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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만날 때 ㅣ 우리들의 작문교실 11
송재찬 지음, 윤문영 그림 / 계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조카가 생기기 전까진 어린이책을 접할 일도, 관심도 별로 없었. 그러다 첫 조카가 태어나면서 슬슬 어린이책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어느새 초딩이 되면서 그림보단 글자가 많은 책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머리가 좀 굵었다고 요즘엔 글자만으로 채워진 제법 두꺼운 책도 곧잘 읽어내는 조카가 대견하다. 하긴 초딩 짬밥도 이제 몇 년이니 슬슬 그런 책을 읽을 때도 되었지. 그러나 녀석은 여전히 글자로 뒤덮힌 책보다 그림이 가득한 만화책을 더 좋아한다. (하긴, 나도 아직 그런걸;)
조카에게 권할만한 책을 고르다 이 책을 알게 됐다. 꿈을 이야기하는 책이라 읽어본 후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첫인상이 그리 확 땡기는 책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눈길을 주기엔 너무나 수수한 디자인이었고, 표지와 책 속 삽화의 그림은 어린이보단 어른들 취향에 가까워 보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그리 화려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책의 겉모습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없는 일. 그렇다, 이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수수한 외모 속에 너무나 따뜻한 이야기를 한가득 품고 있는 책이다. 역시, 사람이나 책이나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책 속 이야기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나기철이 서울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든 관객으로 연주회 좌석은 만원이지만 유독 귀빈석의 두 자리가 비어있다. 무대에 나온 나기철은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자신이 고른 '사계'의 네 계절을 연주하면서 그와 함께 선생님과의 추억이 어린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바이올린에 대한 꿈을 이루지 못한 엄마의 갈망으로 바이올린을 시작한 기철이는 곧 남다른 재능을 드러내지만, 엄마의 기대에 대한 부담과 계속되는 힘겨운 연습에 대한 중압감, 그리고 다른 친구들처럼 놀고 싶은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며 방황하게 된다.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 급기야 바이올린을 그만두려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만, 단짝이자 좋아하는 여자친구인 서녕이의 응원과 고된 연습 때문에 음악가의 길을 접고 평생을 후회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격려로 기철이는 자신의 꿈을 깨닫고 그 길을 향해 다시 연습에 전념한다. 그리고 여러 어려움과 고난을 뚫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자신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그 고마우신 선생님과 친구 서녕이를 다시 찾는다.
이책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기철이가 사계를 연주하는 지금의 이야기와 방황했던 어린 시절의 그를 끝까지 믿고 응원해주었던 주변 사람들, 특히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과연 저런 선생님이 계실까 싶을 정도로 헌신적이며 자상한 면모를 보이시는 책 속의 선생님은 현실에선 만나기 힘든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 한 켠에 따듯함을 전해주기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거부감보다 부러움이 커진다. 평생동안 저런 선생님 한 분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행운일까. 이야기 속의 인물이지만 그런 기철이가 참 부러워졌다.
<우리 다시 만날 때>는 꿈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꿈을 이루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연습이 어렵고 힘들어 바이올린을 그만 두려고 했던 기철이가 주변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으로 그 꿈을 꺾지 않고 노력해 결국 값진 성공을 이룬 것처럼, 이책을 읽는 독자인 어린이들도 지금 당장이 힘들고 괴롭다고 포기해 버리지 말고 자신의 꿈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기철이처럼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변인의 온기어린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현실의 유혹에 부딪쳐 꿈을 포기하려는 기철이에게 선생님은 진심어린 조언은 큰 힘이 된다. 부모와 주변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조만간 조카가 놀러오면 이책을 읽어보라고 건네주려 한다. 조카도 나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책을 다 읽으면 한번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ㅎㅎ 기철이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그 꿈을 이룬 것처럼, 나의 조카도 기철이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최선을 다해 나아갈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
- 고통이 없는 성공은 없는 법이야. 성공한 사람들은 다 고통이라는 세월을 이겨 냈어. 천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아. 자기가 스스로 이겨 낸 고통을 쌓아 놓으면 거기서 천재란 싹이 움트는 거야. 그걸 가꾸어 세상에 내놓기가 또 얼마나 힘든데. 그런데 그 좋은 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꾸지 않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는 천재 소리를 듣지 못해. 내가 보기엔 넌 할 수 있어. 네 안엔 그 싹이 이미 돋았어. 잘 가꾸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똑같이 시작했고 똑같이 잘 하는데도 10년, 20년 세월이 흐른 뒤에는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걸 보지. 한 사람은 고통을 참아 내며 열심히 했고, 한 사람은 끝내 자기 자신을 이겨 내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해 버린 거야. (139~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