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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 - 제자리로!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다보면 마구 달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 묘하게 피어나는 그 희열과 감동을, 달리고 달려도 또 달리고 싶어하는 신지와 렌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는 이렇게 이책을 독자들을 달리게 만든다. 아니 달리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는 주인공들의 쾌감을 함께 느끼며 함께 몸을 움찔거리게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마치 렌이나 신지가 된 것처럼 바람을 가르며, 바람이 되어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운동장 한 바퀴만 돌아도 뱃가죽이 땡기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헥헥대는 나의 현실을 알기에 나는 마음으로만 그들과 함께 달렸다. 뜨뜻한 방구들을 짊어지고 마음과는 극과 극을 달리는 귀차니스트의 자세로; (으이구;)
뛰어난 축구선수인 형 겐짱을 동경해 축구를 시작했지만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신지는 고민에 빠진다. 결국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축구를 포기하고 친구 렌과 공립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육상부로부터 가입 권유를 받는다. 달리기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났지만 그것에 관해 별다른 애착도 미련도 없는 친구 렌을 구슬려 육상부에 가입한 신지는 언제부턴가 점점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축구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하며 새로운 꿈을 꾼다. 그리고 새로운 자극과 따뜻한 위로를 함께 건네준 친구 렌과 주위 사람들의 격려 속에 꾸준히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아온 신지는 마침내 그토록 원했던 꿈에 성큼 다가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는 달리기를 통해 삶의 열정과 좌절, 고난과 극복,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알아가며 한층 성숙해져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신지는 달리면서 자신의 꿈을 갖게 되고 그 꿈을 향해 모든 열정을 불사른다. 세상사가 그러하듯 신지에게도 고난과 좌절의 순간이 온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주저앉거나 멈추지 않는다. 꿈을 향한 희망을 품은 채 다시 일어나 달리고 또 달린다. 신지의 멈추지 않는 달리기가 순간순간 내 코끝을 찡하게 한다. 나는 과연 신지처럼 내 꿈을 향해 내 모든 것을 던졌던가, 그런 꿈을 가졌던가, 잠깐의 장벽에 무너지지 않고 나 자신을 굳건히 믿고 지켰던가..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향하는 신지의 모습에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다.
작가는 또한 자신과의 꿈과 싸움에서 분투하는 신지의 성장과 함께 달리기를 통해 신지 주변인물들의 다양한 관계까지 품어낸다. 이책에서 개인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종목인 100M 달리기에 비해 4명이 한마음이 되어 함께 달리는 400M 이어달리기가 그에 못지 않은, 오히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이어달리기는 여러 명이 함께 달려야 하는 경기인 만큼 배턴을 주고받는 러너들간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승리하기 힘든 종목이다. 상대방에 대한 본질적인 믿음이 없이는 원활하게 진행하기 힘든 이어달리기처럼 사람 관계 또한 그러하다. 처음엔 개인주의의 화신이었던 렌이 끈끈한 믿음과 배려를 바탕에 둔 이어달리기를 통해 변화했고, 극의 후반부 갈등을 일으킨 가가야마 또한 이어달리기를 통해 다른 팀원과 교류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400M 계주는 이책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또한 무척 사랑스러운데 그 중심엔 역시 지치지 않는 열정과 변함없는 성실함을 보여주는 신지와 신지만큼이나 달리기를 통해 변화하는 달리기 천재이자 우주인(;;) 렌이 있다. 서로를 보듬고 이해해주는 친구이자 경기에선 선의의 경쟁자이며 항상 옆에서 긍정적 자극제가 되어주는 신지와 렌의 관계는 웃음과 감동을 주며 이상적인 친구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 곁에서 배려를 멈추지 않는, 자신의 욕심보다 전체를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네기시가 있다. 그에게서 천재들 사이에 있는 평범한 자의 고독과 외로움이 느껴져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지만 언제나처럼 씽긋 웃어버리는 네기시가 참 좋다. 그외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지도교사 미짱, 갑자기 들이닥친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신지의 형 겐짱은 물론 너무나도 느린 발걸음이지만 자신이 목표로 한 곳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발을 내딛는 다니구치 또한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는 꽤 오랫만에 만난 가슴 떨리는 성장소설이었다. 밝고 상큼하며 경쾌하고 가슴 뭉클하다. 달리기를 통해 한 뼘씩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 찡한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고, 십대 특유의 풋풋함에 웃느라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고.. 그렇게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어려움과 좌절도 툭툭 털어버리고 빙글빙글 미소짓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내가 언제 3권이란 분량을 부담스러워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숨가프게 읽어온 터라 어느새 마주한 마지막 한 장이 마냥 아쉽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났다. 나는 책을 덮었지만, 신지와 렌을 비롯한 아이들은 여전히 달릴 것이다. 그리고 사과를 한 입 베어문 것 같은 상큼함과 반짝이는 햇살같은 따스함과 가슴 한 켠이 촉촉해지는 감동을 내게 남긴 이책과 함께 나도 한순간이나마 바람이 되어 그들과 함께 달려나간다. 더 빨리, 더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