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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 - 유광종 기자, '회색'이란 색감으로 중국 문명의 속내를 그리다
유광종 지음 / 크레듀(credu)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중국의 문호가 개방되면서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중국으로 몰려들었다. 값싼 노동력은 made in china를 붙인 제품들이 세계 각국으로 실어나르며 중국의 급격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제 세계를 향한 중국의 영향력은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개방화가 시작되었을 때 너나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꿈을 안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넓은 땅, 1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 값싼 노동력 등의 매력적인 조건은 중국을 장미빛 희망이 감도는 기회의 땅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중국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고 꿈에 부푼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거듭했다. 명분이나 의리를 들먹이지만 철저하게 이해타산적인 중국인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조금씩 형성되던 한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드라마 '대장금'을 기점으로 절정에 다다랐고 중국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중국인들은 한편으론 엽기녀와 대장금, 한국 음식 등에 열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고구려 유적들을 새롭게 단장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고구려에 관련된 유물과 각종 기록을 왜곡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들에게 불리한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는 아예 수몰해 버리는 등 우리의 고구려사를 조직적으로 훔쳐내려는 동북공정을 강행하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중국인들의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은 새삼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민족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1780년 중국을 여행했던 연암 박지원 선생은 중국 도처에 쌓여있는 담을 보고 '3리마다 성(城)이요, 5리마다 곽(郭)이다'이라 기록했다. 왜 그렇게 중국은 곳곳에 담을 쌓은 걸까. 227년이 지난 지금 유광종 기자는 연암 선생의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하려 한다. <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이런 뜻을 품고 지어졌다. 저자는 중국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와 풍습 등을 통해 객관적인 관점으로 중국인들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그간 잘못 알려졌거나 몰랐던 중국인들의 진짜 속내를 하나씩 들춰내 보여준다.
중국의 어디를 가나 안팎으로 높게 둘러쳐진 담장은 그들의 폐쇄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어디서나 바둑과 마작같은 게임을 즐기는 그들은 이기기 위한 모략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며, 곳곳에 거대한 인위적 건축물들을 세워 자연에 투쟁하려고 하거나, 티베트 정복이나 고구려사 왜곡같은 동북공정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자기것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욕심을 드러낸다.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천하'라는 관념은 과거 고구려의 영토가 현재 자기들의 영역 안에 있다고 해서 그 전의 역사까지 도둑질해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어 버리려는 음흉함을 그대로 갖고 있다.
또한 중국을 대표하는 공자의 유교와 노자의 도교를 통해서도 중국인들의 속성을 살펴본다. 질서와 위계, 규칙과 형식을 중시하는 유교와 변화와 융통성을 강조하는 도교는 서로 상반되는 사상이다. 그러나 이 반대되는 사상이 중국인에게는 함께 존재한다. 네모의 딱딱함을 떠올리게 하는 유교와 동그라미의 유연함이 생각나는 도교는 때와 상황에 따라 서로 모습을 바꾼다. 그래서 규칙이 때론 변칙으로 통용되고, 융통성은 질서로 변화되며, 이런 변화는 상황에 따라 다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국인들과 거래를 하다보면 의리와 명분을 내세우다가도 실리를 위해 곧바로 태도를 바꾸는 그들의 이런 속성을 자주 만날 수 있다고.
- "중국인들을 대하다 보면 형식적인 점에서 의리와 예의 같은 명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이 진행되면 철저하게 타산적인 면모를 보일 때가 많아요. 겉과 속이 크게 달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중국인 대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한국 비즈니스맨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93쪽)
이외에도 내세보다 현세를 더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들이며, 지극히 돈을 좋아하고(돈을 좋아한다는 게 꼭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만큼 또 열심히 일한다), 집단보다 개인플레이에 능하며, 광활한 땅과 여러 민족이 섞여있어 지역주의가 강하고, 개방의 물결과 함께 가족중심주의가 되살아나고 있으며, 변칙에 능해 부정부패가 빈번할 뿐만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고 타인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정서가 강해 사회나 조직의 개혁이 어렵다는 중국. 저자가 들려주는 중국의 모습들은 기존에 알았던 것보다 새롭고 낯선 모습들이 더 많았다. 절대 쉽게 속을 보이지 않는 중국인들의 겉모습만 보고 만만디라고 얕잡아 보거나 대륙적 기질 때문에 느긋하다고 속단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 행위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중국이 우리 문화와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항상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었고 현재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좋든 싫든 정치ㆍ경제적으로 중국인들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하는 우리이기에 무엇보다 그들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동안 중국을 잘못 규정했던 편견과 선입관을 걷어내고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존재 이유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중국인들의 다양한 모습과 잘못 알고 있었던 실체를 접할 수 있었다. 개방적인 듯 하지만 폐쇄적이고,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것 같지만 결코 자신의 실리를 놓치지 않으며, 물 위에 우아하게 떠있는 백조가 물 속에서 바쁘게 발을 놀리는 것처럼 겉으로는 느긋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빠르게 이해타산을 셈하는 중국인들. 현실주의자이자 실리주의자인 그들은 명분과 실리의 줄다리기에서 상황에 따라 규칙과 변칙을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으로 대응한다. 우리는 이렇게 변화무쌍한 중국인들의 속성을 온전히 이해하여 중국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는 인문서적이지만 그리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중국에 대한 문외한인 내가 읽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쉬운 단어를 사용하여 편안한 문체로 씌여져 있다. 또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사례들이 많이 등장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간혹 너무 단편적인 면만을 강조하며 비약적인 접근하거나 부정적인 면만 강조한 듯 보이는 부분들이 거슬리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간 수박 겉핥기식으로 단순하게만 바라봤던 중국에 대한 인식을 재정비하고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점에선 즐거운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