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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풍속사 - 조선.조선인이 살아가는 진풍경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엽기조선풍속사>라는 튀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제목 밑에 '조선ㆍ조선인의 살아가는 진풍경'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엽기'와 '진풍경'이라.. 엽기적인 행동 속에 보여지는 진짜 모습을 담은 책인가. 혼자 궁시렁 거리며 책을 펼쳤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엽기'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걸었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궁금증에 대한 답은 의외로 바로 첫 장에서 해결됐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엽기'란 한 마다로 '유쾌한 엽기', '틀을 깨는 엽기'였던 것이다.
- 전하! 원래 임금의 복색은 한 번 입다가 더러워지면 빨래를 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옵니다.
- 야, 임금 옷이 무슨 태극기냐? 입다 버리게?
- 아니, 거시기, 전통이 그러한지라¨¨¨. 또 경제도 어려운 이때 전하처럼 가진 분이 돈을 풀어야 소비가 진작되고, 소비가 진작되어야 돈이 돌고,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살아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참에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하께서 옷을 해 입는다면, 움츠러들었던 나라 경제가 기지개를 펼 것이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됐거든? 나는 그냥 빨아서 입을 거거든? 내가 옷을 해 입는다고 나라 경제가 살아나면, 앙드레 김 불러다가 재경부 장관을 시키는 게 더 빠르겠다, 이 바보 같은 놈아! (156 쪽)
이것은 영조임금과 판내시부사와의 대화 중 일부분이다. 요부분만 보더라도 이 책의 느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조선시대를 이야기 하지만 조선시대의 말투를 따르지 않는다. 이야기 하고자 하는 사건의 상황은 역사적 사실에서 가져오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어투는 현대인들의 말을 사용했다. 조선이라면 으레 당연히 떠오르는 사극톤의 대화법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친구와 이야기하는 그런 친근한 말투 그대로이다. 거기다 문장마다 작가의 유머감각을 한껏 발휘했고 요즘 유행하는 유행어도 적절히 섞어 현대인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조선의 이야기임에도 바로 옆의 친구 얘기를 듣는 것 같은 생생한 현실감! 그 기분좋은 친근함에 다른 역사책과 달리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그러나 이 책이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낄낄대며 읽는 동안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놀라운 것도, 안타까운 것들도 많았다.
책을 읽으며 미처 몰랐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했는데 강력히 억제되긴 했지만 조선시대에도 이혼제도가 있었고 이혼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치며 머리카락에 손도 안 대고 살았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속알머리'는 없고 겉머리로만 만든 상투로 더위를 견뎠다는 것(하긴, 아무리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쳐도 손톱은 자르고 때는 밀었을 것 아닌가! 머리카락이라고 뭐;; ㅎㅎ;;), 조선시대에도 '생화학 무기'를 사용했다는 것(-그것도 '거름'으로 쓰기에도 부족한 '똥'을!! ^ ^;), 화장실 뒤처리 용품이 그렇게나 다양했다는 것(이 책을 읽으면 호박잎의 용도를 알 수 있다! ㅋㅋ), 왕의 사냥놀이에 그렇게나 많은 인력과 경비가 든다는 것 등이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요즘 빰치는 성대한 신고식 문화가 있었다는데 그 내용이 엄청나다. 신고식 하려다 집안 기둥 뽑는 건 시간문제일 정도로 성대했단다. 또한 좌의정 빼고 모든 관료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세조시대의 김진지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신고식이나 청탁, 뇌물, 공금횡령 등의 이 시대를 어지럽히는 악습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씁쓸하다.
무엇보다 성리학이 강요된 조선시대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고려시대까지 여성은 남성과 비슷한 지위를 유지했으며 부모의 재산도 상속받을 수 있었고 재혼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받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여성의 지위는 곤두박질 친다(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걸 생각하면;; -.-;;). 남자들은 한 트럭의 첩을 거느려도 떳떳하지만 여성들에게는 일부종사를 강요하며 열녀를 미덕으로 삼게 했고, 남자들은 골백번 결혼해도 태클을 걸지 않으면서도 재혼한 여자의 자식은 벼슬을 못하게 하는 등 여성의 재혼을 강력히 금지시킨 나라, 조선.
힘 없고 약한 나라에, 그것도 하.필.이.면. 여자로 태어난 죄로 여러 전쟁을 겪으면서 왜로, 청으로 끌려갔던 여인들. 갖은 고생을 겪고 겨우 고향에 돌아왔지만 따뜻하게 맞아주고 안아주기는 커녕 더렵혀진 몸으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고 온갖 멸시와 냉대를 당했던 가엾은 그녀들. 그녀들을 환향녀(還鄕女: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로, 그녀들이 끌려가 낳은 아이들을 호래자식(호로胡虜 : 오랑캐 포로의 자식)이라고 부르며 욕했던 그 사람들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또한 이 말들에서 유래된 욕들을 아무 생각없이 해대는 사람들은 그 속에 얼마나 슬픈 역사가 숨어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웃음과 재미 속에서 발견한 이런 사실들은 그동안 박제되어 빛바랬던 조선의 모습에 생생한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또한 그들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작가의 발랄한 상상력과 편안한 문체 덕에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엽기조선풍속사>. 이 책이 너무 가볍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역사랑 친하지 않았던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우리네 이야기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재미도 있고 조선인들의 새로운 풍속도 알게 되니 이것 참 좋지 아니한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