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희 몽골방랑 -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김홍희 지음 / 예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얼마전에 몽골에 대한 책을 읽은 뒤부터 몽골이라는 나라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네 삶에서 이젠 만나기 쉽지 않은 느린 삶의 매력들을 아직은 곳곳에 풍성하게 숨겨두고 있는 나라, 몽골. 그런 몽골의 매력들을 잔뜩 품고 있는 또 한 권의 매혹적인 여행사진책을 만났다. 채색한 그림같은 알록달록한 지붕 아래 무언가에 온 힘을 쏟고 있는 한 남자와 반대편에서 무심히 걷고 있는 소년이 앵글에 함께 포착된 궁금증을 품은 사진을 표지로 삼고 있는 사진책, 바로 <김홍희 몽골방랑>이다.

우선 책의 표지가 눈길을 끄는데, 책보다 긴 앞표지가 한 번 접혀있는데 이부분을 펼치면 표지 사진의 전체가 등장한다. 양쪽에 배치되었던 두 인물 양쪽으로 사라졌던 화면이 되살아나며 책표지를 처음 봤을 때의 궁금증을 단박에 해결해준다. 적요한 오후 친구와 함께 무심히 길을 걷는 소년과 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버티는 말과 팽팽하게 대치한 한 남자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잡아낸 표지에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책속에 한 장의 사진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 표지 사진 못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축한 멋드러진 사진들이 가득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기대에 이책의 사진과 글은 넘치도록 보답해 주었다.


책은 표지 사진이 탄생한 몽골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비밀스런 오후의 사건과 그 순간을 향해 셔터를 끊은 작가의 사유로 시작된다. 이것은 순간을 잡아내는 사진만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진을 대하는 작가의 고민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며,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이책의 의미심장한 부제에 대한 부연설명이기도 하다. 셔터를 누르면 그 순간은 영원히 카메라에 남지만 정작 셔터를 누른 사진작가는 그 순간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직접 보지 못한 그 순간이 영원히 남아 그가 거기 있었음에 대한 증언이 된다. 셔터를 누르는 하나의 행위에 이렇게 많은 존재론적 의미가 부여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말이 오래 남았다.

사실 책을 받아들기 전까진 이책 또한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진과 간략한 에피소드들이 실려있는 그저그런 여행사진책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기쁘게도 빗나갔다. 처음부터 사진과 글의 포스가 만만찮다. 카메라 렌즈로 보는 세상과 그 순간을 담는 셔터의 깜박임, 사진이 찍힌 순간과 작가의 눈에 보이는 풍경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들추던 나조차도 한 장의 사진속에 담겨진 작가의 수많은 고민과 함축된 의미들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여행사진책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김홍희 몽골방랑>은 이제껏 본 책들 중에서 가장 철학적 향기를 풍기는 사진책이었다.


작가는 차를 몰고 구석구석을 달리며 몽골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낸다. 그의 카메라 렌즈는 드넓은 초원과 짙푸른 하늘을 향하다도 외로운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말 대신 초원을 달리는 오토바이와 거기에 실은 그들의 사랑을 포착하기도 하고, 가장 눈에 잘 띄는 언덕에서 거리낌없이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보는 꼬마의 순박한 얼굴을 잡아내기도 한다. 길에서 만난 이에게 아이락 한 잔 건네는 넉넉한 모습과 낯선 이에게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는 따뜻한 모습도 있다. 매 사냥꾼의 매섭지만 그속에 온화함이 넘치는 얼굴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외에 모래 사막과 그 옆에 펼쳐진 황무지, 일부러 찾아가거나 우연히 만난 바다같은 호수, 길위에서 만나는 게르 여관,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만난 신기루까지 그 모든 순간들을 잡아내기위해 그의 카메라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여행이 '주'인 여행책들의 사진들을 주로 보아왔기에 오로지 '사진'을 위해 몽골에 존재하는 모든 시간을 카메라에 집중한 '작가'의 사진들이 전해주는 감흥은 남달랐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보며 같은 풍경도 이렇게 담아낼 수 있구나, 이런 감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구나,라며 혼자 감탄했다. 사진이 좋았음은 물론이고, 작가의 글도 참 좋았다. 작가의 글을 통해 사진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볼 수 있었고,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기까지 열정은 물론 수많은 고민과 사색이 바탕이 되었음을 알게 됐다. 김홍희 작가의 그런 철학적 사색이 그의 사진들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낯선 곳을 홀로 떠도는 그의 외로움, 그 외로움을 즐기게 해주는 사진에 대한 열정과 고민, 사랑과 초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반가운 미소, 그들이 건네는 아이락 한 잔과 작은 배려의 따뜻함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셔터가 끊어지는 순간 화면 안은 깜깜해졌지만 그가 잡아낸 순간의 기록들은 그가 몽골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준다. 그는 몽골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을 통해 몽골의 많은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는 내내 즐거웠다.

<김홍희 몽골방랑>은 사진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김홍희 작가의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고민과 깊은 사색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진집이었다. 드넓은 초원과 황홀한 하늘과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가 가득한 몽골을 만나고 싶다면, 삶을 마주보는 시선과 작가의 철학이 담긴 사진을 만나보고 싶다면 주저없이 이책을 추천한다. 김홍희 작가와 함께 당신도 즐거운 몽골방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떤 것을 보는 순간은 뜬 눈이지만, 메모리가 되는 시간은 눈을 깜박이는 탄지의 순간이다. 그러니 실제로 쵤영되는 어떤 광경이란 실제로는 사진가가 보지 못하는 순간이다. 그것이 카메라의 숙명이자 사진가의 운명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찍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 그리고 그 보지 못한 광경을 마치 본 것처럼 한 장의 인화지에 되살린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사진가가 목격한 것으로 인정한다. 사진가는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목격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허위의 기초 위에 발표한다. 그 발표는 때로 전시로, 때로 책으로 묶인다. 그것들은 내가 거기 있었다는 증언이 되어 떠돈다. 그러나 그 증언은 나는 거기 있었지만 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또 다른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중략) 셔터가 끊어지는 순간, 화면 안은 검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찰나의 어둠은 생각보다 길게 흘렀다. (중략) 식료품을 사러 들어간 몽골의 작은 마을 이호흘의 광경은 실제로 내가 보지 못한 비밀의 풍경이었다. (20~21쪽)

- 방랑에는 부드러운 음식과 거친 음식, 맛난 음식과 먹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비위가 중요하다. 장기간 떠돌면서 제대로 먹지 못하면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잠을 푹 잘 수 있는 성정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잠을 자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혹독한 일정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자는 두 가지만으로도 떠도는 자의 기본 요건은 갖추는 셈이다. 또 한 가지를 더하자면 언제나 ‘스마일’ 해야 한다. 돌아다니다 보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터져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항상 머릿속으로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해두고, 일어나는 상황들에 대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런 가벼운 마음의 표현이 바로 스마일이다. 사람을 만나도 스마일, 뜨거운 바람을 만나도 스마일, 말 없는 바위를 만나도 스마일……. 그것이 길을 떠나는 궁극적인 자세이다. (180~181쪽)










책의 앞표지..
알록달록한 지붕 아래 뭔가 액션을 품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의 걸쳐진 사진이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 하다.



책표지의 접혀진 부분을 펼치면 표지 사진의 비밀이 공개된다.
자전거를 탄 친구들과 왼쪽으로 걸어가는 아이와 말과 외로운(?) 씨름을 하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눈에 꽉 들어찬다.
궁금했던 비밀스런 오후의 순간포착!



서북 산악지대에 몽골 최고의 주술사가 살고 있다는 홉스굴의 7월이 다 되도록 얼음이 녹지 않는다는 호수의 모습.
주술사란 말 때문인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도는 듯 하다. ;)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의 모습. 사진으로만 봐도 눈이 시원해진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난 햐르가스 호수.
지평선 끝부분 하늘과 맞닿는 파란 부분이 호수인데 이 사진 뒷장에는 마치 바다같은 호수의 모습이 담겨있다.



울기 마을의 냉대와 으스스함이 주던 공포를 단숨에 날려버린 호브드 마을의 사람들.
해맑은 청년의 미소가 참 아름답다.



사막을 달리다보면 신기루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신기루가 사진으로도 찍힌다는 것은 이 사진을 통해 처음 알았다!
사진으로 사막의 신기루를 만나보다뉘! 오오! 완전 감동!



모래사막은 모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모래사막 입구엔 이렇게 황토색의 거친 돌밭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띠모양의 모래사막이 늘어서 있다.



여행의 마지막을 함께 한 게르와 몽골의 풍경.
마지막 사진을 보는 내 마음도 짠~해진다.



뒷표지 사진까지 멋진 <김홍희 몽골방랑>.
사진이 좀 어둡게 나왔는데, 사막을 달리는 자동차와 그 뒤로 흩어지는 모래먼지가 완전 환상적인 사진이었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처음 '김홍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당연히 여류작가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문한 책을 받아들고 책의 뒷면을 펼쳤을 때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이름이 주는 선입견을 단박에 깨준 사진에서 작가는 수염 가득한 얼굴에 담배를 물고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첫 만남이지만 그의 미소가 넉넉해 단숨에 그가 좋아졌다.
철학이 깃든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라는 프로필의 글처럼 그의 사진과 글은 작가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때때론 어렵기도 했지만 고민과 사색을 통해 바라보는 사진 한 장의 감흥은 그래서 더 크게 다가왔다.
그의 다음 사진집이 기대된다. ^^


→ 김홍희 님의 블로그를 들렀다가 <책, 세상을 훔치다>에서 이미 김홍희 님을 만났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위의 사진과 보통 때의 사진이 너무(?) 달라서 미처 알아보지 못한 나의 둔함이여~ orz
그런데 개인적으론 위의 사진이 더 맘에 든다. 특히 얼굴 그득하게 담긴 소탈한 미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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