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놀러다니기 좋은 가을날인 10월 중순 주말,
한창 등산과 걷기 여행에 푹 빠져 있는 친구 맹과 양동마을을 찾았다.

양동마을까지는 차로 가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얼마전에 맹이 동료쌤께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위덕대 후문(?)에서 출발해 사뿐사뿐 걸어가면 양동마을까지 대략 3시간 코스라는 것!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운동도 하며 가을 정취도 즐기며 수다도 떨 겸 걷기 여행을 하기로 했다.

위덕대에서 난 아스팔트 대로를 한참을 걸어 숲길로 접어들어 얼마간을 걸으면 인계댐이 나온다.
여기에 이런 댐이 있었던가, 꽤 오랜 세월을 살았음에도 걸으며 보는 세상은 모든 게 새삼 새롭다.
멀리까지 보이는 물과 홀로 서 있는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경치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이때부터 디카를 챙겨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대로변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만난 나팔꽃 무더기.
예전엔 우리집 앞마당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나팔꽃이나 분꽃 등 여러가지 꽃들을 만났던 것 같은데,
이젠 나팔꽃 보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랫만에 보는 나팔꽃이 그래서 더 반가웠다.



인계댐을 지나 조금을 더 걸으니 어랏! 초가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설마.. 벌써 양동마을? 하며 조금씩 걸어들어가니, 어익후! 벌써! 양동마을 도착이다.
아, 뭐냐? 3시간 코스라더니!! 30분 만에 도착해버리는 이 황당함이란!!

그런데 우리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 3시간 코스란, 양동마을까지 가는 거리가 아니라 양동마을을 구경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예전에 왔을 때는 그냥 유명하다는 몇몇 기와집만 슬쩍 돌아보고 가느라 몰랐는데,
흐느적거리며 마을 곳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양동마을이 정말 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3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양동마을 전부를 다 돌아보진 못했다. 물론 천천히 다녔지만. :)




우리가 걸어온 위덕대에서 인계댐을 거쳐 양동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주차장과 관광안내소가 있는 양동마을의 입구와는 완전히 정반대인 곳으로 이어진다. 
마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양동마을 탐험을 시작한 덕분에 
보통 때라면  안 보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구석진 곳부터 눈도장을 찍을 수 있어 좋았다.





마을로 들어서서 얕은 언덕을 올라 가장 먼저 들어가본 집이 상춘헌이었다.
그날 양동마을에서 돌아본 한옥 중 손에 꼽히는 멋진 집이었는데,
특히 자연과 어울어진 소박한 앞마당과 곡선의 낮은 돌담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예술이었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돌담이었는데,
높이가 낮은 돌담이 산지형을 따라 구불구불 만들어내는 유려한 곡선의 미가 너무 멋졌다.
디카가 없어 너무 아쉬웠는데 폰카도 생각외로 사진이 잘 나온 듯해 다행이다. ^^;




더불어 상춘헌의 매력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안채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마당에서 살짝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가면 ㄷ자형의 안채가 나오는데,
가을볕이 들어 더욱 한가해 보이는 안채 마당에는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꽃풀이 소복하게 심어져 있다.
얼핏 봤을 때 샐비어랑 비슷하게 생긴 꽃이었는데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마치 꽃병에 꽂아둔 듯 소복한 큰 키의 화초와 한숨 늘어지게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따듯한 마루가
가을 하늘과 어울려 너무 아름다운 한옥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나는 '아, 디카!!!'라는 비명을 내내 입에 달고 다녀야 했다. 흑,




안채 마당에서 또다른 쪽으로 난 문으로 나오면 벽을 타고 새파란 잎들이 하늘을 향해 있다.
잎은 수세미 같은데 표면이 온통 올록볼록한 터프한(?) 열매는 아무리 봐도 수세미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그런데 요게, 수세미가 아니라 여주 열매,라는 거란다. - 다음 자연박물관 정보보기!
무지한 저에게 좋은 정보 알려주신 비휴님, 고맙습니다! ~(__)~

여튼 하늘 높은 가을과 단정한 한옥과 소박한 뜰의 자연이 어우러진 상춘헌은
양동마을의 여러 집 중에서 가장 살아보고 싶은 집이었다. ^^


양동마을 홈피의 설명에 따르면 상춘헌은,
조선 영조 6년(1730년)경에 동고(東皐) 이덕록(李德祿)공이 건립하였고,
그의 증손으로 예조참의(禮曺參義)와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한 창애 이정덕(李鼎德)공이 동편 사당을 증축하였으며,
그의 손자도 문과 급제를 했다. 그 후 후손인 이석찬(李錫纂)공의 호를 따라 상춘헌(賞春軒)이라 부르며
사랑채의 마당 동편에 계획적인 조경으로 동산을 꾸며 놓았다... 고 한다.





상춘헌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근암고택을 들렀다가 다시 내려와 쭉 걸어가다 보면 서백당이 나온다.
양동마을 안내책자에 빨간색으로 꼭 가볼 한옥집으로 표시된 4곳 중 하나인데, 역시 그럴만한 곳이었다.

월성 손씨 종갓집인 서백당의 사랑채 마당에는 무려 600년 수령의 거대한 향나무가 있는데,
엄청난 몸집을 지탱하는 나무 기둥과 밑둥의 모습도 보는 이를 압도했다.
나무의 결 하나하나에 수많은 세월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하니 살짝 엄숙해지기도.




윗쪽의 사당 입구에서 내려다 본 서백당의 600년 수령의 향나무 모습.
줄기가 옆으로 뻗어 나무 한 그루임에도 마치 몇 그루의 나무들이 함께 모여있는 것 같이 보인다.
600년을 한곳에서 살아온 향나무에게서 자연의 경이로움이 전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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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당을 나와서는 마을의 여기저기 골목길과 변두리 산길을 돌아다녔다.
중간에 무슨 산장? 쉼터? 그 근처에서 맹이 싸온 군고구마로 점심 요기를 하고 잠시 쉰 후
다시 마을 실개천으로 나왔다가 심수정과 이향정이 있는 하촌 쪽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꽤 돌아다녔음에도 별로 피곤하지 않더라는. ㅎㅎ

그런데 기록을 안 하고 돌아본 데다가 다녀온지 시간이 좀 지난 여파로 경로가 좀처럼 기억이 안 난다;; ㅠ
디카가 있었다면 기록하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찍었을 텐데,
내킬 때만 폰카로 막 찍었더니 나중에 사진 속 풍경이 어딘지 찾는데 한참 헤매야 했다.
이 사진 속 한옥은 마루에 잠깐 걸터앉아 쉬기도 했었는데 여기가 어딘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옅은 기억과 찍힌 시간, 경로를 봤을 때 아마 심수정인 것 같은데.. 뭐, 아님 말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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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정에서 강학당을 거쳐 마을회관 쪽으로 돌아오던 길에 빨래가 널려있는 초가집을 만났다.
초가집과 빨랫줄에 널린 빨래가 왠지 이질적이면서도 꽤나 잘 어울려 보여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바라봤다.
맑고 쾌청한 가을 날씨라 저 빨래들은 아주 뽀송뽀송하게 잘 마를 듯. :)




마을회관에서는 양동마을 부녀회에서 자리를 펴고 국수도 팔고 떡도 팔고 있었다.
떡은 직접 만드는 과정을 체험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떡만들기가 더뎌졌다.
떡이 꽤 맛있어 보여 한 팩 사오고 싶었지만 도통 완성될 기미를 안 보여 포기하고 마을 입구 쪽으로 향했다.

마을회관 맞은 편에는 양동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집인 향단이 보인다.
향단의 조금 앞(왼)쪽에 있는 기와집 건물은 관가정이다.
향단과 관가정은 서백당, 무첨당과 함께 양동마을 안내책자에 빨간색의 필수코스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입구를 지나 관광안내소를 거쳐 마을 입구 좌측의 언덕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관가정에 들렀다.
높은 곳에 자리잡은 양반네 집인 만큼 맞은 편의 얕은 언덕과 그 밑의 초가들이 죄다 보이는,
마당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아주 근사한 집이었다.

양동마을 홈피에 올라와있는 설명에 의하면 관가정은,
청백리이자 조선 성종으로부터 중종조에 걸친 명신 우재(愚齎) 손중돈(孫仲暾)선생이
손소 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집이나,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고 비어 있다.
격식을 갖추어 간결하게 지은 우수한 주택건축으로 한 눈에 들어오는 형산강과 경주를 품어 안는 경관이 일품이다.
관가정(觀稼亭)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이다.
특히 아래쪽에 배치된 하인들의 거처인 가립집(초가)4~5채가 잘 보존되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지금은 손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 고 한다. ^^


관가정 뒷쪽에 위치해 있는 향단은 양동마을 곳곳에서 그 이름을 접할 수 있는
회재 이언적 선생이 어머님을 위해 지은 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집은 보통의 한옥들과 달리 아주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연구 대상에 자주 오른다고.
허나 예전에는 개방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찾은 날에는 주인이 기거한다며 문이 닫혀있어 내부를 구경하진 못했다.
엄청 독특한 구조와 무척이나 폐쇄적인 구조라길래 얼마나 독특한 구조이길래, 얼마나 폐쇄적이길래 하고 엄청 궁금했는데, 늠 아쉬웠다! 

  ☞ 관가정 & 향단, 자세히 보기 - 클릭!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을 안에서 바깥쪽으로 돌아 주차장을 찍고 관광안내소를 지난 우리는
관가정과 향단을 보러 가던 도중 간단한 주전부리를 파는 집을 발견하고는 잠깐 들어갔다.
집주인이 직접 만든 3가지 맛의 유과와 식혜, 산딸기 주스 등을 팔고 있었는데,
2500원 산딸기주스보다 1천원짜리 식혜가 더 맛있었다능! ㅎㅎ

엄마를 위해 유과도 한봉지 샀다. 선물용으로 포장된 것은 8천냥, 그냥 봉지에 담아파는 것은 5천냥.
직접 만드신 유과라 그런지 많이 달지 않으면서도 참 맛있어서
단 것 좋아하시는 엄마는 물론이고 과자라고는 잘 안 드시는 아부지도 맛나게 드셨다능.
담에 양동마을 가면 그때도 또 사와야 할 듯. 한켠에는 직접 키우신 고구마도 팔고 팔고 있었다능. ^^





관가정과 향단을 돌아본 후 한참을 걸어걸어 무첨당에 도착했다.
이미 서너 시간을 걸어다녔던 터라 이때쯤에는 살짝 지쳐있었으나 그래도 필수코스라 마지막으로 가보기로 했는데,
어째 둘 다 무첨당 입구를 못 보고 지나치는 바람에 한참을 더 돌아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무첨당은 한참을 걸어 들어온 보람이 느껴질 만큼 좋았다.
한옥의 오래된 나무들이 풍겨내는 분위기도 그랬고 가을볕 아래의 그 여유로움이 그랬다.




무첨당의 오른쪽 벽에는 흥선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좌해금서(左海琴書)는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라고.
서체가 특이하다 싶었는데 일반 붓이 아닌 죽필(竹筆)로 쓴 글씨라고 한다. (사본이란다)

무첨당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 선생의 종가 별채로 세운 건물로,
'무첨당(無添堂)' 해 은 이언적 선생의 다섯 손자 중 맏손자인 이의윤(李宜潤)공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란다. 

  ☞ 무첨당 자세히 보러가기 - 클릭! 



사진은 못 찍었으나 무첨당 옆에는 ㅁ자 모양의 살림집 한옥이 있었는데,
유독 한 채의 기와에만 소나무 모양의 작은 생물들이 밀집해서 자라고 있었다.
때마침 시티투어로 온 문화해설사님이 다른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하시길래 여쭤봤더니
잘 모르시는지 어물쩍 다른 말로 둘러대곤 나가버리셨다;; 쩝.

다음날 맹의 문자에 의하면 그날 우리가 본 신기한 그것은 바로 '와송'이란다.
지붕의 기와 위에서 자라는 모양이 소나무 잎이나 소나무 꽃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 와송, 더 자세히 보기 - 클릭!






무첨당을 끝으로 다시 양동마을 상촌쪽으로 들어가 인계댐을 거쳐 위덕대 후문쪽으로 걸어나왔다.
위덕대에 거의 다와 가는 길목에 억새들이 예쁘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억새를 보니 화왕산이 생각나는구나. 언제 화왕산도 한번 가봐야 하는데.. (낼 가기로 했다! ㅋㅋ)



경주 양동마을에 도착해 대략 3시간이 넘도록 여기저기 다녔는데도 마을을 완전히 다 돌아보지 못했다. 
길을 잘못 들어 조금 헤맨 것도 있었지만, 새삼 양동마을이 참 크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예전엔 차 타고 와서 입구에 있는 유명한 집 몇 채(주로 관가정과 향단)만 쓱~ 보고는 별 거 없다고 실망했었는데 말이다. ㅋ
느긋하게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니 곳곳에 숨겨진 이런 멋진 한옥과 경치들이 많은데,
지금도 여전히 그걸 못 보고 그냥 수박 겉핥기처럼 돌아보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해 안타까웠다. 


알고있듯이 지난 7월, 경주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덕분인지 확실히 예전보다 마을 전체가 좀 더 단장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수혜로 확실히 예전보다 양동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엄청 늘었고.

그러나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문제도 생기는 법. 곳곳에 쓰레기도 보였고,
무엇보다 관광객들이 늘다보니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사생활 침해에 따른 불편이 커질 듯하다.
그나마 마을 깊숙이 있거나 높은 지대에 있는 집들은 덜하지만,
마을 입구나 길목에 자리잡은 집들은 지나가는 관광객들 때문에 꽤 스트레스를 받는 듯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경주 양동마을을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 마을 관리나 단장 등의 필요가 커진다면
아마 양동마을도 하회마을처럼 입장료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니 미리 가보시는 것도 어떨런지? ㅎㅎ
화창한 가을 날씨에 600년 동안 내려온 우리 조상들의 멋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ㅅ^




 + 경주 양동마을 홈피 - http://yangdong.inv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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