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낭독 훈련에 답이 있다
박광희 외 지음 / 사람in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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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낭독 훈련에 답이 있다 | 박광희, 심재원 | 사람in | 2009.12 


지난해 터키로 여행을 갔다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일행들이 사라졌다. 어둑하게 땅거미가 지는 추운 겨울 저녁 낯선 땅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어찌나 막막하고 두렵던지 순간 눈물이 핑 돌 뻔 했다. 다행히 다시 되돌아온 일행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이스탄불 거리의 미아 신세는 면했지만 말이다. 그순간 내게 가장 공포로 다가왔던 것은 낯선 땅에 혼자 있다는 것보다 내 의사를 표현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었다. 어차피 터키는 영어가 외국어인 나라이지만 나의 영어 울렁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는, 말하자면 내 일생의 부담이다. 친해져 보려고 해도 좀처럼 친해지지 않으면서 늘 곁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친구랄까. 그런 데다 문법 지향적인 철저한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내다 보니 눈으로 해석은 어느 정도 하지만 듣기나 발음은 영 꽝이다. 영어 듣기는 영어 성적을 깎아먹는 주범이었고, 구린 발음에 외국인 앞에서는 평소 우렁차던 목소리가 모기소리만 해졌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양 볼이 수시로 붉어짐은 물론이다. 자신감 없는 영어를 돌파해 보고자 원어민이 있는 영어 학원을 다녀봤지만 들리지 않는 귀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이기지 못해 결국 중도에 그만두는 비극을 맞곤 했다. 그렇게 영어는 항상 내게 비극적인 존재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던가. 더이상 피할 수 없다면 이젠 직접 부딪쳐 즐겨보는 수 밖에 없다. 물론 마음을 바꿔먹겠노라 선언한 뒤에도 여전히 피하는 데 주력하는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피할 수 있다면 영원히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제부터라도 다시 영어와 부딪쳐볼까 한다. 게다가 지난 여행에서 영어 벙어리의 고충을 온몸으로 경험한 터라 어디에서든 최소한 의사 소통은 가능할 정도의 영어 실력은 갖춰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게다기 지금은 무언가를 새롭게 계획하기에 알맞은 한 해의 시작점이 아닌가. 


어떤 방법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며 영어학습 책들을 찾던 와중에 이책을 발견했다. 『영어 낭독 훈련에 답이 있다』(사람in,2009), 직설적인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듯이 이책은 영어 낭독 훈련을 통한 영어 공부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실생활에서는 영어로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환경(EFL)에서는 영어와 익숙해지기 위해 우선 억지로라도 입을 열어 영어로 소리내어 말하는 연습을 통해 스피킹의 기본기를 다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스피킹의 기본기를 익히는 방법으로 저자는 '새도우 스피킹(Shadow speaking)'을 제안한다. 새도우 스피킹이란 그뜻 그대로 원어민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림자처럼 따라 말하는 학습법으로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착안한 일종의 낭독 훈련이다. 이 새도우 스피킹은 청취력을 향상시키고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데, 원어민을 따라 반복해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성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음은 물론 문장을 적절한 의미 단어로 끊어 말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또한 문장의 이해를 통해 자연스레 어휘 향상까지 기대할 수 있다.

- 영어 낭독 훈련의 핵심은 실제 원어민과 말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대화체 문장들이 많이 수록된, 엄선된 영어 동화책을 가지고 새도우 스피킹을 함으로써 우리말식 발음을 세탁하고 영어 본래의 발음을 새롭게 익히며 유창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22쪽)


'1장 영어 낭독 입문하기'에서는 본격적인 영어 낭독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위에서 언급한 영어 낭독 훈련의 필요성과 사용할 교재의 선택 과정, 낭독 연습 후 녹음과 평가 방법, 그리고 낭독 훈련을 이끌어줄 낭독 코치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설명을 해두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영어 낭독 교재 선택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1차 후보부터 최종 선택 교재까지 그 후보와 기준, 과정을 모두 공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와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일명 '레이보우 낭독 교재'는 수준에 따라 7단계로 나누고 그에 알맞은 교재와 학습 기간들을 같이 기록해 놓았다.

'2장 영어 낭독 공부하기'에서는 영어 낭독의 필요성과 효과를 통해 영어 낭독 훈련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 주고, 7가지의 다양한 훈련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상황과 취향에 맞는 낭독 훈련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문장을 의미 덩어리로 나누어 읽는 방법을 통해 긴 문장도 유창하게 읽는 방법을 알려주며, 영어 낭독 평가 항목과 방법의 공개를 통해 기준에 부합하는 올바른 영어 낭독 훈련을 하도록 독려한다. 더불어 영어 낭독 훈련을 통해 영어 공부를 효과적으로 시작한 사람들의 예를 통해 학습자에게 용기를 부여하고 지루한 터널을 뚫고 자기 감동의 희열을 맛볼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이책을 시중의 그저그런 영어 학습책에 머물지 않고 보다 배려깊은 책으로 완성시켜 주는 결정적인 부분은 바로 영어 낭독 훈련의 '실천'에 초점을 맞춘 A/S 프로그램이다. 어떤 공부법이든 마지막까지 꾸준히 할 수 있느냐가 가장 관건이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시작했던 계획도 중반에 이르러서는 흐지부지되기 쉽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어 낭독 훈련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매일 꾸준하게 실천할 수 있는 실행력 향상 프로그램인 일명 '무지개 액션 키 세트'를 제안한다. 7개의 실행 열쇠 중에서 학습자 각자의 성향과 그때그때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알맞은 열쇠를 조합해 그 기능을 활용함으로써 마지막까지 꾸준히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3장 영어 낭독 실천하기'에서는 영어 낭독 훈련을 하는 방법을 샘플 원고로 초급, 중급, 고급 단계별로 정리해 두었다. 낭독 원고 뒷면에는 발음이나 끊어읽기에 대한 코치를 해두어 막막하기만 했던 낭독 훈련과 코치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준다. 부록 '영어 낭독 코칭 매뉴얼'에서는 아이나 친구의 영어 낭독 코치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과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책의 말미에는 영어 낭독 훈련용 스토리텔링 스크립트가 별책부록으로 같이 첨부되어 있다. 초급 10편과 중급 10편의 스크립트가 수록되어 있는데, 해당 원고에 대한 녹음 자료를 받을 수 있는 웹사이트까지 남겨두어 마지막까지 친절한 면모를 잃지 않는다.

- 영어 낭독 훈련도 이렇게 쉬지 않고 해 보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비법을 찾아 헤매는 그 시간에 차라리 한 번 더 입을 열고 영어 낭독을 실천해 보세요. 그것이 한국 영어 교육에서 지금 빠져 있고,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63쪽)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다른 영어 학습책과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어,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깔려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새도우 스피킹을 통한 영어 공부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크게 새로울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책은 왜 영어 낭독 훈련을 통해 스피킹의 기초를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구체적이고 상세한 방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통해 독자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세밀한 영어 낭독 훈련 방법과 마지막까지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실행력 향상 프로그램은 물론 낭독 코치에 대한 내용을 부록과 마지막 샘플 원고까지 세심히 챙기는 등 정말 성실한 자세로 책을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져 더욱 믿음이 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무작정 시작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목표까지 수월하게 닿기 위해서는 성실함 못지 않게 '잘'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날 어려운 문법공부만 해봤자 정작 외국인 앞에서 입 한 번 제대로 떼지 못하기 일쑤다. 외국어 또한 살아있는 언어인 만큼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과 같은 방법으로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이책에서는 그 방법으로 새도우 스피킹을 통한 영어 낭독 훈련을 제시한다. '잘' 시작하는 방법과 낭독 코치와 무지개 액션 키 세트라는 길동무까지 알려줬으니 이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학습자의 몫이다. 못 해도 장래성 있게 못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지금 당장은 별다른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영광의 그날을 다함께 맞길 바라본다.


- "Well begun, half done. '흔히 시작이 반이다'라고 번역을 하는데요, 이건 반만 맞는 해석일 겁니다. 'well'이란 는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번역을 해보면 '잘 된 시작이 반이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략) 이제 중요한 것은 "잘" 시작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못해도 장래성 있게 못하라는 말이 바로 이말입니다.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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