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치타가 달려간다 - 2009 제3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0
박선희 지음 / 비룡소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 파랑치타가 달려간다 │ 박선희 │ 비룡소 │ 2009.11 


열입곱 강호의 집에 세 번째 엄마가 왔다. 그리고 강호는 네 번째 가출을 했다. 가출이라고는 하지만, 그저 집이 아닌 아르바이트하는 주유소에서 숙식을 해결할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수업은 지루하고 가끔 결석은 하지만 그래도 학교에는 간다. 대부분을 술에 취해 사는 아빠와 몇 번째 바뀌는 새엄마가 함께 사는 집에서 자신을 걱정해주는 유일한 존재인 동생 강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빠가 되겠다는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저녁에는 주유소에서 알바를 한다. 힘은 들지만 용돈은 물론 학교 수업료까지 직접 벌어야 하는 '미성년자' 강호에게는 적지 않은 시급과 잠자리까지 제공해주는 주유소 알바는 그리 나쁘지 않다.

세 번째 엄마가 오고 학교에 결석을 하고 주유소로 가출을 한 다음날 등교한 날 외고에서 전학생이 온다. 담임을 따라 교실에 들어선 도윤은 순간 맨 뒤에 앉아있는 강호와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놀랐고, 당황했으나, 교실에서 딱 하나 남은 빈자리가 강호의 옆자리였기에 당연한 듯 짝이 되었다. 그렇게 두 친구는 4년 만에 우연히 같은 교실 옆자리에서 재회했다. 한때 더없이 친한 단짝이었으나 어느 순간 적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던 그 시간들을 마음 속에 묻어둔 채로. 4년이 지난 지금도 도윤은 강호가 갑자기 자신에게 왜 그랬는지 아직도 궁금해 하고, 강호는 도윤에게 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아들의 성적에 눈이 멀어 자신에게 상처입힌 도윤의 엄마를 떠올린다.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는 이렇게 서로에게 아픈 추억이 있는 강호와 도윤의 재회로 시작된다. 소설은 강호와 도윤의 시점에서 교대로 이야기를 진해하며 각자의 상황과 마음을 풀어놓는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와 집 나간 엄마, 그리고 번번이 바뀌는 새엄마라는 복잡다단한 가정 덕분에 강호는 일찌감치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다. 공부에는 관심없고 담배를 피우거나 교사들의 명령에 반항해 어른들에게는 불량아로 낙인 찍혔지만, 그와 상관없이 강호는 세상의 풍파에서 삶의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반면 부유한 집과 일류대에 다니는 형,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된 부모님, 외고생이라는 그럴듯한 배경을 갖고 있지만, 도윤은 삶의 모든 가치를 성적에만 두는 부모와 학교의 태도에 질식할 것만 같다. 성적이 전부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도윤은 강호와 재회하고 그를 따라간 클럽 몽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밴드 '달리는 파랑 치타'에서 열정을 경험하면서 점점 삶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되찾아간다.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에서는 이렇게 다른 듯 비슷한 일상과 고민을 안고 있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슬며시 끄집어낸다. 

날나리와 범생인 강호와 도윤 외에도 이책에는 다양한 모습의 십대들이 등장한다. 자퇴했거나 가출한 비주류 청춘들인 강호의 주유소 알바 친구들이 대표적이다. 어른들의 눈에는 날나리 비행청소년으로만 보이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들의 생각과 고민, 변화를 통해 작가는 사회가 정해놓은 길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정해진 방식과 속도로 가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실패자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직 인생이 허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건우형. 남들이 볼 땐 자퇴생일 뿐인 형이 그런 말을 하니 어이없게도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102쪽)'라는 강호의 중얼거림은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다. 

강호에게 주유소 친구들이 있다면 도윤의 주변에는 성적지상주의에 묵묵히 순응하는 학원 친구 수연이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늘 교과서와 문제집과 공책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아이. 도윤은 수연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조금씩 발견하는 삶의 에너지를 수연에게도 나눠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자 하나 보내는 것조차 엄마의 눈치를 봐야하는 수연에게 변화는 쉽지 않다. 또 강호와 도윤 사이에는 학교 선배인 이경이 있다. 개방적인 부모님을 둔 이경은 학생에 대한 강요와 억압이 팽배한 학교의 부당한 처사에 반박하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과감한 결정도 내릴 줄 아는 용기있는 아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이책을 읽는 순간이라도 독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강호와 도윤의 만남, 잊지 못할 지난날의 상처, 도윤의 학교 성적에 대한 엄마의 집착 등으로 얽히던 이야기는 강호의 기타, 도윤의 피아노, 이경의 드럼에 이어 교내 밴드부 결성이라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으면서 변화를 시도한다. 밴드부 결성이라는 쉽지 않은 산을 넘으면서 강호와 도윤은 그간의 마음 속 앙금들을 조금씩 털어내기 시작하고, 일방적으로 엄마에게 이끌려 살던 도윤은 삶의 주체자가 되고자 노력한다. 강호 또한 가출과 방황을 접고 주유소를 나와 동생 강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강호의 주유소의 친구들도 밤거리를 미친듯이 달리던 폭주천사들도 잠깐 비켜섰던 일탈에서 돌아와 새로운 삶의 궤도에 진입한다. 물론 이경처럼 또다른 길을 선택한 용감한 아이도 있다. 그러나 각자 방식만 다를 뿐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자세는 그들 모두 같다.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는 십대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펼쳐놓은 성장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이 범생이와는 거리가 먼 소위 '날나리' 또는 '문제아'들이 대부분이지만 조금만 따듯한 마음으로 보면 그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십대들이다. 때론 거칠고 때론 안쓰러운 그들의 모습은 곧 우리 아이들의 모습인 셈이다. 모 예고에서 소설창작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십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는 책날개의 저자 소개처럼 작가는 이책에서 좌충우돌하는 아이들을 향해 따듯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권위적인 교사들 가운데 아이들을 이해하며 보듬어주는 김세욱 쌤의 존재는 그래도 우리의 학교의 또다른 희망이었다.

박선희의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는 <하이킹 걸즈>, <꼴찌들이 간다>에 이어 블루픽션상의 세 번째 수상작이다.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좌충우돌 하는 가운데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잘 씌여진 성장소설이었다. 물론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큰 상처를 냈던 강호에 대한 도윤의 마음이 너무 너그럽다는 점과(조금 맹목적인 느낌도 들고) 도윤의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강호는 꼭 그렇게 되갚아야했나 하는 점(물론 그땐 너무 어리긴 했지만), 그리고 성적을 향한 도윤 엄마의 초강력울트라급 집착이 너무 급격히 누그러진 점 등이 조금 아쉽긴 했다. 그러나 단점보다는 살아숨쉬는 아이들의 활기가 느껴지는 장점이 훨씬 더 큰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세상과 부딪치고 깨지면서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면서 그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질주하는 파랑 치타처럼 그렇게 말이다.




- 드럼과 베이스도 끼어들어 연주에 합세했다. 제대로 연습한 적이 없어 코드가 틀리기도 했지만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 모두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어른들이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십대를 살아가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니까.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을 즐길 권리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었다. 수없이 부딪치고 저항하며 열정을 쏟아 만들어 낸 시간을 우리는 즐겨야 했다. (238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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