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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지음 / 소나무 / 2006년 9월
평점 :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무자비한 폭격이 계속되고 그에 대한 보도가 티비를 가득 채울 때, 간혹 나오던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들어간 평화운동가들이 인질로 잡혀 석방교섭중이란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일본인과 우리나라 사람 각각 몇 명이 억류당했다가 풀려나는 과정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서 솔직히 그들은 왜 위험한 분쟁지역으로 스스로 들어가는지 이해 못했었다. 이라크와 상관없는 외국인으로서 전쟁을 막기 위해 인간방패가 되기 위해 이라크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이라크로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마음을, 의도를 늦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 샬람, 샬람… 앗살라 말라이쿰…. 평화를, 평화를… 부디 당신에게 평화를….
평화운동가 임영신, 그녀는 두 자녀와 남편과 어머니를 남기고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이라크로 들어간다. 그리고 '전쟁전'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이라크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미국의 경제제제로 백신같이 꼭 필요한 약조차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어린이 병원의 아이들과 지난 전쟁의 흔적을 온 몸으로 품은 채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을 통해 이라크의 아픔을 접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또다시 시작될 전쟁에 대한 공포와 위험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그들의 따뜻한 온정과 차 한 잔 함께하는 평화로운 일상들도 만나게 된다. 전쟁으로도 없앨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그네들의 모습.
- 우는 것으로 평화가 오진 않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울 수 있을 때 평화는 시작됩니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졌다는 '바그다드'. 언제쯤 그 곳에 평화가 깃들까. 미국의 일방적 폭격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그로인해 파괴된 도시와 다친 사람들로 전쟁후 이라크는 더더욱 분주하다.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힘겨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전쟁의 아픔 속에서 피어나기를 멈추지 않는 희망의 씨앗들, 그들이 엮어내는 삶의 노래는 어느새 내 눈을 붉게 물들인다.
- 어머니, 이 꽃을 보세요. 그 폭격 속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어났어요. 저 폭격으로도 이 꽃이 피는 걸 멈출 수 없는 거예요. 어머니, 여기 이 생명의 힘을 좀 보세요. 저 꽃에 피어난 희망을 좀 보세요! ( 91쪽 수아드 아주머니의 말 中)
이 책은 '이라크 전쟁 / 피스보트(peace boat) / 평화단체나 다른 분쟁지역에 대한 평화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야기 뒤에 이어진 평화의 배'피스보트'와 함께 시작된 평화여행은, 베트남, 인도, 스리랑카, 에리트레아, 터키 등 보다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전해들을 수 있어 좋았다. 또한 평화여행에 동참하는 여러 젊은이들의 모습이 무척 대견스럽고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이제껏 그들과 같은 시야를 갖지 못한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저자의 눈을 통해 경험한 평화의 배, 그 언젠가 나도 그 곳에 동참하여 평화에 대해 보다 넓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비록 만만치 않은 경비가 가장 큰 걸림돌이긴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 꼭지에 언급된 분쟁지역으로의 평화여행은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곳에서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중에서 이 책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피킷'이 가장 인상깊었다. 필리핀 만다나오 섬의 북부 코타바토에 있는 분쟁의 땅, 피킷. 그곳에 진정한 평화에 대한 '이해'가 담겨있었다. 상대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키우는 대신에 서로 용서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그들,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 것을 막고 평화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려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 아름다워 보였다.
- 우리가 서로 증오하는 것으로는 이 전쟁과 수탈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게 알고 있지요. 때문에 전쟁이 또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평화지역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평화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만 지켜질 수 있는 거니까요.
우린 평화를 믿어요. ... ... ... 당신은 평화를 믿나요? (270~271쪽)
한국전쟁이라는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우리들. 지금 '평화'가 간절히 필요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곳,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을 뿐 우리에게도 '평화'는 너무나 간절한 것이 아닌가. 평화의 시작은 알고보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내가 아닌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 그의 잘못을 용서하고 포용할 줄 아는 관용, 그것이 바로 평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더불어 작은 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를 만들어 내듯이, 작고 미약하지만 우리의 작은 평화들이 모이고 모여 이 지구촌을 평화로 물들일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꿈꾸어 본다.
<평화는 나의 여행>을 읽으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과 나의 평화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해볼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단순한 기행문으로든, 사회운동의 한 일환으로든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한다. 더불어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