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를 부르는 그림 Culture & Art 1
안현신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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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키스를 부르는 그림 │ 안현신 │ 눈과마음 │2010.01 



‘키스’를 다룬 그림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작품은 아마도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아닐까 싶다. 클림트의 유명세와 함께 황금빛 옷으로 감싸안은 연인의 모습이 그만큼 강렬하고 화려하며 관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클림트의 『키스』 외에도 ‘키스’를 주제로 그려진 그림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키스씬만이 연이어 스크린에 비춰지던 영화 『시네마 천국』의 감동적인 엔딩씬처럼 키스하는 그림들만 함께 모아본다면 어떨까. 뭔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이런 이런 생각으로 바탕으로 출간된 책이 'Culture & Art Series'의 첫 번째 책인 안현신의 『키스를 부르는 그림』(2010,눈과마음)이다.

명화 속에 표현된 키스를 이책은 크게 즐거운 입맞춤, 비극의 입맞춤, 유혹과 관능의 입맞춤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1장 즐거운 입맞춤에서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키스, 행복에 겨운 감격의 키스, 무한한 모성의 키스 등이 등장한다.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된 샤갈의 그림 속 연인들의 입맞춤은 보는 이들까지 행복하게 만들고, 키스를 통해 온전히 하나가 되는 브랑쿠시의 조각들은 단순함 속에 연인에 대한 깊은 열망을 보여준다. 아기에게 키스하는 엄마를 그린 여류화가 메리 카사트의 그림들은 진한 모성애를 나타냄과 동시에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기존의 남성화가와 차별된다. 서로를 위로하는 사창가 여인들의 입맞춤을 그린 툴루즈 로크레크의 그림은 쾌락보다는 연민과 애잔함이 느껴진다.

2장 비극의 입맞춤에서 키스는 배신과 죽음이라는 의외의 기호로 사용된다. 지오토의 그림 속에서 유다는 자신이 팔아넘긴 예수를 지목하는 방법으로 키스를 선택하고, 뭉크의 그림 속 연인들은 불안과 고통을 떨치기 위해 격렬한 입맞춤을 한다. 르네 마그르트는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키스하는 연인들의 그림을 통해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실존 인물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매혹적이고도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는 여러 화가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재해석되어 그려져 서로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까지 주었다. 뒤늦게 재평가되고 있는,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까미유 클로델의 조각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곧 쓰러질 듯한 여자와 그녀를 받쳐든 남자의 조각 『샤쿤탈라』는 그녀의 불운했던 실제 삶과 겹쳐져 더욱 아련하게 다가왔다.

3장 유혹과 관능의 입맞춤은 욕망과 에로티시즘의 방법으로 표현된 키스를 살펴본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깊은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의 애절한 키스는 이오를 겁탈하는 바람둥이 제우스나 상대를 죽여서라도 소유하려는 광기어린 살로메의 키스와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의 표현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에서 키스는 에로티시즘의 정점으로 낭만적인 관능적인 순간을 보여주는 반면 피카소나 실레의 그림 속 키스는 괴기스럽거나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연인들의 아슬아슬한 키스를 포착해 화폭에 옮긴 프라고나르의 그림들은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 눈길을 옮기다 보면 그속에 숨어있던 이야기과 마주하게 되는데 누군가의 연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각 단락의 말미에는 ‘가상의 작업일지’라는 작은 꼭지가 있어 그림을 읽는 또다른 재미를 전해준다. ‘그 작품을 그린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 것인가를 상상해보는 과정에서 태어난’ 코너로 ‘작가 자신의 일기나 다른 사람이 쓴 자료들을 참조’하고 거기에 저자의 상상을 더해 씌여진 글들로 꾸려져 있다. 그 내용이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행복에 겨운 생일날을 보낸 샤갈이나 불안에 떤 꿈을 꾼 뭉크 등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 또한 그림의 모티브를 제공한 만화 원작자에게 보내는 리히텐슈타인의 가상의 편지를 통해 그림을 보며 품었던 의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었다. 

『키스를 부르는 그림』은 ‘키스’라는 공통된 소재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을 한번에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저자는 그림은 물론 조각, 일러스트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른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는 키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와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가치관에 따라 낭만적이고 에로틱한 사랑의 행위를 상징하는 키스는 때론 배신이나 불안을, 또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되기도 한다. 키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키스라는 하나의 행위가 연출자의 시선에 의해 완전히 다른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는 것의 발견 또한 흥미로웠다.

그러한 그림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저자의 글은 일단 쉽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별다른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종종 끝없이 이어지는 만연체의 문장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게다가 재미있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녀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 속에 숨어있던 상징과 이야기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그림을 읽어내는 재미랄까. 그외 그림의 모티브가 된 문학 작품이나 성경 속 이야기, 시대적 상황이나 화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다양한 각도로 그림에 접근한다. 더불어 샤갈이나 뭉크, 클림트, 피카소 같은 유명화가 뿐만 아니라 로세티나 본도네, 브랑쿠시처럼 전에는 몰랐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반가웠다.

사랑은 인간의 영원한 주제이고, 키스는 그것을 표현하는 또다른 테마다. 키스라는 매혹적인 키워드로 살펴본 명화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키스를 부르는 그림』은 독자의 눈길을 자극한다. 그리고 다양한 시대와 작품들을 아우르며 제시하는 풍부한 볼거리와 읽을거리, 그것을 들려주는 저자의 친절하고도 맛깔스런 설명은 그런 독자의 기대에 부응한다. 우연히 만났으나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던 책이었다. 다음 시리즈가 은근히 궁금해질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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