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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홀릭's 노트 - 집에서 즐기는 스페셜티 커피 레시피
박상희 지음 / 예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주말에 집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책을 뒤적이다가 얼떨결에 <커피홀릭’s 노트>를 펼쳐들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게 온 선물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그래서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했는데, 슬쩍 넘겨본 책이 너무 예뻐서.. 도저히 들춰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그 내용이 실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지만, 때로는 겉모습이 너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손이 갈 때가 있다. 그리고 간혹 운이 좋으면 그 내용까지 마음에 들 때가 있다, 바로 이책처럼..

커피를 마시지는 않지만 특유의 그윽한 향은 참 좋아한다. 뭐랄까, 추억속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고나 할까. 잠시 세상 근심 잊고 커피향에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커피향 하니깐 생각나는데,, 어렸을 때 어른들만 마시는 커피향이 너무 좋아 커피맛이 궁금해진 나머지 엄마 몰래 엄마 커피를 살짝 훔쳐먹었던 적이 있다. 달콤한 향과는 달리 입안 가득 퍼지는 그 씁쓸함이란.. 커피맛에 대한 어린날의 환상이 깨지면서 커피와의 인연도 그렇게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고딩때 시험 전날 밤을 새려고 안 마시던 커피를 마셨다가 바로 잠들어버렸던 황당한 추억과, 대학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선심쓰던 음료들이 죄다 커피였던 까닭에 매번 거절하며 속쓰려 했던 기억과, 엠티 때 보리차 대신 마셨던 연한 아이스커피의 구수함이 겨울날 캔커피의 온기에 의지해 언 손을 녹였던 아련함과 함께 남아있는 걸 보면 나도 커피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는 건 아니구나,, 싶다.

개인 홈페이지 www.munge.co.kr 를 운영중인 저자인 만큼 책은 그녀의 일러스트들로 한가득 채워져있다. 컬러풀한 색상의 지면과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귀여운 일러스트들이 가득한 책은 보기만 해도 신이 난다. 사진 대신에 지면을 채우는 그녀의 빼곡한 그림 설명들 또한 이책을 더욱 사랑스럽고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커피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더라도, 책의 내용이 그리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더라도,, <커피홀릭’s 노트>는 커피홀릭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하나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게 만드는 앙큼한 책이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허섭하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모험가 기질의 커피홀릭인 저자가 시도하고 찾아낸 새로운 방법들이 책속 가득 빼곡하게 담겨있어 커피를 좋아하고 즐기는 이들이 눈을 반짝일 만한 내용이 실한 책이다.
표지의 ’집에서 즐기는 스페셜티 커피 레시피’라는 부제처럼 이책에는 집에서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커피의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책의 가장 큰 장점은 커피전문점에 있는 여러 값비싼 도구들을 갖추지 않아도 집에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이용해 얼마든지 근사한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나같은 가난뱅이들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물론 귀차니스트에겐 예외지만..)
책에 소개된 저자만의 인상적인 방법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드립 커피..

커피메이커가 없으면 절대 원두커피를 마실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소식, 바로 그 어떤 도구도 없지만 커피 필터 하나만으로도 초간단 드립 커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입으로 전해전해 들은 적은 있어도 책으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는. ;)
드립 커피 만드는 방법에서 저자는 최상의 조건에서 최저의 상황으로 점점 범위를 좁혀가는 점강법 설명을 시도한다. 최상의 드리퍼와 드립 서버를 갖춘 상태에서 커피를 내리는 방법으로 시작해 저렴한 가격의 도구 또는 모양은 빠지지만 그것들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싸구려 도구 응용법을, 드립 서버가 없을 때는 드리퍼와 종이 필터로, 거기에 드리퍼가 없을 때는 종이컵과 종이 필터로,
드리퍼를 대신할 종이컵마저 없을 때는 종이 필터 만으로, 그리고 그것마저 없이 달랑 커피만 있는 악조건 일 때도 그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점점 열악해지는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방법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하고 동조하게 만든다.

그중 초간단 방법인 종이 필터만으로 커피 만드는 방법!
1. 종이 필터와 커피를 준비한다.
2. 종이 필터에 커피를 담고 약봉지처럼 감싸 티백처럼 커피백을 만든다.
3. 스태플러로 찍어주면 한결 편리하다.
4. 적당히 우려낸 뒤 마신다.
☞ 주의 - 이때 종이 필터는 (밑이 봉해진) 바스켓형을 쓴다.
만약 (밑이 뚫린) 깔때기형을 쓰면 필터 속의 커피가 터져버릴 것이다. 펑!하고.
종이 필터만으로 초간단 커피 만들기 방법을 보다보니 예전에 봤던 영화 <좋지 아니한家>가 떠올랐다. 커피 가게의 젊은 사장에게서 원두커피를 선물로 받은 엄마가 커피메이커 대신 채에 종이 필터를 얹어 커피를 걸러 마시며 분위기를 잡던 장면이.. 그걸 보면서 오래전 친구가 준 원두커피 가루를 마실 방법이 없어 끝내 버렸던 게 생각나 슬쩍 웃음이 났다. 물론 거기엔 커피를 안 마시는 나와 커피믹스를 사랑하시는 부모님의 조합이 살짝 문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종이 필터마저 없는 상황에서도 만들 수 있는, 더이상 간단할 수 없는 초초초간단 방법!
1. 머그잔에 커피를 담고 뜨거운 물을 붓고 막대기로 젓는다.
2. 3-5분 후 커피가 우러나면 커피 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3. 스푼으로 윗부분에 떠 있는 커피를 걷어낸다.
4. 마신다.
☞ 커피 전문가들이 원두의 퀄리티를 테스트하는 ’커핑’을 응용한 방법으로
이보다 더 원초적인 커피 본연의 맛은 없다고..;
이것보다는 좀 더 손이 많이 가지만 종이컵의 밑바닥을 뚫어 드리퍼 대신 사용하는 방법도 쉽고 간편하다. 돈 안 들이고 손쉽게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밑져도 본전은 충분히 건질 수 있는 멋진 방법이 아닐런지.
이번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이기에 드립 커피와 에스프레소의 차이를 이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무식하다고 해도 괜찮다. 아직 내 주위엔 커피를 마시면서도 둘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니까. ;)
사진의 왼쪽은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그림이고,
오른쪽은 공기압을 이용하는 에스프레소의 원리를 응용한 주사기 에스프레소의 그림이다.
이 주사기 에스프레소는 책의 뒷면에 자랑스레 소개될 만큼 저자의 대표급 자랑스런 독특한 방법인데 압력에 의한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은 물론이고, 에스프레소의 생명인 크레마도 제법 먹음직하게 뽑아낼 수 있단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주사기를 이용해 에스프레소를 만들다니, 또 그맛이 꽤 근사하다니.. 정말 궁금한걸!

그럼 주사기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198~200 쪽)
1. 50ml용 주사기를 준비한다. 실제로 담을 수 있는 용량은 60ml로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만들기에 퍼펙트한 사이즈다.
주사기 바늘을 연결하는 구멍이 작으므로 송곳으로 작은 구멍을 하나 더 내준다. 주사기 바늘은 필요 없다.
2. 드리퍼용 종이 필터를 반으로 뜯고 대강 접어 주사기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주사기 안쪽 끝에 평평하게 넣어질 때까지 플런저로 눌러준다.
평평하고 꽉 끼게 종이 필터를 넣는 것이 관건이다. 종이 필터가 삐뚤어지면 안 된다.
3. 주사기 안에 커피를 7~10g 넣고, 적정 온도의 뜨거운 물을 60ml 표시선까지 붓는다.
물이 들어간 순간부터 필터를 통과한 물이 구멍을 통해 떨어지기 시작하므로 주사기를 컵에 대고 작업을 실행한다.
막대기로 커피와 물이 잘 섞이도록 저어준다.
젓다보면 약 10~20ml 가량의 커피물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주사기 안에 충분한 공기 공간이 확보된다.
4. 플런저를 꽂고 서서히 힘을 주어 누른다. 이때 커피가 너무 곱게 갈리면 압력이 높아 누르기 힘들다.
5. 물이 다 빠져나가고 나면 공기가 커피를 통과해 주사기로부터 다 빠져나갈 때까지 플런저를 있는 힘껏 밀어낸다.
바로 이 과정이 크레마를 짜내는 것. 크르르르르~ 하며 크레마가 나오면 완성.
커피를 다 짜내고 플런저를 뽑으면 종이 필터와 커피가 깨끗하게 중간까지 밀려나온다.
주사기 입구를 쓰레기통을 향하게 하고 구멍을 통해 입으로 있는 힘껏 불어 떨어뜨리면 끝! 찌꺼기는 물로 헹구면 된다.
→ 출처 : 위즈덤하우스 카페
주사기 에스프레소 만드는 과정을 담은 너무 귀여운 플래쉬가 있길래 위즈덤하우스 카페에 있길래 담아왔다.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신나는 음악도 함께 흐르고 있으니 살짝 스피커를 켜보시길~ ;)
마지막으로 홈 로스팅..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 중에서도 갓 볶은 원두를 갈아 커피를 뽑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그 궁극의 맛을 집에서 만들기 위해 저자는 도전한다, 홈 로스팅을..
원두를 볶는 과정인 로스팅을 집에 있는 도구들로 하는 방법이 여럿 등장한다.
수망, 가마솥, 오븐 등을 동원하는데 그중에서도 인상에 확~ 박힌 것이 바로 양편팬과 미니 밥솥!

왼쪽은 고기를 굽는 양면팬으로 10여분간 들썩들썩, 오른쪽은 초간단 미니 밥솥의 뚜껑과 몸체를 잡고 흔드는 방법으로 홈 로스팅을 하는 방법을 설명한 그림이다. 둘 중에서 저자가 적극 추천하는 미니 밥솥을 이용한 홈 로스팅 방법(2번)을 살펴보자. (329~330 쪽)
우선 홈 로스팅에 좋은 미니 밥솥은 취사와 보온이 다 되는 좋은 전기밥솥 말고 취사만 가능한, 버튼을 누르면 밥이 되는 기능 외에 다른 기능은 전혀 없는, 유리 뚜껑은 그저 덮어주는 역할만 할 뿐 진공과는 상관없는 간이 밥솥이 좋단다. 크기도 작고 무게도 가벼워 로스팅 하기엔 안성맞춤이라고.
1. 버튼을 눌러 예열을 한다.
2. 밥솥이 어느 정도 가열되면 커피를 넣는다.
3. 오븐 장갑을 끼고 뚜껑과 손잡이를 잡고 지속적으로 흔들어준다.
4. 1차 팝핑, 2차 크래킹이 진행되면 채프와 연기가 날리기 시작한다.
5. 뚜껑이 투명하며 안을 직접 육안으로 진행정도를 확인해 가면서 적당한 로스팅 레벨에서 가열을 멈춘다.

값비싼 도구를 갖추지 않아도, 집에서 뒹구는 것들을 이용하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한 도구들로도 나만의 멋진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다. <커피홀릭’s 노트>는 모험가 기질의 커피홀릭인 저자의 투철한 실험정신 덕분에 커피 전문점이 아닌 집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이 가득 담겨있다.
또한 이책에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 뿐만 아니라 그외 커피에 대한 상식과 커피를 만드는 도구의 종류, 원두 커피의 원산지와 그에 따른 맛 등 커피에 대한 여러 유용한 정보들도 싣고 있다. 커피를 만드는 방법들을 통해 다양한 커피의 세계를 소개하고 커피와 한결 친숙해지게 도와주기도 한다.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주머니가 얇은 가난한 커피홀릭이?? 방법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무척이나 반가운 책일 듯 하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커피의 종류나 도구, 과정 등에 관련된 용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조차 없이 첫 문장부터 자유롭게 구사되는 관련 용어들 덕분에 뒤에 본격적인 설명 부분이 나오기까지 그 단어들을 만날 때마다 머리에 의문부호를 띄우며 책장을 넘겨야 했다. 한글로 표기된 영어들이 대부분이라 대충 어림짐작으로 유추할 수 밖에..
물론 본문의 해당 내용에 들어가면 관련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잠깐이나마) 나오긴 한다. 그러나 나같은 문외한이나 이제 막 커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초보자인 독자들을 위해 책의 시작 전에 관련 용어들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런지. 독자들이 모두 저자와 같은 기본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닐 텐데, 초보 커피홀릭에 대한 저자의 배려가 부족한 점이 조금 아쉬웠다.
또한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귀엽고 깜찍한 삽화들은 글을 시각화 해서 내용 이해를 한층 쉽게 해주었지만, 책속 삽화에 적힌 글자에서 한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영어로만 표기되어 있다.
물론 영어라고 해봐야 기본적인 단위나 명칭 정도이긴 하지만, 또한 원어 명칭에 충실하려 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글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내용임에도 굳이 영어 표기를 고집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삽화 곳곳에 박힌 (한글이 아닌) 영어들로 인해 ’폼’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일러스트가 산만해 보여 개인적으론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커피홀릭’s 노트>는 꽤나 사랑스러운 책이다. 커피를 마시지 않음에도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칭찬해 마지않는 그녀가 직접 뽑은 커피들을 마셔보고 싶어졌고, 책속에 들어있는 갖가지 방법들을 따라 직접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도 치솟았다.
커피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나만의 방식으로 색다른 커피를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커피홀릭인 저자의 노트속에 담겨있는 커피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향긋하고 맛깔스러울 것이다. 커피에 관심없었던 이들도 이책을 읽다보면 커피에 관심이 새록새록 돋아나지 않을까 싶다.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