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아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161쪽) 



  나 갑상선암이래, 뜸을 들이던 친구가 말했다. 암..이라구? 아직 한창인 나이에 암이라니.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리속엔 대학시절 아빠의 위암 소식을 듣고 시간이 멈춘 것 같던 때가 생각났다.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가 췌장암 선고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억도 함께. 놀란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래도 갑상선암은 비교적 예후가 좋다니 너무 걱정말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친구에게 별다른 위로가 되진 않는 듯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심란해 하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나도 코끝이 시큰해졌다. 다행히도 위암 초기였던 아빠는 여전한 모습으로 내 곁에 계시지만, 췌장암이 상당히 진행됐다던 내 친구의 엄마는 끝내 친구 곁을 떠나셨다. 이렇게 예기치않게 찾아온 병은 당사자는 물론 주변인들까지 삶과 죽음 사이 그 어딘가를 헤매게 만든다. 다행히 친구의 수술은 잘 되었고 지금도 열심히 투병 중이다. 그녀의 말대로 친구의 삶의 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사실 삶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축복임을 우린 알고 있다.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이라고 해도 마음의 무게가 이럴진데 끝끝내 돌이킬 수 없는 불치병 선고를 받는다면 그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일이 이책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에게 실제로 일어났다. 서른 여섯 살의 촉망받는 신경외과 의사인 폴은 그때 레지던트의 마지막 해를 분주하게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그동안의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여러 곳에서 높은 연봉과 좋은 조건의 교수 자리를 제안 받아 역시나 의사인 아내 루시와 함께 빛나는 미래를 계획하면서. 그러던 중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그를 삼켰고 결과는 폐암 4기 판정이었다. 그가 세웠던 계획들은 시작도 못한 채 빛을 잃었고 폴은 인생의 정점에서 의사 가운을 벗고 언제 죽음을 맞을 지 모르는 불치병 환자가 됐다. 


  예고된 죽음은 앞으로 해야 하고 하고 싶었던 수많은 계획들을 모두 중단시켰다. 그리고 폴은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 무너지는 육체를 보며 참담한 마음에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도 있었지만 폴은 그렇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담당의인 에마의 조언대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타세바 알약으로 암의 진전을 늦추고 물리치료로 육체의 건강을 되찾은 폴은 자신의 정체성이자 소명인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마지막 해를 마치기 위해 의사로 복직한다.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육체의 한계로 폴의 복귀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는 빠르게 수술 실력을 회복했고 다시 예전처럼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 레지던트 수료의 심사조건을 맞추기 위해 수술 뿐만 아니라 원래 하던 다른 업무들까지 수행하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던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종양이 그를 덮쳤다.

  언제 끝날 지 모를 한정된 삶이 주어졌을 때 폴과 루시 부부는 고민 끝에 아기를 갖기로 결심한다. 폴은 자신이 떠난 후에 루시 혼자 남게 되는 것이 마음 아팠고, 루시는 얼마 남지 않은 폴의 시간을 염려했다. 부부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173쪽)' 생각했고, 둘 사이의 결실인 아이를 갖기로 결정함으로써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174쪽)'. 인공수정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가 착상에 성공하지 못하고 죽는 배아들까지 아파하는 그의 시선에 마음에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화학요법으로 폴은 나날이 쇠약해졌지만 그 사이 그들을 닮은 예쁜 공주님 케이디가 태어났다. '한쪽 팔로 아이의 무게를 느끼고 다른 팔로 루시의 손을 잡고 있으니 삶의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230쪽)'는 폴의 말처럼 딸 케이디는 존재 자체로 암울해져가던 부부에게 빛이 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폴의 인생에 큰 기쁨을 선사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는 동안 무엇보다 담담하게 죽음을 바라보고 맞아들이는 폴의 태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고전문학을 접했던 폴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 철학, 인간 생물학을 공부하고 영문학 석사를 거쳐 의과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가 되기까지 끊임없이 '의미, 삶, 죽음 사이의 관계(74쪽)'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경외과를 선택한 것도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105쪽)'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폴의 사색들은 그가 직접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더욱 깊어져 이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처음에 폴이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뒤 다시 그 험난한 레지던트 생활로 복귀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많이 놀랐다. 불치병을 선고받고 앞으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레지던트 수료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제 겨우 좋아지긴 했지만 암 종양들과 싸우느라 안그래도 힘든 몸을 다시 혹사시킬 만큼 중요한 걸까. 요즘 유행하는 말로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가 절로 나왔다. 허나 내가 놓친 게 있었다. 불치병이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게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와 남은 시간 동안 자신에게 소중한 일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폴에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신경외과의였다. 죽음이 남겨둔 시간이 얼마 만큼인지 정확히 모른다면 그 시간들 역시 그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맞았다. 만약 폴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면 그만큼 그의 삶을 빼앗기는 것일 테니까. 

  폴에게 있어서는 최선이었겠지만 그 선택은 그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폴이 레지던트 수료를 위한 강행군 대신 그 뒤로 보류해뒀던 작가의 생활을 시작하며 자신의 몸을 좀더 돌보았더라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조금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내 루시와 함께 귀여운 케이디가 커가는 모습을 더 오래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더불어 미완으로 남겨진 이책이 그의 손에 완성되어 더욱 깊은 그의 이야기를 만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까지. 

  더불어 예고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이를 갖기로 한 루시 부부의 결단도 내겐 조금 의외였다. 솔직히 폴이 떠난 후 아내 루시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건 다분히 내가 싱글이라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부부의 입장에선 한 사람이 영원히 떠나기 전에 서로를 느낄 수 있는 다른 존재, 즉 사랑의 결실인 2세를 남기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일 게다. (게다가 루시 역시 의사라 경제력 걱정은 안 해도 될테고)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들의 선택은 옳았다. 세상에 태어난 케이디는 생명의 촛불이 점점 꺼져가는 폴의 마지막 인생에 아빠라는 새롭고 벅찬 경험과 행복을 선물했다. 책의 맨 마지막 장에 실린 폴과 루시, 그리고 그들의 딸 케이디이 웃으며 찍은 가족사진을 보고 있자니 (다소 이기적인 생각을 했던 나 역시) 그들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폴은 떠났지만 그는 루시 곁에 케이디로 남아 있을테니.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인생의 최정점을 향해 숨가프게 달려가다 갑작스레 시한부 선고를 받으며 달라질 폴의 인생을 여는 프롤로그, 애리조나의 자그마한 사막도시 킹맨에서 보낸 유년시절과 고전문학과의 만남,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해 영문학, 철학, 인간 생물학 등을 공부하며 삶과 죽음, 인간의 정신과 뇌의 관계 등을 탐구하다 의과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1부, 폐암 선고를 받고 난 후의 힘겨운 투병 생활과 가족에 대한 마음,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 의미있고 소중한 삶을 위해 노력했던 폴의 이야기가 담긴 2부, 그리고 그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폴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아내 루시의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들과 사막에서 보낸 유년과 학문을 넓혀 갔던 스탠퍼드 대학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1부는 이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삶과 죽음, 인간의 의미에 대한 사색의 시작과 어떻게 성숙해 가는지를 담아낸다. 그가 추구했던 본질적 의문들이 문학과 철학, 생물학, 의학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되고 단련되었는지, 특히 의과대학원에서 해부학 수업에서 시체들을 마주하며 죽음에 대한 시선과 성찰이 그의 의사 생활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암선고를 받고 본격적인 투병 생활이 시작되는 2부에서는 의사에서 환자로 입장이 바뀌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의사일 때는 미처 몰랐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시선을 잡았다. 환자들에게 처방했던 물리치료를 막상 저자가 직접 해보니 '충격적일 정도로 힘들'(169쪽)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굴욕적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동안 의사로서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진짜가 아니었음을, '11년 동안 병원에 몸담으면서도 고통의 구체적인 느낌을 전혀 알지 못했(170쪽)'음을, 그리하여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129쪽)'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의사도 환자도 아니지만 언제 아플지 모르는 잠재적(?) 환자라서 그런지 저자의 환자 경험 부분에 특히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신경외과 의사와 함께 작가가 되고 싶었던 폴은 20년 뒤로 미뤄뒀던 작가의 꿈을 암선고를 받고서야 시작한다. 급격히 나빠진 병세 때문에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미완성이자 완성인 유고에세이가 됐다. 이책에서 그는 인간에게 의미있는 것은 무엇인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을 담담하고 유려한 필체로 담아낸다.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이렇게 재능 많은 젊은 청년이 더 오래 삶을 누리며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더라면 하는 깊은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저자는 레지던트 수료와 함께 자신에게 '의미있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쉼없이 글을 썼단다. 투병 생활과 레지던트 복직을 겸한 살인적인 일정 중에서도 자정을 넘기며 글을 썼고, 병세가 악화되면서 침대에서, 안락의자에서, 진료실 앞 대기실에서, 화학요법으로 치료 중일 때도 폴은 집필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고. 결국 급격한 병세의 악화로 계획대로 책을 마무리 하진 못했지만, 마르지 않는 그의 열정 덕분에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그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참 감사하다. 동시에 더는 그의 글을 보지 못하는 것이 참 슬프다. 

  미처 끝내지 못한 폴의 이야기를 채우고 마무리 짓는 에필로그의 아내 루시의 글 역시 참 좋았다. 폴에 대한 충만한 그녀의 사랑이 너무 따듯해서 내 마음까지 전염이 되는 것 같았다. 폴의 의사를 존중해 그의 마지막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눈을 맞추고 작별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폴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그것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성실하게 대처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과 의미였다.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소비하듯 보내던 내게 이책 <숨결이 바람 될 때>의 폴의 이야기는 뜨끔한 자기 반성과 깊은 깨달음을 남겨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시간은 충분하다는 생각에 소중하고 의미있는 많은 것을 유예한 채 산다. 탄탄대로의 미래를 눈 앞에 두고 불치병 환자가 된 폴이 그렇듯이 인생은 언제 반전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언제나 넘치던 시간이 더이상 내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는 되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는 데 지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목적과 의미를 놓지 않고 용기있게 살았던 이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바라보고 진심으로 대할 수 있길 바라본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중략) 에마는 나의 옛 정체성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198쪽)

폴은 자신의 강인함과 가족 및 공동체의 응원에 힘입어 암의 여러 단계에 우아한 자세로 맞섰다. 그는 암을 극복하거나 물리치겠다고 허세를 부리거나 허황된 믿음에 휘둘리지 않고, 성실하게 대처했다. (중략) 불치병에 걸렸어도 폴은 온전히 살아 있었다. 육체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음에도, 활기차고 솔직하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257쪽)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261쪽)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체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142~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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