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남미였어 - 생에 단 한 번일지 모를 나의 남아메리카
김동우 지음 / 지식공간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 두리번거리는 여행자의 긴 그림자가 골목 안을 채웠다. 그림자 끝엔 바다가 서걱거리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바람이 바다를 서성이다 뱀처럼 몸을 휘감으며 지나갔다. 눈앞에 하얀 포말이 높은 파도를 타고 떠밀려 내려오는 먹먹한 바다가 펼쳐졌다. '걷다 보니 남미였어, 그래 걷다 보니 세상의 땅끝이었어...' (156쪽)

여행을 좋아한다. 해외여행을 많이 가보진 못했지만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을 꼽는다면 단연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갑작스런 죽음에 사표를 던지고 아내와 떠난, 평소 즐겨 읽던 영화기자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우유니 소금사막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이책의 저자는 그런 소금사막을 '지구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적고 있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표현인 듯하다. 그때부터 남미는 가장 가보고 싶은 대륙이 됐다. 그런 까닭에 애정하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멋진 사진으로 채운 남미여행기라는 것이 이책 <걷다 보니 남미였어>를 집어든 가장 큰 이유였다. 심지어 제목까지 근사하다! 

세계일주의 1막을 끝내는 아프리카 케냐를 떠난 저자가 도착한 곳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배경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곳이다. 예전에 읽었던 손미나의 남미여행기에서도 이곳에 대한 찬사가 이어져 호기심이 몽실몽실 이어지던 곳인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책의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방목해서 키워 더더욱 맛있다는 소고기에 대한 찬사와 싸지만 맛있는 와인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는 먹방 이야기는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던 저자는 여행자 본연의 감각을 다시 살려 남미 여행루트를 짜는데 저자의 말처럼 흔한 보통의 루트는 아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베이스캠프로 저자가 남미 대륙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오가는 동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더욱 개성넘치는 루트였다. 저자의 독창적인 남미대륙의 여행 일정은 영화 <미션>에 나왔던 이구아수 폭포 방문, 파타고니아의 바릴로체레일 토레스델파이네 트레킹, 악마의 산 아콩카구아 산행, 우유니 마추픽추 등의 남미의 주요 여행지를 둘러보는 네 번의 여행으로 짜여졌고 책 역시 그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남미 하면 역시 우유니 사막, 마추픽추를 가장 먼저 떠올렸는데, 이책을 읽으며 이구아수 폭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 거대한 규모야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보는 감흥을 전해듣자니 직접 내눈으로 보고 내몸으로 그 폭포수를 맞아보고 싶은 생각이 물씬 들었다. 남미의 알프스라는 바릴로체의 풍광이 전해주는 감동 역시 직접 느껴보고 싶어졌고, 무엇보다 파타고니아 일정의 압권이었던 모레노 빙하 트레킹은 내게 남미의 또다른 로망으로 등극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이나 악마의 산 아콩카구아 산행은 부럽기는 했지만 내 저질체력에 엄두는 안 났기에 그저 멋진 사진과 저자의 경험을 듣는 간접경험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책을 읽다 보면 반가운 사진이 종종 보이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칠레 푼타아레나스의 라면집이었다. 얼마전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에서 박명수가 방문했던 바로 그 라면집이어서 오! 하며 괜시리 더 반가웠다. 아마 배달의 무도 특집을 재미있게 본 시청자라면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작년에 방영되어 큰 즐거움을 줬던 꽃보다 청춘의 형님들이 다녀왔던 마추픽추를 비롯한 페루의 여러 흔적들을 이책에서 다시 사진으로 만날 수 있어 재밌었다. 티비에서 보아 알던 곳을 다시 만나는 그런 재회의 즐거움이랄까. 

- 여행은 짐을 싸고, 이동하고, 다시 짐을 풀고 하는 단순한 패턴이었지만, 과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돌발 상황이 튀어나오고, 순간순간의 선택은 모두 내 책임으로 돌아왔다. (100쪽)

세계일주를 다녀왔는데 왜 남미 대륙 여행기만 낸 걸까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이미 남미 대륙에 도착하기 전 저자의 여행기가 책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책의 앞머리에 '세계일주의 1막'이라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더불어 남미 대륙은 그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기에 충분한 매력적인 여행지 아닌가. 비록 저자의 세계일주 1막의 내용을 모르고 이책을 읽었지만 남미 여행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런 남미를 몸소 체험하고 온 그가 무척 부러워졌다. <걷다 보니 남미였어>는 저자의 특별한 여행 루트에 따른 에피소드들과 함께 그가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깨알같은 정보나 꿀팁들이 함께 담겨 있다. 남미 여행을 준비하는 독자들이라면 챙겨두면 좋을 내용들이다. 또한 책의 끝부분에는 '부록'이라는 제목을 달고 토레스 델 파이네, 아콩카구아 등정, 알아두면 좋은 스페인어 같은 남미여행을 도와줄 본격 실용정보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 

내겐 아직 미지의 여행지인 남미 대륙에 대해 <걷다 보니 남미였어>의 저자는 남미의 경이롭고 환상적인 자연들의 풍광이나 때론 즐겁고 때론 욕지기가 나오는 몸으로 경험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여행 후의 이야기를 적지 않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실어두었는데 그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세계일주를 다녀왔다고 하면 우선 그들의 용기에 감탄한다. 그리고 그 여행기에 흥미를 보이며 부러워하지만 여행 후 다시 시작된 일상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긴 여행 뒤 일상 복귀 스토리가 궁금했다. 이책의 저자가 들려준 여행에서 일상으로의 컴백은 그야말로 현실적이었고, 많은 경비가 드는 세계 일주 후의 쪼달림이 생생하게 적혀 있어 슬며시 웃음도 났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 일주를 다녀왔고, 주변의 압박을 이기고 자신의 책을 내는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완성해냈다. 세계일주를 떠나던 용기는 그의 일상에서도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 어떤가? 꿈결 같은 여행 뒤에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 세계 일주를 다녀온다고 변하는 건 없다. 능력이, 돈이 생기지도 않는다. 생활수준은 놀부보다 흥부 쪽에 가까워지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 친구를 보면 심리적 위축을 겪을지 모른다. (중략) 숙고의 숙고를 거듭하길 바란다. 이런 뒷감당이 가능하면 배낭을 싸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게 해답이다. 지금 떠날지 말지를 갈등하는 독자를 위해 한마디만 더 하자. 암튼 용기를 좀 내보자. 중요한 건 용기다. (중략) 분명한 건 세계 일주를 다녀왔다고 죽진 않는다는 거.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게 된다. 삶은 살아지는 게 아니고, 살아가는 거다. (381쪽)

솔직히 말하는 나는 그처럼 세계일주를 떠날 자신은 없다. 탈탈 털면 경비는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자처럼 지금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떠날 용기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꿈꾼다. 언젠가는 남미로 떠나는 꿈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방목해서 맛있는 소고기와 싸고 맛있는 와인도 먹고, 땅고!도 배워보고, 그렇게 소원했던 우유니 사막에서 내 그림자도 비춰보고, 비취색의 거대한 빙하 위를 직접 걷는 모레노 빙하 트레킹도 하고, 푼타아레나스의 라면집에서 뜨끈하고 얼큰한 라면 한 사발 들이키는 그런 달콤한 꿈을. 남미로의 여행을 재촉하는 <걷다 보니 남미였어>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언젠가 꼭 남미로 날아갈 '나의 그날'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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