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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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씩 길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낯선 장소로 들어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들지만 한편으로는 내 안에 있는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기도 한다. 뜻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일들이 생기고 그것들은 여행의 재미를 한결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면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계획되지 않은 낯선 세계로의 초대장인 셈이다. 신상의 위험을 느낄 정도만 아니라면 가끔씩 기꺼이 길을 잃어보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그런 이유로 이책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문학동네, 2009)』의 제목부터 참 매력적이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여행가들이 길을 잃은 덕분에 마주한 축복을 자랑했던가! 책의 제목처럼 길을 잃어야만 꼭 진짜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정해진 계획에서 벗어날 때 진짜 여행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은 동감한다. 그 길이 진짜 길이든, 아니면 여행의 목적이든 말이다. 이렇게 멋진 책제목의 저자는 누구일까 봤더니 저자가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었다. 역시,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책은 그간 여러 신문과 잡지 들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7년 만에 엮어낸 산문집이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여행에세이겠거니 짐작했고 시인의 눈으로 본 여행길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째 여행보다 미술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았다. 책의 뒷부분은 아예 문화 전반을 이야기하고 있고. 책을 다시 되돌려보니 책표지에 '최영미 산문집'이라는 글자가 그제서야 또렷하게 보인다. 사실 여행에세이든 산문집이든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제목에서 낚인 거냐? 그건 아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늬앙스처럼 이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역시나 '여행'이다. 1부에서는 유럽 여행길에서 만난 이야기와 그림에 관한 사색들이, 2부에서는 삶의 여행길에서 접한 다양한 문학과 영화, 미술 이야기들이 이책의 구석구석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여행에서 일어난 일들 중 파리로 가는 떼제베에서 독일의 유명 여배우 쉬굴라와 만난 일이 가장 강렬했다. 고흐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도, 최초의 미국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에 대한 작가의 열정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1부의 여행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2부의 문화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미술보다는 영화에 더 친숙하기도 하고,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는 우울함이 먼저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작품상을 받았건 말건 재미없다고 지루하다고 말하는 영화 이야기를 읽으며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그간 교과서에서만 접해왔던 박수근 화백의 그림들을 다시 찬찬히 뜯어보게 한 미술 이야기도 좋았다.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그녀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진 않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글들은 참 맛깔스러웠다. 가끔 우울함이 느껴지는 것만 빼면. 

자주 여행길에 오르는 최영미 시인은 자신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귀찮지만 나를 재생산하는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64쪽)'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책의 맺음말에서는 '지루하더라도 내가 하루하루 일상을 견디듯이, 힘들더라도 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242쪽)'라고 다짐하듯 말한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다짐도 모두 멋졌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는 그녀의 여행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그녀의 삶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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