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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1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알게 된 건 자주 듣던 책팟캐스트의 책추천 코너를 통해서였다. 구미가 당길 만큼 솔깃한 추천사에 힘입어 도서관에서 몇 권을 빌려 봤는데 꽤 매력있는 만화였다. 그냥 쓱쓱 그린 듯한 단순한 그림체에 4컷 만화가 연상되는 소박한 형식이었지만, 그속에서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여자들의 마음을 공감가게 잘 그려내고 있었다. '여자 공감 만화'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제목 역시 어쩜 그렇게 입에 착착 감기게 뽑아냈는지! 그 결과 나도 그녀의 팬이 되었고 몇 권의 수짱시리즈가 내 책장에도 찾아왔다.
지난 주 오랫만에 가까운 작은도서관에 마실 갔다가 뜻밖에 마스다 미리의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이 무려 3권이나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원래 그책을 빌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냥 같이 빌리고 말았고, 주말 동안 침대를 뒹굴면서 금방 읽어버렸다. 이책은 마스다 미리의 다른 책들처럼 일상적인 내용이었고 책제목처럼 '소소한' 행복을 다룬 만화였다. 수짱시리즈가 독신 여성의 일상과 생각들을 그려냈다면,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은 결혼한 부부의 소박하고 알콩달콩한 생활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스다 미리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책 역시 여자인 치에코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치에코와 사쿠짱은 결혼한지 십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이 없이 연애하듯 사는 부부다. 비서로 일하는 치에코의 퇴근 시간에 맞춰 둘은 마트에서 장을 보며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룰에 맞춘 방식으로 식사를 하며 함께 디저트를 나눠먹으며 서로의 소소한 일상들을 나눈다. 새로 생긴 식당에 함께 음식을 먹으로 가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로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들고 오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 하나도 더 정성을 기울여 세심하게 고르기도 한다. 물론 그들 역시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서운해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결혼 후에도 혼자만의 시간 또한 소중하게 여기는 치에코는 때때로 퇴근 후 혼자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사쿠짱은 그런 치에코를 이해힌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자리를 즐기다 취해 돌아오는 사쿠짱을 위해 치에코는 이불을 따듯하게 데워두는 걸로 배려한다. 그 모습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은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일들을 통해 치에코와 사쿠짱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며 아끼는지,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해 하는지를 슬쩍슬쩍 풀어놓는다.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음이 피어나고 수시로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는 그들이 부러워진다. 결혼이 이런 소소한 행복을 함께 공감하고 나누는 거라면 사랑하는 누군가와 같이 그런 소박한 일상의 기쁨과 즐거움 들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혹은 좋겠다는 생각이 듬뿍 들게 하는 책이었다. 물론 그들처럼 아이가 없어 육아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그것은 동시에 육아의 행복도 포기하는 일이긴 하지만) 시월드로부터 자유로워 오래오래 연애 같은 결혼을 즐길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현실적으론 힘들겠지..
어느 날 밤, 치에코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란 뭘까? 행복.. 아, 그러고 보니 앤이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지.
『빨강 머리 앤』이 아니었나? 『앤의 청춘』 속 구절이었나? 있다! 앤의 대사.
"결국 제일 행복한 날이란 건 근사한 일이나 놀라운 일, 흥분되는 사건이 일어난 날이 아니라 진주가 실을 따라 한 알 한 알 미끄러지듯 단순하고 작은 기쁨을 계속해서 가져다주는 하루하루라고 생각해."
(87화 행복한 날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