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 8일째 매미 │ 가쿠다 미쓰요 │ 장점숙(옮김) │ media 2.0 │ 2009.05  


"8일째 매미,면 이미 죽은 거 아닌가?" 책장에 꽂힌 책을 본 언니가 한 마디 던진다. 무슨 얘긴가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조만간 읽으려고 가까운 책장에 꽂아준 가쿠다 미쓰요의 신작 소설 『8일째 매미』를 들여다 보며 하는 말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7년을 유충으로 지내다가 성충이 되어 7일만에 죽는다잖아. 그런데 8일째 매미라면 이미 죽은, 뭐 그런 걸 말하는 걸까?" "그러고보니 그러네." 언니의 말에 책제목에 새삼 눈길을 얹는다.

작년에 가쿠다 미쓰요의 단편집 『이책에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으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꽤 좋았다. 일본소설 붐이 일어나면서 수준 미달의 책들이 덩달아 쏟아지거나 인기를 얻은 작가의 책에 무분별하게 많은 돈을 들여 판권을 갖고 오는 등 문제점도 많지만, 문이 넓어지면서 이렇게 괜찮은 작가들을 만날 기회 또한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그녀의 전작 『대안의 그녀』도 찜만 해두고 아직 만나지 못한 상태지만 이번에 신작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에 냉큼 책장으로 모셨다.


그렇게 작가 이름만 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선택이었기에 책제목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질 않았는데, 언니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대부분의 매미들이 7일 만에 죽는다면 8일째 매미란 무얼 뜻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매미는 땅속에서 7년을 유충으로 살다가 땅위로 올라와 7일을 살고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 긴 세월을 땅속에서 참고 견뎌서 드디어 세상 빛을 보게 되었는데 허락된 시간이 겨우 7일이라니.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매미의 생애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져 시끄럽기만 하던 매미 소리가 조금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책제목을 보다 궁금해져 다시 찾아보니 매미는 종류에 따라 유충 기간이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7년까지 되는 것도 있단다. 야생에서 매미의 수명은 약 한 달 정도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주일은 인공부화시킨 매미의 수명을 말한다고. 물론 매미의 수명에 대한 진실이 이렇더라도 8일째 매미,라는 이책 제목의 상징성은 여전히 그동안의 일반적인 상식에 준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8일째 매미를 통해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 의문은 홀로 쓰러져 있는 여자 그림의 책표지와 겹쳐져 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 "다른 매미들도 모두 7일 만에 죽는다면 특별히 슬플 것도 없다고. 어차피 다 똑같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7일 만에 죽기로 돼 있는데도 죽지 않은 매미가 있다면, 친구들은 모두 죽었는데도 자기만 살아남았다면... (264쪽, 에리나의 말 중)" "기억나? 7일 만에 죽은 매미보다도 8일째에 살아남은 매미가 더 불쌍하다고, 네가 그랬잖아.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8일째에도 살아 있는 매미는다른 매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어쩌면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을 꼭 감아야 할 만큼 가혹한 일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319쪽 지구사의 말 中)"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자의 집주변을 맴돌던 기와코는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그들의 집에 들어간다. 아기 얼굴만 잠깐 보려했으나 자신을 향해 방긋 웃는 아이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안아들고 도망친 기와코는 아기에게 가오루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 야스에의 집에 잠시 기거한다. 살던 집과 세간을 정리한 후 본능적으로 아이와 숨어살기로 결심한 기와코는 야스에에게도 차마 진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그녀의 집을 나선다.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던 기와코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야스에의 집에서 우연히 본 전단지에 나와있던 그곳, '엔젤 홈'을 접하게 된다.

점점 좁혀오는 수사망과 가오루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와코는 엔젤홈을 찾고, 가오루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던 그녀는 아버지의 보험금을 포함해 적지 않은 재산 전부를 포기하면서도 그곳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홈'이 다시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며 관심사로 떠오르자 다시 불안해진 기와코는 그곳을 탈출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구미가 알려준 그녀의 고향 섬마을로 내려간다. 미야다 교쿄라는 가명으로 허드렛일을 하며 숨어 살면서도 가오루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와코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8일째 매미』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여자 주인공 기와코가 자신을 버린 불륜 상대자의 아이를 몰래 데려가 도망다니며 키우는 과정이라면, 2장은 유괴되었던 아이였던 가오루 아니 에리나가 어른이 된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를 유괴하게 된 기와코의 숨은 사연과 유괴한 아이지만 그 아이를 너무나 사랑했던 기와코의 이야기가 전반부, 진짜 부모를 찾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했지만 이미 엉망이 된 가정과 한때 유괴되었던 아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붙인 채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에리나(가오루)의 이야기가 후반부를 채운다.

기와코는 남의 아이를 유괴한 범죄자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는 유괴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유부남임을 속이고 그녀에게 접근해 우유부단함과 무책임함으로 그녀를 농락한 남자, 그에게 속아 포기한 뱃속의 아이, 그리고 온갖 모욕적인 말로 그녀의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든 그의 아내로 인해 여자는 만신창이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삶의 희망을 준 것은 뜻밖에도 그 남자의 아이였다. 충동적으로 저질렀고 잘못된 일인줄 알면서도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강한 애착과 그로인해 피어나는 삶의 욕구는 결국 그녀를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아무리 애절했다 하더라도 그건 분명 잘못된 사랑이었고, 그것은 또다른 누군가의 삶의 행로를 흔들어 놓았다. 아이를 잃어버린 후 변한 부모의 삶은 그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납치를 당해 그 사람을 부모로 알고 살았던 아이의 삶은 누구에게 보상받는단 말인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늘 자기 곁에서 든든히 지켜주던 엄마가 사실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진실은 가오루, 아니 원래는 에리나였던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두렵고 큰 혼란일 뿐이다. 그리고 그 유쾌하지 못한 어린날의 경험은 내내 그녀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책에 대한 갖가지 사연들을 잔잔하면서도 흥미롭게 들려주던 단편집 『이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서처럼 기쿠다 미쓰요는 이번에도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8일째 매미』에서 그녀는 유괴라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특유의 차분하고 유려한 문체로 세심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가 단순하게 나눠지는 세상의 잣대와 달리 작가는 유괴범(기와코)과 유괴당한 아이(가오루), 그 가족(에리나의 부모)를 통해 선과 악이 혼재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모호하고도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비록 사이비 단체지만 세상에 상처입고 엔젤홈으로 모여드는 여자들의 이야기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 이 소설은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작용으로 인해 인간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나는 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등장인물 모두 인생을 납치당한 사람들이다. 어디서 누구의 손에 키워졌든, 그 과정이 조금 비정상적이라 해도 인간은 파괴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346 쪽. 옮긴이의 글 중, 작가의 말)

한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였으나 이후 자신의 삶을 뒤흔든 유괴범으로 기와코를 증오해왔던 에리나는 어느새 그녀와 너무나 닮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녀을 이해하며 마음으로의 용서를 시도한다. 그러나 똑같이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에리나는 기와코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회피하기 보다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타인의 도움을 받되 거기에 온전히 의지하지 않은 채 자신의 힘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한다. 새로운 생명에게 '아름답고 울창한 신록을 보여주기 위한' 에리나의 선택은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파괴되지 않은 인간의 희망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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