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비의 남자 펄프픽션 2
이경자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소유하지 않는 사랑

 

 

 

처음엔 이경자 작가라길래 누군가 했다. 소개글을 읽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절반의 실패'를 쓴 이라고 한다. 그녀가 일본영화 '감각의 제국'을 우리나라에 정식 개봉하기전에 구해다 보고 영원과도 같은 남녀간의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에 대하여 그 합일의 꿈같은 느낌을 글로 표현해보고 싶었다는게 창작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수위가 상당하다. 일전에 '핑크 카네이션'을 보고 러브씬이 빈번해 대중교통 수단내에서 보기가 참 민망하더라고 고백 했더랬는데 이 소설에 비하면 약과다. 솔직히 민망할 정도로 농도가 진하다. 하지만 그저 그런면으로만 어필한다고 오해하면 오산이다. 나름대로 전해주는 주제가 꽤 마음에 들었더랬다.

 


주인공 귀비는 귀비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양귀비가 그랬듯이 남자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었다.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남자들이 종국에 머무르고 싶은 어머니와도 같은 내 고향과도 같은 그런 매력이 있었다. 학창시절 절친한 친구의 삼촌에게 강제로 처녀성을 잃어 버리고 고통의 세월을 살았을법도 한데 세상 모든 남자들을 사랑했던(?) 귀비는 그를 증오하지도 그리워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후 그런 남성편력으로 점철된 귀비의 젊은 시절. 과연 세상에 저런 여자가 존재할까 싶기도 하지만 귀비는 그렇게 21세기형 자유부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귀비가 간호사로 일할때 그 병원의 의사였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 연애할때는 몰랐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인 동철은 마조히스트였다. 그런 변태적인 남편의 성적취향도 그러려니 했지만 동철은 치명적인 의료사고를 연달아 두차례 내고서 우울증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된다. 이제 남편의 경제력은 없어졌다. 고로 가정에서 가장으로서의 권위 또한 상실되었다. 그래도 귀비는 빠르게 현실에 적응해간다. 성적이 신통찮은 자녀들을 불러 앉히고 일찌감치 제 살아갈 길을 찾으라는 둥 친구와 함께 부동산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등등. 다만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일찌감치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외동아들을 의사로 키워내신 시어머니 그 어르신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무너질까 그것이 걱정이었다는 귀비. 

 


그렇게 미워할래야 미워할수도 비난을 할수도 없었던 근자에 본 소설들의 등장인물 중 가장 독특하고 강렬했던 귀비라는 케릭터. 그녀를 둘러싼 그 모든 악조건과 갑갑한 일상들 다 대담하게 이겨낸 귀비였지만 단 한가지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남편의 남성성의 부재에서 오는 그리운 '남자의 품' 이었다. 그래서 귀비는 남편의 입원 후로도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게 된다. 문학평론가 정호웅씨의 해설대로 마치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보살의 사랑'을 베풀듯이 그렇게..

 


그 중 자신의 고객으로 만났던 중견기업 사장인 구도섭과의 이야기가 주된 수토리 라인을 형성하는데 구도섭이라는 인물은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백억대의 재산을 일구고 나서 오히려 더 옷차림은 남루하게 해다니는 그야말로 '바른생활 사나이'였다. 자신의 재산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꼬이는 수많은 여성들. 그는 그런 생활을 경계하기 위해 철저히 사치와 과시를 버리고 여자를 멀리하며 가정을 지켜온 남자였다.

 


허나 도섭에게 있어 귀비는 마치 지금은 아스라한 첫사랑의 그것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이때껏 자신의 돈을 보며 접근했던 수많은 여인네와는 차원이 다른 '여자' 자체로서 호감이 가는 사람. 문자메세지 몇 글자에 하루종일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구사장. 결국에 도섭은 그간 철옹성 같이 지켜온 자신의 신념을 귀비로 인해 저버리게 된다. 그리고는 고백한다. 왜 이런 좋은 인연을 그 오랜 세월동안 우린 모르고 살았을까라고. 그리고 정리를 할테니 같이 살자고 하는데.

 


그 때 사탕하나 더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 달래듯 귀비가 내던진 한 마디. 그게 이 소설의 주제였다. 꽤나 공감하며 강렬하게 다가왔던..

 


'난 사람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 사람을 가지려는 게 가장 나쁜 욕심 같아. 그건 말이야, 정말 불가능해. 가져지지 않아. 그냥 보는 거야. 있는 그대로. 생긴 대로. 그냥 지내는 거야. 미워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P.132)

 


맞는 말이다. 사랑이 그 순수함을 넘어 소유로 변할때 우린 얼마나 못난 모습을 보이곤 했는가. 아름다운 꽃을 혼자만 편히 보고파 꺾어가지고 왔더니 시들어 버렸던 기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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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dgd923 2009-09-23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