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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 여행기 - Izaka의 쿠바 자전거 일주
이창수 지음 / 시공사 / 2006년 2월
품절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룡 대부분이 이 정도 크기였다면, 인간의 삶은 정말 저주스러울 정도로 공포로 가득했을 것이다. 양식장 광어들처럼 언젠가 무지막지한 존재에 의해 잡아 먹혀야만 하는 그런 삶을 누가 원하겠는가. -62쪽

아이들이 동물원에서 다치는 사고가 가끔 발생한다. 아이들이 티거나 피글리나 푸우처럼 생긴 동물에게 다가가 소꿉장난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호랑이나 곰은 아이의 뼈를 으스러뜨리고 살가죽을 찢어 놓는다. 이러한 참사의 원인은 아이들이 동물을 친숙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은 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쥐나 곰은 사람의 친구일지 몰라도, 현실 세계의 그것들은 몹쓸 병균을 옮기고 사람을 갈갈이 찢어 죽인다. -68쪽

왜 나는 긴장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는 관광객처럼 구는 것일까. ‘쿠바는 위험한 나라’라고 말하면서도 역시 ‘쿠바가 주는 이미지’로 유희를 하는 게 아닐까. 쿠바의 이미지에 매료됐으면서 괜시리 용감한 척 하는 나, 사라져야 할 것이다. 삶은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쉽게 살아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류를 범한다.
나는 이미지 속을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백만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나의 신변에는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나는 쿠바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 나는 피를 철철 흘리고 내장을 다 드러낸 채 죽을 수 있는 현실 속에 들어 와 있다. -69쪽

객관적으로 보자면, 기본적으로 바람이 형성되는 것은 대양 복사와 지구의 가열 및 냉각과정 그리고 자전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 위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미친 듯이 부는 바람이 이집트의 신 ‘레’와 ‘눈’이 사소한 시비가 붙어서 생긴 것은 아닌지, 하데스가 35분이 넘어도 도착하지 않은 도미노피자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상기류를 형성하는 온난화를 탓하기도 하고, 눈꼽만큼도 환경에 관심이 없는 미국을 욕한다. 아니면 조금 과학적으로 생각해, 지구의 공전 궤도가 10만 년마다 타원형과 유사한 형태에서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하는데, 하필 그것이 오늘부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가장 신빙성이 있는 생각은, 자신에 대한 경외심은커녕 파괴만을 일삼는 인간들에 대해 불만을 느낀 자연이 나 같은 연약한 자전거 여행자를 골라서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치 ‘너 잘 만났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76쪽

하지만 내 다리는 한번도 날 속여본 적이 없다.
장대비가 회색 하늘에서 쏟아지던 그날도,
쉬지 않고 진흙탕 속에서 페달을 밟았던 내 다리는
내 머리보다 위대하다. -80쪽

멀리서부터 두 선수가 각축전을 벌이는 것이 보였다. 둘 다 엉덩이를 열심히 흔들며 결승선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선수가 약 0.1초 차이로 오늘의 구간에서 1등을 했다.

바로 이 0.1초의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베네수엘라 선수는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선수는 2등 선수보다 0.1초만큼 우월한 것이 아니다. 그는 1등과 2등의 차이만큼이나 우월하다. 그는 이제 산타클라라의 승자로 기억되는 사람이고, 2등을 한 선수는 금방 잊히게 된다. 이것은 비단 사이클 경기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138쪽

자전거에 몇 시간 동안 앉아 페달을 밟다가 결승선 즉, 내 상상 속에 자리한 목적지의 팻말을 지날 때의 느낌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것을 방송 때문에 빼앗길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처절할 정도로 몸의 에너지를 다 사용하고 나서 마시는 맥주의 느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것인가. 내가 카메라에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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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암, 청춘은 청춘 - 오방떡소녀의 상큼발랄한 투병 카툰
조수진 글.그림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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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소녀 같다. 실제로는 서른 살을 넘겼으면서도 겉으로는 스무 살 같은 외모를 지녔다. 정말 ‘소녀’ 같다.  그리고 소녀 같이 꽃미남을 정말 좋아하고, 소녀 같이 만화도 정말 좋아한다.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꽃미남의 왕자님이 등장하는 짜릿한 로맨스를 아직도 꿋꿋하게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게, 정말 ‘소녀’라니까, 서른 살을 넘겼으면서도! 
   
   그녀는, 소녀다. 알고 보니, 그 소녀 같은 사람이 사실은 S대 출신에, S사 출신이었다. 충격이었다. 원래 그렇게 똑똑하고 그렇게 잘났으면 성질이라도 지랄 같아야 하는데 말이지, 그런데 정말 소녀 같이 순수하다. 겉과 속이 다 곱다. 삼십 세가 럴수럴수,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이쯤 되면 열등감이 뼛속까지 사무치지 않을 수가 없다. 어흐!   


   그녀는 참 아름다운 소녀다. 나는 요양원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런데, 표정이 너무 밝아보여서 암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옆에 있던 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귓속말을 했었다. ‘쯧쯧, 저 애는 어린 나이인데, 아픈 부모님을 수발하느라 고생하는 것 같아.’ 그런데, 아니었다. 암에 걸렸으면서도, 몇 년 동안이나 투병하며 온갖 고생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밝아보였던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줄곧 ‘소녀’이기를 고집해온 것 같았다. 지독한 불안에도, 지난한 고통에도 그녀는 소녀이기를 고집했던 것이었다. 그 소녀는 생명을 고집하고, 희망을 고집하고, 사랑을 고집하고, 웃음을 고집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가 서른 살을 넘겼으면서도 아직도 방년, 꽃다운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데에는 그런 옹고집이 있었던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뿌리를 내리기 쉬지 않는 식물들처럼 그녀에게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었다. 인정사정없이 사망률 1위인 암도 그 옹골찬 생명력을 꺾지 못한다. 그 어떤 것도 그 아름다움을 어그러뜨리지 못한다. 그녀는 오래 앓았고, 깊이 앓았다. 그래서 진정으로 앓은 사람만이 비로소 가지게 되는 아름다움이 그녀에게 있다. 아마도 그녀는 서른 살을 훌쩍 넘기고, 다른 이들 같으면 서러움이 사무칠 그런 나이가 되어도 계속해서 소녀를 고집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끝까지 소녀일 것이다.  

 
   그녀는 좋은 친구다. 암이 찾아와서 아무리 괴롭혀도 순수함을 순순히 내어주는 법이 없었다. 격렬한 순정으로 기어코 암을 변화시킨다. 암을 친구로 삼아서 기어코 자신도 변화하고 성장하고야 만다. 암도 친구로 삼을 정도이니, 그녀가 얼마나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녀가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오방떡소녀’를 그렸다. 세상의 모든 암 환자들에게, 많이 힘들고 많이 지치고,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너무 울고 싶고 그리고 또한 너무 웃고 싶은 그 모든 암 환자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다. 

 

    오방떡소녀 이야기는 암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경험을, 떠올리기도 싫은 그런 경험을,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경험을, 견딜만한 기억으로, 잘 견뎌내야 할 과거로 변화시켜준다. 꾹꾹 억눌러놓았던 지옥 같은 감정들을 다독여주고, 블랙홀 같이 영원히 뚫려 있는 것 같은 마음 한 구석을 채워주는 것만 같다. 오방떡 소녀의 그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어느 정도 다 견딜만한 느낌이 든다. 날이 선 마음은 어느새 비무장지대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친구를 만나길 바란다. 오방떡소녀를 만나길 바란다. 인생의 가장 혹독한 시절에도 소녀됨을 꽃피우는 친구를 만나고, 얼싸안고 실컷 울고, 또 실컷 웃기를 바란다. 마땅히 받아야 했었으나 받지 못했던 그 위로를 저마다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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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암, 청춘은 청춘 - 오방떡소녀의 상큼발랄한 투병 카툰
조수진 글.그림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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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앓아낸 사람만이 전해줄 수 있는 위로와 웃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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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
류대영 지음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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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의 저자, 류대영은 이 책을 미국 사학계의 지적인 탈식민지화 작업을 염두해두고 집필했다. 미국의 해외 선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70년대 월남전 패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월남전 패배의 충격으로 타민족, 타문화에 가졌던 우월적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해외 선교활동이 미국 사학계의 학문적 관심선상에 올랐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최근에 나타난, 20세기 후반의 세계 역사를 전후시대라고 하지 않고 포스트콜로니얼 시대(postcolonial)라고 지칭하는 관점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여기서 포스트콜로니얼 시대라는 명칭은 식민지 경험을 20세기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으로 보고 식민지 경험을 겪은 식민지 시대의 가해자나 희생자 모두가 세계 역사를 보는 관점을 재점검해보자는 선언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해자의 경우에 식민지 시대의 왜곡된 세계관을 발견하거나 인정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희생자였던 피식민지권 학자들이 각자의 역사적 경험으로 미국 사학계의 탈식민지화 작업을 통한 역사적인 반성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또한 피식민지권 국가의 한 역사학자로써 이러한 정황을 의식하고 쓰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내에서의 기독교 역사 연구는 민족문제를 중심주제로 놓고 진행되어 온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내한 했던 미국 선교사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 전체를 한 집단으로 일반화 시키고 그 성격을 밝혀내는 작업을 통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지만 “선교사”라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핵심 주제를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는 구체적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함께 가졌던 중산층적 종교, 문화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미국 개신교 해외선교가 중산층적 사회종교현상이었다는 최근의 명제에 대한 선교현지의 사례 연구적 성격을 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선교사들이 누구였는지를, 왜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고찰하여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선교사들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역추적하고 있다. 이 두 개의 논리 전개는 동일한 연구대상을 두고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전자의 논지는 미국 선교사들이 근본적으로 미국의 기독교인이었고, 그들이 활동했던 장소가 한국이었음에 주목했다. 그리고 후자는 생활 양식, 종교 행위, 문화적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중산층적 성격을 밝혀내는 데에 주력했다.

진실에 대면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이야기 선교사를 읽으며 성인(聖人) 같이 느꼈던 언더우드,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 자랑스러웠던 알랜 등의 미국 선교사들의 환상을 치워내고 그들의 모습을 직시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당혹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전해주었던 복음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더해져서 한국 교회가 뿌리내렸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가볍게 볼 수는 결코 없다. 또한 이 연구는 선교사와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함에 있어서 출발점이자 귀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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