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 (2DISC)
신정원 감독, 엄태웅 외 출연 / 프리지엠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 차우 │ 신정원 감독 │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 박혁권 │ 액션, 어드벤처 │ 2009.07.15 


리뷰 날짜와는 상관없이 <차우>를 본 건 개봉날이었다. 식인 멧돼지가 나오는 괴수 영화라는 점, 그리고 평소 좋아하는 배우인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등이 출연한다는 점 외에는 아는 것 하나 없이 영화관을 찾았다. 사실 엄태웅과 정유미가 출연한 영화라는 점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주변으로 점점 더 많은 피를 뿌리며 잘근잘근 씹어대는 멧돼지의 리얼한 소리란! 으~ 정말이지 그 소리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공포영화도 잘 안 보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혼자 괴수영화를 보러 온 거냐며 부르르 몸을 떨며 한참을 구시렁댔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전체에서, 멧돼지가 바로 뒤통수까지 쫓아오던 추격전보다, 영화 초반에 영화관을 가득 채우던 그 씹는 소리가 가장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조금은 힘을 준 첫 장면이 지나면 살인사건 수사가 진행중인 한가한 시골마을과 음주단속을 하느라 정신없는 서울의 풍경이 교차된다. 장난삼아 '아무데나'라고 써넣었던 것이 발단이 되어 김 순경은 서울에서 시골로 발령이 나고, 치매 걸린 엄마와 만삭인 아내와 함께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한다. 주변 사람들은 한가한 시골 경찰서에 가서 시간이나 죽이라며 위로 아닌 위롤 하지만, 김 순경이 도착할 때쯤 원인불명의 연이은 살인사건으로 마을은 뒤숭숭하기만 하다. 그 사건으로 손녀를 잃은 천 포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범인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 그것도 거대한 짐승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마을의 새로운 사업으로 떠오른 주말농장이 수확철에 접어들면서 도시 사람들이 물 밀듯 밀려온다. 그로인해 조용한 시골 마을 전체가 들썩일 때 어디선가 나타난 엄청난 크기의 멧돼지로 사고가 발생하고 농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마을의 유지인 농장 주인은 유명한 백 포수를 기용해 거대 멧돼지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암컷을 잃은 수컷이 곧 마을로 내려올 거라던 천 포수의 경고는 얼마 후 그대로 재현된다. 손녀의 원수를 갚고 멧돼지의 위험으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는 천 포수와 한때 그의 제자였던 백 포수, 마을의 살인사건을 맡았던 신 형사와 논문을 위해 그들에게 끼어든 동물생태연구가가 추격대를 이루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으려는 김 순경이 거기에 합류하면서 그들의 아슬아슬한 모험이 시작된다.



<차우>의 가장 큰 볼거리는 아무래도 제목처럼 거대 식인 멧돼지일 것이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덩치에서부터 관객을 압도하는 변종 식인 멧돼지는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영화 속의 사람들과 그것을 보는 관객들을 공포로 밀어넣는다. 식인 멧돼지 CG는 <퍼펙트 스톰>, <투모로우> 등에서 CG를 작업했던 한스 울릭의 작품이란다. 멧돼지의 무시무시한 생김새나 한올한올 생생하게 움직이는 털들, 자연스런 움직임은 꽤나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거대 멧돼지가 혼자 나오는 장면과 달리 한 화면에 사람이 겹쳐지면 아무래도 CG티가 좀 난다. 몇몇 장면들은 너무 확연히 보일 정도라 아쉬웠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볼 때 괴수 식인 멧돼지의 모습은 비교적 무난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알았는데, 멧돼지를 잡기 위해 추격대가 들어간 삼매리의 숲속 풍경은 미국 로케이션이란다. 고즈넉하고 신비스러운 산속 풍경이 조금 이국적이다 싶긴 했지만 그곳이 미국의 숲속일 줄이야! 숲속 장면을 굳이 해외 로케이션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은 둘째치고 영화 화면상 그렇게 돈들인 티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나중에 기사를 보니 국내 숲은 산세가 험해 영화 촬영이 쉽지 않는데 반해 미국은 촬영 시스템이 갖춰진 숲이 있고, 식인 멧돼지 CG와 후반작업을 미국에서 바로 할 수 있어 오히려 제작비를 절약할 수 있었단다. 경제적인 논리로는 그게 더 합리적이라고 하니 할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국적인 숲속 풍경은 영화의 주무대인 시골 마을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남긴다.

더불어 빈약한 스토리도 아쉬움이 남는다.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부실한 드라마는 <차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다행히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특히 강력한 포스를 뿜으며 중심을 잡아주는 장항선의 관록있는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빛난다. 엄태웅과 정유미, 박혁권 등의 연기도 괜찮았다. 여러 영화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윤제문 또한 독해 보이면서도 어눌하고 순진한 백 포수를 잘 표현해냈다. 다만 연기가 좋았음에도 전체적인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같은 해 개봉한 영화 <그림자 살인>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우>는 전체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이자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줄 괴수 영화다.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멧돼지와 인간의 추격전은 충분히 재미있다. 아무리 빠른 동물도 늘 도망가는 인간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영화의 평범한 진리(?)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새끼를 되찾기 위해 전속력으로 겁나게 뛰는 거대 멧돼지도 발바닥에 불나도록 달리는 인간들보다는 역시나(?) 한 수 아래다. 덕분에 그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관객들에게 영화의 재미를 선사하지만 말이다.

영화는 멧돼지로 조성된 공포감을 영화 곳곳의 가벼운 웃음들로 상쇄시키며 호흡의 완급을 조절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유머들이 무척 썰렁했다. 분명 웃기려는 의도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걸 보며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하다 실없는 웃음을 날리게 되는 그런 썰렁 유머들이 자주 보인다. 웃음 포인트도 조금 독특하고.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포효하는 식인 멧돼지에게 쫓기는 숨가쁜 질주에 긴장하고 중간중간 보여주는 썰렁 유머에 얼어붙느라 한여름의 무더위를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본 뒤 포털의 한줄 감상평들을 보니, 헉, 죄다 정말 웃겼단다. 정녕 이 영화의 유머가 썰렁하다고, 가끔은 촌스럽고 민망하기도 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 뿐이었을까. 순간 내 유머 코드가 그렇게 특이한가 살짝 고민에 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건 나는 그랬다는 거다. 사람마다 웃음 코드가 다르고 포인트가 다르니 어쩌랴. 영화 정보 찾다가 알았는데, <차우>의 신정원 감독 전작이 영화 <시실리 2km>란다. 공포물은 거의 안 보는 터라 그것도 보질 않았는데, 웃음 코드가 조금 독특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전작을 봤더라면 이 영화의 유머 코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어쨌거나 나는 영화 속의 유머가 못내 아쉬웠다.



영화 <차우>는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변종 식인 멧돼지라는 괴물이 다시 인간을 습격하는 참극을 통해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새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까지 무릅쓰는 식인 멧돼지의 강한 부성애를 통해 그것이 인간에게는 괴물일지 몰라도 생명을 가진 존재이자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의 마음은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식인 멧돼지의 마지막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가슴 찡한 여운을 남긴다. 생각해 보면 멧돼지의 습격은 그저 살아 남으려는 지극히 본능적인 몸부림일 뿐이다. 괴물로 치부되는 식인 멧돼지 또한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만들어낸 피해자인 셈이다. 

홍보 자료의 소개처럼 웰메이드 영화는 아니지만, 다소 성긴 구성과 썰렁한 유머와 가끔씩 티나는 CG가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차우>는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와 그 자체로 공포 포스를 내뿜는 식인 멧돼지 캐릭터와 결과를 빤히 알아도 괜히 긴장하게 되는 추격전이 즐거움을 주는 영화다. 대체로 썰렁하나 가끔은 진짜 웃기는 장면들도 있고.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난다면 지루한 오후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무난할 듯하다. 참고로 영화 제목인 '차우(chaw)'는 강원도 사투리로는 '덫', 영어 속어로는 '(잘근잘근) 씹다'라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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