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계태엽 오렌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시계태엽 오렌지 / 앤서니 버지스 / 1962 / 민음사
-마지막 장은 사회적 타협인가?-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던 것은 어렸을 적 주말의 비디오 기행 프로그램에서였다.
영화내용을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보고 싶어하지 않던 프로그램이었지만,
가족들과의 주말 늦은 아침식사엔 항상 그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었다.
가족들의 삶을 지탱하느라 극장도 거의 안가시던 부모님이 상당히 즐거워하며 보시는데
어떻게 다른 프로그램을 보자고 하겠나.
하지만 그 날 시계태엽오렌지를 소개하는 그 순간에만은 나도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적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그 스토리는 정말 흥미로웠다.
오랜 시간이 흘러 책을 잡게 되었다.
책은 내가 비디오 기행 프로그램을 통해 보았던 스토리를 구체적인 문장으로 선사했고
그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듯이 비디오 소개 프로그램은 영화의 거의 모든 내용을 알려주는 한편,
라스트씬만은 알려주지 않는다.
난 그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3부 7장, 책의 마지막 장은 나를 아연하게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알렉스의 일상.
그런 알렉스를 선행 이외의 다른 행동은 할 수 없도록 개조해버린 정부의 프로그램.
인간에게서 선택의 기회를 빼앗아 선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면
그것은 아예 인간성을 앗는 일 아닐까?
더구나 만들어낸 인간이 선하지도 않으면?
전체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에 던지는 경고.
헌데 3부 7장은 다시 악인으로 돌아온 알렉스가
악행을 그만두면서 자신이 철이 들었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끝난다.
갑작스런 성장소설적 결말에 난 당황했다.
자아, 숨을 한 번 가다듬고.
디스토피아적인 사회에 대한 소설의 완결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애당초 성장소설이었나?
아니었다.
그런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결국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은 철회되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결말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의 문학적 미성숙은 경력을 생각해볼 때 이유가 되기 어렵다.
다만 힌트는 알렉스의 악행의 적나라한 묘사로 인해 작가가 도덕성이 없다는
비난을 들었다는 해설의 한 구절.
만약 이런 결말이 아니었다면 사회적 지탄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의심해본다..
그리고 과연 어떤 결말이라면 소설이 더욱 완성도를 가질 지 상상해 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