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존 - Green Zo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가 《그린존》의 예고편을 보게 됐다. 맷 데이먼이 출연했던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가 개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그의 영화가? 하며 스크린을 살피다 순간 와! 하고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바로 《본 얼티메이텀》의 제작진이 뭉친 영화라는 자막 때문이었다. 본 시리즈! 오오~ 액션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감탄한 적이 얼마만이었던가! 영화 '본' 시리즈의 제작진과 맷 데이먼이 다시 의기투합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린존》은 봐야할 이유가 충분한 영화였다. 그래서 개봉날 바로 영화관을 달려갔다. (개봉날 영화 보고 영화 내릴 때쯤 리뷰 쓰는 게 나의 숨은 특기;;) 

2003년 미국은 이라크가 보유중인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공식적인) 명목 하에 이라크를 침공,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다. 미 육군 준위 로이 밀러는 이라크 내에 숨겨진 대량살상무기를 찾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고 바그다드로 급파되어 긴박한 작전을 펼치지만 매번 허탕만 친다. 익명의 정보원이 제공했다는 비밀 정보를 따라 지역을 급습하나 무기는커녕 비둘기똥만 가득한 오래된 폐공장이거나 먼지만 폴폴 날리는 빈 공터가 나오기 말이다. 연이은 작전 실패에 밀러는 정보의 신빙성에 의문을 품게 되고, 비밀 정보원에 대해 의의를 제기하지만 상부에 의해 묵살된다. 

CIA의 글리슨 국장과 만나면서 밀러는 정보의 신빙성에서 정부가 전쟁의 목적으로 공표했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참여한 전쟁이 세계 평화 유지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는 데 충격을 받은 밀러는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또다시 명령을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한 이라크 시민에 의해 멀지 않은 곳에 후세인 세력의 최측근 핵심 인사들의 모임 제보를 받고 현장을 덮친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고, 그로 인해 믿고 싶지 않았던 전쟁의 추악한 진실과 마주서게 된다. 대량살상무기의 진실을 숨기려는 정부 세력과 세계 평화 뒤에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려는 밀러의 싸움이 팽팽하게 진행된다. 

세계의 전쟁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의 공식적인 명분 뒤에는 대게 은밀한 진짜 이유가 따로 숨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책을 통해 만나는 과거의 전쟁들 뿐만 지금 우리 시대에 경험하는 전쟁에서도 역시나 유효하다. 세계를 위협하는 이라크 내의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미국과 연합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 그러나 이 전쟁이 '세계 평화 유지'라는 그럴듯한 대의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가 보유중인 석유 자원의 이권 전쟁이었다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전쟁에 승리한 후 미국의 요구를 착실하게 수행할 친미파 인사에게 이라크 정권을 승계하는 과정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인류가 벌이는 전쟁 뒤에 감춰진 더러운 진실을 고발하는 영화 《그린존》에서도 이런 일들은 그대로 재현된다. 정부가 내건 전쟁의 이유였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대신 그에 대한 의혹만이 커질 뿐이다. 진실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밀러에게 전쟁을 둘러싼 은밀한 음모가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목숨을 건 추적 끝에 알게 된 진실은 허망하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알리기도 전에 미국은 재빨리 전쟁의 승리를 선포하고 진실 은폐에 돌입한다. 그리고 친미파 인사를 내세워 미국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수립한다.

외세에 의해 전쟁이 종결되고 오랫동안 이라크를 떠나 있던 자가 민주주의를 외치며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돌아와 정권을 장악하고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영화 후반부에 짧게 거론되는 그 과정들이 마치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되돌려 보는 것 같았다. 그들도 우리가 겪어야 했던 숱한 시행착오를 거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답답해졌다. 또한 영화 중반에는 미군 안전지대이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존' 내의 화려한 생활과 미군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는 이라크 국민의 궁핍한 상황이 함께 교차된다. 실내 수영장에서 물놀이와 사막의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그린존 내 미국인들과 수영은커녕 먹을 물조차 없어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인 이라크인들의 모습은 이라크 전쟁의 속살을 그대로 주는 듯해 기분이 씁쓸했다.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의 현기증 나는 속도감과 짜릿함,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실감나는 리얼한 액션,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연기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게 했던 《본 얼티메이텀》. 비록 절정의 재미를 안겨준 액션영화 《본 얼티메이텀》을 능가하진 못했지만, 《그린존》은 나름대로 장점을 가진 영화다. '본' 시리즈의 그들이 다시 뭉친 작품답게 긴장감 감도는 전개와 빠른 호흡, 대규모 총격전이나 육탄전이 보여주는 화끈한 액션은 물론 전쟁의 숨겨진 이면을 파헤치는 정치적인 면모까지 놓치지 않으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얼마전 개봉한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에서 감동을 선사했던 맷 데이먼은 《그린존》을 통해 탄탄한 근육질의 직사각형 각진 몸매를 과시하며 내면 연기는 물론 최고의 액션 배우임을 증명해 보인다.

《그린존》은 전쟁 영화의 볼거리와 긴장감, 정치 영화의 고발자적 시선을 적절히 아우르며 이라크 전쟁을 다루었으나 상업영화의 재미도 놓치지 않으며 두 시간을 충분히 즐겁게 채워나간다. 다만 현실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만큼 비교적 결과가 예측 가능하고, 이라크 국민의 시선을 대변하고자 했던 시민 제보자 프레디의 마지막 활약은 (이해는 되지만) 다소 튀는 느낌이 드는 건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전쟁의 진실이 밝혀진 후 그것을 알리려는 밀러의 용기있는 행동은, 다소 미미한 듯하지만 권력의 힘에 굴복하지 않는 시대의 양심이라는 희망의 메시지 같아 나쁘지는 않았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멋진 배우 맷 데이먼과 함께 전쟁 이면의 또다른 진실에 대해 잠시라도 떠올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듯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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