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슈퍼히어로
앤드류 카우프먼 지음, 박산호 옮김 / 토네이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 얼렁뚱땅 슈퍼히어로 | 앤드류 카우프먼 | 박산호 옮김 | 브리즈 | 2008.08 


친구를 만나러 나가기에 앞서 책장 앞에 섰다. 작은 가방에 맞는 아담한 책을 고르다 책장 한 구석에서 이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이책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크기와 얇은 두께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덥썩 집어들고 집을 나섰다. 양장본이긴 하지만 1백 페이지를 살짝 넘기는 터라 무게감도 거의 느껴지질 않는다. 게다가 가벼운 소설이다. 짧은 외출에 가볍게 읽기에는 이런 책이 제격이라며 버스를 기다리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 나의 기대에 이책은 오롯이 부응해 주었다. 가볍게, 부담없이,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책의 끝자락에 이르러서는 결론을 이해하느라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용을 곱씹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주인공 톰과 그가 사랑하는 〈완벽녀〉는 벤쿠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토론토 공항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둘이 함께 여행을 가느냐 하면 그 반대다. 결혼식날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톰을 기다리며 실연의 상처에 빠졌던 〈완벽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기 위해 토론토를 떠나려 하고, 늘 그녀 곁에 있지만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톰은 〈완벽녀〉와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비행기가 벤쿠버에 도착하기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마지막 방법을 모색한다. 도대체 이 커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6개월 전 톰은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완벽하게 만드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인 〈완벽녀〉와 사랑에 빠졌고 친구들을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완벽녀〉를 완전히 잊지 못한 그녀의 전 남자친구인 〈최면술사〉가 결혼식을 찾았고, 톰이 잠시 식장 내 소란을 수습하러 간 사이 그녀에게 최면을 걸어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톰은 '그녀에게만'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아닌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완벽녀〉는 톰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톰은 그녀 곁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해 가슴이 찢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새출발을 결심하고 그들 사랑의 최대 위기에 봉착한 톰은 그녀의 최면을 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아 나선다.  

『얼렁뚱땅 슈퍼히어로』는 기본적으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한 톰의 몸부림이 눈물겨운 '톰과 〈완벽녀〉의 로맨스'다. 벤쿠버로 떠나는 〈완벽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이 처음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최면에 걸려 눈물의 시간을 보내기까지의 일들은 물론 그들의 과거 연애사까지 함께 곁들여 준다. 그리고 결혼식날 졸지에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톰과 그런 그를 알아보지 못해 서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엇갈린 커플이 고난과 위기를 넘어 다시 완전한 사랑을 되찾는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평범남과 〈완벽녀〉의 로맨스'와 함께 소설의 또다른 축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톰의 슈퍼히어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톰의 첫 번째 슈퍼히어로 친구인 〈양서인간〉을 비롯해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듣는 〈초절정청각〉, 주변의 스트레스를 모두 빨아들이는 〈스트레스 토끼〉, 직업도 능력도 없이 친구집 소파를 전전하는 〈소파 방랑자〉, 자신이 믿는 것을 다른 사람도 믿게 만드는 〈투영녀〉, 상대에게 현재와 정확히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꾸로 사나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정리의 여왕〉 등 기상천외한 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이쯤되면 독자들은 눈치를 채기 시작한다. 책 속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이런 슈퍼히어로들이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을, 바로 내 곁에 또는 나 자신이 그런 슈퍼히어로라는 걸 말이다.

짧은 소설이라 이야기 구성은 빈약하고 다소 산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통통 튀는 재치와 상상력은 그런 부족함을 어느 정도 메꿔준다. 사랑 때문에 가슴이 아픈 톰의 심장을 청소하는 의사 암브로즈나 다양한 슈퍼히어로들이 그러하다.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가운데에도 때때로 '근심괴물'을 없애는 방법이나 외로움이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나름의 진정성을 얹어준다. 

〈완벽녀〉에게는 투명인간이었던 톰은 벤쿠버에 도착하기 마지막 몇 미터를 앞두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그들이 던져주는 마지막 열쇠를 통해 우리가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사랑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것도 좋겠다. 이책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슈퍼히어로들도 함께 말이다. '인생에 대한 유쾌한 성찰을 담은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책의 카피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가볍고 유쾌하게 읽기엔 괜찮았다. 허나 황당한 소재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즐기지 않는 독자라면 조금 더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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