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심야식당 1 │ 아베 야로 │ 미우(대원출판사)
 

밤 12시, 모두가 잠들 시간 문을 여는 식당이 있다. 눈에 칼자국이 선명한 주방장이 칼을 놀려 음식을 만든다. 주인의 얼굴만 보고 움츠린다면 지는 거다. 한 성깔할 것 같은 인상의 주인이지만 의외로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다. 음식 솜씨도 뛰어나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들은 한결같이 맛있다. 식당에는 간단한 메뉴가 있지만 먹고 싶은 걸 주문하면 알아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모두 만들어주는 완전 고객중심의 영업방침이 있는 곳, 바로 심야식당이다.

만화는 좋아하지만 일본만화는 그리 즐기지 않는다. 일부러 피한다기보다는 특별히 찾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 이제껏 본 일본 만화라고는 학창시절 아이들의 혼을 빼놓았던 열풍에 휩쓸려 쉬는 시간 틈틈이 본 《드래곤볼》과 대학생이 되어 친구랑 자취방에서 뒹굴며 읽었던 《슬램덩크》 정도가 전부다. 그 유명한 《초밥왕》도 입소문에 혹해 시도는 했었으나 몇 권 읽다가 이내 접었으니 읽었다고 말하긴 좀 민망한 셈이다. 그런 내가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을 주문했다. 그러니 이책은 내가 처음으로 내돈 내고 산 일본만화책인 것이다.

얼마전 블로그 서핑을 하다가 흥미로운 글을 봤다. 눈에 심상찮은 흉터가 있는 주방장이 밤 12시부터 아침 7시 경까지 문을 여는 기묘한 식당이라는 설정에 호기심이 일었다. 바로 인터넷 검색으로 몇몇 글을 찾아봤는데 대체로 평이 좋았다. 인터넷서점 책소개에는 음식만화 인기 1위라는 타이틀까지 주어져 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그렇게나 유명한 만화였나,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그러고보니 만화를 안본지도 좀 된 듯하다. 특히나 일본 만화는 더욱. 독특한 설정에 따듯한 감동 코드가 버무려져 있다는 글에 마음이 동해 우선 1권만 주문했다.


《심야식당》은 식당을 배경으로 매번 다른 음식과 그에 얽힌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피소드 형식의 옴니버스 만화다.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 한밤에 영업을 시작하는 이 특이한 식당 만큼이나 그곳에 모여드는 손님들 또한 게이, 조폭, 엔카 가수, 도둑과 형사, 스트립퍼, 가난한 복서, 에로배우 등 독특하다 못해 다채롭다. 밤의 시간을 생의 무대로 삼는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평범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처음엔 자신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심야식당》은 그런 편견어린 시선에는 무심하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그들 또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인 것이다. 

또한 심야식당에 즐겨 찾는 손님들은,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ㆍ경제적ㆍ성적으로 또는 다른 면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된 비주류들이 대부분을 이룬다. 만화는 이런 인물들을 팍팍한 삶을 뜨끈뜨끈한 음식으로 감싸안는다. 주문만 하면 뚝딱 하고 만들어내는 식당 주인의 소박한, 때로는 특별한 음식들은 한밤에 식당을 찾은 손님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면서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상처입고 아파하는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 준다. 그들을 대하는 작가의 따듯한 시선 덕분에 처음엔 낯설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차츰 마음 속으로 들어왔고 나 역시 나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은 일단 분류상으로는 음식만화다. 밤에만 영업을 하는 식당이 무대고 매회 다른 메뉴의 음식이 등장한다. 음식 만드는 법도 간단하게 알려준다. 그렇다고 음식 얘기만 있느냐. 설마 그럴리가.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먹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또는 그것에 사연이 있는 사람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 만화 역시 마찬가지다. 만화는 그렇게 매번 다른 음식과 그에 얽힌 이들의 또다른 삶을 세트로 내놓는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음식은 그들의 상처입은 삶을 따듯하게 위로해 준다. 《심야식당》은 따듯한 음식과 정겨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맛볼 수 있는 만화다. 

다만 하나의 에피소드가 제목까지 포함해 대략 6장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마무리되다 보니 한 권의 책에 다양한 음식과 그에 얽힌 사연을 담을 수는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너무 단순화되어 다소 심심하거나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단조롭다고나 할까. 책을 읽기 전에 접했던 호평에 나름의 기대가 커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른이들은 어책에 대한 기대가 나름 컸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절제된 짧은 이야기도 좋지만 책을 덮으면서 사연 자체가 조금 더 깊이를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허나 지금 이글을 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만화의 매력은 남들의 시선이 어떻든 기죽지 않는 다양한 비주류의 캐릭터들 뿐만 아니라 살짝 간만 보여줘 입맛 다시게 만드는 그 가벼움과 단순함인지도 모르겠다고. 길게 늘어지지 않아도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지는 그 명료함일지도 모른다고. 이 만화가 나름의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것은 분명 그것에 공감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흡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설정과 개성있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밤세상 이야기는 새로운 간접경험이었다. 다소 밋밋하나 자신의 맛을 기억에 남기는 일본음식 같은 그런 만화였다.


《심야식당》은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드는 식당이 배경인 만큼 매회 다른 사연을 가진 이를 내세워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 수 있으니 드라마로도 제격일 듯하다. 게다가 만화에서는 생략했던 삶의 디테일을 살린다면 더욱 풍성한 에피소드를 구현할 수도 있을 테고. 다만 만화 속에 등장하는 밤세계의 직업을 가진 손님들이 공중파의 성격에 맞을까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일본문화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만약에 《심야식당》이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칼자국 흉터가 있는 식당 주인 역에는 '갑본좌' 김갑수 옹이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식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심야식당의 주인이 매번 새로운 메뉴를 내놓아도, 그리고 손님들이 그 음식들을 맛나게 먹을 시간인 한밤중에 이책을 읽어도 별다른 유혹을 느끼지는 않았다. 허나 나와는 달리 일식을 좋아하거나 음식만 보면 순식간에 식욕이 불타오르는 독자라면 식당이 문을 열어 맛난 음식을 내놓는 '심야'에는 이 만화를 삼가는 게 좋겠다. 천만 다행으로(?) 처음의 몇장을 제외하곤 죄다 흑백그림이라 영롱한 색깔로 유혹하는 음식 사진보다는 침아밀라아제 분비량이 그리 격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냠냠쩝쩝 먹는 손님들을 보며 위산분비 과다로 위가 쓰려올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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