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In the Blue 2
백승선 / 쉼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 백승선, 변혜정 │ 가치창조 │ 2010.01 


여행에세이를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다. 가보고 싶었던 곳 또는 온전히 낯선 세계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멋진 여행에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낯선 풍경들은 눈을 즐겁게 하고, 여행자들이 들려주는 감상이나 경험들은 마음을 달뜨게 한다. 비록 내 육신은 한껏 게으름을 부리며 방바닥을 뒹굴고 있지만 내 마음은 그들의 이야기를 타고 나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언젠가 그들처럼 떠날 순간을 상상하면서. 이런 설렘을 전해주니 어찌 여행에세이를 마다하랴. 미처 일상을 떨쳐내지 못하는 나는, 그래서 여행자들의 이야기가 늘 궁금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주황빛 지붕들이 매혹적인 크로아티아의 여행기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그들의 두 번째 여행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곤 바로 찾아읽었다. 이번엔 벨기에다. 제목도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다. 벨기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전혀 없음에도 별다른 망설임 없이 이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전작에 대한 믿음, 지도상의 이름으로만 알았던 크로아티아를 보다 생생하게 전해주었던 전작 만큼 이책 역시 벨기에의 새로운 매력들을 펼쳐보여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 책과 함께 등장한 ‘번짐’시리즈, 이책과 전작을 묶는 용어다. 그래서 두 책은 저자는 물론 책의 포맷도, 판본도 모두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시리즈로 계속 출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독자로선 반가운 일이다.


벨기에,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하나라는 것 외에 벨기에만의 특별한 무엇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어린 시절 나를 즐겁게 해주었던 파란 생명체인 ‘스머프’가 태어난 곳이 벨기에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대학 시절 불문과에 다니던 선배가 수업 교재로 〈개구쟁이 스머프〉를 쓴다던 이야기에 그것을 줄곧 프랑스 만화로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충격이었다. 알고보니 벨기에는 인접국가인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의 언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단다.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의 세력이 강하며, 자신들만의 모국어는 따로 없다고. 그렇게 한동안 벨기에는 내게 ‘스머프의 나라’로 각인됐다.

그런데 이책을 만나면서 벨기에는 좀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됐다. ‘스머프의 나라’였던 벨기에는 《플란다스의 개》의 나라가 되었고, 와플과 초콜릿과 맥주의 나라가 되었다. 르네 마그르트와 루벤스의 나라였고, 외모 뿐만 아니라 내면적 아름다움을 보여준 오드리 헵번이 태어난 나라이기도 했다. 낯설기만 했던 벨기에를 대표하는 단어들이 이렇게나 친숙한 것들이었다니. 벨기에와의 심리적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나라 전체가 우리나라 경상도 지역 정도의 면적인 벨기에는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 3국으로 불리며 유럽연합(EU) 건물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세의 역사와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어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기있는 관광지임은 물론이다.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은 벨기에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브뤼셀과 안트베르펜, 브뤼헤, 그리고 우연히 찾은 겐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국적인 풍광과 달콤한 이야기들을 통해 벨기에의 다양한 면면들을 보여준다.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답게 가장 많은 볼거리와 이야기를 가진 도시였다. 빅토르 위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칭송했던 그랑 플라스를 비롯해 그 유명한 ‘오줌싸게 소년 동상’, 천장이 유리로 덮힌 유럽 최초의 쇼핑 갤러리인 성 유베흐 갤러리 등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초콜릿 장인의 나라’답게 보기만 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달콤한 초콜릿과 세계 최고의 맛으로 인정받았다는 맥주와 ‘벨기에의 붕어빵’인 와플이 여행자의 입맛을 유혹한다. 스머프와 틴틴이 있는 만화박물관, 가장 많은 악기를 소장하고 있다는 악기박물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마그리트 미술관도 빠질 수 없다. 성 미셸 대성당에는 한국 교민이 기증했다는 한복 입은 동방박사 모형이 있다는데 사진으로라도 만나볼 수 없어 궁금하고 아쉬웠다.

‘손’의 형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도시 안트베르펜은 노트르담 대 성당과 루벤스로 대표된다. 200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벨기에 최대의 성당인 노트르담 대 성당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성모승천〉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포함한 루벤스의 걸작 그림들로 유명세가 더해졌다. 특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는 벨기에 7대 보물 중 하나로 사랑받는 그림이라고. 우리에겐 《플란다스의 개》의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그림으로 더 유명하지만 말이다. 노트르담 성당 옆으로 난 길 또한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이 된 곳이란다. 더불어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루벤스가 마지막까지 거처했던 루벤스의 생가와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왕립 미술관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운하의 도시인 브뤼헬은 짧은 감탄사가 나올만한 예쁜 도시였다. 엽서에서 흔히 보았음직한 잘 정돈된 유럽풍 건물과 거리, 도시를 유유히 흐르며 ‘북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운하, 그리고 반할만큼 예쁜 번지수 팻말이 인상적이다. 크로아티아 만큼은 아니지만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주황색 지붕의 집합을 여기서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브뤼헬은 성혈 예배당에는 제 2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플랑드르 백작이 예루살렘에서 모셔온 예수님의 성혈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차를 타고 가던 저자가 끝없이 빼곡하게 이어진 자전거들에 놀라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는 도시 켄트는 관광안내소 직원이 강조하듯이 작은 도시지만 유서 깊은 유산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나의 눈길을 끈 건 각양각색의 건축물이 아닌 낙서 벽화 거리인 ‘그라피티 거리’였다. 공식적으로 마음껏 낙서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줌으로써 중세의 건축물들을 지켜내는 그들의 열린 사고가 이방인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들어줬다.


이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벨기에는 그저 유럽의 어디쯤에 존재하는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나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이책을 통해 벨기에는 내게 달콤한 향기를 머금게 하는,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저자들은 전작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와 마찬가지로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역시 맛깔스런 글로 여행자의 낯선 설렘과 즐거움을 들려준다. 눈을 즐겁게 하는 멋드러진 사진들은 독자들에게 벨기에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감성적인 일러스트는 사진과는 또다른 재미를 전해준다. 사이사이 여행지에 관한 짧은 정보들을 첨부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눈과 마음이 함께 즐거운 책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벨기에는 한결 정겨운 나라가 되었다. 

백승선 변혜정이 찍고 쓴 여행에세이안 ‘번짐’ 시리즈는 기존의 여행서에서는 만나기가 쉽지 않았던 나라인 크로아티아와 벨기에에 대한 이야기를 연이어 내놓음으로써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짧은 글과 수많은 사진과 가끔의 일러스트가 적절히 잘 어울어진 구성 또한 자신만의 포맷을 형성한다. 전작도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책이 더욱 즐거웠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저자들이 찾아갈 다음 나라가, 그곳의 매혹적인 풍광과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행복과 달콤함 다음에는 어떤 번짐이 찾아들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벨기에의 달콤한 이야기에 조금 더 취해 있어도 좋을 듯하다. 















▲ TV만화 《플란다스의 개》의 네로가 노트르담 대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루벤스의 그림. 
   왼쪽이 〈십자가를 세움(The raising of the cross)〉, 오른쪽이 〈십자가에서 내리심(Descent of the cross)〉





▶ 오탈자 (초판 1쇄) - 책에 페이지가 없어서 오탈자 적기도 참 애매하다..;;

+ 브뤼셀 편,
  : 부셰 거리 삽화 뒷면의 스파게티 사진 옆의 페이지 1째줄 - 끊임없이 유년 시절을 생각키우던 벨기에. → 생각케하던

+ 안트베르펜 편,
  : 루벤스의 집 삽화와 왕립미술관 사진이 있는 페이지 → 네로가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어했던 그림은 성당 천장의 〈성모승천〉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내리심(Descent of the cross,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이란다. 
이책을 읽은 후 추억의 만화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엔딩씬을 다시 찾아봤는데, 네로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던 그림은 〈십자가를 세움(The raising of the cross)〉과 〈십자가에서 내리심(Descent of the cross,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이었고, 죽은 네로와 파트라슈를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천사가 내려오던 그림이 바로 천장의 〈성모승천〉이었다.

+ 브뤼헤 편,
  : 바실리크 성혈 예배당 사진 밑의 설명에는 '랑드르 백작'이라 되어 있고, 그 뒷장 삽화 옆의 글 4째줄에는 '랑드르 백작'이라고 되어 있다. 다른 글에는 모두 '플랑드르 백작'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사진 밑의 글자가 오타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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