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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와 오라이 - 황대권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여행
황대권 글.그림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가족과 외식을 하고 왔다는 내 자랑글에 '뽐뿌질이 장난 아닌데'라는 덧글이 달린다. 열공을 부르짖는 수험생 사이트에서 '우리 이번엔 열심히 해서 쇼부를 치자'라는 말이 눈에 띄고, 인터넷 쇼핑몰엔 온통 '간지나는~'이란 말이 넘쳐난다. 이건 대체 무엇을 뜻하는 단어인고? 대략 일본말인 것 같긴 한데 그 뜻은 모르겠다. 여기저기 물었더니 정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하면서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정녕 나만 모르는 건가;; ㅡ.ㅡ;;)
그러고 보니 한 십년 전쯤 <이웃집 토토로>라는 재패니메이션을 자막화면으로 보던 중 토토로를 처음 만난 동생 메이가 언니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 말에서 '이빠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일어라곤 모르는 내가 유독 그 단어를 생생하게 들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았겠는가. 그당시만 해도 너무나 익숙한 말이었고, 무엇보다 '이빠이'를 우리말 사투리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초딩시절 우리 만화인 줄 알았던 '캔디캔디', '은하철도 999' 가 일본 만화였고 운동회 때마다 응원가로 불렀던 만화 주제가들까지 일본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을 알았을 때와 충격의 강도가 비슷했다고나 할까.
이렇게 우리 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 우리말 속 일본말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낸 이 책의 저자는 <야생초 편지>로도 유명한 황대권 님이다. 수감생활 중 읽던 일본어 책에서 낯익은 단어를 발견한 걸 계기로 우리말 속 일본말을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한 그는 오랜 시간을 동안 일한사전을 통째로 읽으며 우리말 곳곳에 박힌 일본말들을 찾아내어 정리했고, 그것들은 저자 자신의 생생한 추억들과 버무려져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 편지글이 다시 묶여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 <빠꾸와 오라이>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자신의 생활과 기억을 토대로 그속에 남아있는 이백여 개의 일본말이 담겨있다. 그 말들중에는 그간 시간이 지나면서 세력을 잃고 사라진 말들도 있고 더욱 자신의 기반을 굳건히 다져가며 이 땅에 버티고 있는 말들도 있다. 책속 단어들 중엔 낯설고 생소한 말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건 육칠십 년대엔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그 말들이 지금은 더이상 쓰이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한편으론 반가웠다. 반면 여전히 익숙한 말들이나 그동안 우리말인 줄 알고 사용했던 말들을 발견할 때면 기분이 씁쓸해진다.
책 제목에 쓰인 빠꾸, 오라이와 함께 기스, 다라이, 땡깡, 쿠사리, 겐또, 입빠이(이빠이), 삐까삐까, 몸뻬 등은 일본어라는 것이 널리 알려졌으나 여전히 많이 쓰이는 말들이다. 쪼시, 쓰레빠, 만땅, 엥꼬(엔꼬), 다스, 무데뽀, 곤조, 단도리, 유도리 등은 일본말의 냄새는 나지만 출신성분이 모호했던 말들이고, 세라복, 곤색, 소라색, 메리야스, 와이셔츠 등은 그간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으나 일본말로 밝혀진 것들이다. 이 책에는 이런 일본말들이 비교적 다양하고 폭넓게 실려있는데 그 중 일상생활 속의 일본말을 밝힌 3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다.
그 외 전문 분야(건축, 제봉 등)와 특정 집단(군대, 감옥,조폭 등)에서는 일본말이 마치 전문용어처럼 쓰여지고 있는데 이를 대체할 우리말의 보급과 순화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저런 집단들은 그 성격이 대게 폐쇄적이거나 서열이 중시되는 터라 그 뜻을 쉽사리 짐작 못하는 일본말의 남용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저자는 감옥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일본말들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일제가 남기고 간 잔재의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아직까지 쓰이는 일본말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놀라게 된다. 일제강점기라는 우리네의 아픈 역사로 인해 강제로 유입되어 사용을 강요당했던 일본말들로 인해 아름다운 우리말이 병들거나 사라졌고 아직도 그 잔재로 인해 너무나 힘들어 하고 있다. 그나마 그간 펼쳐졌던 국어 순화 운동에 힘입어 일본말이 난무하던 육칠십 년대보다는 많이 줄어들어 다행이다.
그러나 미국이 과거 일본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문화가 적극적으로 유입되면서 무분별한 영어 남용과 영어 우월주의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가까운 예로 패션잡지만 펼쳐봐도 조사 빼곤 모조리 영어단어로 뒤덮여 있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전문적인 표현인 것양 여기고 있다. 세계화를 떠들며 기업들은 하나둘 회사이름을 영어로 바꾸고 있고 브랜드명이나 심지어 가게간판까지 모두 영어로 바뀌는 추세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들이나 신문 기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영어나 일어를 사용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 어르신의 말 속에 일본말이 뒤섞여 있는 것과 지금 우리의 말에 영어가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빠꾸와 오라이>는 육칠십 년대에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였던 일본말들의 발견과 그에 대한 설명을 저자의 어린날 추억들 속에 적절히 버무려 냄으로써 앎의 기쁨과 읽는 재미를 동시에 준다. 또한 편지글의 형식을 띠고 있어 마치 동생에게 들려주는 듯한 저자의 말투에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책의 마지막엔 궁금할 때마다 바로 찾아볼 수도 있게 색인을 두는 친절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가까이 두고 자주 펼쳐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말을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 지구촌이란 말처럼 각국의 문화가 빠르게 교류되고 그에 따라 나날이 변화하는 언어를 인위적으로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 지를 알고 그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들이 결코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여기저기 상처입은 우리말을 보듬고 어루만져 새로이 꽃 피우려는 노력을 시작하기엔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