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와 산다 - 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최민경 지음 / 현문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치매로 물에 빠져 돌아가신 은재 할머니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굿이 한창이다. 한바탕 굿이 거의 끝날 무렵 무당이 칼을 던진다. 칼끝이 밖으로 향하면 혼이 저승행 기차를 타는 거고, 안쪽으로 향하면 이승에 남아 누군가를 따라 다닌단다. 가족 중 누군가에게 할머니의 귀신이 씐다는 거다. 살떨리는 순간이 지나고 칼이 떨어졌다. 칼끝은, 불행히도, 안쪽을 향했다. 모두가 경악했고 굿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그날 이후 죽은 할머니의 영혼은, 엄마 몰래 그 자리에 있었던 열여섯살 손녀 은재의 머리에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세계일보에서 주최하는 제 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최민경 장편소설 『나는 할머니와 산다(현문미디어, 2009)』는 죽은 할머니의 영혼이 열여섯살 손녀의 몸에 들어간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처음엔 평범 그 자체였던 제목은 '내 몸 속에' 할머니의 영혼이 함께 살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내면서 갑자기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변신했다. 한 몸에 살고 있는 두 영혼, 그것도 할머니와 손녀 영혼의 동거라니, 왠지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십대 손녀의 몸으로 들어온 할머니의 영혼이라길래 처음엔 영화 〈중독〉이나 〈비밀〉처럼 '빙의'를 다룬 이야기인줄 알았다. 아니면 같은 몸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대인 두 영혼의 티격태격 좌충우돌 코믹 이야기거나.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평소에 싫어하던 음식을 맛있게 먹어대거나 비가 오는 날 무릎이 시리고 밤이면 삭신이 쑤시거나 또는 할머니처럼 목쉰 소리가 나오는 등 열여섯 소녀답지 않은 은재의 돌출 행동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할머니 영혼의 손녀 몸 전격 방문!이라는 뜻밖의 상황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비장의 카드인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주인공 은재는 입양아다. 입양에 대한 주변의 편견어린 시선과 수근거림이 여전히 부담스럽고, 가슴 깊이 봉인해 둔 어린날의 상처가 문득문득 터져나올까 조심스럽다. 또한 지금 곁에 진짜 가족이 있음에도, 자신을 버렸으나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또다른 부모와의 인연 또한 완전히 외면하지 못해 갈등한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입양아이기 때문에 은재가 겪는 일들이다.

은재와 영재 남매를 입양해 가정을 꾸린 은재네 가족과 죽은 뒤 손녀의 몸을 빌려서라도 헤어진 딸을 찾고 싶어하는 할머니의 영혼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입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입양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선입견, 입양아인 까닭에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의 성장통,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입양 부모의 마음과 노력들을 은재와 은재 가족들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서서히 밝혀지는 할머니의 비밀을 통해 버려진 아이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부모들의 상처를 언급하며 그들의 마음까지 함께 보듬는다.

할머니 영혼과의 편치 않은 동거를 하는 동안 은재는 마음 깊이 묻어둔 채 다시 보기를 겁냈던 상처의 봉인을 떼며 남과는 다른 성장통을 겪는다.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방황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할머니와 고모의 재회를 지켜보며 가슴 한 켠에 담아두었던 생모에 대한 원망까지 털어낸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한 뼘 더 성장한 은재를 보는 독자들의 마음도 흐뭇해진다.

전보다는 입양에 대한 시선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입양에 대한 세상의 벽은 아직도 여전히 높다. 자신의 아이가 있음에도 두 아이를 공개 입양한 차인표ㆍ신애라 부부의 소식이나 올초 방영되었던 휴먼다큐 「사랑」의 배우 송옥순 편, 그외 입양을 소재로 한 여러 책들을 연이어 접하면서 입양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또한 그동안 내 안에도 적지 않은 편견들이 있었음에 놀라기도 하고.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쿨한 소녀 은재와 입양이라는 사랑의 인연으로 맺어진 은재네 가족 이야기인 『나는 할머니와 산다』는 입양 가족 또한 보통의 다른 가족과 다르지 않음을,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말한다. 영화 〈가족의 탄생〉에 등장하는 가족처럼 완전한 남이 모여 완벽한 관계를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입양이라는 쉽지 않은 문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내면서도 한번쯤은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괜찮은 성장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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