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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엔 몰랐는데 나도 책의 겉모양을 꽤나 따지는 모양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것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책구입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엔 책표지에 흔들리는 나를 종종 만나곤 한다. 이책도 그중 하나였다. 고백하건데 내겐 남모르는 지병이 하나 있다. 대학시절 한동안 별에 미처 살았기에(그렇지만 지식은 거의 없다;) 별보러 밤산행하던 추억이 몸 속 어딘가에 남아 '별'과 관계된 것만 보면 우선 눈이 번쩍, 귀가 솔깃해지는 병. 아마 우리 동아리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한때 별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이라면 아직 이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다. 각설하고, 그런 이유로 밤하늘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별을 표지로 내려놓은 이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작 읽어보니 표지의 청초한 별은 책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그래도 낚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그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책에 등장하는 우시아나 마을은 도쿄에서 바로가는 버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 갈아탄 버스로 산 넘고 물 건너 가고가고 또 가야만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깡촌이다. 거기다 고립된 자연 덕에 타지방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의 강도높은 사투리를 구사한다. 오죽하면 우시아나말과 도쿄말을 함께 하는 신이치를 보고 2개 국어를 한다고 표현하겠는가(이 부분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가끔 제주방언을 들으면 어떨 땐 다른나라말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우시아나 마을의 사투리가 제주 방언 만큼 특색있는 모양이다; 근데 제주방언, 들을수록 정감가고 좋지 않은가. ^^). 이런 우시나와 마을도 여느 농촌 마을처럼 해마다 줄어드는 젊은 사람들로 고민에 빠져있다. 올해도 벌써 두 명이 도시로 나가고 어느새 마을에 남은 청년은 고작 8명 뿐.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우시아나 마을 청년회는 유일하게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한 우시아나의 '브레인'이자 청년회 회장인 신이치를 필두로 본격적인 '마을 맹글기'에 돌입한다.
큰 기대를 걸고 도착한 도쿄, 그러나 그들은 곧 자금의 벽에 부딪치고 우여곡절 끝에 망하기 직전의 소규모 광고사인 유니버셜 광고사를 만나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계획에 착수한다. 그러나 워낙 오지에 위차한 데다 별다른 볼거리도, 먹거리도, 즐길 거리도 없는 그냥 평범한 농촌 마을인 우시아나에서 광고상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이 오로로콩과 곰베새, 혼령을 불러내는 다마기리, 그리고 마을 한쪽에 위치한 용산호수 정도. 결국 그들은 용산호수에 가짜 괴물을 출연시켜 찍은 사진을 언론에 유포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은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가짜 괴물은 또다른 파란을 몰고 오지만 의외의 사건이 그들을 구출하고 우시아나는 괴물이 아닌 미녀에 의해 새로운 장소로 각광받는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에 또다른 깜짝 선물 하나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물론 해피엔딩감으로.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는 쓰러져가는 농촌 마을을 다시 일으키려는 마을 청년회 사람들의 눈물겨운(그러나 실제론 너무 웃기는;) 농촌마을 부흥 프로젝트다. 그런데 일이 전개되는 상황과 달리 곳곳에서 웃음을 짓게 된다. 마을청년들의 구수한 사투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을 청년들의 엉뚱함과 능청스러움은 이 소설의 즐거움이다. 농촌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시골 마을의 이야기를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 또한 좋다. 다만 사건의 위기를 '그녀의 뜻밖의 결심'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해버린 것과 모든 질타를 무마시키고 새로운 관심을 이끌어낸 그녀의 선택이 그리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책의 가장 앞머리에 등장하는, 6년에 한 번 피어내는 꽃의 색깔로 마을의 흉조와 길조를 알려준다는 개불꽃은 책의 중후반부에 한 번 더 등장한다. 용산호수를 취재하기 위해 나온 미녀 앵커 료코에 의해. 그리고 꽃을 보며 한 그녀의 말은 작가의 말을 대신해 준다. "하양이 셋, 빨강이 둘. 좋은 일이 세 가지, 나쁜 일이 두가지. 뭐, 다 그렇지요. 좋은 일이 하나 많으면 된 거죠." 그렇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그래도 좋은 일이 하나 더 많으면 그걸로 족하지 아니한가.
* 구시렁구시렁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일본어 번역 제목인 <호밀밭에서 붙잡아서>를 패러디한 거라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 번역본의 패러디로 바꾸자면 『오로로콩밭의 파수꾼』 정도? 그런데 책제목을 들을 때마다 '붙잡아서'의 목적어인 '~을'이 빠진 빈자리의 허전함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 건가;; 일본어에 대해선 히라가나도 모르는 무식쟁이인지라 원어에서 품사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몰라서 따지지도 못하는 이 슬픔;), 우리나라말로 바꾸었다면 최소한 우리말 어법에 맞게 번역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책 제목을 볼 때마다 매번 오로로콩밭에서 '대체 무얼' 붙잡는지 궁금해진다. (혹시.. 곰베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