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 이은희 | 살림프렌즈(살림) | 2010.01
예전에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맥가이버』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섰다가 위험에라도 빠지면 주인공 맥가이버는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을 바탕으로 작은 다용도칼로 일상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물건들을 멋지게 응용해 마치 마법을 부리듯 위기를 모면했다. 매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작은 마법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고, 주인공의 머리는 맥가이버 머리로 그가 애용하는 다용도 스위스 군용 칼은 맥가이버 칼로 지칭되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맥가이버』 시리즈는 추상적이고 어렵던 물리학을 보다 가깝고 재미있게 느끼게 해준 드라마이기도 했다.
『맥가이버』처럼 꼭 과학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궁금증을 품게 된다. 이를테면 왜 총알은 주인공만 피해 가는지, 가슴에 총을 맞은 주인공은 왜 꼭 할 말을 다 하고 죽는 건지,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먹지도 않은 채로 며칠을 내달리고도 제대로 살 수 있는지, 기억상실이라면 뇌의 일부를 다친 것일 텐데 다른 부분은 전혀 이상이 없는 건지 등등 극의 재미나 극적인 효과를 위한 설정임을 알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미 그 의문들의 해답을 찾아 나서곤 한다.
그런데 여기 그런 사람이 또 있으니, 바로 이책의 저자다.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다양한 글을 써오던 저자가 이번에는 미드 속 과학으로 눈길을 돌렸다. 「CSI 과학수사대」, 「프리즌 브레이크」, 「본즈」, 「그레이 아나토미」 등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여러 미드들 중에서 몇몇 에피소드를 선정해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과학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들을 맛깔나게 풀어놓았다. 그저 재미로 보던 미드에서 찾아낸 과학 이야기들은 드라마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는 총 13개의 미드에서 과학적으로 중요한 소재를 다룬 30개의 에피소드들을 뽑아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책은 크게 3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인체의 미스터리 편에서는 공기중에 떠다니는 화학 성분을 통해 범인을 잡는 기술, 잇따른 임산부 유산을 일으킨 아이스크림 속의 세균, 그리고 시골 마을을 덮친 전염병의 정체 등의 에피소드 등을 통해 우리 몸의 과학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테마인 숨어있는 화학 편에서는 최근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트랜스 지방을 비롯해 인체에 해로운 식단이나 통증을 잠재우지만 동시에 중독을 부르는 진통제의 두 얼굴, 최근 미용시술 재료로 각광받고 있는 보톡스의 출신성분 등 흥미로운 생활 과학을 살펴본다.
개인적으로 현대 과학의 치명적인 유혹을 다룬 마지막 테마가 가장 흥미로웠다.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아직도 그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안락사를 비롯해 성 정체성의 혼란, 인체 실험의 역사, 범죄형 유전자, 다양한 신체 이식과 그 폐해 등이 그 주요내용들이다. 이 단락에서 인용된 에피소드들은 놀랍게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 많았다. 또한 옳고 그름을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거나 또는 사람들의 무지나 욕심 등 잘못된 생각에서 일어난 사건을 글감으로 한 것들이 많아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 뒤에 어두운 그늘을 접하며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됐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이후 과학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대중과학서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최근에 만났던 재미난 과학책인 『도전 무한지식』이나 『과학 도시락』처럼 이책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역시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과학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특히 이책은 우리 주변에 숨어있는 과학들을 인기있는 미드의 여러 장면들과 연계해 함께 풀어냄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에 대한 이해력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 드라마에 대한 흥미도 상승은 덤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근래에 제대로 챙겨본 미드가 없어 책을 이해하는 데 행여나 걸림돌이 될까 조금 걱정이 됐었다. 그러나 각 글마다 앞부분에 해당 에피소드의 줄거리를 간략히 정리해 두었고 더불어 저자가 글감으로 삼는 과학 소재들은 주로 드라마의 전체보다 부분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굳이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별다른 무리가 없다. 그러니 나처럼 미드 마니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책을 읽는 동안 드라마 속에서 찾아내는 다양한 과학 이야기들에 한 번 놀라고, 광범위하고 기상천외한 소재들을 드라마로 만드는 미국 드라마의 폭넓은 기획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사람들이 미드에 열광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듯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책을 읽고나니 한동안 보지 않았던 미드에 다시 슬쩍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고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어 자칫하면 폐인이 되기 십상인 드라마의 특성상 아직은 여전히 고민만 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니면 미드 대신 저자가 쓴 '하리하라 과학 시리즈' 책들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지루한 과학에서 신나게 탈출하기'이라는 부제처럼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는 어렵고 딱딱한 과학이 아닌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다. 이책의 주요 대상으로 나오는 청소년은 물론이고 성인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빠져들 수 있고, 미드를 사랑하거나 반대로 미드랑 친하지 않은 독자들 모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이책이 '지루한 과학에서 신나게 탈출하기 프로젝트 제 1탄'이라고 하니 2탄도 이미 계획중인가 보다. 2탄에서는 또 어떤 신나는 이야기를 안고 찾아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 오탈자
- 179쪽 3번째 줄 : 운동신경을 마비되어 경련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 운동신경이 마비되어 or 운동신경을 마비시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