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북한 요리 수업
휘슬러 R&D팀 엮음 / 미호 / 2016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심심하고 담백한 요리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입학시험날 조금 짠 콩나물국을 먹고 체한 다음부터 (너무 신기하게도) 짠 음식을 잘 못 먹게 된 나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올곧게 남들보다 한 단계 싱거운 입맛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위가 약한 탓에 매운 음식에도 취약한 데다 단 음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짜고 맵고 달달한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져 있어 문제라는데 내 입맛은 (현대인이 아닌 건지) 다행히 문제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내게 누군가 북한식 요리가 잘 맞겠다는 말을 했다. 각종 조미료가 일상화된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 요리들은 비교적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담백하고 소박한 맛이 있다고 말이다. 입맛에 따라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또 그런 건강한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느냔 말이지. 북한 요리라곤 평양냉면 함흥냉면 (지금 이것들을 북한요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도 밖에 모르기에 <처음 만나는 북한 요리 수업>은 뭔가 새로운 요리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주는 요리책이었다. 그러고보니 북한요리를 담은 요리책은 정말 처음인 듯하다.



 
 



  북한 요리의 특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끝나면 본격 요리 전 몇 가지 정보를 담은 프롤로그 꼭지가 나온다. 기본 조미료에 대한 설명, 깊은 국물을 위한 재료별 육수 내는 방법, 좋은 식재료 고르는 법, 북한 명절 요리 몇 가지의 레시피가 이어진다. 그리고 스테인리스 주방기구들이 많이 나오는 휘슬러의 R&D팀이 참여한 요리책이라 그런지 다른 요리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스테인리스 스틸 조리도구 사용법이 간략하게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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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는 북한 요리 수업>은 간단 한 그릇 요리, 담백하게 먹는 매일 집밥, 손님 초대용 한상차림, 대표 인기메뉴, 건강 간식 & 디저트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요리 이름들을 쭈욱 살펴보면 몇몇 생경한 단어들을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그리 낯설지 않다. 비록 지금은 분단된 채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걸 요리 이름들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겉보기엔 우리네 밥상과 비슷하지만 저자는 막상 북한 음식들을 먹어보면 우리 음식들과 맛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어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지역별로 음식맛이 다르듯 북한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위도 차이로 차이나는 기후만 해도 음식맛이 달라질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한 그릇 음식인 홍합김치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레시피가 쏟아진다. 닭고기죽, 시래기국밥, 된장감자찌개, 가지볶음, 쇠고기전골, 가지순대, 녹두묵채, 팥죽 등 익숙한 메뉴들과 함께 명태회국수, 밝은쟁이볶음, 콩나물김치, 햇닭탕, 햇닭찜, 혼돈찜, 만경닭찜, 대동강 숭어국, 입쌀군만두 등 조금은 생경한 메뉴들도 보인다. 마지막 꼭지에 실린 북한 간식들은 부모님 어린 시절의 주전부리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느낌이다. 그런데 약간의 반전도 있었으니 우리에게도 익숙한 된장감자찌개를 북한에서는 된장을 식용유에 먼저 볶아서 부드러운 맛을 낸단다. 또한 명태회국수는 이름과 달리 명태가 아닌 북어가 재료로 등장해 살짝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준다고 해도 북어살을 명태회라고 하기엔 무리가 아니냔 말이지. 

  여러 음식들을 통해 비슷한 듯 다른 북한 음식의 특징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김치였다. 김치를 담글 때 당연히 젓갈은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김치에 젓갈을 사용하지 않는단다. 또한 우리가 주로 무침이나 국을 끓여먹는 콩나물로도 콩나물 김치를 담근단다. 그외에도 염장무로 지지미를 해먹거나 삶은 무로 동치미를 담그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식인 초계탕을 함경도나 평안도에서는 추운 겨울에 주로 먹는가 하면 추어탕을 끓일 때 미꾸라지를 주로 갈아서 쓰는 우리나라와 달리 통째로 넣는다는 것도 이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비슷한 듯 다른 점을 찾는 게 재밌었다.






  단순하고 절제된 책 전체의 디자인처럼 레시피 구성도 무척이나 심플하다. 실린 사진도 예쁘고 보기에는 좋지만 요리책인 만큼 이런 최소한의 구성은 아쉬운 면이 많다. 물론 과정샷도 몇 장 실려있고 필요한 재료들, 준비 과정과 만들기 과정이 모두 있다. 물론 서너 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요리를 좀 하는 이라면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할 게다. 허나 모르는 것도 많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많은 요리 새내기의 경우엔 그 간단한 설명 사이의 행간이 궁금해질 때가 많은 법. 미니멀리즘 열풍에 따라 이런 최소한의 과정샷과 설명으로 구성된 레이아웃이 요리책의 요즘 트렌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요리가 어려워 요리책을 찾아보는 1인으로서 이런 심플함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트렌드의 흐름과 맞지 않더라도 나는 아는 내용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친절한 요리책이 더 좋더라. 더불어 이 책에 실린 레시피의 요리 재료는 몇 인분인지 분량 표시가 없다. (1인분으로 추측되지만 그럼에도) 재료의 분량을 알려주면 좋겠다.



 



  티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북한 요리는 우리에게 아직 낯설다. 그런 이유로 레시피 한쪽에 요리에 관한 설명을 실어둔 tip 꼭지가 유용했다. 요것들을 읽으며 그동안 몰랐던 북한 요리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꽤 쏠쏠했기 때문이다. 이 tip 꼭지를 잘 활용했다면 아주 충실한 정보를 담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아주 간략한 설명들로 채워진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많은 등 전반적으로 북한 요리에 대한 충실한 내용을 기대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생경한 요리 이름 뜻이 궁금해 찾아보면 내용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좀 서운하기도 했다. 책제목이 <처음 만나는 북한 요리 수업>인 만큼 나처럼 북한요리 자체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이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웬만한 궁금증은 해결할 수 있도록 요리 이름의 뜻이나 유래 같은 정보들로 tip을 좀더 알차게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레시피의 만들기 과정 중에 '압력솥 신호등 압력밸브의 노란 띠/ 그린 띠가 올라오면' 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찾아보니 이는 이는 휘슬러 압력솥 제품에 한해 유효한 설명이었다. 휘슬러 R&D팀이 만든 요리책이긴 하지만 이책의 독자가 모두 휘슬러 압력솥의 사용자는 아닌 만큼 이런 식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분명한 건 조금 당황스럽고 기분이 좋진 않다는 것이다. 휘슬러 압력솥이 아닌 다른 조리기구로도 이책이 소개하는 요리들을 맛있게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리시간과 불세기 등을 설명하는 것이 제돈 주고 책을 사는 독자들에 대한 마땅한 의무라고 본다. 이 부분은 속히 수정되길 바란다. 





 



  뭘 잘못 먹었는지 어제 오랜만에(?) 체하는 바람에 뭘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냉동실에 있는 잣이 생각나 금강잣죽을 만들어 봤다. 찹쌀을 두 시간이나 불려야 하는 게 좀 시간이 걸렸지만 비교적 간단해서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불린 쌀과 잣을 물과 함께 믹서에 간 다음 건더기는 체에 거른다. 걸러낸 물을 끓이다가 건더기를 조금씩 넣어서 저어주는 게 포인트! 적당한 농도가 되었을 쯤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면 끝난다. 레시피의 재료 분량대로 금강잣죽을 만들어보니 딱 한 그릇이 나왔다. 책에는 알려주지 않고 있지만 만들어 보니 재료 분량이 1인분 기준인 듯하다. (g을 보면 모르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누차 밝혔다시피 난 g만으로는 분량이 얼마인지 감이 잘 안 오는 요리초짜다;;)

  속이 불편할 땐 역시 소화가 잘 되는 찹쌀로 만든 죽이 제격이다. 잣이 들어가서 고소하고 소금간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잣맛을 눌러주어 적당히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잣죽이 완성됐다. 왜 이름에 '금강'이 들어갔는지 궁금한데 특별한 설명이 없어 알 길이 없다. 리뷰를 쓰다가 궁금해 검색해보니 금강산을 끼고 있는 금강 지역의 잣죽이 특히 유명하다고. 아마 그래서 '금강잣죽'이란 이름이 붙었나 보다. 그런데 직접 만들어 먹어 본 결과 북한 잣죽이나 남한 잣죽이나 비슷했다. 재료나 조리방법 모두 별다른 점이 없었는데 맛 역시 그랬다. 잣죽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잘 살아있는 잣죽이었다. 





 
 



  뭔가 좀 그럴싸 해보이는 요리 중에 '칠향닭찜'도 만들어 봤다. 스무디 만들어 먹는다고 사놓은 케일도 있고 엄마가 주신 닭안심도 있고 밤이랑 대추도 있길래 선택했다. 재료 중 도라지는 없어서 아쉽지만 패쓰하고, 표고버섯은 조금 밖에 없어서 그냥 있는 걸 탈탈 털어서 만들었다. '칠향닭찜'은 일곱 가지 향을 넣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 닭 뱃속에 일곱 가지 재료를 넣어서 찌거나 닭 껍질에 일곱 가지 재료를 넣어 말아서 쪄서 먹는 음식이란다. 이를 응용해 간단하게 만든 레시피가 이 책의 '칠향닭찜'이란다. 닭껍질로 쌈을 싸는 메뉴였다면 감히 도전할 생각도 못했을 텐데 케일이라 참 다행이다. 더불어 간만에 알찬 정보가 담긴 tip코너 덕분에 요리에 대한 궁금증도 팍팍 풀 수 있었다. 

  먼저 끓는 물에 케일을 데쳐 물기를 제거하고 닭안심은 얇게 저며 양념을 재워둔다. 밤 도라지 대추 표고버섯은 채 썰어두고 표고버섯은 기름에 볶으면 재료 준비 완료. 이제부턴 케일에 재료들을 넣고 쌈을 싸서 찌면 된다. 데친 케일을 펼치고 그 위에 저며둔 닭안심과 채썬 재료들을 얹은 다음 돌돌돌 말아준다. 책에 '풀어지지 않게 잘 싸준다'라고 나와있어 대체 어떻게 풀어지지 않게 싼단 말이냐! 하고 순간 버럭했는데, 케일잎을 데친 덕분에 굳이 뭘로 묶지 않아도 쌈이 풀어지지 않았다. 요런 설명도 같이 남겨주면 괜히 걱정 안 했을텐데. 큭. 



 



  케일쌈을 다 만들었다면 이제 돌돌 말린 케일쌈 속재료들이 잘 익도록 찌기만 하면 된다. 이때 '압력솥의 압력계기 3단에 두고 센불에서 가열하다 신호등 압력밸브 노란 띠가 올라오면 불을 끈다(213쪽)'는 황당한 설명 때문에 난관에 부딪쳤으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고 노란 띠가 저절로 올라오는 휘슬러 압력솥이 없는지라 그냥 냄비에 찜기를 얹고 케일쌈을 쪘다. 조리시간을 알 수 없어서 대충 감으로 하다가 좀 많이 쪘는지 닭가슴살이 좀 퍽퍽해졌다. 그래도 속재료로 들어간 표고버섯과 밤, 대추가 제각각 맛을 내고 신의 한 수였던 계피가루 향이 번져 전체적으로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맛이었다. 넣지 못한 도라지가 들어갔다면 특유의 쌉싸름한 향이 칠향닭찜이라는 이름처럼 더욱 풍성한 맛을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쌈을 찌는 시간만 제대로 맞출 수 있다면 어렵지 않게 만드는 이색 별미 메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







  <처음 만나는 북한 요리 수업>은 간혹 듣기만 했지 잘 알지 못했던 북한 요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새롭고 반가운 책이었다. 북한 요리를 우리 입맛에 맞게 개발한 메뉴라 평소 우리가 먹던 음식이랑 비슷하면서도 각각의 개성이 있는 요리여서 재미가 있었다. 아직 몇 가지 만들어보진 못했지만 북한 요리 특유의 담백하고 소박한 맛이 평소 내 입맛과 잘 맞는다는 점도 한몫했다. 전체적으로 특이하거나 신기한 메뉴보다 대체로 익숙하고 맛이 그려지는 메뉴들이라 기대만큼 대박 신선하진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평소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다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북한 요리의 방식을 접목해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호에서 출간된 다른 책들처럼 이책 역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과 예쁜 사진들로 수시로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다만 아직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북한 요리를 다룬 요리책인 만큼 '처음 만나는' 생소한 북한 요리들의 이름 뜻이나 요리의 유래 등 간단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들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준비 재료의 분량 표시도 확실히 해주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만들기 과정에서 휘슬러 압력솥의 신호등 안전밸브를 장점을 자랑하는 당황스러운 설명은 괄호를 사용해 따로 표기하도록 하고 모든 독자들이 (휘슬러 압력솥이 없더라도) 레시피를 쉽게 이해하고 만들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리시간과 불조절에 대해 알려주는 레시피로 시급히 수정되었음 한다(개정판이 나온다면 내책도 리콜받고 싶다!). 이런 몇몇 치명적인 단점들이 이책이 가진 많은 장점을 가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다소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평소 다른 요리책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북한 요리를 만날 수 있다는 점과 북한 요리 날것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 입맛에 맞게 재해석해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 만나는 북한 요리 수업>은 나름 분명한 장점을 지닌 요리책이다. 이색적인 북한 요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보아도 좋지만 (기대보다 정말 특이한 북한 메뉴는 그리 많지 않아서) 그보다는 담백하고 소박하지만 재료의 맛과 영양을 살려낸 건강한 밥상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더 만족스러운 레시피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참, 출간기념 사은품으로 함께 도착한 휘슬러 에코백도 나름 쓸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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