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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평점 :

-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 박웅현ㆍ강창래 | 알마 | 2009.08
얼마전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본 아파트 광고의 내용이 꽤 신선했다. 기존의 아파트 광고가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을 내세우고 근사한 유럽의 성을 배경으로 깔며 화려하고 우월한 이미지만을 강조하기에 급급했다면, 이 광고는 아파트는 우리가 사는 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집을 짓는 기업의 진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요즘 한창 방영되고 있는 '진심이 짓는다'라는 카피의 광고 캠페인이다.
인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품절남 특집 편'에서 개그맨 정형돈이 자기 PR 영상에 드라마 속 남자와 평범한 남자라는 비교로 패러디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던 이 광고는 기존의 아파트 광고가 보여주던 비슷비슷한 광고 패턴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시선으로 색다른 내용을 제시한다. 고급스런 이미지로 화면을 채우기보다 인기없는 1층이나 새집증후군처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톱스타도 화려한 실내도 나오지 않는 15초짜리 영상이 전하는 진심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공지영에서 시작해 박원순, 신성일을 인터뷰이로 등장시켰던 알마의 '동시대인과의 소통을 위한 인터뷰집' 시리즈가 네 번째 책을 펴냈다. TBWA의 박웅현 ECD를 인터뷰이로 내세운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알마,2009)』이 바로 그것이다. 광고계에서는 유명한 인사라는데, 솔직히 박웅현이라는 이름을 이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런 까닭에 앞서 출간된 인터뷰집과는 달리 이번 책은 인터뷰이보다 책제목에 먼저 눈길이 갔다. 인문학과 광고라니, 선뜻 잡히지 않는 제목의 속내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박웅현,이란 이름이 낯설지는 몰라도 그가 만든 광고는 대부분 한 번쯤은 보거나 들었을 듯하다. 앞서 말했던 '진심이 짓는다' 광고 시리즈는 물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청바지와 넥타이는 동등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 '현대생활백서', '사람을 향합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 네이버',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잘자, 내 꿈꿔', 'See the Unseen', '생각이 에너지다', '당신의 피로 회복제는? 박카스' 등까지, 헉헉, 그의 손을 거쳐간 광고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가 만든 광고들을 살펴보다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내로라하는 톱스타를 내세워 쉽게 가는 광고가 아니라는 것, 기존과는 다른 차별적 시선으로 접근했다는 것,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감동을 잡아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의 광고는 누군가를 헐뜯거나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장점을 표현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하며, 그 광고를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 최선을 다해 결정하고, 결정한 일은 더 이상의 대안이 없는 것처럼 집중한다. 설사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이루어 옳은 결정이 될 수 있도록. (254쪽, 박웅현이 메모해둔 레토릭 가운데 하나)

인문학과 광고의 이어짐이 궁금해 이책을 만났으나 인터뷰집인 만큼 인터뷰이 박웅현에 대한 정보 또한 빠질 수 없다. 책의 첫머리에 나열되는 그의 광고들을 떠올리다 보면 낯설기만 하던 그가 이내 친숙하게 다가온다. 박웅현 ECD는 제일기획을 거쳐 현재 외국계 광고 회사인 TBWA의 임원으로 재직중이란다. 책의 첫머리부터 내내 그의 이름 뒤에 딱 붙어 다니던 ECD라는 생소한 직책은 Executive Creative Director의 약자라고. 우리말로 풀자면 창의성 감독 또는 창의적인 작품 제작을 위한 총책임자 정도 된단다.
박웅현은 대학시절 각종 광고제에 응모해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했지만 제일기획에 입사 후 3년 가까이 지진아 대접을 받으며 변방에서 칩거했다. 다양한 책들을 독파하며 그 시간들을 버텨냈고, 마침내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오랜 시간 준비해 온 박웅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광고계의 지진아는 얼마후 스타가 되었다. 회사에서 자리를 확실히 잡은 후에도 예기치 않았던 긴 공백이 찾아왔지만 그는 그때도 책과 함께 했다. 컴백 후 기획한 광고 'KTF적인 생각' 시리즈는 큰 성공을 거뒀고 그는 다시 비상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박웅현, 강창래의 인터뷰집인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남들과 다른 시선과 방식으로 창의적인 광고를 제작해 온 광고인 박웅현과의 인터뷰를 통해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인터뷰이가 광고인이기에 광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지만, 지금은 종영된 책소개 프로그램인 〈TV, 책을 말하다〉에도 몇 차례 출연했을 정도로 책에 대한 소양이 깊은 박웅현이기에 이책에는 광고 이외에도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을 거론된다. 그러면서 창의성은 인문학적 책읽기를 통해 자란다는 점을 강조한다.
- 인문학이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구체화된 결과물이고,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예술이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50쪽)
박웅현은 광고를 '잘 말해진 진실'이라고 표현한다. 소위 '히까닥한' 광고, 즉 튀거나 엽기적인 광고가 대세라 할지라도, 진정한 광고란 지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파악해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전혀 히까닥하지 않은 진지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진실과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제껏 그가 작업했던, 반짝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광고는 아니지만 생활 속의 감동이나 새로운 가치 제시를 통해 소비자와 소통을 시도하는 박웅현의 광고들이 그 예다.
- 이 세계일류 광고 캠페인을 보면 광고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은 그 시대의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소통하고 있었다. 소통이란 메시지를 던지고, 그 메시지에 대한 대답을 듣고, 다시 대답하면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대적인 광고는 알림이나 설득이 아니라 소통하고 싶은 욕구의 결과물이다. (중략) "사실 광고는 잘 말해진 진실입니다. 진실이 아니면 그처럼 사회적인 호응을 크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적인 소양잉 필요하고, 통찰력이 필요한 겁니다." (74쪽)

앞서 말했듯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창의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책이다. 지금까지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박웅현 ECD의 창의적인 광고 작품들을 바탕으로 창의성과 소통, 시대정신과 진실, 그리고 사람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결국 창의성이란 인문학, 즉 사람에 대한 것들에게서 시작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바탕으로 할 때 진정한 창의력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책은 창의력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광고들과 책들을 바탕으로 대화와 부연 설명 형식으로 전개되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광고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광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창의력 뿐만 아니라 광고에 관심있는 독자들이 읽기에도 괜찮을 듯하다. 창의력을 기르는 일,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내 앞의 책 한 권을 펼치고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는 작은 행동으로도 창의력 발현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이책은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