 알렉스가

악행을 그만두면서 자신이 철이 들었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끝난다.

갑작스런 성장소설적 결말에 난 당황했다.

 

자아, 숨을 한 번 가다듬고.

디스토피아적인 사회에 대한 소설의 완결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애당초 성장소설이었나?

아니었다.

그런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결국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은 철회되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결말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의 문학적 미성숙은 경력을 생각해볼 때 이유가 되기 어렵다.

다만 힌트는 알렉스의 악행의 적나라한 묘사로 인해 작가가 도덕성이 없다는

비난을 들었다는 해설의 한 구절.

만약 이런 결말이 아니었다면 사회적 지탄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의심해본다..

 

그리고 과연 어떤 결말이라면 소설이 더욱 완성도를 가질 지 상상해 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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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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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이든 현재의 자기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책이 최고의 책이 되기 마련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든가 <느림> 등으로 밀란 쿤데라가 인가작가 반열에 올랐을 때에는 정작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우연히 선배의 추천으로 사두었다가 이제서야 읽게된 이 책을 통해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요즘들어 부쩍 까탈스러워지고, 어떤 화려하고 널리 인정받아온 맛에도 쉽사리 만족하지 못 했던 내 입맛에 딱 들어맞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맛있게. 달게 읽었다.

친구에게 빌려준 지금 정확한 구절이 생각나진 않지만, 슬픔이든 기쁨이든 고통이든 뭐든.. 비웃고 조롱해버리는 농담. 얼마전 우연히 보게된 미국의 '제리스프링거쇼(?)'를 보고는 참 추잡스럽고 유쾌한 농담이구나..싶었다. 인간관계 중 생각도 못해본 사례들을 들고 나온 초대손님과 웃음소리가 무척이나 유쾌한 방청객. 마음을 다치게 할 지도 모르는 말들과 욕들이 난무한 가운데에서도 끝은 웃음과 기립박수로 끝난다. 최고의 쇼라는 칭찬과 함께. 타문화를 매도하자는 건 아니지만,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 농담들을 웃어넘겨야 하는 걸 '멋'스러움과 '당연'으로 생각하는 듯한 지금. 물론 적당하고 건강한 농담은 정신건강에도 좋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담같은 지금.. 농담을 즐기던 주인공이 자신의 농담에 의해 한순간 추락하고, 또다시 농담처럼 지나간 진심들. 사랑..짓궂은 얼굴을 하고 진심을 희롱하는 농담들은 교활하다. 조롱받는 진심은 부끄럽나? 진심은 조롱받아도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만 그 웃음소리가 참기 힘들게 소음일 뿐이다. 하지만 결국 그 농담에 베이는 건 주인공.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농담. 차라리 농담이라는 고통스런 기억의 진실. 기억의 사실. 삶이 해대는 농담들에 어쩔 줄 모르는 인간. 우리들.. 어쩌면 모든게 농담일지 모른다. 주인공이 이 삶이 지독한 농담이라고 씹어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친한 벗과의 농담과 장난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농담.. 진심과 열기와 눈물을 진심과 열기와 눈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농담. 혹, 내가 걸어가는 방식조차 스스로 조작한 농담같은 진심과 열기와 눈물일까.. 그렇다면 그건 너무 슬플거다. 어깨에 힘주고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살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웃음이 아닌 조롱과 냉소로 위장하고 싶지도 않다. 상처를 방치해서 곪게 나두면 안 된다. 상처를 가리기 위해 옷을 겹겹이 더 입는 것도 안 된다. 넘어져서 무릎팍이 째지고 피가 나도 금세 일어나 친구들과 뛰어놀던 때가 참 아름답다. 스치는 바람결에 피가 멎고 상처가 상처로 단단해지는 그때가 참 아름답다.

농담.. 삶이 가끔 짓궂은 얼굴로 농담이나 해대는 때가 있었다. 그리고 또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한참 그렇게 놀려대다가 잠깐 쉬고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농담. 정말로 진심은 어찌되었건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삶이 농담이나 해댈 때가 다시 오면 기꺼이 같이 농담이나 지껄여 주리라. 그때는 그 짓궂게 지어진 미소에 더 환한 웃음으로 대해줘야지.
'지금'이 참 지리멸렬한 농담으로 억지웃음이나 짓게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나처럼 입맛에 맞을 지도 모르겠다. 맛이 덜 하든 좋든 그거야 각자의 취향이겠지만, 근래 들어 정말 배부르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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