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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인격이다 - 품격을 높이는 우리말 예절
조항범 지음 / 예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 말이 인격이다 : 품격을 높이는 우리말 예절 | 조항범 | 예담 | 2009.01
조금 전에 영화관에서 전화가 왔다. 얼마전 영화 체인점이 바뀌면서 포인트 승계 신청을 했는데 도중에 오류가 나서 확인 전화를 한 거란다. "포인트는 잘 들어가 계신데요, 본인 확인이 오류가 나서 확인차 전화를 드렸습니다."라며 직원 분이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 그런데 말이다, 포인트가 잘 들어가 계시다니, 이건 또 무슨 높임법이란 말인가.
수시로 걸려오는 카드나 보험 텔레마케터의 전화 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들의 고객센터 상담사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이런 잘못된 높임법을 구사하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물론 고객인 상대방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익히 알고 있듯이 무조건 서술어에 높임접미사 '-시'를 붙인다고 높임법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럴 경우 위의 경우처럼 포인트가 높임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우스운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잘못된 높임법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참 많다. 그런 분을 접할 때마다 입이 근질근질거린다.
때론 책을 읽다가도 적잖게 오타를 만날 때가 있다. 주인공과 장본인, 반증과 방증, 다르다와 틀리다 등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던가, 되다와 돼다, 뵈다와 봬다 등을 잘못 쓴 경우도 자주 만난다. 몇 번의 교정을 통해 세상에 나온 책일 텐데도 이런 오타를 만나는 걸 보면 평소엔 이런 단어들을 얼마나 많이 잘못 쓰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긴 맞춤법이 틀린 단어를 제목으로 버젓이 내건 책들도 있으니 할말이 없다.
평소 우리말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관련책들이 나오면 여건이 되는 한 만나보려고 한다. 이책 또한 그런 욕심에 마음이 동했지만, 그것 못지 않게 '말 = 인격'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삶이 바쁘고 복잡해지면서 예전처럼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또는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어휘의 선택이 적절치 못하거나 위의 경우처럼 높임법을 엉뚱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인터넷 문화가 발달로 각종 신조어들이 난무하면서 가끔 눈살을 찌뿌리게 만드는 말들을 접할 때도 있다. 우리의 인격을 드러내는 말을 우리는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말이 인격이다(예담,2009)』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런 잘못된 언어 생활을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책이다. 내용은 크게 우리말 예절, 우리말 표현, 상황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꼭지 앞에 '상사가 차마 지적하지 못하는', '직장 상사도 모르는', '승진하려면 꼭 알아두어야 할'이라는 꾸밈말처럼 이책은 직장내 언어 생활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직장 생활 중 만날 수 있는 상황들을 자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렇다고 직장인만을 위한 우리말 책은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가 평소에 알아두면 도움이 될 만한 우리말 지식을 다루고 있다.
1부 우리말 예절,에서는 평소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황을 중심으로 잘못 쓰고 있는 표현이나 예절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존대법에 대한 부분이 많이 실려있다. 상사에게는 '당부'가 아니라 '부탁'을 해야 하고, 초청인사를 소개할 때 초청인사보다는 청중을 우선시해서 소개말을 해야 한다. 애경사에 갈 때 봉투를 제대로 쓰는 법과 가족간이나 타인의 가족에 대한 적절한 호칭에 대한 내용, 많이 헛갈려하는 압존법 등에 대한 내용들을 알려준다.
2부 우리말 표현에는 형태가 비슷해 헛갈리는 말들, 원래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말들, 순화해야 할 말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의미가 전혀 다름에도 많은 이들이 잘못 쓰고 있는 단어로는 주인공과 장본인, 반증과 방증, 일체와 일절, 임대와 임차, 틀리다와 다르다, 곤욕과 곤혹, 지양과 지향 등이 대표적이다. 뇌졸중은 뇌졸증으로, 오랜만에는 오랫만에로 잘못 쓰이기 일쑤고, 자문과 재원, 난이도, 임산부 등도 제 뜻과는 달리 쓰이고 있는 단어들이다. 반면 음식점에서 흔히들 쓰는 '쓰키다시'는 일본말을 제대로 대체할 우리말을 아직 찾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다. 또한 막걸리는 '들이키는' 게 아니라 '들이켜는' 거라던가 '버금가다'는 '으뜸가다'의 아래를 뜻한다는 등의 내용은 이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3부 상황 표현은 어떤 말이 옳고 그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하는 게 올바른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긍정적인 말을 하라던가, 한 마디의 센스있는 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던가, 칭찬이 가진 힘 등 말을 하는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적어놓았다. 각각의 상황 표현에 따른 말들을 읽으며 나의 말은 또한 어떠한지 다시 되짚어 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미처 몰랐던 우리말 예절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을 다시 되새김해 보기도 했다. 단락마다 간단한 예들을 들어 설명하고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 읽기에는 불편이 없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아주 재미있다고는 못하겠지만, 평소 관심있던 분야라서 그래도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교수님이라는 직업 때문인지 책에서도 독자들을 가르치려는 글쓴이의 태도는 조금 걸렸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고쳐주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호통을 치는 기분까지 느끼게 해줄 필요는 없지 않을런지.
또한 몇몇 주장들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기본 원칙들을 내세워 답답하기도 했다. 세배 그 자체가 인사이기 때문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하지 말라거나, 친족관계가 아닌 경우 '오빠'나 '누나'를 써서는 안된다거나, 직장 동료의 아내는 '무조건' 아주머니로 부르는 게 맞다거나, '사랑하다'는 이성 사이에 사용하거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이기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써서는 안된다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기본 원칙이 그러하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것들을 지금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자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궁금한 점도 생겼다. 우리말 예절 편의 가족간의 호칭법을 보면, 언니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동생의 남편을 부를 때는 '김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되어 있는 반면, 오빠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동생의 남편을 그냥 '김 서방'이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다. '자신보다 나이많은 여동생의 남편'이라는 조건은 동일한데, 왜 언니는 오빠와 달리 '님'자를 붙여야 하나? 언니가 여자라서? 호칭법의 기본 원칙이 어떻든 이 부분은 분명 시대에 역행하는 잘못된 부분이 아닐런지. 하긴, 현실적으로 요즘 세상에 동생의 남편을 김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언니가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은 여동생의 남편을 보통 '제부'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인데, 어디선가 이건 잘못된 말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구시대적인 언어 예절 대신에 이런 부분을 다루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책을 읽으며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데, 저자는 본문에서 정치인들에 써주는 연설문에 대해 언급하며 '아주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한자어까지 고집하여 쓸 이유는 없다고 본다. 쉬운 우리말 대체어가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182쪽)'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이책에는 '아내'라는 우리말 대신 '내자(內子)'라는 한자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물론 그 단어를 쓰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저자가 이런 단어들을 즐겨 쓰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다. 물론 같은 문단에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비슷한 뜻의 단어를 번갈아 쓰기도 하지만 이책의 '내자'는 그런 경우도 아니었다.
예전에 들었던 국어 강의에서 '내자(內子)'는 일본식 한자어라서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그와 함께 우리가 모르고 사용하는 일본식 한자어의 예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내자'가 일본식 한자어인지 아닌지는 국어 선생님마다 설명이 달라 아직까지 그 진위를 알 수가 없다. 아쉽게도 역시나 이책에서는 그 부분도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엄연히 우리말이 있고, 그것이 널리 사용되는 단어라면 어려운 한자어보다 우리말을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더불어 남녀의 성역할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진 시대가 아닌가. 글쓴이는 조금 못마땅하게 여기시는지는 몰라도, 또한 같은 안(內)에서 파생된 단어일지라도, 나는 이왕이면 자신의 배우자를 '집사람'이나 '안사람'처럼 어떤 틀에 묶인 단어보다는 '아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말이 인격이다』는 책의 앞머리에 실린 저자의 말처럼 뭔가 획기적인 내용을 실어둔 책은 아니다. 책에 실린 많은 것들이 이미 다른 책을 통해 접해 보았거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이책이 나름의 의의를 갖는 것은 그만큼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서 특별히 주의를 당부하듯 직장이나 특정 장소 등에서 올바른 말을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평상시에 사용하는 말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에서 그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책은 그 두 가지 모두를 다루고 있다. 너무 기본 원칙만을 내세워 현실에서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나 그외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이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만이라도 잘 익혀 둔다면 언어에 대한 기본 소양은 어느 정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