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양분
마이클 아이건 지음, 이재훈 옮김 / 한국심리치료연구소 / 2009년 4월
장바구니담기


그들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라는 느낌을 떨어버릴 수 없다.(5장) 정서적인 독소의 감소는 그들에게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들은 얼마의 행복한 순간들을 견딜 수는 있지만, 행복한 삶은 견디지 못한다.
사랑에 의해 독화된 개인들은 끝 모르는 자기 의심으로 인해 고통 받는다. 그들은 나쁨이 어디에서 오는지 찾아내지 못한다. 사랑이 죽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이중구속의 문제보다 더 미묘한 것이다. 이중 구속의 경우, 자기는 증오를 감추고 있는 사랑의 표현에 의해 혼동을 겪는다. 그러나 사랑에 의해 독화된 개인들은 정말로 사랑을 받았던 자들이다.
-9쪽

사랑이 독을 갖고 있을 때,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무한한 양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아부을 수 있다. 이것은 꼭 아이에 대한 숨겨진 증오의 결과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아이가 부모의 깊은 감정을 느끼는 자연스런 대상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결과다. 부모의 억압된 에너지가 아이에게 흘러들어가, 좋음과 나쁨을 구별할 수 없는 혼합물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부모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아이를 덮는다. 따라서 사랑은 불안한 통제, 걱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야망, 자기-증오를 포함한 다양한 성향들과 혼합된다. 부모의 사랑은 순수하지 않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 혼합되어 있다. -9-10쪽

흔히 부모는 자녀를 그들 자신의 연장으로, 그들의 자기 만족을 위한 양분으로, 자기감을 위한 자극제로 간주한다. 부모-자녀의 경계들은 다양하며 유동적이다. 아이는 일상생활 속에 스며든 메시아적인 기대를 소화해야만 한다. 어느 정도 우리는 심리적인 양분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심리적인 독을 피하는 법을 배운다. 종종 우리는 그 일에 대체로 성공하지만, 거기에는 희생자가 따르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분 안에 있는 독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0 쪽

세상에는 우리가 도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사례들에서도 종종 무언가가 전달되고 무언가가 변한다. 믿음, 신실함, 현실주의, 지혜 그리고 솜씨의 어떤 조합이 이것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치료사는 잘 발달된, 냉소적이고 아이러니하며 비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 그것은 생의 일부이자, 부분적으로 정교화된, 상처 입은 존재의 일부이다. 쓰디쓴 상처가 없다면, 치료사가 과연 얼마나 공감적일 수 있으며, 얼마나 깊은 영역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기쁨을 맛보지 않고는 가장 깊은 질병은 치료될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이다. 평범한 삶으로부터 숨겨진 곳에서 발생하는 기적들이 있다. 치료는 사람들이 그런 곳을 믿고 찾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때가 되면, 하늘의 자기, 지옥의 자기, 땅의 자기가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7쪽

그동안에 나는 앨리스의 고통을 담아주고 있었다. 그때 앨리스는 그녀 자신 - 앨리스가 된 나 -에게 고통을 집어넣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 어머니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깊은 수준에서, 앨리스가 마침내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앨리스의 고통에 무감각했고, 뿐만 아니라 앨리스의 고통을 양분으로 섭취하고 있었다. 초기단계의 작업에서 나는 붕괴하지 않고, 혹은 그녀로 인해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 앨리스의 고통에 공감해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훨씬 더 많이 상호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다. -25쪽

많은 사람들이 심리치료의 도움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는 처벌적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것에 대해 낙인찍히는 느낌을 갖는다. 과연 미국 대통령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도움을 받는다고 시인할 수 있을까? 환자가 되는 것은 성적인 문란함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로 취급된다. 우리 모두는 그저 인간일 뿐이라고 시인하면서도 우리에겐 여전히 음울한 계명이 적용된다. 즉, "너희에게는 결코 어떤 결정도 있어서는 안 된다." -41쪽

우리에게는 잘못된 것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잘못된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우리에게 어리석음과 바보스러움을 허용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혹독하다고 느끼거나, 통곡하며 비탄에 젖거나, 비명을 지를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에 대한 관심에 벗어나는 시간을 갖는 것 이상이다. 우리가 속한 사회,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부분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42쪽

십대들에게 이상주의는 너무도 실제적이다. 개인의 고통은 실제적이다. 이 세상에 이상주의와 개인의 고통을 위한 진실한 장소가 없다면, 이 세상은 십대를 위한 곳이 아니다. 십대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우울증은 힘의 반대 측면이다. 자살의 양심의 표시다.
고통받는 이상주의자의 자살은, 절망적인 상황에 의해 궁지에 몰린 사람의 자살 혹은 너무나 잔혹하게 훼손당해 삶이 공허하고 하찮게 보이는 사람의 자살과는 다르다. 이상주의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언제나 부족하게만 보이는 자신의 성취에 의해 고통 받는다. 물질주의자는 언제나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지만, 그래도 그들이 소유하는 것에 만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44쪽

도리스의 부모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도리스는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러나 도리스의 부모는 그녀가 자신에 대해 불안해하도록 만들었다. ...
도리스에게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혹은 그녀가 하고 싶은 어떤 것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도리스가 조용히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면 부모 중의 한 사람은 언제나 이런저런 활동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도리스가 무언가를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면, 부모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고심했다. ...-50-51쪽

도리스의 부모가 인간으로서 도리스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닐 것이다. 문제를 복잡하게 한 것은, 그들은 도리스를 사랑했지만 바로 그들의 그 사랑이 도리스의 불안을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도리스는 언제나 잘 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도리스가 어떻게 하는지 지나치게 걱정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도리스를 그녀의 친구와 비교했다. 누가 무엇을 더 잘했을까? X는 무엇을 했는데, 도리스는 그것을 했을까? 그들은 도리스가 놓칠지도 모르는 어떤 것에 대한 촉수를 갖고 있었고, 상상 속에서 혹은 실제로 도리스에게 결핍된 것에 불안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고, 도리스의 존재의 핵심과 가족의 핵심에 있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뿌리 깊은 무능과 불완전함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결함을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51쪽

어머니는 그녀 자신의 삶에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의, 살아있는 아이를 키울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능력과 자신감으로 위장했던 어머니의 겉모습은 주지화할 수 없거나, 사업상의 문제나 예술작품을 다루듯이 할 수 없는 과제 앞에서 무너졌다. 존재와 존재의 만남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던져졌던 것이다. 아기의 원시적 자기는 타자의 자기에게서 양분을 얻고자 한다. 성취에 대한 환상들은 자기와 자기가 만나는 삶을 대신할 수 없다. -57쪽

도리스의 어머니는 돌봄의 외적인 사항들을 강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녀는 아기를 보살폈고,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최고의 육아환경, 그리고 나중에는 최상의 교육적 및 인간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희생해서 아기에게 주었기 때문에 은밀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는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 역할은 싫고 억울했다. 그녀는 성공하고 싶은 자신의 갈망을 희생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그녀의 발목을 잡은 아이를 증오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갓난아기에 대한 자신의 분노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죄책감과 결합된 분노는 그녀의 정서적인 억제와 단순히 존재하지 못하는 그녀의 무능력을 더 악화시켰다. 그녀는 도리스를 대단한 아이로 만들지 않고서는 도리스에게 아낌없이 줄 수 없었다. -58쪽

도리스는 사랑과 독소가 뒤섞여있어서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정서적 양분을 흡수하며 살았다. 사랑은 심리적인 독소를 먹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독소는 사랑을 독으로 변형시킨다. 사랑은 자기 증오를 위한 둥지를 제공한다. 도리스가 받은 사랑은 도리스의 눈을 멀게 했고, 그녀의 자기 안에 독이 퍼져가는 과정을 보지 못하게 했다. -59쪽

나의 붕괴는 오점이에요.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오점을 보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넓게 퍼져있는지 보고 있어요. 그건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있어요. 그것은 털어내거나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에요. 지금 나는 좋아지고 있어요. 어머니는 벌써 내가 붕괴했던 적이 아예 없었던 양 취급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아니면 그저 사고로, 탈선으로, 실수로 취급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하지만 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나의 붕괴는 우리 가족의 핵심적인 구성요소에요. 그것이 진실이에요. 그것은 우리 가족 내의 망가진 무언가를 드러내고 있어요. 그것은 파묻어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할 것이에요. 나의 붕괴는 할 말이 있었던 거예요. 그것은 우리 가족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말해주고 있어요. -64쪽

도리스가 일을 잘 하려면 충분한 지지와 사랑(양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이 사실을 수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리스는 지지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신을 공격했다. 그녀는 자신이 약하고, 징징거리는 아이이며, 너무 떠받들어지고 응석받이로 자라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했다. 직장에서 지지와 양분을 제공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사치와 방종으로 보였다. 지지와 양분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그 사실은 그녀에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65쪽

나는 단순히 일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마침내 나의 전 존재가 저항하면서,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소리를 쳤던 거예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속이면서 살 필요가 없다고 말이에요. 내가 나의 삶을 생생하게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나는 인간존재였다는 것을 수치스러워했어요. 나는 내가 충분히 비인간적이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다녔던 거예요. 나의 붕괴는 나의 상사처럼 일하는 기계가 되지 않도록 나를 구원해준 사건이었어요. -68쪽

"지금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에요. 나는 이제 겨우 더듬거리며 찾고 있어요."
... 도리스의 집에서는 더듬거리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더듬거리는 것은 권장할만한 덕목이 아니었다. 그것은 긍정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도리스가 치룬 대가는 무엇이었던가! 도리스는 살아가면서 꿈틀거리고 더듬거릴 공간이 필요해서 심리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불확실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위한 공간을 찾기 위해 왔다. -68쪽

심리치료는 도리스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었고, 그녀의 가족이 그리고 아마 사회도 직면할 수 없었던 자기에 대한 나쁜 감정들을 연결시킬 수 있도록 지지를 제공했다. 가정과 사회에 "무언가 나쁜 것"이 있다는 느낌은 매우 실제적으로 인식되었다. 잘못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방치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심리치료는 사람들이 축적된 심리적인 독소를 뽑아내고 보다 적은 독소가 담긴 양분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도움을 준다. 삶에서 독소가 없는 양분(사랑)이란 없다. 그러나 삶에서 사람들은 자살만이 유일한 길인 양 느껴질 정도로까지 독소가 증가하는 지점에 도달하기도 한다. -7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력과 은총
시몬느 베이유 지음, 윤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껏 만나본 적은 없었으나 여태까지 기다렸던 진실한 삶을 만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인의 풍경 - 김민웅의 인문학 에세이
김민웅 지음 / 한길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가난한 마음을 채우는 귀중한 양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더랜드 여행기 - Izaka의 쿠바 자전거 일주
이창수 지음 / 시공사 / 2006년 2월
품절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룡 대부분이 이 정도 크기였다면, 인간의 삶은 정말 저주스러울 정도로 공포로 가득했을 것이다. 양식장 광어들처럼 언젠가 무지막지한 존재에 의해 잡아 먹혀야만 하는 그런 삶을 누가 원하겠는가. -62쪽

아이들이 동물원에서 다치는 사고가 가끔 발생한다. 아이들이 티거나 피글리나 푸우처럼 생긴 동물에게 다가가 소꿉장난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호랑이나 곰은 아이의 뼈를 으스러뜨리고 살가죽을 찢어 놓는다. 이러한 참사의 원인은 아이들이 동물을 친숙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은 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쥐나 곰은 사람의 친구일지 몰라도, 현실 세계의 그것들은 몹쓸 병균을 옮기고 사람을 갈갈이 찢어 죽인다. -68쪽

왜 나는 긴장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는 관광객처럼 구는 것일까. ‘쿠바는 위험한 나라’라고 말하면서도 역시 ‘쿠바가 주는 이미지’로 유희를 하는 게 아닐까. 쿠바의 이미지에 매료됐으면서 괜시리 용감한 척 하는 나, 사라져야 할 것이다. 삶은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쉽게 살아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류를 범한다.
나는 이미지 속을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백만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나의 신변에는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나는 쿠바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 나는 피를 철철 흘리고 내장을 다 드러낸 채 죽을 수 있는 현실 속에 들어 와 있다. -69쪽

객관적으로 보자면, 기본적으로 바람이 형성되는 것은 대양 복사와 지구의 가열 및 냉각과정 그리고 자전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 위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미친 듯이 부는 바람이 이집트의 신 ‘레’와 ‘눈’이 사소한 시비가 붙어서 생긴 것은 아닌지, 하데스가 35분이 넘어도 도착하지 않은 도미노피자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상기류를 형성하는 온난화를 탓하기도 하고, 눈꼽만큼도 환경에 관심이 없는 미국을 욕한다. 아니면 조금 과학적으로 생각해, 지구의 공전 궤도가 10만 년마다 타원형과 유사한 형태에서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하는데, 하필 그것이 오늘부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가장 신빙성이 있는 생각은, 자신에 대한 경외심은커녕 파괴만을 일삼는 인간들에 대해 불만을 느낀 자연이 나 같은 연약한 자전거 여행자를 골라서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치 ‘너 잘 만났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76쪽

하지만 내 다리는 한번도 날 속여본 적이 없다.
장대비가 회색 하늘에서 쏟아지던 그날도,
쉬지 않고 진흙탕 속에서 페달을 밟았던 내 다리는
내 머리보다 위대하다. -80쪽

멀리서부터 두 선수가 각축전을 벌이는 것이 보였다. 둘 다 엉덩이를 열심히 흔들며 결승선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선수가 약 0.1초 차이로 오늘의 구간에서 1등을 했다.

바로 이 0.1초의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베네수엘라 선수는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선수는 2등 선수보다 0.1초만큼 우월한 것이 아니다. 그는 1등과 2등의 차이만큼이나 우월하다. 그는 이제 산타클라라의 승자로 기억되는 사람이고, 2등을 한 선수는 금방 잊히게 된다. 이것은 비단 사이클 경기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138쪽

자전거에 몇 시간 동안 앉아 페달을 밟다가 결승선 즉, 내 상상 속에 자리한 목적지의 팻말을 지날 때의 느낌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것을 방송 때문에 빼앗길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처절할 정도로 몸의 에너지를 다 사용하고 나서 마시는 맥주의 느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것인가. 내가 카메라에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은 암, 청춘은 청춘 - 오방떡소녀의 상큼발랄한 투병 카툰
조수진 글.그림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는, 소녀 같다. 실제로는 서른 살을 넘겼으면서도 겉으로는 스무 살 같은 외모를 지녔다. 정말 ‘소녀’ 같다.  그리고 소녀 같이 꽃미남을 정말 좋아하고, 소녀 같이 만화도 정말 좋아한다.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꽃미남의 왕자님이 등장하는 짜릿한 로맨스를 아직도 꿋꿋하게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게, 정말 ‘소녀’라니까, 서른 살을 넘겼으면서도! 
   
   그녀는, 소녀다. 알고 보니, 그 소녀 같은 사람이 사실은 S대 출신에, S사 출신이었다. 충격이었다. 원래 그렇게 똑똑하고 그렇게 잘났으면 성질이라도 지랄 같아야 하는데 말이지, 그런데 정말 소녀 같이 순수하다. 겉과 속이 다 곱다. 삼십 세가 럴수럴수,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이쯤 되면 열등감이 뼛속까지 사무치지 않을 수가 없다. 어흐!   


   그녀는 참 아름다운 소녀다. 나는 요양원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런데, 표정이 너무 밝아보여서 암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옆에 있던 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귓속말을 했었다. ‘쯧쯧, 저 애는 어린 나이인데, 아픈 부모님을 수발하느라 고생하는 것 같아.’ 그런데, 아니었다. 암에 걸렸으면서도, 몇 년 동안이나 투병하며 온갖 고생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밝아보였던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줄곧 ‘소녀’이기를 고집해온 것 같았다. 지독한 불안에도, 지난한 고통에도 그녀는 소녀이기를 고집했던 것이었다. 그 소녀는 생명을 고집하고, 희망을 고집하고, 사랑을 고집하고, 웃음을 고집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가 서른 살을 넘겼으면서도 아직도 방년, 꽃다운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데에는 그런 옹고집이 있었던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뿌리를 내리기 쉬지 않는 식물들처럼 그녀에게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었다. 인정사정없이 사망률 1위인 암도 그 옹골찬 생명력을 꺾지 못한다. 그 어떤 것도 그 아름다움을 어그러뜨리지 못한다. 그녀는 오래 앓았고, 깊이 앓았다. 그래서 진정으로 앓은 사람만이 비로소 가지게 되는 아름다움이 그녀에게 있다. 아마도 그녀는 서른 살을 훌쩍 넘기고, 다른 이들 같으면 서러움이 사무칠 그런 나이가 되어도 계속해서 소녀를 고집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끝까지 소녀일 것이다.  

 
   그녀는 좋은 친구다. 암이 찾아와서 아무리 괴롭혀도 순수함을 순순히 내어주는 법이 없었다. 격렬한 순정으로 기어코 암을 변화시킨다. 암을 친구로 삼아서 기어코 자신도 변화하고 성장하고야 만다. 암도 친구로 삼을 정도이니, 그녀가 얼마나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녀가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오방떡소녀’를 그렸다. 세상의 모든 암 환자들에게, 많이 힘들고 많이 지치고,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너무 울고 싶고 그리고 또한 너무 웃고 싶은 그 모든 암 환자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다. 

 

    오방떡소녀 이야기는 암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경험을, 떠올리기도 싫은 그런 경험을,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경험을, 견딜만한 기억으로, 잘 견뎌내야 할 과거로 변화시켜준다. 꾹꾹 억눌러놓았던 지옥 같은 감정들을 다독여주고, 블랙홀 같이 영원히 뚫려 있는 것 같은 마음 한 구석을 채워주는 것만 같다. 오방떡 소녀의 그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어느 정도 다 견딜만한 느낌이 든다. 날이 선 마음은 어느새 비무장지대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친구를 만나길 바란다. 오방떡소녀를 만나길 바란다. 인생의 가장 혹독한 시절에도 소녀됨을 꽃피우는 친구를 만나고, 얼싸안고 실컷 울고, 또 실컷 웃기를 바란다. 마땅히 받아야 했었으나 받지 못했던 그 위로를 저마다 얻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